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노조로 가는 공정, 어떻게 할까

노동사회

성평등한 노조로 가는 공정, 어떻게 할까

편집국 0 4,343 2013.05.29 09:30

“한국의 노동조합을 어떻게 성평등하게 변화시킬 것인가?”

진부한 질문이다. 질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노동조합을 향해 던져진 이 물음이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더디기만 한 변화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노동조합운동 주체들의 의지 부족이 문제인가, 여성할당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여성간부 숫자가 문제인가? 그렇다고 남성 정규직 대공장 중심 노동조합운동의 ‘태생적 한계’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게 정말 이유라면 노동조합 내 성평등을 확산하겠다는 생각은 빨리 단념할수록 속 편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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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월 16일 열린 "일과 가정의 양립 어떻게 할 것인가"토론회 모습    ▶ 매일노동뉴스 ]

더디기만 한 성평등 실현,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좀 다른 방식의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보다 본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예컨대 ‘노동조합에서 성평등이란 무엇인가?’, ‘성평등 의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에 문제는 없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권위적인 남성 노조간부와 그에 억눌려 있는 약한 여성노동자라는 서사를 되풀이하거나, 침묵으로 표현되는 저항들 속에서 성평등의 당위성만 부르짖어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자극에는 노동조합운동은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이제는 정말 구체적인 질문과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해야 할 때다. 성평등한 노동조합의 상을 정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각종 도면들을 체계적으로 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집’을 지을 수 있는 ‘공사 방식’을 정하고 집터를 고르는 시작단계부터, 지붕을 얹는 마지막까지 순차적인 ‘공정’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출발점을 어디로 할지 정하는 것부터 난감하다. 한국사회 노동조합운동을 대표하는 주요 조직인 민주노총은 지난 10여 년의 역사 속에서 성평등에 대한 성찰과 도약의 계기들을 무수히 그냥 지나쳐왔다. “다시 여기서 시작해 보자”는 제안을 꺼내기도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지난 2006년을 기점으로 조합원 4분의 3 이상이 산별노조에 소속되면서 새로운 노조운동의 이념, 조직 운영과 교섭의 틀을 정립해가고 있는 지금 시기는 분명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난 2007년 민주노총은 산별노조시대를 맞이하는 조직의 성평등 의제 발전 수준을 진단하고, 이를 끌어올리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기초 연구를 추진했다. 「노동조합 성평등 의제 발전을 위한 연구: 실태분석과 해외사례연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사업에, 필자는 공동 연구자로 참여하여 현재 민주노총과 주요 산별노조의 성평등 교섭 의제, 노조 내 성평등 촉진을 위한 의제 현황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부분을 맡았다. 이 글은 그 사업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했지만, 내용을 요약한 글이라기보다는 연구에 참여하면서 느낀 필자의 소회를 정리한 글에 가깝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많이 부족하지만) 곧 출간될 연구보고서를 더욱 흥미롭게 마주하길 기대하며 글을 시작한다.

여성사업이 아니라 성평등 의제!

우리사회에서 성평등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지만, 지금 노동조합운동에서는 ‘성평등 의제’라는 용어보다 ‘여성문제’, ‘여성사업’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고 널리 통용되는 듯하다. 그럼에도 굳이 성평등 의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여성문제 또는 여성사업이라는 기존의 접근 방식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지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이제까지 노조의 교섭 의제 중 여성 관련 의제는 여성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모성보호, 성차별 해소, 성희롱 예방 관련 조항 등으로 분류돼 왔는데, 이들 조항은 보통 단체협약 내에서도 별도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모든 단체협약의 조항들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에게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가?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조치를 취한다 해도 그것이 적용되는 남녀의 조건과 처한 환경이 다르다면 결과 또한 완전히 상이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여전히 굳건한 성별분업으로 인해 늘 직장에서의 노동시간과 가사·양육 등 가정 내 노동시간을 ‘필사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제도의 변화는 분명 남성과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찬가지로 연장·야간노동이 빈번한 직장이라면 어린 자녀를 가진 여성노동자의 고용은 똑같이 어린 자녀를 가진 남성에 비해 더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물론 이제까지 노동조합이 이런 여성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해결방식은 그런 여성들을 ‘보호’ 또는 ‘배려’하는 조치들을 단체협약에 ‘첨가’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단체협약이 교섭 단계에서 누락되지 않고 체결된다면 당장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여성만의 일로, 또한 여성노동자는 남성과 달리 늘 추가적 비용이나 특별 조치를 요하는 골치 아픈 주변집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여성문제’ 또는 ‘여성사업’이라는 접근 방식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인 셈이다.

성평등한 교섭 위해서 ‘첨가’ 아닌 ‘전환’ 필요

그렇다면 성평등 의제라는 문제 설정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이와 어떻게 달라야 할까? 먼저 고용, 임금, 노동시간·휴일·휴가, 노동안전보건, 복리후생 등 모든 교섭 의제가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려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작은 예로 만약 남성노동자의 평균 체형을 토대로 작업대나 공구를 설계한다면 신체적 조건이 다른 여성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발생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은 이런 경우를 미리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과정에 성별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기 위한 교섭 내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노동안전보건 교섭 의제는 더 이상 성평등과 무관한 얘기가 아니다.

나아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에게 ‘노동자’란 대체로 ‘남성노동자’라는 가정이 매우 익숙하다는 데 있다. 남성이 주 생계부양자이며 여성은 가사전담자 내지 보조 생계부양자라는 관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노동 관련 법·제도·관행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관행은 가족 돌봄에 대한 책임을 다른 가족구성원(대부분 여성)에게 전가하고 생활시간의 대부분을 유급노동에 투여할 수 있는 남성노동자를 일반적인(또는 모범적인!) 노동자로 보는 규범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노동조합이 성평등 교섭 의제를 발전시킨다 함은 이러한 수많은 노동 관행들이 전제하고 있는 ‘보편적 노동자 모델’을 전환해 나가는 것이며, 당장 눈에 보이는 성차별을 줄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성차별을 초래하는 성별 불평등 구조를 지양해나가는 활동을 노동조합 전체의 과제 -여성노동자만의 과제가 아닌- 로 삼는 것이라 하겠다.

성 인지 관점에서 본 산별노조 교섭의제… “갈 길 멀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현재 민주노총 내 산별노조들의 교섭 의제는 얼마나 성평등 관점을 포함하고 있을까? 지난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아직까지 그 수준은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2006년~2007년 사이 체결된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산별중앙협약을 분석한 결과, 외견상으로 금속노조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 생리휴가 동일 적용(2006년 협약)”을 제외하면 성평등 관련 의제를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육아휴직, 직장보육시설 등 기존에 여성 의제로 다뤄졌던 조항들이 일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체 산별협약이 남성과 여성노동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각각의 차이와 다른 요구들을 반영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보면 두 노조의 상황은 비슷하다.

두 노조의 고용 관련 협약에는 일반적인 차별 개선과 비정규직 채용 억제, 고용안정에 관한 조항들이 포함돼 있지만, 해당 산업 내 성별 고용구조에 대한 분석에 기초한 성차별 해소, 여성노동자 고용안정의 요구를 제시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임금협약도 마찬가지인데, 이들 노조는 모두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차별 해소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으며, 이는 고용형태 차별과 성차별이 중첩되어 있는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성별 직종·직무 분리 등 성별임금격차를 초래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앞으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성평등 의제 = 여성노동자의 문제’, ‘다른 교섭 의제 = 모든 노동자의 문제’라는 이분법을 넘어, 교섭 의제 전반에 남성과 여성의 다른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남녀노동자 모두의 일과 가정, 개인생활의 균형을 촉진하는 내용까지 포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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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노동조합운동은 여성노동 의제를 '여성노동'이 아니라 '노동'의 문제로 인식하는 성 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 전국여성노조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2007년 대선 시기 진행한 '여성노동 의제 홍보 캠페인'   ▶ 매일노동뉴스 ]

“조직 수준을 판단내릴 기초자료도 없다”

앞 단락의 주제가 노동조합 교섭 의제의 성평등 수준에 관한 문제라면, 여기서는 노동조합 조직 내부의 성평등 수준과 성평등 촉진 방안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질문들을 던진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조합들의 성평등 수준은 무엇으로 진단할 수 있을까? 어떤 조직이 다른 조직보다 얼마나 성평등 원리를 더 잘 구현하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는 지표들은 무엇일까? 이런 진단과 비교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가령 각종 의사결정기구 50%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 노조가 30% 할당을 실시하는 노조보다 더 성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 여성할당 실시 여부를 성평등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유력한 지표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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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실시한 연구사업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가장 먼저 직면했던 문제는 이런 질문에 답할 도구와 지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연구팀은 국가 정책에 성평등 관점을 통합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들을 바탕으로 평가지표를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른바 ‘성 주류화’를 추진하기 위한 일반적인 도구로는 △관련 정책기구의 설치, △성별 분리 통계, △성별영향평가, △성 인지적 예산 편성, △성 인지 정책에 대한 교육·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도구들이 개발된 이유는 국가 정책 전반에 성 인지적 관점을 체계적으로 반영함으로써 모든 분야의 정책이 남녀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남녀의 같거나 다른 조건을 고려한 실질적인 성평등을 촉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취지를 살려 노동조합의 성평등 수준을 점검하고 여성 대표성 제고, 여성관련 기구 설치, 성평등 관련 교육 등 어느 한 가지 요소로 대체할 수 없는 포괄적인 노조 내 성평등 정책 평가 틀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더 난감한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나름대로는 최소한의 기준이라 생각했던 이 지표를 가지고 막상 민주노총과 소속 산별·연맹, 지역본부를 평가하려니, 객관적인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을 거의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보다 성평등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지금 상황이 얼마나 그렇지 못한가를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는 기초자료들조차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민주노총 총연맹으로 평가대상을 좁혀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 평가 가능한 항목들만을 활용해 평가해 보았다.

성평등한 조직으로 가는 체계적인 ‘도면’부터 그려야

여성 대표성과 참여 수준은 어느 정도 그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분야였다. 지난 2004년부터 민주노총은 임원과 주요 의사결정기구 내 여성할당제를 실시한 직·간접적인 효과로 각종 기구 내 여성 대표성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할당제를 시행하지 않는 집행기구 내 여성 비율, 실·국장 등 주요 간부 중 여성 비율도 30%에 가깝거나 조금 웃돌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평가 항목에서는 사실상 뭔가 추진되고 있다고 판단내릴 만한 근거들을 찾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1997년 설치된 이래 이렇다 할 역동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라는 단일 기구가, 1.5명의 상근 인력에 민주노총 전체 예산의 0.35%(운영비를 제외한 사업비 예산의 1.7%)를 가지고 여성 관련 정책, 조직, 홍보 등 모든 사업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 내 성평등 촉진, 사업장 내 고용평등, 나아가 노동시장과 사회 전반의 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모든 과제를 여성사업 담당기구‘만’의 역할로 한정짓고, 풍부하고 안정적인 사업 시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사실상 방치해 두고 있는 셈이다. 성평등 교섭 의제가 단체협약 내 특정한 여성 관련 조항으로 국한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조 내 성평등 촉진은 사업 기구들 전체가 성 인지적 관점에서 각각의 사업계획을 수립?집행하고 예산을 편성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추진 체계는 노조 내 성평등 사업을 계속 주변 업무화하고 관련 사업주체들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여성할당제도라는 선도적인 적극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있음에도, 민주노총은 성평등 촉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지 못하면서 여성사업을 여전히 주변적 위치에 머물게 하고 있다. 이는 비단 민주노총 총연맹만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조합 전반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여성의 대표성을 제고하는 조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성평등 촉진 기구 구성, 각종 통계나 자료 구축, 예산과 인력의 확대, 성평등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체계적으로 함께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보면 민주노총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앞에서 제시한 평가항목들에 제시된 지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비해서 조직 내 성평등 수준이 어떠한지,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막막하지만, 긴 호흡으로 가야 할 길

지난 2월1일 연구사업 결과를 민주노총 및 가맹 산하조직 간부들과 공유하는 토론회 자리가 마련됐다. 앞서 말한 노동조합 성평등 의제 현황과 평가 외에도 방대한 해외 노동조합의 성평등 조치 사례를 소개하는 발표를 마치고 나니, 현장 간부들은 일제히 “이걸 어떻게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발표자의 한 사람인 필자가 보아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성평등 의제 추진 방식은 포괄적이고 중장기적인 성평등 의제 추진 계획, 즉 뼈대를 먼저 세우고 구체적인 내용을 덧붙여가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계획을 수립하는 것 역시 현재 대부분 노동조합의 부족한 여성사업 담당 인력과 역량을 고려해보면  쉽지만은 않다. 여성사업 담당자 혼자 계획을 세워서 여기저기 배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기에, 무엇보다 노동조합 전체에 성평등 의제 추진 방향, 성평등의 가치와 원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제까지 그런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엇이 노동조합이 지향할 성평등의 가치인지, 성 인지적 관점이란 무엇이며 그러한 관점을 갖는 노조 간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단체교섭의 전 과정, 노동조합 활동의 모든 단계에서 성평등 관점을 놓치지 않고 성 인지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지는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 민주노총 연구사업이 다른 여러 기초 작업 중에서 ‘해외사례 연구’를 선택했던 이유는 국제노동기구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 노조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성평등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체계와 계획을 만들고 꾸준히 수행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이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과제들을 찾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경우 여성할당제 같은 단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마치 모든 성평등 의제의 발전을 보장하는 양 지나치게 실천 경로를 단순화했던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 볼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