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재현된 한국기업의 후진적 노무관리

노동사회

필리핀에서 재현된 한국기업의 후진적 노무관리

편집국 0 3,636 2013.05.29 09:46

#1. 1988년 5월6일, 한 대기업에서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노조준비위원장이 조직폭력배들에게 납치됐다. 그는 5일 동안 감금당한 채 노조 설립을 포기하라는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납치의 배후로 여겨졌던 당시 회장은 벌금 500만 원의 약식기소에 그쳤고, 20여 년이 지난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회장으로 있었던 현대건설 이야기다.

#2. 그로부터 정확하게 19년 3개월 뒤인 2007년 8월6일, 필리핀에서는 단체협상을 요구하며 파업 중이던 노동자들이 한밤중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밤 12시에 들이닥친 괴한들은 농성장에서 잠을 자고 있던 여성노동자 2명의 눈과 입을 가리고 팔다리를 묶어 고속도로변에 내던지고 달아났다. 필스전(Phils. Jeon Garments Inc)이라는 이 기업은 한국의 (주)일경이라는 기업의 자회사였다. 당시 (주)일경의 대표이사는 한국에서도 노동탄압으로 유명한 두산 박용성 회장의 외조카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학교 후배인 김형일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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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스전 투쟁, 한국기업의 부끄러운 자화상

필스전은 한 때 한국에서 속옷으로 유명했던 태창이 1990년 필리핀에 설립한 기업이다. 태창은 IMF 경제위기 때 부도 위기를 맞은 뒤 사명을 일경으로 변경하고 속옷 사업을 이랜드에 매각했지만, 필스전은 계속해서 티셔츠와 속옷을 만들고 있다. 한국기업이 설립한 자회사라서 그럴까. 필스전의 투쟁 기록은 한국의 장기투쟁 사업장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노조 결성, 사측의 노조인정 거부, 파업, 용역을 동원한 파업 분쇄, 회유를 통한 노조 분열 작업, 법정 소송을 통한 시간 끌기로 이어진 과정이 그렇다. 결국 노조를 인정하라는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 나왔지만 필스전 사측은 요지부동이다. 처음에 70여 명으로 시작해 한창 때는 조합원이 240여 명에 달했던 필스전 노조는 이제 20여 명만이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필스전 투쟁의 시작은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필스전 노조의 설립 때부터 함께 해 온 노동자지원센터(Workers Assistsnce Center, WAC)의 활동가 로라(Laura) 씨는 “필스전의 노동자들이 직접 센터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작업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해고와 고용이 반복되는 상황을 전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고 회상했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필리핀에서는 정규직도 대부분 일당제다. 한 달에 한 번 월급 형식으로 임금이 지급되기는 하지만, 월 정액이 아니라 그 달에 얼마나 일했는지를 계산해서 일한 날 수만큼만 돈을 받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필스전의 경우, 실제로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을 강제로 쉬게 한 날에 임시직 노동자들을 투입해 지속적으로 생산 작업을 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필스전 노동자들은 2004년 8월에 노조등록선거를 실시하고 노조를 설립했다. 필스전 사측은 선거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노동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같은 해 11월 필리핀 노동부는 노조의 선거결과를 인정했다. 사측은 이에 불복해 다시 두 번에 걸쳐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 역시 모두 기각됐다. 결국 2005년 11월, 필리핀 노동위원회는 필스전 노조가 “유일하고 배타적인 단체협상권을 가진 노조”임을 선언하는 결정문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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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이 제일 심하다”

한국기업의 구시대적인 노무관리 행태로 벌어진 필스전 투쟁에서, 노동자지원센터(WAC)가 담당했던 역할은 독보적이다. WAC는 필스전 노조가 조직되기 전부터 노동법이나 노조 조직에 관한 세미나 등을 하면서 필스전 노동자들을 지원해왔고, 노조의 설립과 등록, 사측의 노동위원회에 대한 이의제기 및 법적 분쟁 전담대응, 필리핀 국가인권위원회 제소 등 모든 활동에서 헌신적으로 연대해 왔다. 

WAC와 국제민주연대의 교류를 담당해 온 나현필 활동가는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서 이런 단체가 드물 것 같다. 노동자에 대한 모든 법률적 지원을 다 한다. 필스전도 필리핀에서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총 17명의 WAC 활동가들 중에서 상근 변호사는 단 1명뿐이다. 로라 씨는 “17명의 활동가들은 모두 조직활동가들이다. 각 지역별로 흩어져 조직활동을 한다. 그러려면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야 한다”며 웃었다. 노동자들의 일정에 맞춰 조직화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성탄절에는 쉬니까 괜찮다”는 로라 씨의 웃음은 비할 데 없이 맑았다. 

로라 씨에게 들은 한국기업의 필리핀 노동탄압 실태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로라 씨는 “중국, 미국 등 많은 기업들이 필리핀에 들어와 있지만 한국기업들이 제일 심하다. 뺨을 때리는 등의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거의 한국기업들밖에 없다. 18년간 WAC에서 일했지만 다른 나라 기업들에서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폭력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라 씨는 “‘꾸야(필리핀 말로 오빠라는 뜻)로 생각해라’고 하면서 껴안고 키스하고 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많고 성폭력보다는 임금·해고 등의 위협이 더 큰 문제라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 기업들에서 이런 일이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WAC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10일 ‘제11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수상했다. 지학순정의평화상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했던 지학순 주교를 기려 만들어진 상으로 매년 “정의평화활동에 모범적으로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어진다. 1997년 이 상의 첫 수상자는 민주노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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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국적기업, 노무관리는 ‘전근대적’

하지만 이 과정만 1년이 넘게 걸렸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노동위원회로부터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05년 3월부터 시작된 노조의 단체협상 요구는 사측의 묵살 앞에 아무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고, 8월에는 노조위원장이었던 이매뉴얼 바우티스타(Emmanuel Bautista)가 석연찮은 사유로 해고됐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노동위원회의 합법성 인정은 필스전 사측에게 별다른 압력이 되지 못했다. 노동위원회의 공표가 이뤄진 다음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필스전은 곧바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노조 지위에 관한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노조의 단체협상 요구를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에 노조는 찬반투표를 거쳐 2006년 9월1일 파업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따지고 보면, 필스전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 파업을 하는 데에만 2년이 걸린 것이다.

이후 과정 역시 한국 장투사업장의 양상과 거의 다를 것이 없다. 필리핀 현지조사 작업을 진행했던 나현필 활동가가 정리한 내용에 따르면, 필스전 노조는 사측이 해고 위협, 회유 등은 물론이고 용역경비업체를 고용해 집회를 해산시키고 농성장을 공격했으며, 사측에 협조적인 노동자들을 모아 ‘어용노조’를 만들기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이 사측에 협조하며 노조를 탄압한 것도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필스전 노조는 파업 셋째 날에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고 있던 조합원들을 쟌트로(경제자유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민간 용역업체)가 진압·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임산부 조합원이 다치는 등 심한 폭력을 당했지만 경찰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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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8월 용역들에게 농성장을 철거당한 후 모기장을 치고 농성하고 있는 필스전 노동자들   ▶ 국제민주연대 ]

결국 파업을 시작한 지 한 달도 못 된 2006년 9월27일, 농성장은 용역경비업체에 의해 철거됐다. 필스전 조합원들은 농성장 대신 모기장을 치고 농성을 계속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사측은 다음 달인 10월6일에 조합원 110명에게 해고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러던 중 사측이 법원에 제기한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2007년 1월, 필리핀 대법원이 필스전 노조의 설립요건과 자격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요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확정판결도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필스전 사측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판결이 나온 지 7개월 만에 필스전 노조는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단체협상’은커녕 농성장에서 자고 있던 2명의 여성 조합원이 납치돼 고속도로변에 버려지는 ‘변’을 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국의 악덕기업 행태를 쏙 빼닮은 필스전 사건이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다. 아시아초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sian Transnational Corporation Monitoring Network, ATNC)가 이 연대체의 일원인 한국의 국제민주연대에 필스전의 상황을 전하면서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ATNC는 아시아 지역 12개 나라의 25개 노조 및 노동단체, 인권단체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다. 아시아 지역 다국적기업에 대한 실태조사와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삼성과 토요타에 관한 보고서도 발간한 바 있는데, 이 중 아시아 지역에서 삼성의 무노조 정책과 관련한 보고서는 곧 한국에 번역 출판될 계획이다. ATNC가 국제민주연대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국제민주연대가 WAC와 적극적인 교류를 벌이고 있었고, 필스전의 모기업인 일경이 한국기업이므로 한국에서의 연대를 조직하기에 적임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OECD도 인정한 다국적기업 횡포의 심각성

국제민주연대는 2005년부터 한국의 시민사회와 언론에 필스전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2007년 노동절에는 필스전 노조를 한국에 초청해 선전과 모금운동을 벌였고 여성 조합원 2명의 납치가 발생한 직후인 2007년 9월에는 멀리(Merly) 필스전 노조 집행위원장과 세실(Cecil) WAC 사무국장을 초청하기도 했다. 바로 이때부터 일경에 대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을 활용한 압박이 시작됐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소속 다국적기업들에게 권고 형식으로 인권, 차별금지, 기회균등, 아동노동철폐, 부패방지 및 소비자와 환경 보호 등의 문제에 관해 규율하는 기준이다. 1976년 처음 만들어져 2006년에 개정된 이 기준은 OECD의 기업자문위원회와 노동자문위원회가 담당하는데, OECD 가입국들은 이 사업을 담당할 국내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를 두어야 한다. NCP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지는 회원국의 자율에 맡긴다. NCP는 자국의 다국적기업들이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장려하고 질의와 논의를 처리하며, 필요할 경우 문제 해결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다만 가이드라인 자체가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해당 기업이 NCP의 권고를 이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결정적인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OECD 차원에서 이러한 기준이 제정되고 2006년에 그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은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영향력을 확대해 온 다국적기업들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국적기업의 부작용이 전 세계의 보편적인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에서 형성되고 합의된 기준이라는 뜻이다. 이미 세계 10대 무역국인 한국의 다국적기업들 역시 피해갈 수도, 피해 가서도 안 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는 현재 OECD 30개 회원국과 9개 비회원국을 합쳐 총 39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 국제민주연대, WAC 등 필스전 문제에 연대를 해왔던 단체들은 필스전이 한국의 일경이 세운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의 NCP가 이 문제에 개입하도록 할 수 있다는 데에 착안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이고 NCP도 개설되어 있다. 한국 NCP는 외국인투자촉진법 제27조 제3항의 ‘외국인투자실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는 13개 정부 중앙부처와 16개 지자체 공무원이 참여하고 있다. 모든 실무는 사무국인 산업자원부(정부 개편 후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에서 수행하고 있다. 

나현필 활동가는 “유럽의 경우 NCP가 노사정 협의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노동부에 설치되어 있거나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처럼 민간의 참여 없이 정부 기관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테트라팩 투쟁 경우에도 원정투쟁이 가능했던 것이 스위스 NCP가 먼저 테트라팩에 권고를 하고 나섰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산업자원부가 NCP의 모든 실무를 담당하는데, 기업을 감시해야 하는 일을 기업 성장지원이 주 업무인 곳에 맡겨 놓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OECD 가이드라인은 필스전을 움직일 수 있을까?

사정이 썩 희망적이지는 않았지만 있는 제도를 써먹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나현필 활동가는 “OECD 가이드라인은 강제력도 없고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긴 하지만 한 번 활용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필스전 문제가 계속 지지부진 시간만 끌고 해결되지 않아 정부의 역할을 끌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아닌 시민사회단체도 신청이 가능하고 워낙 증거들이 확실히 갖춰져 있는 사건”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런 인식 아래 필스전 노조와 WAC, 민주노총, 국제민주연대 등 네 단체는 2007년 9월3일 한국 NCP에 필스전을 OECD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제소(이의제기)했다. 

이의제기 절차를 밟은 뒤 상황은 나쁘지 않게 진행됐다. 2001년 5월에 설치된 이래 2007년 6월까지 6년 동안 단 3건의 사건만을 처리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한국 NCP는 필스전 사건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한 달 만에 회신을 보내왔다. “회사측과 이의제기 당사자들 간의 주장이 서로 상이하여 …… 추후 동건에 대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국내연락사무소는 조사 및 중재 노력을 할 계획이오니 양 당사자께서는 NCP에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후 국제민주연대는 한국 NCP가 요청한 증거자료 보강을 위해 현지조사를 실시해 자료를 제출했고 한국 NCP는 몇 차례의 면담을 진행했다. 

국제민주연대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한국 NCP의 사건 처리가 필스전 사건의 내용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비테 지역(필스전이 입주해 있는 필리핀의 경제자유구역) 한국 기업 문제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심각하게 다뤄졌고, 국제노총(ITUC)이 2007년 최악의 노동권 침해 사례로 꼽았을 정도로 주목받는 국제적 노동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한국 기업의 이미지 실추 차원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민주연대가 한국 NCP를 면담한 다음날 일경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는 회사 관계자가 나와 먼저 면담을 요청하고 “노조를 만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나현필 활동가는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한국 NCP가 ‘우리가 권고 내리기 전에 먼저 대화에 나서라’든가 하는 얘기를 한 게 아니겠나 싶다. 회사도 정부 쪽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하니까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조금씩 풀리는 듯했던 실마리는 다시 엉켜가고 있다. 국제민주연대는 일경과의 면담에서 한국 NCP, 민주노총, 일경 3자가 만나는 중재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일경은 3월24일에 논의해보자고 답변을 했지만, 만남이 성사되기 직전인 3월21일 민주노총에 팩스로만 연락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NCP도 “기본적으로는 회사와 노조 간의 문제다. 우리는 깊게 관여하지 않겠다. 회사와 노조의 대화 진전상황을 보고 난 뒤에 3자 모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강제력 없는 기준’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앞으로 필스전 투쟁의 경과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나현필 활동가는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임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생계문제가 크다. 제일 우려되는 건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필스전이) 문을 닫아버리는 거다”고 걱정했다. “(일경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에 체불임금을 해결하거나 해고자를 복직시키겠다는 조건을 들고 나올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들이 있지만, 노조와 대화하겠다고 한 만큼 어떤 조건을 들고 성의 있게 임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도 얘기했지만, 이는 일경이 3월24일의 대화 약속을 뒤엎기 이전에 나왔던 얘기다.

현상적으로만 보자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의 한계이기도 하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형식의 기준이다 보니 해당 기업이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이 없다고 판단하면 큰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반대로 생각하면 가이드라인 준수를 강제할 만한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1차적으로는 물론 노조가 담당해야 할 몫이지만, 생계 문제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20여 명밖에 남지 않은 필스전 노조가 홀로 싸우기에는 그 짐이 너무 버겁다. WAC나 국제민주연대, 민주노총이 최대한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필스전 투쟁에 가장 필요한 연대가 뭐가 있겠냐는 질문에 나현필 활동가는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노조 대 노조의 자매결연이나 다른 형식들을 통한 금전적인 지원이다. 노조 상근자를 세우거나 거점을 마련할 만한 자금도 마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일경 본사 앞 집회를 할 때에 연대해 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본사는 필스전이 사람들의 관심거리와 이슈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혹시 필리핀에 단체로 연수 등을 가게 된다면 노조 차원에서 필스전 노조를 지지방문하는 것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들의 ‘전통적 노무관리’ 기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필스전의 모기업 일경은 올해 초 ‘쇼테크’라는 기업과 합병했다. 주요 언론사 홈페이지의 ‘마이링커’ 서비스(이용자의 동의하에 해당 언론사의 기사를 배달해 주는 서비스)로 유명한 기업이다. 첨단 I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합병된 일경은 앞으로도 계속 노조도 인정하지 못하는 촌스럽고 부끄러운 정책을 고집할까, 아니면 선진국의 척도라는 OECD 회원국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할까? 그 해답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준수’ 요구에 어느 정도 힘이 실릴지, 그리고 필스전에 대한 한국의 연대 활동이 그 요구를 일경에 강제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연대 문의: 국제민주연대 02-736-5808
           민주노총 국제국 02-2635-1133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