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계획과 양대 노총의 대응

노동사회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계획과 양대 노총의 대응

편집국 0 4,211 2013.05.29 09:58

지난 5월25일 저녁. 전날 있었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서 경찰의 연행을 처음 경험한 시민들은 격앙되어 있었다. 이 날도 경찰의 연행은 이어졌다. 신촌에서만 50여 명의 시민들이 연행됐다. 산발적으로 흩어졌다가 새벽에 다시 청계광장으로 모인 시민들은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담담한 대화와도 같았던 그 발언들 가운데에는 노동계의 당면 현안인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반대 의견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확정된 것 없이 ‘설’만 난무하는 민영화 방안

이명박 정부는 3월 말부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시작으로 공기업 민영화 문제를 공론화시켜왔다. 정부에서 민영화 논의를 견인하고 나선 곳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대표적이다. 일부에서는 민영화 논의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감사원 평가연구원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각 기관별로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송대희 평가연구원장,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주도적으로 나섰다.

민영화 논의를 초반에 주도했던 기획재정부는 싱가포르의 테마섹 방식(국가가 만든 지주회사가 공기업들을 소유하고 경영은 민간에 맡기는 방식)을 주장했으나, 이에 대해 곽승준 수석이 5월6일 “(기획재정부가)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의 소관 공기업까지 다 갖겠다는 말이며 민영화를 안 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며 브레이크를 걸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5월6일을 전후해 기획재정부가 각 공기업에 구두로 혹은 전화로 통보했다고 알려진 민영화 방안에도 테마섹 방식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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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의 민영화 계획은 △완전 민영화, △자체 구조조정, △통·폐합, △청산 등 크게 4가지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곽승준 수석이 언론에 밝혀 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곽승준 수석은 5월2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완전민영화하거나 경영만 민영화하는 등 전체 민영화 기관은 50~60개 선이 될 것”이라며 “통폐합 기관은 별도로 구상 중이고 테마섹 방식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공기업 민영화 방안은 여러 곳에서 ‘설’들만 난무했다. 당초 정부는 5월 중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방안을 보고하고 6월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정기국회에서 관련 입법을 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5월20일경부터는 민영화 방안 조기 발표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결국 5월22일 김규옥 기획재정부 대변인이 나서 “공기업 민영화 방안의 발표 시점은 6월 말 정도가 될 것”이라며 “정부 안이 확정되면 관련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상정해 최종 추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6월2일에는 『한겨레』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을 재통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같은 날 있었던 한국노총과 정부, 한나라당 3자의 정책협의회의 결과 발표에 따르면 최종방안 발표시점은 “6~7월 말”로 더욱 애매모호해졌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이 날 정책협의회에서 한국노총 임원 중 한 명이 한전 재통합 문제에 관해 질의를 했으나 정부와 한나라당 모두 묵묵부답이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정부는 광우병 쇠고기 정국 돌파용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급하게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인 양대 노총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고 시민들 또한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물, 전기 사유화 등 민영화 방침에도 반대하고 나서면서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움직임에 대한 양대 노총의 대응은 판이하다.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이명박 정부의 첫 ‘작품’이 될 것은 모두 예상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모색해온 대응 방향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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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24일 열린 민주노총의‘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저지투쟁 전국단위노조대표자 결의대회’ 모습. 민주노총은 같은 날 ‘공공부문 7개 조직 공동투쟁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었다.  ▶ 민주노총 ]


‘사회공공성’ 의제로 정면돌파 의지

민주노총의 대응은 ‘사회공공성 강화’로 요약된다. 그동안의 활동도 사회공공성을 의제화하고 현장 투쟁동력을 확보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3월 말에 꾸린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저지 및 사회공공성 강화 공동투쟁본부’(공투본)다. 공투본은 산별연맹 사이의 투쟁의제와 수준을 조율하는 역할도 담당해 왔다. 

5월6일에는 비정규직, 한미 FTA, 민생문제, 공공부문 구조조정, 대운하 등 8대 분야에 걸친 ‘대정부 100대 요구안’을 국무총리실에 전달하고 정부에 교섭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은 5월14일 “교섭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 향후 정부정책에 참고 하겠다”는 회신만을 보내왔다. 공투본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김성란 민주노총 기획국장은 “100대 의제에 대해 교섭하자고 요구했지만 ‘노사정 협의체에 들어와라’는 말뿐이었다. 의제별로 각 부처에 대한 교섭투쟁 방침이 여전히 있지만, 국무총리실에서 한 말을 봤을 때 대화와 소통의 의지가 전혀 없음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5월21일~23일에는 ‘사회공공성 포럼’을 열어 공공성 문제의 의제화에 주력했고 다음 날에는 ‘공공부문 7개 조직 공동투쟁 결의대회’와 ‘전국 단위사업장 노조대표자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어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전면 대응을 결의했다. 사회공공성을 중심으로 결집시킨 동력으로 ‘6말 7초’ 대규모 투쟁을 통해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다.

노동과 시민 이어 준 ‘쇠고기 정국’

사실 민주노총에 있어 주목되는 부분은 ‘쇠고기 정국’이다. 촛불시위가 파죽지세로 확산되면서 민주노총의 투쟁 여건이 성숙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처음부터 촛불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보수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배후세력’으로 의심받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번 쇠고기 정국에서 주도권을 발휘한 적도 없고 발휘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운수노조가 미국산 쇠고기의 입항과 운송을 거부하겠다고 나서면서 촛불시위와 노동계의 접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촛불시위의 ‘배후세력’인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지지와 성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도 촛불시위에 동참하면서 소속 사업장과 병원에서 ‘미국산 쇠고기 사용 금지 조항’을 단체협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나섰다. 6월2일에는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성명을 발표해 “국민에 봉사하는 공무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광우병 쇠고기 홍보지침, △물 사유화, △공공부문 외주위탁, △국립대 법인화, △무분별한 공무원 감원 등 행정의 공공성을 해치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잘못된 정부정책에 대한 행정지침 수행을 거부하고, 민주노총의 광우병 쇠고기 운송저지 투쟁에 적극 결합하겠다”고 밝혔다.

전공노의 성명에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잘 녹아 있다.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는 분명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공공서비스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도 자명하다. 이 둘을 나누지 않고 총체적으로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한 것이 쇠고기 정국이었다. 

김성란 국장은 민영화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 자유발언의 8할은 민영화 정책을 염려하는 내용이 담겨 있더라. 이미 의식화 단계가 아니다.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일반 대중들의 저항에 부딪히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반대로 (대중들이) 너무 빨리 민영화 문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뻘짓’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지, 조직화된 진보진영이 속도를 너무 넉넉하게 봤다”고 말했다.

총파업 포함한 ‘6말 7초’ 총력투쟁 앞당겨질 수도

그는 또 “국민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행동으로 체화되고 있다”며 “인수위부터 3개월 동안의 소위 ‘이명박 정책’에 대한 1차 심판장과 같은 성격이다. 민주노총은 국민의 판단이랑 같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이 제기하고 있는 요구나 투쟁의제가 있다. 쇠고기를 넘어서 공공정책과 노동정책의 총체적인 후퇴 같은 문제에 대한 투쟁계획과 목표에 입각해 하반기까지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쇠고기 정국이 격발시킨 반(反)정부 분위기를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이냐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해야 할 때 아니냐는 의견에 대해서도 “아직 설익게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6말 7초 투쟁의 초점이 바로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이다. 이를 통해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정책의 반민중성과 반노동성을 최대한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게 초점이다. 이에 기초해 하반기에 총파업을 포함해 전 조합원의 총력투쟁 태세를 만들어서 정치투쟁을 확실히 펴는 게 기조다. 여기서 총파업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6월항쟁 21주년인 6월10일에 전국에서 100만 명이 함께 하는 촛불시위를 계획하고 있고, 6월5일부터 7일까지 ‘72시간 철야집회’ 계획도 확정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6월3일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정부의 민심과 역행하는 정책을 바꾸기 위해 16일께 총파업이나 총력투쟁에 돌입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4일 열리는 투쟁본부 대표자회의에서 총파업 여부를 확정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대표자회의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실효성 확인하지 못한 정책연대의 ‘복원’ 노력

한국노총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한국노총 역시 4월 초에 ‘사회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구조개악 저지 대책위원회’(공대위)를 발족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공대위의 활동은 정책연대의 채널을 만들기 위한 압박 성격이 짙었다. 정부의 설익은 공기업 민영화 대책이 나올 때마다 공대위가 발표한 성명의 주된 비판은 “대화는커녕 노총의 최소한의 확인요청조차 차갑게 외면한” 정부의 독선적인 구조조정 추진에 대한 것이었다. 출범 이후 3개월이 넘도록 정부는 한국노총과 정책협의회 한 번 열지 않았다. 정책연대라는 카드의 실효성을 검증할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전면투쟁 돌파’라는 강공법을 택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노총은 5월 초에 기획재정부가 각 공기업에 구조조정안을 지시한 직후 기획재정부를 항의 방문했다. 공대위의 실무를 맡고 있는 최임식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장영철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이 각 기관의 담당자들을 차례로 불러 구조조정 방안을 전달했다. 그것도 문서로 전달한 게 아니라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아주 치졸하게 구두로 지시하면서 받아 적으라고 말하며, ‘의견이 있으면 내고 없으면 말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같은 날 곽승준 수석은 “공공의 적이 되더라도 민영화는 제대로 한다”고 말하며 전면적인 민영화 방침을 밝혔다. 이에 5월8일에는 한국노총 임원진들이 한나라당 관계자들을 만나 일방적인 민영화 추진에 거듭 항의의 뜻을 전달했고, 10일에는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토론회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급박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 정책은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 쪽에서는 별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5월15일에 있었던 노총 임원진과 청와대 수석진의 조찬 간담회에서는 “노총과 상의하면서 진행하겠다. 5월19일에 예정되어 있는 (민영화 방안) 대통령 1차 보고는 연기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으나, 청와대 수석진은 예정보다도 빠른 5월17일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보고했다. 한국노총은 크게 반발했다. 5월26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정책협의회에서 정책연대를 파기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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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6월3일 ‘제369차 회원조합 대표자 회의’를 열고 ‘민의 존중과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한국노총 산별대표자 결의문’을 채택했다. ▶ 한국노총 ]

정책연대 ‘이후’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비록 연기되긴 했지만 첫 정책협의회가 6월2일에 열렸다. 이 자리에는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과 임원진,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배일도 노동위원장, 강만수 장관과 이윤호 장관 등이 참여했다. 회의 결과 당초 정부가 6월 중으로 확정하기로 했던 공기업 민영화 방안은 7월까지 확정하기로 하고 한국노총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례’ 협의회로 못박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필요에 따라 정책협의회를 계속 연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일단 정책연대의 틀이 무너지지는 않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강만수 장관이 협의회 도중 “노총과의 협의를 위해서라도 6월 중으로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 한국노총 관계자는 “정부측 입장은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을 먼저 발표하고도 얼마든지 (한국노총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이 같은 요구와 관련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협의회가 끝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정책협의회는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는 등 급격한 민심 이반을 겪고 있는 정부가 한국노총을 우군으로 잡아두기 위한 ‘서비스’ 성격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정책연대가 성실히 이행되지 않을 경우 투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최임식 국장은 5월20일 만난 자리에서 “정부 입장이 계속 바뀌어 일정을 정확히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구체적인 (투쟁의) 틀은 잡아놓았다. 정책연대 틀 내에서 해결하도록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 때는 싸울 수밖에 없다. 구체적 일정과 같은 세부적 내용들은 6월 말쯤 되면 정해질 것이다”고 밝혔다.

“정부가 집권하고 나더니 국민들 생활에 밀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공기관을 전리품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계속 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민 전체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공기업 민영화의 폐해를 알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공부하고 있다. IMF 때와는 다르다. 이 부분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의 입장은 당분간 정책연대의 향방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연맹 차원에서는 ‘사회공공성’이 화두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움직임은 전방위적이다. 한 곳에서 전담해 계획을 내놓는 것이 아니고 청와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 다방면에서 ‘말’을 풀고 있다. 그런 만큼 오히려 그 실체를 명확히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양대 노총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대응 방향을 정했다. 한국노총은 투쟁기조로의 전환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은 정책연대다. 반면 민주노총이 준비해 온 총력투쟁 방침은 쇠고기 정국을 타고 속도 조절이 필요할 만큼 우호적인 조건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

하지만 양대 노총 총연맹과 핵심 산별연맹 간에는 어느 정도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의 한 관계자는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공공성’에 대한 인식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공공기관에 대해 대중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반응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며, 일반 시민들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우선 이명박이 정말 엉망이기 때문에 이명박의 정책이 싫은 거고, 2002년 철도·발전·화물 연대파업 이후 민영화가 대안은 아니라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는 “소유가 아니라 운영, 거버넌스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공공서비스의 생산자인 노조와 소비자인 시민이 함께 참여해 공공서비스를 통제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운수연맹은 6월 중으로 시민사회진영과 간담회를 시작해 연대 방법을 모색하고, 6월 말까지는 철도, 발전, 가스, 지하철 등의 산하 조합으로 ‘기간산업공동투쟁본부’(가칭)를 2002년 공투본 수준으로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노총 공공연맹 관계자는 “협상 국면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에는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필요성이 너무 급박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투쟁 국면으로 들어가면 양대 노총과 시민사회와의 연대가 핵심이 될 것이다. 시기도 비슷할 것이고, 절박하다면 (공공연맹과 공공운수연맹의) 연대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또 “기관장 전면 교체 등의 문제가 걸려 있어 산하 노조들의 동시 임단협이 잘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은 국민들에게 어떻게 공공서비스에 관한 내용들을 알려낼 것인지가 문제다. 지역과 밀접하게 연계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공공서비스의 역할 강화는 기본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지역 거버넌스, 공공부문 비정규직 양산에 대해 미흡했던 대처들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공공운수연맹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공공서비스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자

공기업 민영화는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공공서비스 수혜자인 일반 시민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문제다. 그 대척점에는 공기업을 정책적 재원 확보의 수단이나 비효율성의 집합체로 인식하고 있는 정부가 있다. 이런 구도 아래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해야만 하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두 가지 과제가 있다. 하나는 일반 시민들에게 민영화가 가져올 폐해의 심각성을 어떻게 알려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떻게 ‘사회공공성’을 자신들 공기업의 핵심가치로 만들어 공공서비스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첫 번째 과제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시민들 스스로 어느 정도 진도를 나가준 듯하다. 결국 노동조합이 일반 시민들이 공공성의 가치를 마음껏 누리며 더 나은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투쟁이냐 협상이냐를 떠나,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힘은 여기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공기업 민영화 저지’와 ‘공공성 확보’라는 일반 대중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두 마리 토끼는,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을 때 가능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