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와 화물, 돌입하지 못한 ‘공동파업’이 남긴 것들

노동사회

철도와 화물, 돌입하지 못한 ‘공동파업’이 남긴 것들

편집국 0 3,510 2013.05.29 09:17

11월16일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공동파업’을 유보하면서 공동투쟁이 마무리됐다. 파업 실패 책임을 지고 철도노조 지도부가 사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두 노조는 공동투쟁본부를 꾸리고 ‘동시 돌입 동시 타결’ 원칙까지 세우면서 유례없는 공동행보를 취했다. 

지난 2, 3월 각각 철도노조와 화물연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엄길용 집행부와 김달식 집행부는 선거 당시부터 ‘철도-화물 공동투쟁’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두 조직의 공동투쟁 노력이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은 9월19일 합동간부 수련회였다. 물론 그 전부터 공동투쟁기획단을 꾸리기 위한 실무작업을 추진해오고 있었다. 어쨌든 수련회와 동시에 공동투쟁기획단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고, 10월20일 7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결의대회와 함께 공동투쟁본부가 공식 발족했다. 이어 11월6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16일 공동파업을 공식발표했다.

2003년 각자 두 번의 파업에서 달콤한 승리와 쓰라린 패배를 동시에 맛보면서 공동파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두 조직의 ‘숙원’이 현실화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업종이 다른 만큼 두 노조의 쟁점과 정서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는 공동파업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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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2일 4,500여명이 참석한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 모습 ▶ 철도노조 ] 

구조조정, 해고자, KTX 승무원 문제… 사실상 원점으로

철도 노사의 핵심쟁점은 크게 나눠 ‘해고자 49명 복직’과 ‘구조조정’이었다.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도 핵심쟁점이었지만 이 사안도 크게 보면 업무 외주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철도공사 구조조정에서 파생한 문제였다. 

해고자 49명 중에는 철도청을 철도공사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분리하도록 한 철도산업구조개혁법안에 반발해 진행된, 2003년 6월28일 파업 해고자들이 46명으로 가장 많았다. 나머지 세 명은 각각 1994년 전국기관사파업 해고자, 홍익매점의 특수고용노동자, 회사 내부 자료 유출로 해고된 계약직 노동자 등이었다. 이러한 해고자 문제와 관련하여 철도공사는 ‘노사평화선언’ 등의 전제 조건을 강조했다. 또 파업돌입 직전인 11월15일 오후에는 2003년 해고자 46명 복직에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에 이를 철회하면서 아무런 의견접근도 보지 못했다.

지난해 3월 파업에서도 해결 짓지 못한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도 이번 파업에서 최대쟁점이었다. 교섭 과정에서 철도노조는 현재 투쟁 중인 80여 명의 승무원들에 한해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이른바 ‘이원화 방안’을 제안했다. 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리아투어서비스에서 근무 중인 승무원들까지 직접 고용하라는 ‘외주화 전면 철회 요구’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이에 대해 철도공사는 “고용문제로 접근한다면 검토할 수 있다.”며 역무원으로의 직접고용을 제안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에 이미 나왔던 제안으로 새로울 것도 없는 것이었지만, 결국 공사는 교섭 막판에 “3자 협의체 결과에 따르자.”며 원점으로 되돌렸다.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현안들이 제기됐다. 철도공사는 지난해 나온 경영개선대책에 따라 △기관사 1인 승무, △전동차 차장 생략, △300개 역의 무인화 등을 통해 연내 930명의 인력감축과 함께 110명의 정원축소를 추진했다. 노조는 이런 구조조정 정책의 전면 철회와 함께 1,130명의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결원 발생 즉시 충원하게 돼 있는 단체협약을 근거로 올해 정년퇴직자 발생에 따른 결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특채에 따른 결원을 포함한 수치였다. 그러나 공사는 감원 규모와 절차에 대해서는 노조와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구조조정 정책 철회는 불가하다는 방침이었다. 

결국 철도 노사는 이러한 3가지 핵심쟁점에 대해 예고된 파업 직전까지 의견접근을 못한 채 ‘기 싸움’만을 벌이고 있었다. 반면 화물연대와 건설교통부 간의 협의는 일부 핵심사안에 일찍부터 의견접근을 마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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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_김학태2: 11월6일 철도·화물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 ▶ 화물연대 ]

운임제도 개선 성과, 직접 비용 인하는 미해결

화물연대의 핵심요구안은 △표준요율제와 주선료상한제 도입 등 ‘운임제도 개선’, △8톤 이하 차량의 주간통행료 인하와 유류세 인하 등 ‘직접비용 인하’, △차량 가압류와 번호판 탈취 방지 등 ‘재산권 보장’이었다. 

10월12일 1차 협의를 시작한 화물연대와 건교부는 운임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서로 수정안을 내며 의견을 접근한 반면, 직접비용 인하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견접근도 없었다. 유류세 인상분에 대한 국가보조금 지급 기간을 1년 연장하는 방안에 의견접근이 이뤄졌지만, 이 또한 재경부와의 협의절차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었다.

표준요율제는 최소한의 운송료를 정하자는 것으로 법정최저임금과 유사한 제도다. 2003년 5월 화물연대 첫 파업 당시 운임인상 요구가 제도개선책으로 다듬어져 나온 것이다. 이와 관련된 협의를 거치면서 화물연대와 건교부는 이 제도를 시범 실시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고, 막판에는 시범 실시 기간과 법 시행 시기가 쟁점이 됐다. 화물연대는 1년 시범 실시 뒤 2009년 시행을 요구했고, 건교부는 구체적인 시기를 못 박는 것에 대해 난감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파업 예정일 하루 전날인 15일, 막판 교섭에서 건설교통부는 2010년 시행으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했다.

재산권 보장과 관련해서는 표준위수탁계약제도를 2008년 상반기에 시행하자는 데까지 의견이 모였다. 현재 화물노동자들의 생존권 위협이나 고용불안 원인인 위수탁제도를 인정한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표준위수탁계약서는 차량탈취나 차량가압류를 금지하는 조항을 명시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두고 교섭한 결과 결국 건설교통부에서 처음부터 ‘수용불가’를 분명히 한 유류세 인하나 고속도로 주간통행료 인하는 의견접근에 실패했다. 하지만 화물연대 출범 초기부터 지입차주들을 괴롭힌 운임료나 차량재산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건교부가 제시한 것은 성과였다.

멈추지 못한 바퀴, 멈칫한 공동파업의 파장

핵심쟁점들에 대한 의견접근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철도노조는 파업전야제에 참가한 인원을 확인한 결과 파업돌입이 무리라고 판단했다. 엄길용 위원장은 파업 유보를 선언하면서 “파업 준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전야제에 참가한 인원은 화물연대와 합쳐 전국적으로 9천여 명에 불과했다. 일부 지부에서는 조직적으로 불참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53%의 저조한 파업 찬성률이 품게 했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철도노조 내부에서는 조합원들 인식과는 달리 지도부가 너무 앞서 나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다. 또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회부 결정, “조합원 개개인에게도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철도공사의 강경대응 방침도 파업을 앞두고 노조와 조합원들을 크게 압박했다. 

철도노조와 달리 협상에서 일부 진척을 보인 화물연대는 철도노조 파업 유보 결정에 따라 건설교통부 최종안에 대해 조합원 찬반을 물었다. 하지만 집행부의 기대와는 달리 찬성률이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면서 최종안 인준은 부결됐다. 일부 성과에도 조합원들이 당장 피부로 인식하는 ‘직접비용 인하’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또 철도노조와의 공동투쟁 실패에 대한 실망감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요 쟁점들 모두 미해결… 끝난 것은 없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총사퇴를 결정하면서 이번 교섭에서 다뤘던 주요 현안문제는 차기 집행부로 넘어가게 됐다. 게다가 철도공사는 “현재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내년 3월이기 때문에 노사교섭은 없고, 노사협의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실질적인 교섭은 더욱 힘들 전망이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2011년까지 3천 명 인력감축 계획을 세우는 등 구조조정은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은 철도 노사관계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 되고 있다. 

한편 노동부는 현재 논의가 중단돼 있는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 관련 3자 협의체 구성을 재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철도노조 집행부가 총사퇴를 결정하면서 이마저도 불투명하게 됐다. 해고자 문제 역시 해고자들이 존재하는 한 철도노사에게 모두 부담이 되기 때문에 ‘끝나지 않은 쟁점’임에 분명하다.

화물연대는 올해 내에 대의원대회를 열어 건설교통부와의 재교섭 등 투쟁계획, 지도부 거취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는 재협의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공식적으로는 추가협의나 보충협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재협의가 추진된다 하더라도 유류세 인하나 도로통행료 인하 등의 직접비용 인하는 이견을 좁히기가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재협의나 추가협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그나마 성과로 남은 표준요율제와 표준위수탁계약제도 개선 역시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렇듯 공식적으로 교섭은 끝났지만 이래저래 남은 불씨들은 또 다른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그 폭발이 무엇을 파괴할지는 각 주체들의 합리적인 판단과 현명한 선택에 따라 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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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투쟁, 어려다 어려워!”
“앞으로 누가 공동투쟁 얘기를 할 수 있겠나!”

철도노조와 화물연대 공동투쟁이 사실상 실패하면서 두 조직은 물론 운수노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우려를 보내고 있다. 두 노조의 공동투쟁은 지난해 운수노조 출범 뒤 진행된 첫 산별파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또 2003년 각자 파업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에서 나온 공동투쟁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국 투쟁은 직접적인 성과를 남기지 못했고, 공동투쟁이나 공동파업이 지니는 의미 자체도 중요하지만 현저히 다른 조직력과 요구안, 정서 등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또 공동투쟁을 하기 위한 ‘실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교훈을 던졌다는 지적이다.

두 조직은 파업 날짜를 잡는 데서부터 혼선을 빚었다. 당초 이달 11월20일 공동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었지만 10월30일 철도노조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직권중재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서 암초에 부딪쳤다. 직권중재에 따라 15일 이후 파업은 의미가 없게 된 철도노조는 15일 이전에 파업에 나서는 게 필요했다. 반면 화물연대는 파업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고,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이 때문에 파업 시기는 12일로 앞당겨졌다가 다시 16일로 미뤄졌다. 

건교부와의 교섭에서 상당부분 의견접근을 이룬 화물연대와 직권중재 등의 영향으로 노사 의견일치 지점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철도노조와의 교섭진척도 차이도 공동파업 유보에 결정적 요인이었다. 철도노조가 교섭난항을 겪으며 파업돌입이 기정사실화되는 듯한 시각에, 화물연대는 철도노사 교섭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시간끌기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간 것이다. 결국 화물연대에서는 잠정합의에 준하는 협상결과가 나왔는데도 ‘공동파업 실패’에 따른 조합원 실망감으로 협상안이 부결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운수노조 관계자는 “조직과 정서, 요구안이 판이하게 다른 업종본부끼리의 공동투쟁보다는 산별노조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또한 철도노조 관계자는 “공동투쟁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자기 능력에 대한 분명한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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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