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노조로 안전한 일터를!

노동사회

백화점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노조로 안전한 일터를!

편집국 0 3,584 2013.05.29 09:34

2006년 민주노총은 노동안전보건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합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보다 책임 있게 결정하고 집행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노동안전보건위원회 밑에 취약분과를 두기로 결의하였다. 비정규노동자, 영세사업장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안전과 건강상의 위협을 심각하게 겪고 있으면서도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민주노총이 직접 발굴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이들 내부에 안전보건활동의 주체를 양성하고 지속적으로 조합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활동이 자체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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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개최된 "노동안전보건위 취약·건설분과 발족을 기념 토론회" 모습. ▶ 매일노동뉴스 ]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 취약분과의 첫 사업!

취약분과의 첫 번째 사업대상은 유통서비스 분야 여성노동자로 정해졌다. 유통서비스 분야의 안전보건문제가 심각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서비스연맹이 이번 사업을 통하여 안전보건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게 민주노총의 판단이었다. 사업 준비를 몇 개월간 진행하였고, 2007년 6월 취약분과를 발족하면서 유통서비스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연구사업을 시작하였다. 『유통서비스여성노동자 안전보건의제 개발 연구』는 외국 서비스노동조합의 안전보건활동과 의제를 분석한 후, 한국사회 유통서비스 분야 노동자들의 안전보건문제를 진단하여 어떠한 안전보건활동이 필요한지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6개월 정도의 1차 연구를 거쳐 2007년 12월에 중간보고서를 통해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서비스연맹이 유통서비스 분야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 제안하였다. 

2008년 1월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이 제안을 수용하면서,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건강권 사업을 위한 사업추진단을 구성하였다. 노동조합과 함께 여성들의 건강문제를 연구하고 지원할 여성학자, 사회학자, 법률전문가를 비롯하여 산업의학전문의, 정신과전문의, 인간공학전문가까지 결합하였다. 백화점의 화장품매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그들의 건강문제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 2월부터 4월까지는 서서 일하는 문제를 심층 조사하여 사회적으로 알릴 내용을 준비할 것이다. 5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리고 그 핵심 슬로건은 아직 정하진 않았으나, “백화점 노동자에게 의자를!”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노동자는 떨어져 죽고요, 서비스노동자는 미쳐 죽어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나친 감정소모에 따른 정신건강의 파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노동자들 중에는 우울증이 의심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이런 식의 얘기를 아주 많이 들어야 했다. 

“우울해요. 퇴근할 때 운전대를 잡으면서 ‘아 우울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그냥…… 뭐 내일 또 여길 나와야 한다는 걸 생각하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걸요.”

백화점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감정노동은 일반적인 20~30대 여성들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벅찬 수준의 것이었다. 서비스노동에 대한 사회적 천시와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업의 감시 속에 짓는 억지웃음은 그들의 감정샘을 모두 마르게 해버렸으며, 애꿎은 가족들에게 폭력적으로 분출되는 분노는 다시 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기제가 되고 있었다. 서비스노동자들은 농담 삼아 이렇게 얘기한다. 

“건설노동자는 떨어져 죽고요, 서비스노동자는 미쳐 죽어요.”

하루 10시간 정도를 계속 서서 일하면서 하지정맥류가 오기도 하고, 무릎과 발목의 통증이 너무 심해지기도 한다. 좁은 곳에 계속 서 있는 것은 신체적으로 큰 피로를 발생시키며, 정신적으로도 피로를 쌓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직원용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한 층에 한 개가 있을까 말까 하다. 그나마 너무 멀어서 고객이 많을 때는 자리를 비우기가 곤란하여 화장실을 못 간다. 예쁜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성대결절이 오기도 한다. 공기가 좋지 않아서 이비인후과 질환을 달고 산다고들 얘기한다. ‘산업재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왜 ‘의자’가 핵심 슬로건이 되었는가 

sbkim_02.jpg2007년 연구에서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였다. 미국이나 영국의 서비스노동자들 현실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동조합은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기 위한 투쟁을 하여,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 인원수에 따라 화장실을 몇 개 설치해야 하는지 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고객들에게 서비스노동자들을 존중하자는 캠페인을 하면서, ‘욕먹지 않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의자를 놓고 앉을 수 있도록 싸우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이들은 의자와 화장실과 폭력의 문제를 동일한 한 가지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앉아서 맞이해도 되는데, 서비스노동자는 왜 서서 고객을 맞아야 하나요? 고객이 없을 때조차 서 있으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우리사회에 직업의 귀천이 있다는 얘기 밖에 안 된답니다. 서비스 노동자를 존중하세요. 그것이 정의입니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나 화장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수준을 의미한다. 그들이 화장실을 자유롭게 갈 수 없다면, 의자가 없어 하루 종일 서있어야만 한다면, 그들은 욕을 먹어도 참아야만 할 뿐이다. 그러나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고, 고객이 없을 때 잠깐 앉을 의자를 가진 노동자들은 고객과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무시하지 말라고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에 이미 의자를 제공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에는 당해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비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현재 백화점에 의자를 놓지 않도록 하는 방침은 모두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현재 법으로 명시된 의자의 권리를 이용하여, 화장실과 폭력과 기타 감정노동의 문제까지 차근차근 확대해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사업장별 단체협상으로 의자를 놓게 만들거나, 노동부의 근로감독을 요청하여 현장에 의자를 놓게 하거나, 아니면 어느 하루를 잡아 의자를 놓고 앉는 날 행사를 하는 등 다양한 전술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우울증, 감정노동 문제, 폭력의 문제 등이 가장 심각하지만 ‘의자’를 첫 번째 슬로건으로 채택한 이유이다. 백화점 노동자들은 이러한 전술을 이해하였으며 적극적으로 환영해주었다. 

노조가 노동의 질을 바꾼단 걸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서비스노동자들 속에 안전과 건강문제가 쉽고 친근한 일상적 문제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의 경험들이 쌓여 서비스연맹의 자체적인 안전보건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서비스연맹에서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다는 것을 산하조직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건강권의 의제를 개발할 것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업종과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 국적, 성, 연령 등에 따라 스스로의 건강권 의제를 찾아내고 활동하는 모형을 만들고 확산시킬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건강권운동의 확산이 전체 민주노조의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서비스노동자들에게 의자 놓는 운동을 펼치는 주체들은 막연하게 원칙적인 차원에서 옳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실운동에 어떠한 지원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 그리고 믿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현장에 식수를 설치하면서, 화장실을 개선하면서, 의자를 놓으면서, 온도를 낮추고 쾌적하게 만들면서 입증해온 것이 있다. 바로 “노동조합이 있으면 노동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외국의 서비스노동조합들은 “하루의 노동일 때문에 몸이 엉망이 될 정도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며, 집에 가서 아이들과 남편과 아내와 얘기할 힘 정도는 남게 된다”는 것을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에서 의자를 놓는 운동을 준비하는 동지들은 이런 꿈을 꾼다. 

“우리의 현장에 있는 아주 작은 문제들을 노동조합을 통해 해결하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노동조합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입증하게 될 것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하여야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