치솟는 기름 값, 직격탄 맞은 운수노동자

노동사회

치솟는 기름 값, 직격탄 맞은 운수노동자

편집국 0 3,669 2013.05.29 10:04
 

mykim_01.jpg
[ 화물연대의 파업은 일단락됐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평택에서 열린 화물연대 집회에서 한 운수노동자가 시름에 잠겨 있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

기름 값이 우유 값보다 비싼 시대다. ‘3차 오일쇼크’가 도래한 지금, 노동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유가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특수고용 화물·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지난달 전국을 뒤흔드는 파업을 벌였고 이어 택시·버스·항공 등 민간 운수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원가 상승과 판매 부진의 이중고로 제조업체도 비상에 걸렸다. 고유가는 서민경제는 물론 올 임금단체협상에서도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치솟는 기름 값이 노사관계에 몰고 온 파장을 살펴봤다.

정부 또 ‘땜질 처방’, 불씨 남긴 화물파업

화물연대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6월13일부터 19일까지 전국의 물류는 멈췄다. 부산항 감만 부두는 외국 선적들이 싣고 온 컨테이너로 항만의 기능을 상실했다. 창사 이래 한 번도 멈춘 적 없었던 삼성전자 광주공장도 출하된 냉장고를 쌓아둘 곳이 없어 가동을 중단했다. 화물노동자 파업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가리지 않았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뿔이 난 국민들은 박수를 쳤다.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배경은 차를 굴리면 굴릴수록 손해가 나는 기막힌 상황 때문이었다. 70피트 컨테이너를 싣고 서울-부산을 왕복할 경우 손에 쥐어지는 운송료는 약 70만 원가량. 그런데 기름 값(약 500리터 사용)만 95만 8,500원이 나온다. 6월 기준으로 한국석유공사가 집계한 석유 값은 리터당 1,917.03원이었다. 유류세 보조금으로 14만 3,500원이 나오는데, 6월9일 정부가 발표한 고유가대책에 따라 유가 인상분의 50%를 지원받아도 고작 2만 9천 원에 불과했다. 정부보조에도 운송료 대비 기름 값만 8만 6천 원의 손실이 생긴다. 

경유가는 10년 새 1,100%가 올랐는데 운송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결국  국토해양부는 화물연대와의 14차례 협상 끝에 △내년 표준요율제도 법제화 추진, △고속도료 통행료 할인대상 확대, △과잉공급 해소를 위한 감차 지원, △화물차 LPG차량 전환지원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여론의 비난과 정부의 압박에 떠밀린 화주업계와 운송회사들도 평균 20% 안팎의 운송료 인상에 합의하면서 일단 화물파업의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2003년 화물연대 1차 파업 때부터 불거졌던 운송시장의 왜곡문제와 화물 지입차주의 노동자성 인정문제는 이번에도 슬그머니 넘어가버렸다. 핵심 쟁점이었던 표준요율제의 경우 법제화 추진 시기를 내년으로 못 박기는 했지만, 과태료 부과 등 처벌의 강제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문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지난해 정부는 화물연대와 표준요율제 도입을 합의하고도 규제완화 정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를 지키지 않아 이번 파업의 빌미를 제공한 바 있다. 특히 화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후속대책이 빠져 있어 유가가 급등하면 파업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안정적인 운송료 협상 창구가 없는 화물연대로서는 ‘운송거부’ 외에 선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운수노조 관계자는 “정부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을 재연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벌써부터 운송료 인상합의를 뒤집는 화주업체 때문에 노벨리스코리아지회 등 일부 사업장에서는 재파업에 돌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mykim_02.jpg
[ 기름값 때문에 시작된 건설기계분과의 파업은 이제 표준임대차계약의 '폭탄 돌리기' 형국으로 가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

건설기계노동자, 시작은 기름 값… 결말은 노동조건 개선

화물연대에 이어 덤프·레미콘·굴삭기 등으로 구성된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가 6월16일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정부 유류세 환급 등 고유가대책에서도 빠져 고통은 더욱 컸다. 건설기계분과는 건설현장에서 건설업체가 직접 경유를 구매해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기름 값이 오를 때마다 계속 파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지난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건설기계 표준계약서를 통해 건설업체의 유류비 부담을 명시한 상황이었다. 

전면파업 하루 다음날인 6월17일, 정부는 △모든 관급 공사현장에 기름 지급, △건설기계임대차계약서 현장 의무 작성, △건설기계노동자 건설현장 내 재해발생 시 산재보험 적용, △불법 하도급 근절방안 마련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건설기계분과는 전면파업을 지역별파업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파업 1주일이 지나도 그 어느 건설현장에서도 표준임대차계약은 체결되지 못했다. 발주처·원청 건설업체·하청 건설업체 사이에서 ‘핑퐁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건설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자.

6월23일 오전 2시, 경기도 광명 소하지구 주택공사현장에서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서남건설기계지부와 주택공사, 원청 4개 건설업체의 교섭이 시작됐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4자는 지난해 건설기계관리법이 개정된 만큼 ‘법대로’ 건설기계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원을 내야 한다. 

문제는 결국 추가 발생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로 집중됐다. 표준임대차계약에 따를 경우 하루 건설기계 가동시간은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든다. 기름 현장 제공에 따른 추가 비용도 뒤따른다. 국토부가 우선 관급공사 현장에서 표준임대차계약을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발주처-원청-하청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계약 체결이 쉽지 않았다. 

발주처인 대한주택공사측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하지만 운송단가 등의 문제는 결국 계약을 맺는 당사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한발을 뺐다. 중견건설업체측은 “협력업체(하청업체)와 임대차계약에 대한 부분은 공감하고 있지만 임대차계약에 하루 8시간을 명시하다가는 망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건설기계분과의 파업의 시작은 ‘기름 값’이었으나, ‘표준임대차계약’으로 대변되는 노동조건의 개선문제로 돌파구가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 운수사업장, “임금인상은커녕 정리해고 될 판”

초고유가 행진 속에서 버스업계와 택시업계의 올해 임단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물가가 올랐으니 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노조와, 기름 값 때문에 경영사정이 어렵다는 사용자들이 기 싸움을 시작해야하지만 그런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사용자들이 임금협상을 피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정부가 요금인상과 유류비 보조 등을 수용하지 않으면 버스감축 운행과 올 임금협상 중단에 나서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었다. 정종권 연합회 기획부장은 “기름 값은 계속 오르는데 요금은 몇 년째 그대로”라며 “버스업체마다 더 이상 돈 나올 구멍이 없다”고 말했다. 대안 없는 임금협상을 벌이느니 차라리 전면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7월15일 연합회측은 정부가 시외버스 인상요금 등을 추진함에 따라 일단 유보했다. 그러나 서울, 대전, 광주 등 일찌감치 임금협상을 마친 사업장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2~3.5% 내외로, 물가인상률 4.5%에도 못 미치고 있다. 나머지 중소도시 버스사업장 노사는 임금협상 상견례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내버스의 경우 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어 지방자치단체가 적자분을 메워주고 있다. 문제는 시외버스다. 전북지역 전역을 다니는 전북고속은 6월 운행차량의 22%를 감축했다. 유류비가 매출의 65% 가량을 차지하면서 적자노선부터 줄여나가고 있다. 감축운행은 버스노동자의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대다수 버스노동자들은 포괄임금역산제를 적용받는다. 만근에서 하루가 부족해도 임금이 20~30%가 줄어든다. 자동차노련은 버스업계가 50% 감축운행을 할 경우 3만 7천 명의 버스노동자가 임금이 삭감되고, 인력감축마저 우려된다고 말했다.

택시업계의 사정도 비슷하다. LPG가격은 국제유가와 함께 동반상승하고 있다. 6월에 이어 7월에도 가격이 인상됨에 따라 올 들어서만 33.09%(209.99원)가 올라, 7월20일 현재 리터당 1,067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SK가스와 E1 등 LPG수입·공급사들은 추가인상 여지마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택시 사용자들은 정부를 상대로는 요금인상을, 노조에는 사납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택시 사업장 임단협의 경우 임금인상 여부보다는 사납금 인상률이 임금을 결정하는 구조다. 운수노조 민주택시본부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임금협상이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 

항공사는 임금동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지난 1월 대한항공노조에 이어 대한항공조종사노조도 임금동결을 선언했다. 아직 협상 중인 아시아나항공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소속의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서용수 노조 위원장은 최근 조합원 담화문을 발표해 “처음 임금인상 요구안을 결정할 당시 회사 영업수지는 유가와 환율상승으로 1분기 기준 3천 억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며 임금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서 위원장은 “많은 기관에서 대한항공의 천문학적인 적자를 예상하고 사회적 여건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며 “임금동결이라는 고통스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대한항공 일반직들로 이뤄진 한국노총 소속 대한항공노조도 임금동결을 선언한 바 있어 대한항공 노사 임금협상은 모두 동결로 마무리됐다. 대한항공의 임금동결은 아시아나항공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정유사 공장도가격 공개하고 최고액 고시해야”

기름 값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운수·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당장의 임단협보다 유가를 안정시킬 근본적인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경우 정유사의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기름 값을 정부가 통제해야한다는 것이다. 과거 2차 오일쇼크 당시 정부가 석유배급제를 실시한 바도 있지만, 이미 시장에 맡겨져 있는 정유공급사업을 정부통제 아래 두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꼭 정유사 국유화가 아니더라도 현행법에 근거한 석유가격 통제는 가능하다. 석유사업법(23조)에 따르면 지식경제부장관은 석유의 수입·판매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등락할 우려가 있는 경우, 국민생활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석유정제업자·석유수출입업자·석유판매업자의 석유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지금처럼 치솟는 기름 값으로 인해 서민 경제가 파탄에 이른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의 유가폭등이 과거처럼 수급불균형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석유수급 조정명령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7월15일부터 공공기관 자동차 홀짝제 등을 시행하고 있는 정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70달러까지 오르면 민간부문에서도 일부 강제적 에너지 절약조치를 시행하고, 휘발유·경유·LPG 등에 대한 유류세 인하와 중소기업 자금지원 등 추가적인 민생안정대책을 강구할 계획이지만, 석유제품의 가격인상을 제한하는 최고액 고시 등 법적 조치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5대 거품빼기 범국민운동본부의 상임대표인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내 경유의 99%는 국내정유사가 정제해 공급하는 것이고 1%가 국제시장에서 수입하는 물량인데도 정부는 정유사들이 국제유가에 따라 가격을 올려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장관은 “유가자율화 정책은 고유가 정책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유가자율화 조치 이후 국내 정유사들이 담합을 하면서 경유가격이 치솟고 있는 것”이라며 “정유사가 공장도가격의 정확한 내역을 공개하고, 정부는 최고액을 고시해 유가인상을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고유가대책이 지속되는 한 “기름 값 때문에 못 살겠다”는 노동자의 외침은 계속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