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드리운 먹구름

노동사회

한반도에 드리운 먹구름

admin 0 2,228 2013.05.07 10:23

얘기 하나. 대학에서는 [북한 사회의 이해]라는 과목을 맡으면서, 사회에서는 통일운동을 펼치느라 한 학기에 한두 번 판문점을 찾았는데, 이번 학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미군들이 판문점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얘기 둘. 흰색 가루가 든 우편물이 우리나라에도 배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던 다음 날엔가 뉴욕발 특급 우편물을 한 통 받았다. '혹시'하는 맘으로 잠깐 망설이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서류 봉투를 뜯었다.

위에 소개한 두 가지 얘기는 미국에서의 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우리 사회는 물론 개인의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반도 정세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우려되는 한반도 상황

jblee_01.jpg미국이 세계 모든 나라들을 향해 테러를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분명하게 밝히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남북한도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은 미국이 공개적으로 부탁하기도 전에 미국의 보복전쟁에 기꺼이 병력까지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고, 북한은 테러를 반대하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전쟁반대 의견은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으니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고, 북한이 테러 반대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은 북미 관계 진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이에 따라 테러와 전쟁에 따른 세계 정세가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부정적인 예상을 먼저 내놓고 싶다. 몇 가지 이유만 든다면 첫째, 북한이 1990년대부터 테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왔지만, 미국은 북한을 여전히 테러 지원 국가로 지명해놓고 있다. 미국 행정부나 의회의 보수 강경파들은 북한이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 기술을 건넸을 뿐만 아니라 빈 라덴 조직원들에게 생화학무기를 제공했으리라는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북한이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정보를 얻기 위해 황장엽씨의 미국 방문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북한도 테러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을 폭격하거나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게 할 수도 있다는 극우파의 목소리도 들린다.

둘째,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북한도 미국에 대해 유화 제스처를 보인다 할지라도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금방 호전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어 이른 시일 안에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테러 혐의자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을 사로잡거나 죽이겠다고 무리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게다가 아무리 비싼 미사일과 포탄을 사용한다 해도 오폭이 일어나기 마련이어서, 민간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폭격을 당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죽는 바람에, 미국 안팎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 않은가.

한편 테러를 뿌리뽑겠다며 아프가니스탄에 수억원짜리 포탄을 밤낮으로 퍼붓고 특공대를 투입하는데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추가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세계 정보 기관들의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형태의 테러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비행기를 건물 속으로 파고들게 했던 테러도 기상천외한 발상이었지만, 우편물을 통해 세균을 스며들게 하는 테러는 공상 영화로도 흉내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언론사와 의회에 이어 백악관과 사법부에까지 공포의 흰색 가루가배달되고 있다니, 무슨 정신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으랴.

셋째, 일본이 테러 반대를 빌미로 자위대 파병을 포함해 무장 확대를 꾀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다. 유엔의 평화 유지 활동도 아닌 미국의 보복 전쟁에 자위대를 보내는 것은 일본의 헌법 위반일 수 있지만, 일본 지도자들은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크게 확대하겠다는 뜻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일본이 해외 침략을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침략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이 어떠한 의도를 지녔든 자위대의 활동 폭을 넓히고 무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중국과 북한의 반발과 동북아 지역의 군비 경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고, 이는 궁극적으로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어쩌면 남북 관계에 가장 심각하고 직접적인 일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앞뒤로 남한에 경계 태세가 강화되고 미군 전투기가 추가로 배치된 사실일 것이다. 남한 정부가 위기 조치반을 가동하고 전군에 경계 강화 조처를 내린 것도 북한의 비위를 거스를만 하지만, 미국이 남한에 공군을 중심으로 전투 병력 및 군사 물자를 증강 배치한 것은 분명히 북한을 자극할 만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남한의 군사 당국을 직접 거명하며 비난했고, 특히 미군 전투기의 추가 배치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일환이라며, 북한 역시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군사적 대응력을 증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북한이 남북 사이의 이산 가족 방문단 교환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든 이유가 남한의 비상 경계 태세에 따른 '불안한 정세'였다. 아무튼, 북한의 속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지만, 이를 빌미로 장관급 회담 등 남북 사이의 각종 당국 회담 일정이 삐걱거리게 되지 않았는가.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이 좋든 싫든, 미국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이 테러와 보복 전쟁에 빠져 한반도 문제에 크게 간섭하기 어려울 때 남북한이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거대 야당과 수구 언론들의 반대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하기 힘들다면, 건전하고 진보적인 시민 단체들이 앞장을 서서 말이다. 개인이나 시민 단체들이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힘은 갖고 있지 않지만, 정부가 바람직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도록 여당에든 야당에든 언론에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는 않은가.

나는 통일이 언제 될 것 같으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통일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우리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물어보라고 대꾸한다. 반미 테러와 미국의 보복 전쟁이 남북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게 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고민해 보자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는 미국에서의 테러로부터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미국은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끝난 뒤에도 유럽-대서양 지역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각각 10만명 안팎의 미군 병력을 전진 배치시켜 놓고 있어 자국의 땅 안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도 모자라 천문학적인 돈과 최첨단 군사 과학 기술을 들여 혹시 미국을 향해 날아올지 모를 미사일을 하늘에서 산산조각 내버리겠다고 이른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어떠한 무기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영화 같은 테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뿐이다.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모든 나라들에게 보복 전쟁을 지지하도록 이끌며, 테러 혐의자들을 땅속까지 쫓아가 잡아내고, 그들을 지지하거나 보호해주는 나라를 초토화시킨다고 테러가 뿌리뽑힐까.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승객들을 이중 삼중으로 검색하고 승무원들을 무장시키며 공항을 비롯한 주요 건물들에 대해 물샐틈없이 경비를 강화한다고 테러를 막을 수 있을까.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테러의 원인을 없애는 일이다.

따라서 남한이 경계를 물샐틈없이 강화하고 군사력을 끊임없이 증강시키며, 북한이 도발하면 초전박살 내버리겠다는 안보 태세를 강화하기보다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반감이나 적대감을 갖지 않도록 이끌어 가는 게 안보와 평화를 위한 가장 경제적이고 건설적이며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