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정규 노동자가 본 촛불시위

노동사회

어느 비정규 노동자가 본 촛불시위

편집국 0 3,341 2013.05.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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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에는 많은 노동조합들도 참여해 다양한 요구들을 외쳤다. 6월19일 열린 촛불시위에 참여한 코스콤비정규지부와 알리안츠생명노조 조합원들.  ▶ 사무금융연맹 ]

비정규직이라는 강요된 신분을 지고 살아간다는 게 이 땅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원치도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이랜드·뉴코아, 기륭전자 등과 더불어 비정규직투쟁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우리 코스콤비정규지부의 파업투쟁이 어느덧 300여 일을 넘겼습니다. 저를 비롯한 조합원 모두는 사측과 공권력의 탄압, 무노동 무임금으로 인한 생계 어려움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코스콤 사측의 비정규직 착취 방식은 사우회의 이중 착취, 정규직 퇴직자 지원프로그램, 하도급사 지분 참여, 고객사 사기계약 등 악랄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계획단계부터 치밀하고 다양해, 업계에서 ‘비정규 착취의 군계일학’으로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위장도급·불법파견을 노골적으로 자행한 공기업 코스콤은 별반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별을 시정하고 법에 명시된 고용의제를 준수하라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외침이 짓눌렸습니다. 용역깡패와 무장한 전경을 동원하여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사측과 경찰, 이를 거드는 구청……. 과연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여론으로부터 소외되고 일상적으로 맞아 오면서도, 조만간 정의와 상식이 통할 날이 오리라 믿으며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 두 주 만에 침탈……. 이 정권이 수립된 후 최초로 피 흘린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제는 그 기대감이 사치가 아니었는지 하는 자괴감마저 들기도 합니다. 한편, 우리 코스콤비정규 노동자들은 작년 대선 시기 이명박 후보를 포함하여 후보들을 찾아다니며, “민생문제, 사회양극화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누가 됐건 당선과 동시에 거대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요즘 정말로 가시화되어버려,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먼저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눈으로 본 촛불의 황홀경

여고생들이 중심이 된 ‘촛불모임’ 수준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모일 줄, 그리고 그렇게 오래도록 다채로운 양상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더욱 더 가슴 벅차고 감격에 겨운 것 같습니다.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늘어선 행렬 속에서 초를 들고 꿈속을 걷는 듯 행진하는 동안, “나만 힘들고 괴로웠던 게 아니었구나”, “우리만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라며 혼잣말을 끝없이 웅얼거렸습니다. 곁에 선 학생들, 아주머니와 아이들, 연인들, 노동자들,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까지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먹거리나 절차상의 하자 때문에 거리로 나온 것이 아녔습니다. 주부들은 살인적 물가와 사교육비, 맞벌이와 양육문제로 시달렸고, 청소년들은 ‘0교시 수업’과 자율학습, 과외, 비인간적인 성적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었고, 대학생들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등록금과 좁아져만 가는 취업문, 진로 때문에 피가 마르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은 법에 명시된 노동 3권마저 야금야금 빼앗겨, 특히 60%에 육박한 우리 같은 비정규직들은 인권마저 교묘하게 무시되고 차별과 착취의 현실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운하 일방 추진, 의료 및 사회공공재(물·에너지·운송 등) 관련 기업들의 민영화, 한미 FTA 적극 추진 등으로 이명박 정부가 불러올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불안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정부가 나서서 기름을 들이 부었으니, 이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결국 우리 비정규직들은 단지 시기적으로 좀 더 일찍 저항에 나섰을 뿐, 촛불집회는 행진에 함께 한 개개인들에게 연관된 사회적 모순들이 누적되었다가 터져 나온,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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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6일 코스콤비정규지부는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국회의사당 앞 CCTV 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 코스콤비정규지부 ]

투쟁현장 침탈 주도했던 경찰서장이 촛불탄압 선두에

하지만 기득권을 틀어쥐고 있는 수구 세력과 이명박 정부는 본질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놀라우리만큼 무책임하고 완강하게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과연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이 힘을 집중·유지시킬 수 있을지, 과연 정권이 민중을 두려워하게 만들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로 맘이 편치 않습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수구언론, 애국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보수세력, 공정하기를 애당초 포기한 경찰과 행정당국의 최근 행보는 ‘결탁’이라고밖에 달리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대포, 군홧발과 주먹, 방패와 진압봉, 그리고 소화기 사용도 모자라 돌멩이와 쇳덩이마저도 망설임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촛불행렬에 던져대는 적의와 살의에 찬 공권력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러지고 터지고 피 흘리며 널브러지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아무래도 10년 만에 권력을 틀어 쥔 이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태를 축소·폄하하다가 여론이 수그러질 때쯤 다시 대대적으로 반격하고 나서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 마음이 불안합니다.

한편, 저도 촛불행렬 안에서 일부 과격한 주장이나 행위를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도록 유발하고 자극하는 정권의 의지와 집행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여기에 폭력적으로 과잉 대응하는 공권력의 방법과 의도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악랄해서 놀라울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 비정규직들을 탄압하고 농성장 침탈을 진두지휘했던 당시 경찰서장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 기동대 경비과장으로 승진해, 우리에게 휘둘렀던 똑같은 태도와 방법으로 촛불현장의 민중을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사람은 최근에는 “물대포는 가장 안전한 진압 도구다. 물대포로 부상을 당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란 인터뷰로 유명해지기도 했었죠.

비정규노동 문제와 촛불시위 만날 때, 세상이 바뀐다!

어쨌든 이렇게 광우병 쇠고기, 공공재 및 의료의 사유화, 대운하 강행 등 민생을 외면한 주장들에 대해서 공분이 모이고 민심이 움직이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의 현장에서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착취·탄압에 관한 문제에는 어찌 그리 여론이 일지 않는지, 벼랑 끝에 내몰린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많은 실망과 절망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심각한 노동문제들을 방치하는 것은 모든 정권들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뒤흔들고 무너뜨릴 것임을, 저는 이번 파업투쟁을 진행하는 동안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특히 비정규직이 될 차례가 그리 멀지 않은 학생들과 아직 내몰리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이를 알려내고 똑같은 문제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각한 사람들이 너나없이 그 방안을 고민하고 의지를 모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힘이 많이 부족하고 대부분 망설이고만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보수 세력의 노동억압적 행태를 ‘비폭력’만으로 피해 다녀서는 안 될 듯합니다. 우리 모두의 주장을 틀어막기 위해 이들이 작당하고 휘두르는 폭력은 마땅히 자위권 차원에서도 맞대응해야 합니다. 항의, 고발, 여론화, 광고불매, 총파업, 수업거부 등 불의한 정부를 상대로 저항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세상을 ‘멈춰’, 이 정권의 폭주에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민중의 힘을 일깨워서 권력이 두려움을 느끼게 해줘야, 진정 세상을 ‘바꿀’ 단초가 됩니다.

미래를 위한 싸움, 질기게 이겨냅시다! 

물량공세로 여론을 조작하고 본질을 호도하는 보수 언론을 거부하고, 정부와 자본의 불의한 의도에 대항하여 나쁜 놈을 나쁜 놈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민심이 더욱 더 큰 그림으로 무섭게 일어나야 합니다. 

보수언론과 수구세력은 노동문제를 ‘떼법’, ‘정서법’,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며 사회 양극화의 핵심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을 확산시킬 명분만 찾고 있습니다. 또한 기본권을 무시하고 말살해서 이를 통해 자신들의 이윤과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계획에 ‘정책’이라는 허울을 씌워, 일말의 부끄럼도 없이 노골적으로 사적 이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에게 생산과 소비의 주체이자 이 나라 주인인 노동자와 서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가지고 장난질 친다면 어찌된다는 것을 진정 살벌하게 가르쳐 줘야합니다. 정당, 노조, 학생, 양심적 사회단체, 종교단체, 여타 공동체 등 모든 조직이 최대한 결합하고 응집해서 이를 함께 이끌어 나가야 할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 제풀에 체력이 부쳐 이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 불복종을 포기하거나 외면하게 된다면, 앞으로 5년뿐 아니라 장기 집권을 노릴 것이 자명한 이 세력들에게 미래마저 모두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저 거대한 벽을 향한 저항에, 비정규직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우리들도 참여할 수밖에 없는, 쉼 없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함께하는 투쟁하는 속에서 모두가 서로의 짐과 희망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