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참여와 정규직화 자랑하는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

노동사회

경영참여와 정규직화 자랑하는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

편집국 0 4,394 2013.05.29 09:35
 

jslee_01.jpg고속도로관리공단에 대한 오해 두 가지. 먼저 ‘공기업’이라는 오해가 있다. ‘공단’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이라고 알고 있지만 고속도로관리공단의 모기업은 계룡건설이다. 원래 도로공사의 자회사였던 공단은 2002년 말에 계룡건설이 도로공사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민영화됐다. 두 번째 오해는 공단의 업무에 관한 것이다. 고속도로 관리 업무만을 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공단은 고속도로의 유지관리 업무 이외에도 토목, 조경, 주택 건축,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오해는 공단의 노동자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겪어야 할 피나는 자구 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조합원 고용보장’은 노조의 첫 번째 존재이유

공단이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는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공단의 사업 영역은 크게 유통과 건설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매출로 보면 절반씩이었지만 건설은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 수로 보면 유통 쪽이 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영화 이후에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 등 그동안 도로공사로부터 위탁받아 해왔던 유통 사업을 보장받지 못하면 조합원들 절반 이상이 해고될 상황이었다. 노조의 노력으로 공단은 노사정위원회에서 2003년부터 5년간 고속도로의 휴게소 7곳과 주유소 11곳을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받았다. 하지만 보장받은 사업 물량의 기한 마감이었던 2007년, 노조는 다시 한 번 피말리는 나날을 겪어야 했다. 도로공사의 자회사가 아니라 하나의 민간기업으로 자립하도록 준비하는 시간으로 5년은 너무 짧았다. 

여기저기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사실 5년 동안 뭐했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죠. 다만 조합원들이 잘리지 않도록만 해달라고 했습니다. 어떤 지푸라기라도 무조건 잡고 싶었습니다.

김경도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사실 공단이 보장된 사업물량만으로 한가하게 5년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사업역량을 건축 부문, 특히 주택 건축에 집중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서울 신도림과 부산 해운대에 공단 이름으로 아파트 분양에 성공하면서 이런 노력도 어느 정도 결실을 맺었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조경 분야에서는 국내 5위 안에 드는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체질 전환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건축을 주력으로 하려다 보니 자금 회수에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노조는 다시 한 번 노사정위원회에 조합원들의 고용보장을 위한 결단을 요청했다. 공단을 민영화할 때 노조가 격한 투쟁 끝에 결국 수용한 것은 조합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자립할 수 있는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기간이 다 됐다고 물러설 순 없었다. 염치든 뭐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회사 살리고 조합원 살린 ‘노조의 경영참여’

구걸이라고 해도 좋고 뭐라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조합원들이 잘리게 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한 두 명도 아니고 전부 전환배치할 수도 없는 거고, 자금회수가 조금씩 되어가고 있고 이제 뭔가 할 수 있게 시작하는 상황인데… 

노조는 노사정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도로공사 물량 보장이 끝날 경우 공단의 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이 실직하게 될 것이라는 점과, 시간이 더 주어지면 이 노동자들이 일할 다른 사업을 개발하도록 노조가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설득해 나갔다. 민영화 이후 5년간 건축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는 과정에서 노조가 직접 나서 입찰할 곳을 발굴해 경영진 측에 소개하는 등 공단의 자립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이 이런 설득의 주요 논리가 됐다. 노조는 또 모기업인 계룡건설을 설득해 “공단에 대한 증자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이로써 “자금 회수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지면 공단이 자생할 수 있다”는 노조의 주장에도 힘을 실었다. 김경도 위원장에 따르면 계룡건설로부터 대략 300~400억 원의 증자를 거의 약속받은 상태라고 한다.

결국 2007년 11월 말에 도로공사가 공단에 맡기고 있는 물량을 3년간 더 보장하기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됨에 따라, 공단은 도로공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도록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담당한 역할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노조의 경영참여’ 측면에서 봐도 주목할 만하다. “그룹 입장에서는 물량 보장이 안 되면 유통 부문 버리고 사원도 버리면 되긴 하지만 물량이 보장되면 그만큼의 매출을 추가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경도 위원장은 “회사가 노조에게 정말 고마워해야겠다”는 질문에 “1월18일이 계룡건설 창립기념일이었는데, 공식석상에서 우리 노조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하고 그랬죠. 뭐 그래봤자 한 3개월 갈까 싶지만…”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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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는 공단측에 요구해 2006년부터 계약직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왔다. 2007년 임금협상 조인식 모습   ▶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 ]

계약직도 우리 ‘조합원’,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노력

구조조정의 한파를 막아낸 것도 큰 성과지만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의 자랑은 정작 다른 데 있다. 노조는 꾸준히 계약직 조합원들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에 앞장서 왔다.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는 입사와 동시에 자동으로 가입되는 유니온숍이다. 이는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재 총 조합원 620여 명 중에 계약직 조합원들은 절반 정도인 300여명 정도다. 고속도로관리공단이 계약직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계약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노조는 계약직이 채용되기 시작하자 회사에 계약직 노동자들도 유니온숍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이 요구는 노조가 2006년부터 매년 30여 명 정도의 계약직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성과의 밑거름이 됐다. 매년 정규직 전환 규모를 두고 회사와 실랑이를 벌이지만 건축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확실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조합원들이 많아 회사도 노조의 요구를 거의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요즘 들어오는 젊은 친구들이 오히려 저보다 낫습니다. 자격증들도 다 가지고 있고 똑똑하기도 엄청 똑똑하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계약직이 된 것 뿐이죠.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에서는 정규직의 양보와 희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더 가진 사람이 더 양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죠. 정규직들은 먹고 사는 데에는 별 지장 없지 않습니까?

노조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계약직 조합원들의 임금인상분을 정규직 조합원들보다 항상 높게 배분해왔다. 총액 5%의 임금 인상안이 타결됐으면 정규직은 1%, 계약직은 9%가 인상되도록 하는 식이다. 임금 이외의 복지 면에서도 계약직들과 정규직 간의 차이가 없다. 계약직 채용이 시작됐을 때부터 정규직과 계약직들의 복지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회사에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노조가 얻어낸 시한 연장, 노조가 책임진다

3년의 시간을 다시 보장받았지만, 그러면 3년 뒤에는 유통 부문의 조합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했다. 노조의 설명처럼 건축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혔고 투자자금이 곧 회수되기 시작해 자립하기 시작할 테지만, 유통 부문에서도 새로운 사업이 발굴되지 않으면 3년 후에 또다시 유통 부문 조합원들의 고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통 부문에서 적극적으로 신사업 개발을 하려고 합니다. 도로공사에서 받는 사업 외에 다른 사업을 발굴해 조합원들이 3년 뒤에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겁니다. 이번에 그랬던 것처럼 노조도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개척하려고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자립을 위한 것이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면이 크죠.

김경도 위원장의 임기는 올해 9월까지다. 그는 노조 위원장이 가장 보람되게 느껴질 때는 지나가다 만난 조합원이 “이번에 정규직이 됐다”고 고맙다며 인사할 때라고 했다. 연구소의 활동에도 많은 관심이 있다는 그는 연구소에 대한 바람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측하고 대화하고 싸우고 하다 보면 자료가 없습니다. 연맹이나 총연맹 홈페이지를 들어가봐도 단위노조에서 쓸 만한 자료들을 찾기가 힘듭니다. 다른 노조 현황이나, 최근 몇 년간의 임금 인상률이나, 단사에서는 그런 자료들이 가장 필요한데 찾기가 힘들더라구요. 연구소에서 좀 그런 것들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는 3년의 시간을 벌었지만, 그동안 해왔던 경영참여 역할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성과는 오히려 압박이 될 수도 있다. 김경도 위원장의 말대로,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조합원들을 위한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지혜롭게 찾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조합원들을 위해 3년의 시간을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고속도로관리공단노조의 앞날이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길 기원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