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펀드는 안녕하십니까?

노동사회

당신의 펀드는 안녕하십니까?

편집국 0 3,460 2013.05.29 09:37
 

book.jpg『쉽게 읽는 카지노 자본주의』로 번역된 이 책의 원제는 『언제나 카지노 주인이 돈을 따는 게임: 사모펀드, 헤지펀드 카지노 자본주의 등장(Where the House Always Wins: Private Equity, Hedge Funds and the New Casino Capitalsim)』이다. 이 책은 최근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상황을 예상하며, “버블 붕괴를 막으려면 각국의 정부가 앞장서서 적절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유지된 저금리 기조에 의존하여 ‘선진금융기법 개발’이라는 마술을 부리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의 탐욕을 고발하고 있다.

2007년은 한국에 펀드 열풍이 불어 닥친 한 해였다. 그러나 펀드에 가입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단지 펀드가 예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가져다준다거나, 가끔은 원금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정도의 흑백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들 펀드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나 어떻게 고수익을 배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또한 내가 사들인 펀드로 인해 나도 결국 엄청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나, 투자자들이 사실 엄청난 수준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카지노 자본주의』처럼 소비자의 입장에서, 납세자의 입장에서, 노동자의 관점에서 펀드 자본주의의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 운영은 숨기고 기업 정보는 까발려라

이 책은 펀드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펀드들의 몇 가지 특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첫 번째 특징은 펀드 운영과정에 관한 내용들을 최대한 숨기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숨기면 숨길수록 자신들의 수익파이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펀드들은 이들의 먹잇감으로 가장 선호되는 기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들인 다음 강제로 상장폐지를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의 기업으로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경영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글로벌 기준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경영상의 모든 내용도 최대한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펀드자본의 두 번째 특징은 국가 간에 체결되는 자유무역협정이니 투자협정이니 하는 형식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경영이 회계를 비롯하여 지배구조측면에서도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금융시장의 기본적인 작동원리이자 전제이다. 또한 기업의 투명성이 확보되면 시장의 금융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카지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의 투명성이 특히 중요하게 요구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펀드들이 우수한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입맛에 맞는 기업을 사들일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즉 펀드 자신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나 경영의 투명성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작 다른 기업들에게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국영기업체와 공공서비스 및 공익사업체에 대한 민영화 시도다. 대부분의 국영기업체는 국가경제의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을 잘 조리만 하면 조직규모의 전폭적인 구조조정이나 수수료 인상 등을 통해 가장 높은 ‘투자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자가 아니라 수수료, 위험은 네 것 수익은 내 것

세 번째 특징으로, 이들 펀드들은 투자를 정의할 때 ‘이자’가 아니라 ‘수수료’를 극대화하자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시장논리에 이미 익숙해진 일반 사람들은 ‘투자이자’라는 개념보다 ‘수수료’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다. 어떤 서비스에 대해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으나 높은 이자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펀드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십분 이용하고 있다.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투자의 20~30%를 수수료로 지불하면서도 투자의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왜 손실이 발생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막대한 손실을 감내해야만 한다.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렌 버핏이 “사모기업들이 어떻게 이자에 이자를 붙이는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수수료에 수수료를 붙이는 방법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이에 대한 설명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모든 리스크를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펀드들은 투자원금의 약 20%만 모집한 후 나머지 80%는 인수한 기업의 이름으로 빌린 차입금으로 충당한다. 인수한 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조직축소, 인력구조조정, 고액배당금 지급, 유상감자 등 모든 방법을 통원하여 기업의 단물을 빨아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수기업의 이름으로 자본금의 20배에 해당하는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하여 다시 펀드를 모집하는 등 연쇄적으로 자산불리기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기업으로부터 단물을 모두 빼낸 다음 더 이상 수익을 극대화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이미 상장폐지했던 주식을 다시 시장에 상장하거나 다른 펀드에 매각하기도 하고 혹은 청산절차를 밟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리스크를 노동자나 일반 납세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사모펀드 모델에서 리스크와 보상의 관계를 보면, 펀드매니저는 매년 2~4%의 운용수수료와 20%의 성과보수를 받는 반면 세금은 교묘하게 법망을 우회하는 세금회피수단을 이용해 턱없이 낮은 세율을 적용시키고 있다. 투자자에게 턱없이 높은 수익률을 돌려주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되는 조직 및 인력의 구조조정, 고액배당, 유상감자 등의 결과 직원들은 비정규직과 같은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일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소비자들은 비싼 공공요금이나 물건 값을 치러야 한다. 국민들은 줄어든 세금을 메우기 위해 보다 높은 세금을 내야만 한다.

‘금융화’ 시대의 폭주 기관차

다섯 번째 특징은 기업들로 하여금 적대적 M&A 공포를 느끼게 하여, 적극적인 투자를 망설이게 하고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있는 일자리마저 줄이게 하는 주범이 바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라는 것이다. 사모펀드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은 기존조직이나 인력을 대거 축소한 다음 최대한 현금화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업재무상태를 기반으로 외부에서 가장 많은 차입금을 빌릴 수 있는 기업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기업들이 현금만 많이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노사관계가 나빠서도 아니고, 투자환경이 나빠서도 아니고, 규제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다.

이러한 이유들은 명분으로 내세운 것뿐이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외부의 적대적 M&A의 공포 때문이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최대한 줄이고 비상시에 갑자기 인력을 조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인력은 파트타임,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다.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일자리를 축소하려고만 하는 기업의 노동유연화 이데올로기에 이용되면서 법적으로 허용된 정년까지도 고용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 또한 날이 갈수록 극으로 치닫고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을 바로 금융화의 말기로 정의하고 있다. ‘금융화’란 “전체의 경제활동 중에서 금융산업의 비교우위적 지위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금융시장이 전체 경제의 상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금융에 대한 수요가 결국 기업행위를 결정짓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화의 시대에 △여러 통로를 통해 금융에 대한 모든 규제를 완화하고, △차입금을 사용해 시장의 효율성을 제고하거나, △파생상품을 만들어 시장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 것은 사실 이들 펀드들이다. 펀드들의 이런 역할들은 금융화의 흐름을 강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이 역할들을 반대로 뒤집어놓고 보면 △모든 규제로부터 벗어나 불법적인 행동을 일삼는 주체, △기업매입 시 크게는 매입가격의 20배가 될 정도로 과도한 차입금을 이용하여 리스크를 인수기업과 그 직원 및 일반 국민들에게 모두 전가시키는 주범, △상품의 리스크를 줄이기는커녕 새로운 파생상품괴물을 만들어 카지노 주인과 같이 투기를 일삼는 주역이 바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실체임을 이 책은 폭로하고 있다.

폭주를 막기 위해 노동운동이 정부를 설득하라

결국 이렇게 금융시장의 거품을 최대로 끌어올려 곧 붕괴할 위기를 만든 주역이 바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붕괴가 곧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책은 또한 곧 일어날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동계가 먼저 나서서 정부를 설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즉 펀드자본들의 수익에 대한 과대선전을 믿지 말아야 하며, 차입금에 지나치게 의존한 레버리지드 바이아웃(leveraged buyout, 매수 예정 회사의 자본을 담보로 한 차입금으로 기업을 매수하는 것)은 일시적 광풍에 불과하여 저금리 기조가 바뀌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음을, 또한 노사관계의 악화와 기업의 과다한 현금보유 및 투자저하의 지속은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저해하여 경제전반에 해악이 됨을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치는 문제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가져온 원인을 분석하여 대안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연기금을 투자하고 있거나 향후 투자할 국가들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이러한 투자로 노동자들의 노후의 연금이 삭감되는 일이 없도록 당부를 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을 적용하기 위해 각 나라의 행정부와 입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2006년부터 국제 노동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금융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듯 인간의 과욕이 지나간 자리는 메뚜기떼가 휩쓸고 간 황량한 사막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이다.

『쉽게 읽는 카지노 자본주의』 | 정명희 옮김 | 금융노조 냄
구입 문의: 금융노조 02-2095-0000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