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되새기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책들

노동사회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을 되새기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책들

편집국 0 3,632 2013.05.29 09:15
 

『19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 I·II』, 김호연·양상현·현재열 지음, 울산대학교출판부 펴냄, 2007.
『1987~2007 골리앗은 말한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짓고 펴냄, 2007.


올해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이 되는 해다. 꼬박 20년의 세월이 오늘의 노동운동을 있게 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역사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그동안 여러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왔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책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무엇보다 지역 차원에서 스스로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또 일반 노동자의 생애 경험을 바탕으로 1987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점에서 그렇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매우 광범위한 대중 동원의 성격을 지녔던 것에 비해, 그동안의 역사 서술과 연구는 노동조합 지도부의 시각 또는 전국적 차원의 의미 부여 등에 그쳤던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올해 20주년을 맞아 울산에서 생산된 이 책들은 당시의 투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지역 수준에서, 그리고 일반 노동자의 생애와 경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아래로부터의 구술사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들이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마련해 주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book_01.jpg20년 전 그 사람은 어떻게 지금 이 사람이 되었나

2권으로 출간된 『19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은 지금은 현대중공업으로 합쳐 있지만 1987년 당시 울산 동구 지역에 자리했던 현대중공업, 현대엔진, 현대중전기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구술 및 그에 대한 분석을 수록한 책이다. 이 책은 울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수행한 울산지역 노동운동에 대한 구술 채록의 일환으로서, 1987년 투쟁 당시 일반노동자였던 14명(이들은 이후 주요한 활동가들로 성장한다)과 당시 투쟁 지도부를 구성했었던 6명 등 총 20명의 구술 생애사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이 증언자들은 1987년 갑자기 투쟁의 한 가운데로 던져졌고 일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들의 개인적 성장과정과 노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1987년 이전 작업장 문화, 1987년 이후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주요한 노동관련 사건에서의 개인적인 경험, 개인의 의식 변화 과정과 조직 활동 부분 등을 인터뷰를 통해 담고 있다. 

이들의 구술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롭게도 오늘날의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자대투쟁의 역사적 중요도나 의미 부여에 비교해 볼 때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어쩌면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투쟁에 참여했던 상당수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일단 그들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된 분위기’를 만끽하며 마치 도시락 싸들고 소풍가는 마음으로 다음날의 집회를 기대했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그 이후 1990년경까지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노동운동 관련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 ‘평범한’ 노동자들은 노동운동 활동가로 전화해 나갔다. 구술 자료는 이 과정을 개인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노동운동사에서 주체형성의 문제에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book_02.jpg현대중공업노조 20년의 굴곡을 자료로 본다  

『1987~2007 골리앗은 말한다』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역사위원회’와 현대중공업 노동자 글쓰기 모임인 ‘현중글패’가 발간했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발간된 각종 선전물, 홍보물, 노보, 속보, 소식지 등을 체계적으로 수록한 600여 쪽 분량의 자료집이다. 울산에서는 올해 민주노총 지역본부 차원에서 1987년 20주년 기념사업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이 책의 발간은 그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현장노동자들이 9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퇴근 후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굴곡 많은 20년을 담담하게 정리한 노력의 성과이다. 책에는 기존 간행물에서 담지 못했던 귀한 자료와 이번에 새롭게 찾아낸 자료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자료마다 해설을 담아 그 배경이나 결과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수록된 자료의 대부분은 노동조합에서 발행한 공식 홍보물이지만, 1988년 ‘128일 파업’, 2004년 현중노조 제명을 불러온 ‘박일수 열사 투쟁’, 노조에서 관리하는 위탁업체관련 비리 등 굵직한 사건이나 내부에서 쟁점을 형성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발행한 홍보물도 실어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두 종류의 책은 모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었던 현중의 노동운동은 그 후 많은 굴곡을 겪고 있다. 그러나 책에 실린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의 ‘생산과정’이 자기 역사를 갖고자 하는 노동자의 작지만 소중한 노력을 웅변하고 있다. 이렇게 애써 만들어진 두 책이 좀 더 풍성한 노동운동의 새싹을 틔우는 씨앗이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