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노조의 공공성 투쟁, 어떻게 풀어나갈까

노동사회

공공부문노조의 공공성 투쟁, 어떻게 풀어나갈까

편집국 0 3,441 2013.05.29 09:57

대선과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순탄하리라 여겨졌던 이명박 호의 앞날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전 국민의 저항 앞에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이와 함께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신만만하게 추진되었던 공기업 민영화와 공공기관 구조조정 역시, 광범위한 촛불집회와 함께 타오른 전기, 가스, 수도,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의 흐름 속에 현재는 숨 고르기 단계에 들어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공공부문노조의 숙원과제인 ‘공공성’ 논의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담론으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대안적 무기로서의 공공성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가, 곧 공공부문노조의 앞날을 좌우할 뿐 아니라 이후 한국사회의 진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민주노총에서도 ‘시장화·사회화 저지 및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부문노조의 공동투쟁을 2008년 정세 흐름에서 주요한 투쟁동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애당초 계획한 대로 6월 하순이면 공공부분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의 뚜껑이 열릴 것은 확실해 보인다. 또한 현재 잠시 주춤거리는 양상을 보이는 영역(에너지부문 등) 역시 임기 5년 내 언제라도 구체화할 것이라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상황에서 보듯, 이러한 구조조정 논의 역시 전 국민적 저항 정국의 흐름에 따라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 따라서 저항을 조직화할 수 있는 선전도구로서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현 단계 공공부문노조의 사활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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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운수연맹이 5월28일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 표적감사와 정치감사를 규탄하는 모습.  ▶ 공공운수연맹 ]

이명박 정부의 화끈한 민영화 추진과 초법적 조치

이미 이명박은 대선 후보 시절의 공약에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러한 공약에 근거하여 당선 이후 6개월간 △공공기관 인력 및 예산 감축, △공기업 민영화, △공공기관 통폐합 등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곧 현 정권의 존립근거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의 인식 속에서 공공부문은 시장 활성화 및 경제 살리기를 가로막는 ‘비효율’의 상징으로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인식에 근거하여 공공부문은 가능한 단순화, 슬림화,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국정운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교육, 의료, 언론 등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적 영역에서의 사유화 및 시장화를 위한 각종 개악 조치들이 발표되거나 검토되면서, 공공부문 전체에 대한 공세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감세 정책과 한반도 대운하 등의 공약과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공공부문에 대해 세출예산 10%(20조 원)를 감축하고 공기업 민영화 및 정부 지분 매각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이명박의 경제공약은 2008년 1월 인수위원회 시절의 기획예산처 업무보고, 3월 대통령 취임 직후 기획재정부 업무보고 등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는 전체 공공기관 305개에 대해 △2009년 예산편성 시 예산 및 인력의 10% 감축,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 및 자회사 매각, △유사 공공기관의 통폐합, △민간으로의 기능 이양 등을 핵심 내용으로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전 공공기관의 구조조정 계획(안)이 6월 하순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이에 앞서 △금융 공기업(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의 단계적 민영화, △정부 공적자금 투입기업(대우조선, 하이닉스 등)의 매각, △우정업무의 공사화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발표를 앞두고 초법적인 조치를 연일 동원하고 있다. 신정부 출범 직후 각 부처는 산하 공기업 및 공공기관의 기관장에 대한 사퇴 압력을 넣기 시작했고, 사퇴를 거부한 기관장이 재직하고 있는 기관에 대해 ‘특별 감사’를 전개했다. 감사원은 3~4월 31개 공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사를 전개한 데 이어, 5~6월에는 70개 준정부기관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미 감사를 완료한 일부 공기업에 대해서는 검찰수사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의 수사는 사회적 언로를 통해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고,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국민적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목적 속에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먼지 나올 때까지 턴다”는 자세로 표적감사, 표적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인원, 부채, 수익실적 등과 관련한 공기업의 경영정보 통계를 자의적으로 구성하여 언론에 제공해 악의적 보도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의 공세 이면에는 현재의 공공부문이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공공성은커녕 ‘비효율과 낭비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작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부문에 대한 마녀사냥식 구조조정 공세는 애석하게도 현재의 이명박 정권하에서만 이뤄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과거 정권교체기마다 약방의 감초 격으로 지속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공기관 기관장에 대한 불법적 사퇴 압력, 공기업 경영정보 왜곡, 감사원의 표적수사 및 직무남용 등에 대해서 언론 일각에서 무리한 구조조정 시도라며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부문의 운영에 대해서는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비판적인 여론이 무성하다. 또한 공공부문의 존립 근거인 ‘공공성 강화’ 여론을 확산하는 길 앞에는 높은 장벽이 놓여 있다. 공공성 논의가 “공공부문 종사자의 집단 이기주의를 앞세운 노조의 면피성 구호”라는 지적은 여전히 공공부문 노조가 넘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정부나 언론보도 역시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걸림돌로 ‘노조의 반발’을 주저 없이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노조가 세우는 공공성 강화의 구체적인 내용과 근거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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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폐해를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5월10일 오후에 열린 화물연대의 화물운송노동자 총력결의대회 모습. ▶ 화물연대 ]

‘밥그릇 지키기’ 넘어, 국민 염원에 제대로 접속하라

최근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 핵심의제랄 수 있는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정책당국자의 판단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감세 정책 및 한반도 대운하 등 국책과제 추진을 위한 재원 확보 차원에서 검토되었던 가스, 도로, 전기 등의 민영화 추진 논의가, 국민들의 거대한 저항 앞에 슬그머니 후퇴하거나 우회로를 찾고 있다. 이들 공공서비스는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영역으로서 정부 입장에서는 자칫 어설픈 구조조정 발표가 걷잡을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듯하다. 즉, 공기업의 비효율 극복이라는 홍보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필수공익서비스에 대한 ‘이명박식 민영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구조조정 논의과정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친 소 수입’을 둘러싸고 폭발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서서히 공공서비스 문제로 번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속에서 현 시기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국민적 저항을 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흐름 변화가 절실하다. 국민들의 절대적인 관심이 집중된 공공서비스 영역, 예컨대 철도, 지하철, 석유, 전기, 가스, 상수도, 통신 등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폐해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노동운동의 입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여론을 확산시켜야 한다. 

특히 국가 경제가 뒤흔들리고 있는 고유가 시대에 맞춰, 가스, 전기 등의 민영화가 갖는 위험성(에너지주권 포기 및 서비스요금 폭등)을 폭로하고, 정유사들의 담합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고유가 시대에 가스, 전기, 석유 등 에너지 자원에 대한 국가의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고, 정유회사의 공기업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떨까? 똑같은 논리로, 철도, 지하철의 대중교통 서비스의 민영화 및 구조조정 결과의 해악, 그리고 철도, 도로, 공항, 항만 등의 SOC(사회간접자본)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해악 역시 충분히 국민적 공감대 조성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미 민영화된 한국통신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통계(연구개발 예산 축소, 최다 주주배당 등)에 대한 국민적 선전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의 국민적 공론화는 공공부문노조들이 현재의 노조활동을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 투쟁에 한정시키는 태도를 극복하고 ‘사회적 운동’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속에서만이 가능하다. 말 그대로 “공공서비스에서의 공공성 강화”를 국민적 여론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일부 정파의 슬로건이 아닌 모든 공공부문노조들의 조직적 실천과제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민주노총도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연대’(가칭)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운동노선으로의 전환은 공공부문 노조의 자기반성과 공공부문 혁신에 대한 분명한 실천의지가 수반되어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비록 국민적 저항으로 주요 에너지 및 SOC 부문 공기업 민영화가 지연되었고 또 우리의 요구대로 공적 소유가 지속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운영체계가 그대로 지속되는 것 역시 국민의 입장에선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즉, ‘소유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현재 공기업 및 공공부문이 처한 국민적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일부 노동단체에서 제기하는 ‘공기업 자율 경영’ 논리는 오히려 공공부문의 공공성 실현에 분명한 한계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운영 및 지배구조 민주화, 노조가 선도적으로 제기해야

이러한 한계 극복을 위해 우리는 이제 소유의 공공성 못지않게 ‘운영 및 지배구조의 공공성’을 검토해야 할 때이다. 이는 공공부문 운영의 비효율과 방만 경영을 앞세워 상시적으로 들이대는 신자유주의적 경영기법에 대한 방어기제일 뿐 아니라, 공적 소유의 틀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절실한 대안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인사, 예산 집행, 정책 결정과정 등 운영 및 지배구조 민주화는 공공성 강화를 위한 또 하나의 시급한 실천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공공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국민적 대표의 참여하에 민주적이고 공정한 정책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고, 또 공공기관 운영과정에 대해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하다. 국민들의 참여 속에 공공서비스 범위의 확대 및 내부 운영에서의 공공성이 담보되어 결국 국민적 이익에 부합하도록 공공기관의 틀을 바꿔냄으로써, ‘공적 소유 = 국민적 소유’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공공기관의 공공성은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 ‘소유의 사회화’로 이어지는 체제변혁의 전망까지 가지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일단 출발은 ‘국민적 참여의 틀 구축’부터이다. 

현재 ‘소유의 공공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 및 대안적 모색은 공공부문노조나 진보진영의 전문가 그룹 내에서 과거 국가기간사업 사유화 저지 투쟁에 힘입어 나름대로 성과가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운영 및 지배구조 민주화’에 대한 논의 및 대안적 노력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즉 공기업 구조조정에 관련한 대안으로서 공공성 논의는 주로 소유구조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운영의 공공성 문제를 논하는 것이 개량주의적 관점라고 폄하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노조 역시 ‘생존권 사수’의 틀 속에 공공성 요구를 가두는 실리주의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운영 및 지배구조의 공공성 투쟁을 공동의 투쟁과제로 설정하는 데 주저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운영 및 지배구조와 관련한 논의는 공공부문노조에서 주체적으로 제기되기보다, 오히려 정부의 강압적 구조개혁 정책에 대한 방어적 흐름으로 간간히 제기되는 수준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공기업 소유구조 개편(민영화, 통폐합)의 흐름을 유보하는 대신, 운영 및 지배구조 측면의 ‘혁신 공세’를 통해 수익성 및 성과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통제를 제도화시키는 데 앞장섰고, 공공부문노조는 이러한 구조개혁 공세에 자기 기업 울타리 안에서 개별 분산적으로 대응하는 데 머물렀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노무현식 공공부문 구조개혁은 결국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한결 용이하게 만든 ‘멍석’이었던 셈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실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 공공부문의 공공성 투쟁 의제를 사회적으로 확대시켜내지 못했던 공공부문노조 당사자였다. 현재의 운영체계로는 5년 정권교체 시기마다 ‘통과의례’로 몰아닥치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광범위한 지지여론을 확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여전히 노조는 집단이기주의의 낙인을 면키 어렵고, 공공성을 앞세운 투쟁 역시 우리 내부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노조의 공공성 투쟁은 ‘자기 기업의 영역’을 지키는 투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모든 공공적 영역에서 운명 및 지배구조의 민주화를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데 관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결코 기업별노조의 틀, 기업별 노조의 의식 아래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공공성 확보의 조직적 과제는 공공부문 노동운동이 산별노조로의 질적 발전을 추구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노조에서 공공성 투쟁은 필연적으로 산별노조운동으로의 조직적 발전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