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넘어서는 사회공공성 투쟁을 위한 몇 가지 제안

노동사회

관성 넘어서는 사회공공성 투쟁을 위한 몇 가지 제안

편집국 0 3,847 2013.05.29 09:57

노무현 정부 5년 기간 노동조합운동은 끊임없이 ‘사회공공성’을 부르짖어 왔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시장화 공세가 거세지면서 사회공공성 투쟁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이제 어느 집회에서나 이 구호가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걸 보면 사회공공성 투쟁이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왠지 사회공공성 투쟁이 어디선가 머물러 있거나 막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회공공성 의제조차 관성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그래서 사회공공성 투쟁의 활성화를 위하여 몇 가지 생각을 적는다. 아직까지 노동조합운동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기에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들이지만, 선의의 제안이므로 생산적인 토론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손에 잡히는 대안 들고 공세적으로 나서야

첫째, 사회공공성 투쟁의 본령이 방어적 성격을 넘는 공세적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공공성은 신자유주의 시장화에 맞서는 의제로서 시장화 저지, 반세계화, 구조조정 중단 등과 같은 ‘반대’에만 머물지 않으며, 사회공공적 영역을 ‘확대’하는 대안운동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즉 ‘저지’보단 ‘강화’가 이 운동의 본령이다. 

내가 사회공공성 투쟁이 공세적 운동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래 사회공공성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구호로만 머물거나 혹은 선언적 대안으로 안주하는 경향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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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보건의료노조가 내세웠던 무상의료 포스터. "암부터 무상의료를!", "가구당 월 3만원만 더 내면 무상의료 현실이 됩니다."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 보건의료노조 ]


의료 영역을 보자.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은 오래 전부터 무상의료를 주장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무상의료를 달성할지에 대해선 사실 대답이 없다. “부유세를 거두면?”, “우리가 집권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질병으로 고통 받고 가계가 무너지는 사람들에겐 멀리 있는 이야기다. 

의료공공성운동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 조항에서 의료개방을 포함시키지 못하게 한 것도, 끊임없는 보험자본과 의료계의 의료시장화 공세에 맞서 이나마 지켜낸 것도, 노동조합운동의 투쟁 덕이다. 내가 지적하고픈 것은 진보운동이 무상의료를 ‘구체화’하는 활동에 무심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네거티브 방식에 너무 익숙한 탓이다. 그 결과 한국의 의료체계는 항상 위험에 처해 있는 중대질환 환자로 고정화되어 묘사된다. 그것의 실천적 효과는 무엇일까? 사회구성원들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달려갈 곳은? 무상의료 정책? 아니다. 사보험 시장이다.

왜 민간자본이 암보험, 실손형보험(실제 지불한 의료비를 보험가입금액 한도 내에서 지급받는 보험)과 같은 상품을 내놓는 것일까?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중대질환에 대한 두려움, 고액 본인부담금에 대한 불안이 핵심 포인트라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료공공성운동의 방향은? 당연히 의료 보장성의 강화다. 그런데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이 없다. 사보험은 시민에게 눈에 보이는 ‘상품’을 전시하는데 우린 ‘주장’만 반복하는 꼴이다.

의료시장화를 막는 최선의 길은 의료의 보장성을 가능한 빨리 높이는 일이다. 한국의 의료보장이 과거에 비해선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돼야 한다. 경중질환에 대한 보장성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시민들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점차 건강보험의 효과를 체험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공공성 모델을 현실화할 수 있는 유리한 소재다. 보장성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야 한다. 

나는 몇 해 전 보건의료노조가 제기한 “가구당 월 3만원 더 내면 무상의료”라는 구호가 발전되지 못한 게 아쉽다. 매년 연말에 벌이는 건강보험료, 수가 협상에서 노동조합이 ‘중대질환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험료 인상’을 한 묶음으로 제안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내년부터 중대질환은 건강보험이 책임집니다. 가구당 연 본인부담금은 어떤 경우든 1백만 원이 넘지 않습니다”라는 주장으로 사회구성원과 소통할 수는 없을까? 이러한 제안에 대하여 노동조합운동 내부에 반대 입장이 있는 줄 안다. 그래서 필요하다. 제발 이런 논란부터 벌이자. 그래야 주장을 넘어 방안이 나올 수 있다.

“소득세 더 내겠다” 노동자들이 먼저 제안하면 어떨까?

둘째, 노동조합운동의 사회공공성투쟁에서 빠져있는 결정적 영역이 ‘재정문제’다. 공공의료, 교육, 연금, 주거 모두 막대한 돈이 든다. 이 돈을 마련하지 않는 한 사회공공성 주장은 공허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이 주장에 크게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 세금이든 보험료든 국가재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노동조합운동이 내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운동은 “재정문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거나, 혹은 “부자나 기업에게 더 거두면 된다”고 주장해 왔다. 재정 관련 노동조합이 없어서인지 국가재정에 대한 분석자료나 요구자료도 제대로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공공성 강화는 모두 공적 재정이 필요하다. 요구가 힘을 가지려면 재정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방안이 포함되어야 한다. 앞에서 제기한 건강보험의 사례에서도 그러하듯이, 세금이든 사회보험료든 구체적인 인상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이 소득세를 더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소득세 인상은 건강보험료 인상보다 더 많은 내부 논란을 야기할 것이다. 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야 재정의 중요성과 구체적 방안을 절실히 다루게 된다. 

난 언젠가 노동조합운동이 ‘소득세 인상’을 먼저 제안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더 많은 소득세를 내야 할 계층들에겐 엄청난 압력을 주는 증세운동이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노조간부들이 많을 듯하다. 묻고 싶다. 소득세 인상이 내키지 않는다면 왜 노무현 정부의 소득세 인하엔 반대했는가? 소득세 인하가 부자 호주머니만 채워주는 것이라면 소득세 인상은 그 역이지 않은가? 세금에 대한 조합원의 부정적 정서를 감안하면 험한 길이겠지만 긴 호흡으로 피하지 말아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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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웠지만 노동조합 당사자와 긴밀한 소통을 나누지는 못했다. 지난 3월 진보신당 창당 모습(왼쪽)과 2006년 권영길 당시 민주노동당 원내대표가 현대자동차노조에서 사회연대전략 참여를 호소하는 모습(오른쪽).  ▶ 진보신당, 한겨레21 ]

요구에서 참여로, 사회연대적 참여투쟁이 필요하다

셋째, 이제 국가와 자본에 대한 요구투쟁에만 머무르지 말고 노동자 자신의 참여를 전제하는 사회공공성 실천이 필요하다. 지금 노동조합 울타리만 넘어서면 (정규직) 노동조합운동을 못마땅해 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과거 민주화운동 및 노동운동 중심세력들이 쟁취한 사회적 지위보다 뒤쳐진 약자계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위로 보면 배불리 이윤을 독차지하는 부유계층과 자본세력이 있지만, 밑으로는 하루하루가 힘든 불안정노동자들이 많다. 

참여는 ‘사회연대’를 의미한다. 예를 든 사회보험료 인상, 소득세 인상 등도 참여적 사회공공성 투쟁일 수 있다. 진보 진영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회연대전략’도 이에 속한다. 참여투쟁은 노동조합운동의 지금까지 실천방식에서 보면 일탈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만큼 기존 관성을 깨는 것일 수도 있다.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나는 사회연대전략이 노동자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분할을 극복하는 계급형성전략이며, 노동자의 권리를 확산하면서 자본을 압박하는 공세적 전략이라고 확신한다. 구체적 사업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진지한 토론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자기혁신 백서운동’을 제안한다 

넷째, 공공부문 노동자의 ‘자기혁신 백서운동’이 필요하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사회공공성투쟁의 핵심 주체일 텐데, 과연 노동자들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인정받고 있을까? 공공부문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공공부문 노동자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지만, 사회공공성 강화를 외치는 노동자라면 사회구성원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공공서비스 영역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정세의 주도권을 잡고자 할 때면 으레 ‘공기업 감사’를 추진했고, 이명박 정부는 왜 대대적인 공기업 구조조정을 정권 초기에 배치했을까? 공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알기 때문이다. 이는 노조운동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공기업 개혁의 화두를 신자유주의 권력이 독점하도록 양보(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부문 혁신은 먼저 주창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쥘 개연성이 높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우리 공기업의 사회공공성 훼손 사례 백서’를 마련하여 사회구성원과 소통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닌 줄은 알지만 한두 개 사업장에서라도 선도적 모델이 나왔으면 좋겠다. 

노동조합운동의 ‘인정투쟁’으로서 사회공공성투쟁

이 글의 내용은 모두 논란이 큰 사업들임을 잘 알고 있다. 사회공공성 투쟁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으나 그 활력은 그만하지 못하다는 판단이 이러한 문제제기적 글을 쓰게 만들었다. 어찌되었든 기존 관성적 방식을 넘어서려면 논란이 클수록 좋다. 서로의 진정성을 존중한다면 논란은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하다.

글을 맺으며 사회공공성 투쟁이 노동조합운동 스스로에게 ‘사회적 인정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회공공성의 구체적 대안을 내놓는 일, 국가재정 방안을 다루어야 하는 일, 요구투쟁에만 머물지 말고 스스로 참여하는 실천방식을 개발하는 일, 노동조합이 공기업 내부혁신의 주체가 되는 일 등은 모두 노동조합운동이 사회공공성 투쟁의 ‘역할자’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모색이다. 아직도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사회공공성 투쟁의 핵심주체로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