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상실 정부’의 졸속 민영화 정책

노동사회

‘개념상실 정부’의 졸속 민영화 정책

편집국 0 3,566 2013.05.29 09:56

*****************************************************************************************************
이 글은 지난 6월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이명박 정부의 위기, 18대 국회 무엇을 해야 하나?” 토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민영화 혹은 개혁의 근거와 방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간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낙하산 인사’,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등에 업고서, ‘민영화 혹은 민간경영기법 도입을 통한 공공부문의 효율화’와 ‘공공부문 감축을 통한 시장의 활성화’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그 내용으로 내세우고 있는 듯하다.

jhpark_01.jpg
[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07년 6월19일, 기획예산처 앞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 민주화! 기만적인 비정규대책 기획예산처 규탄! 공공운수노동자 결의대회’ 모습.  ▶ 참세상 ] 

민영화, 대운하 파낼 돈이 필요한 정부의 선택   

공공기관의 문제점에 대한 언론 보도는 △낙하산 인사(주무부처, 정치권의 영향력),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부정비리, △높은 인건비 및 과도한 직원 혜택, △수익성 악화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이미 2007년 4월 제17대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돼 발효된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 인사시스템이 확립된 상태다. 또한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획예산처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두고 매년 기관평가를 하고, 이 평가를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문제점이라 지적된 이러한 부분들은 재벌집단이나 일반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효율화’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공공기관 민영화 혹은 개혁의 실제 이유가 되기 어렵다고 보인다. 전후의 행태와 언급에 비추어 보면 민영화의 이유로 짐작되는 것은 시장에 대한 맹신과 더불어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지세력인 보수층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직접세 감세를 하긴 해야겠는데, 그 부족분을 간접세 부담으로 모두 전가시키기는 어렵다. 또한 대운하 등 개발정책을 실행하고, 연구개발 등 기업지원정책을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은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는 국가자본 중의 일부를 팔아 약 65조 원을 마련해 임기 중 필요한 사업 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하면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여야합의에 의해 보장한 공공기관장들의 임기를 무력화할 수 있고, 공공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역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임 정부의 핵심 사업이었던 혁신도시 등의 지방균형발전사업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공공성 들어내고, 알짜 수익기관만 떨이로 팝니다!”

이처럼 ‘돈 만드는 것’이 이명박 정부 민영화 추진의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다 보니, ‘매수자가 있는 기관’이 민영화 추진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민영화의 대상은 공공성이 매우 낮은 기관이어야 하며, 그 중에서도 경영효율성이 떨어져서 정부 지원이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가는 곳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물론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관을 민영화할 때도 ‘곧바로 민영화할 것이냐 효율성을 최대한 올려서 제값을 받고 민영화할 것이냐’는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때야 당장 외화와 공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돈 되는 기관을 민영화할 이유가 일부 있었다. 즉 금융구제를 받기 위해서 그쪽의 요구사항인 민영화에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환도 쌓여 있고 금융구제기구의 요청을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급하게 돈 되는 기관을 민영화할 하등의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매수자가 나서서 흔쾌히 돈을 지불하려는 기관은 대체로 그동안 국가가 선제투자를 많이 해놓은 기간산업이나, 수요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재 관련기관이거나, 공적자금의 투입 등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이 호전된 기관들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민영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곳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돈 만들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려다 보니, 이처럼 민영화의 대상이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민영화의 우선대상으로 거론되어야 할 개발 관련 기관들은 대기업들에게는 별 매력이 없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지공사나 수자원공사는 국가의 수용권을 갖고 있을 때 그 활동이 의미를 갖게 되는데, 수용권이 빠진 개발공사들은 기업들로서 매력을 갖기 어렵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매수자가 나서는 기관을 팔기 위해서 공공성을 희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정부는 전기·수도·철도 등에 대해 민영화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슬쩍 말을 바꾸어 민영화해도 요금상한제를 적용한다고 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론을 떠보고 있다. 기회만 되면 기간산업과 필수재 부문을 민영화하기 위해 틈을 노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여론이 여의치 않은 경우 ‘국가지주회사’나 ‘민간운영위탁’ 등 어정쩡한 제안을 할 것이다. 국가지주회사나 민간운영위탁은 민영화를 위한 과도기적인 의미를 갖고 있어서 민영화라고 할 수도 있고 민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슬그머니 민영화되거나 사실상 민영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영화와 마찬가지로 다루어야 한다.

행정부처 안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민영화과’

민영화 추진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기관의 공공성이 없어졌거나 매우 낮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획예산처에서 이루어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는 효율성을 빙자한 수익성, 운영상의 효율성과 적합성만이 평가기준이 되었다. 실제로 평가에 참여하는 전문가도 대부분 경영학자였다. 따라서 현재 각 공공기관들이 어떤 공공의 목적을 갖고 있으며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공공기관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공공기관의 공공성의 정도를 면밀히 살피고, 그와 관계된 이해관계인(공공필수재인 경우 ‘국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민영화할 대상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만약 어떤 공공기관이 민영화의 대상이 되는 경우, 일부분이지만 남아 있게 될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 규제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산업구조상 경쟁체제 등의 문제는 없는지 검토한 후 보완책이 제시되고 나서야 민영화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는 각각의 목적을 가진 약 300개의 공공기관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도 공공성의 정도에 대한 평가나 판단도 이루어진 바 없고, 이해관계인인 국민의 의견수렴도 없었다. 민영화하는 경우의 보완적인 규제나 산업구조 검토 등의 절차 역시 일체 생략된 채 몇 개월 사이 밀실에서의 논의만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기획재정부의 공공정책국 안에는 이미 ‘민영화과’가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즉 공공기관 개혁의 방향을 ‘민영화’로 미리 예단하고, 방향이 결정되기도 전에 무조건 밀어붙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은 하나같이 모두 ‘졸속’이라는 단어로 수렴된다.

여야합의, 행정절차, 법 모두 무시한 추진과정

정치권이나 정부부처로부터의 낙하산 인사, 임원이나 직원들의 과다한 봉급과 무절제한 확장 등의 방만한 운영, 공공성을 포기한 섣부른 민영화 시도 등은, 지금 정부가 공공의 책임자로서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운영을 정부에 일방적으로 맡기기보다 이해관계를 가진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대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견제하고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국민의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는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확립하고, 정부나 정치권의 부적절한 개입이나 세금낭비를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개혁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7년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이는 298개 공공기관 전체에 대한 위원회여서 개별기관의 운영에 대해서는 일일이 파악하거나 개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개의 공공기관마다 그 공공기관의 목적사업과 수요자에 걸맞은 국민대표자들을 참여시키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꾸려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식회사에서 종업원 등이 비상임이사로 참여하고 비상임이사와 감사가 감사회를 구성하여 지원조직을 두고 실질적인 감독을 하는 독일의 사례나, 공공기관에서 이용자위원회를 구성하여 매년 보고서를 내도록 지원하는 영국의 경험 등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야할 방향이 이러함에도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는커녕 개악하는 것으로 치닫고 있다. 여야합의로 도입한 인사시스템과 임기제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자신의 입맛에 안 맞는 기관장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걸어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사퇴를 종용하는가 하면, 언론에 공표하여 모욕감을 주는 방법으로 사퇴압력을 가한다. 그러고도 사퇴하지 않으면 감사원의 감사나 부처의 감사를 집어넣는, 5공 시절의 독재를 연상케 하는 방법으로 공공기관의 형식적인 독립성마저 부정하고 있다. 또한 공공기관의 개혁과 민영화 과정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을 일방적으로 사직시키기까지 했다. 이후 공공기관 민영화 과정에서도 각 부처에 정식 공문 없이 구두로 구조조정 방안을 내도록 압박하고, 국민의 공공서비스와 국민세금으로 형성한 국가 자산의 처분에 관한 사항임에도 일체의 논의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민영화의 과정이나 내용 모두 ‘비민주적’이다.

정말 ‘효율성’ 때문에 민영화가 필요할까?

민영화를 정말 추진코자 한다면 왜 필요한가를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 만약 공공기관의 운영상의 비효율성이 문제라면, 운영상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확한 평가체계를 확립하고, 이해관계대표의 참여 등을 통해 감독체계를 강화하고, 공모제를 통해 더욱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면 된다. 

또한 과연 민영화가 운영상의 효율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공공성을 배제하고 운영상의 효율성만을 본다고 하여도, 민간의 효율성이 더 크다는 주장과 포철이나 한전, KT 등의 사례나 북유럽의 사례를 들어서 공기업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나뉜다. 게다가 공공부문을 민간에 넘기는 경우 당연히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이용료를 올리고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문의 투자는 포기해버려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즉, 공공성까지 포함한 전체적인 효율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민영화가 공공부문의 효율성 강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사실 민간의 각종 효율적 경영기법들은 이미 공공부문에 거의 다 들어와 있는 상태다.

민영화를 하면서도 공공성을 유지하고 가격을 통제하려면 강력한 규제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규제를 실질적으로 집행할 행정력이 있으면 차라리 공공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게 더 낫고, 그러한 행정력이 없다면 민영화 이후의 공공성 유지나 가격통제는 불가능하다. 민영화는 행정력이 있든 없든 어느 경우나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민영화는 한 번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바로 원상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엄청난 변화비용을 치르게 되고 원상회복의 가능성도 매우 낮은 민영화라는 수단을, 그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 효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도 없이 섣불리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비효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개혁을 위한 향후의 입법과제

이러한 평가를 전제로 공공부문 개혁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관련된 입법과제를 몇 가지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공공성에 관한 평가’가 들어가야 한다. 공공성 평가는 공공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일반 경영학자가 아닌 그 목적사업에 관련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또한 여러 기관에 걸친 비슷한 목적사업을 모아서 한꺼번에 평가하는 것이 평가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공공기관의 공공성 평가틀 예시

1. 책임성 평가
 1) 설립목적의 공공성 여부
 2) 공공요금의 연간 상승률과 물가상승률과의 괴리도
 3) 자회사를 통한 사업의 확장 등의 적합성 여부

2. 사업평가
 1) 공공사업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2) 개별사업의 공공목적과의 연관관계
 3) 개별사업별 성과평가

3. 관리평가
 1) 재무관리: 이익과 정부출자, 배당금 간의 비율 등
 2) 인사관리: 순익과 임금인상률 간 비교, 인사구조의 적정성, 임원임금의 적정성, 비정규직 비율과 관리, 여성?장애인 채용비율 등
 3) 조직관리: 목적사업들과의 연관성
 4) 평가시스템: 내외부 평가결과의 반영 여부
 5) 지속가능관리: 환경책임성, 에너지책임성, 제품의 안전성, 투명성 등
*****************************************************************************************************


jhpark_02.jpg
[ 촛불시위에 등장한 "국민기만 서민말살"이라는 구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보여준다. 5월31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시민들의 시위 모습.  ▶ 민중의소리 ]

둘째,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여야 한다. 공공성을 확보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각각의 공공기관에 각각의 목적사업에 걸맞은 이해집단이나 국민을 대표하는 자들이 비상임이사나, 운영위원회 혹은 이용자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들은 연례보고서 작성 등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역할을 가지고 실질적인 지원을 받아 자료를 확보하고, 이 자료와 결과를 국민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기관에 대한 공공성 평가 과정이나 운영위원회의 연례보고서 작성과정에서 드러난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체 공공기관의 구성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GDP에서 사회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정부 구성이나 공공기관 구성은 개발시대의 그것 그대로이다([표] 참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책의 담론형성 - 정책개발 - 예비타당성조사 - 평가 등을 담당하는 ‘사회정책개발연구원’(가칭)이 만들어져야 하고, 새로 만들어진 사회정책의 집행을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사회서비스공단’(가칭)이 만들어져야 한다. 

jhpark_03.gif

또한 공공서비스의 범위와 관련하여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이제 전 국민이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으므로, KT를 다시 공영화할 것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개개의 기관별 공공성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공서비스의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국가가 기간산업으로 보유해야 할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과 판단을 통해 공공기관의 재편이 필요하다.

넷째,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공공성에 대한 평가와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서 어떤 공공기관 혹은 어떤 공공기관의 어떤 목적사업이 유지될 것인지 폐지될 것인지, 민영화될 것인지 신설될 것인지 등을 판단한 후, 다음과 같은 작업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공공성이 인정되는 기관들에 대해서는 공공성 평가의 강화와 국민대표가 참여하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공공성을 포함한 운영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공공성의 정도가 미약하고 산업연관성도 미약한 기관들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공공성의 확보를 위한 규제책을 마련한 후 폐지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한, △공공성의 정도가 미약하지만 산업연관성이 큰 기관들에 대해서는 공공성의 확보를 위한 규제책 마련과 산업경쟁 구도 마련을 거쳐 민영화의 절차를 밟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공공성이 미약하였지만, 현재 필수재로 등장하여 공공서비스가 필요해졌거나 공공성이 커진 분야는 새로이 기관을 신설한다. 

 “노조운동, ‘개념상실 정부’가 좀 쉬게 해 주시라”

이명박 정부 100일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촛불집회에 등장한 ‘국민기만 서민말살’이라는 구호가 잘 요약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개념상실’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의 개혁에 관해서 개념을 상실하였다. 공공성 강화와 국민대표의 운영 참여라는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은 간 데 없다. ‘임기 안에 65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하게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부의 무개념 민영화 논의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산업은행 민영화 논의 과정에서도 「물산업관련법」에서도 이명박 측근 관련설이 불거져 나오는 신뢰수준과, 임기 안에 끝내기 위해서 무리한 공사를 추진한 결과 청계천을 20년 안에 다시 뜯어야할 어항으로 만들어버린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이권이 개입될 수 있고 엄청난 국가자산이 순간의 판단에 날아갈 수 있는 방대하고 예민한 공공기관의 개혁 추진에 필요한 신뢰와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어느 벤처기업의 사장이 “개념 없는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게 회사 망하는 지름길이다. 개념 없는 직원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고 회사 방향을 엉뚱하게 끌고 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영어몰입교육 논란, 0교시 수업 부활, 우열반 편성, 자립형 사립고 확대, 의료산업 영리화, 졸속적인 쇠고기 수입 협상, 허황된 대운하 추진, 공공기관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개념을 상실한 정부는 차라리 일하지 않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 문제는 공공기관의 민영화뿐 아니라 언론부문의 민영화, 보건의료부문의 민영화, 교육부문의 민영화, 복지부문의 민영화가 모두 관계된 문제다. 공공성이 여전히 강한 부문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은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로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민영화를 추진하는 기초적인 근거가 된 것은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질타여론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는 이에 대한 섣부른 해결책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맞서는 노동조합은 의제의 초점을 ‘공공성 강화와 국민대표 참여’로 재빨리 전환해야 한다. 동시에 낙하산 인사와 방만한 경영, 공공성과 관계없는 사업 확장 등을 스스로 반성하고 문제제기하여 풀어가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의 변화와 정책 비중의 변화에 따른 공공기관 내부의 재편문제와 관련해서도, 모든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이 시민사회와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고용안정을 유지하면서도 공공영역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응책을 내와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가는 것만이 ‘개혁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공공기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