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노동자

노동사회

헌법과 노동자

admin 0 4,048 2013.05.07 10:27

헌법상의 노동자 관련 조항

헌법은 한 나라의 법체계 내에서 최고규범의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헌법의 기본 인권에 관한 보장조항은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의 가치질서를 형성한다. 모든 국가기관과 법률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근거를 상실한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제10조), 나아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다(제11조). 노동자가 헌법의 위 규정상의 국민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즉, 노동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법 앞에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가진다.

또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제32조 제1항), 나아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있으며(제32조 제3항), 노동3권의 보장과 관련하여서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제33조 제1항). 

노동기본권의 보장 형태 및 현실

노동3권의 보장형태는 관행과 판례로 보장하는 방식, 법률로 보장하는 방식, 헌법으로 보장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헌법으로 보장하는 경우에도 단결권만을 보장하는 방식,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방식,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명문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있다. 그 중에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명문으로 헌법에서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방식이 가장 선진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노동3권 보장은 가장 선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제한하고(제33조 제2항), 또 "법률이 정하는 주요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를 제한하거나 인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제33조 제3항) 일정한 대상의 노동기본권을 제한한 것은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동기본권의 보장과 관련하여 우리 헌법은 가장 선진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이를 구체화하는 법률이나 법원의 판례 또는 행정기관의 행정해석과 행정지도 등은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침해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업을 불온시하고 진압 내지 탄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공안당국의 시각에 이르면 헌법의 노동기본권 보장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비정규 노동자와 헌법

비정규 노동자도 국민으로서 법 앞에 평등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임금과 일체의 근로조건에서 정규직과 차별받고, 언제라도 고용관계를 종료당할 수 있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비정규 노동자문제의 해결은 헌법적 가치의 회복과도 통하는 문제다.

단결권 침해

노동3권이 전면적으로 박탈되고 있는 근로자 집단이 있는데, 공무원과 대학교수가 이에 해당한다.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공무원법 및 사립학교법 등 법률에 의하여 공무원과 대학교수의 노동기본권이 완전하게 박탈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상의 기본권에 대한 최대한의 보장원칙과 최소한의 제한원칙 및 본질적 부분 침해금지원칙 등에 비추어 공무원과 대학교수의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박탈하는 것은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으며, 국제연합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해 "교원 및 공무원들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참여할 권리, 단체교섭권, 파업권이 법과 현실 모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기까지 하였다.

실직자와 해고자의 단결권도 법률규정의 애매함과 법적용 기관의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의 관련 조항을 탄력적으로 해석한다면 실직자나 해고자라고 하더라도 초기업 단위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부 등 관련 행정기관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이에 대해 합의를 하였으나,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파업권 행사는 범죄행위?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사회 전체가 긴밀하게 결합된 현대사회에서 어느 산업부문을 막론하고 한 부문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게 되면 사회 전체에 일정한 불편이 초래되고 경제적 손실이 야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파업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는 것은 파업권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생존과 인간다운 삶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파업권은 헌법상 보장된 '인권'이다.

그러나,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과 재계는 노동자의 파업권 행사를 불온시 내지 불법시하고, 특히 정부는 파업권 행사를 범죄행위로 몰아 파업현장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파업노동자들을 진압하고 노조간부들을 구속·형사처벌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6월 파업 중에 언론은 연일 불법파업으로 인해 사회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대서특필하면서도, 정확하게 왜 불법인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채 파업을 매도하기에 급급하였다.

전기, 수도, 가스, 통신, 병원 등의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에는 노조법상의 강제중재제도로 말미암아 파업권이 완전히 봉쇄될 수 있다. 이는 파업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에 해당하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고, 헌법재판소에서 5명의 재판관이 위헌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파업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국가경제에 파멸적 효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사후적으로 긴급조정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에 파업권 자체를 박탈할 소지가 있는 강제중재제도는 헌법이념에 비추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과 관련하여 정부 일각에서는 항공운송산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여야 한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철도사업과 동일하게 취급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요 논거 중의 하나였는데, 철도사업의 강제중재제도도 폐지하여야 하는 마당에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정부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과 철학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노동쟁의발생신고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가 파업권 행사를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노조의 교섭요구에 대해 사용자측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교섭을 파행으로 몰고 나가, 노조가 어쩔 수 없이 노동쟁의발생신고를 하면, 조정을 실시하여야 할 노동위원회가 조정은 실시하지 않고 노사간에 실질적인 교섭이 없었으므로 실질적인 교섭을 더 진행하라는 취지의 행정지도를 한다. 노조로서는 더 이상 교섭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으므로 조정기간이 끝난 후 파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노동부나 검찰은 그러한 파업은 조정전치절차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정전치제도는 노동쟁의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지원 내지 조력제도를 규정한 것에 불과하고 파업권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노조가 노동쟁의발생신고를 한 이상 조정절차의 진행이나 행정지도 여부에 관계없이 조정기간이 끝나면 노조는 파업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이것이 법원 판례의 입장이기도 하다.

파업현장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파업노동자들을 진압하고 노조간부들을 구속하고 형사 처벌하는 정부의 태도는 파업권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파업 노조 간부를 처벌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2001년 3월 30일 폐막한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는 업무방해죄의 조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여 실제적으로 모든 파업 관련 활동을 포괄하고 있어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노사관계에 기여하지 못할 것임을 확인하고, 한국정부에 대하여 이 조항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맞게 개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국제연합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2001년 5월 11일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한국정부의 접근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엄중하게 비판하고, 나아가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형사소추를 중지할 것"과 "공공질서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상의 공권력 사용을 자제할 것"을 한국정부에 권고하였다. 

맺음말

파업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받는 노조간부가 이렇게 많은 나라, 전과자 노조간부를 양산하는 나라, 노조 대표로 선출되면 감옥에 갈 각오를 하여야만 하는 나라, 이런 나라의 헌법에 파업권을 포함한 노동3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일부에서는 헌법상의 노동3권 보장 조항을 삭제하라는 자조적인 넋두리도 나오고 있다. 
헌법의 의미를 다시 조명하고 노동3권이 헌법에 보장되게 된 맥락을 되새겨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반성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