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로 경제가 어렵다고

노동사회

테러로 경제가 어렵다고

admin 0 2,393 2013.05.07 10:21

9·11 테러는 울고싶은 정부의 뺨을 때려준 꼴이었다. 이를 빌미로 경제전망에 대한 공수표를 남발하던 재정경제부는 경제성장률 전망을 과감하게 연 3% 밑으로 내려 잡았다. 최근엔 2%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이미 경기는 테러 이전부터 고꾸라지고 있었음이 명확한데도, 정부는 이를 완화하기 위한 충분하고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펴기는커녕 오히려 경기 하락을 방조해 왔다. 테러는 정부의 책임을 면피시켜주는 효과를 낳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재정수지 흑자다. 정부 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과 각종 기금(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제외)을 포함한 통합재정수지는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16조3천억 원 흑자였다. 올해 1분기 통합재정수지 흑자는 12조3천억 원, 2분기에는 7천억 원을 기록했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던 8월과 9월에만도 3조3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돈을 풀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민간에서 막대한 자금을 빨아들인 것이다.

경기침체 방조한 정부

jsjo_01.jpg정부가 경기 침체를 방조했다는 지적은 한국은행에서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월 펴낸 보고서 '최근 재정 운영이 경기에 미친 영향과 정책과제'에서 "지난해 4분기 이후 급속한 경기 둔화는 해외 요인 악화에 주로 기인한 것이지만, 지난해 1∼3분기의 재정긴축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는 예산상의 적자 규모(18조9천억 원)보다 25조4천억 원으로 6.5조원의 흑자를 나타냈다. 비록 지난해 4분기 11조6천억 원의 적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이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 '3분기까지는 사용하지 않다가 4분기에 몽땅 때려 넣는' 식의 계절적인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는 올해 8월까지 통합재정수지가 16조3천억 원의 흑자를 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왜' 경기 침체를 방조해 왔냐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해 여야 합의로 제정된 '재정건전화특별법' 때문이다. 2003년까지 재정수지를 균형재정으로 맞춘다는 게 이 법의 핵심이다. 그러니 정부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다. '경기부양과 구조조정의 병행'이라는 정부의 노선이 결국 '사탕발림'에 그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법은 알다시피 지난해 4·13총선의 결과물로 만들어졌다. 마치 자신들이 집권했으면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을 것처럼 정략적으로 제기한 '국부유출' 논쟁이 왜곡되게 전개되면서 재정정책의 손발을 묶는 이 법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법의 후유증은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에서도 나타난다. 조기에 충분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할 곳에 돈을 들이지 않아 사회적 비용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인 한빛은행이다.

한빛은행은 우리나라 기업금융, 특히 대기업금융의 주춧돌이다. 때문에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의 핵심에 있다. 그런 한빛은행에 투입된 공적 자금은 5조6천억 원에 불과하다. 1997년 말 한빛은행(2조8천억 원)과 비슷한 3조1천억 원의 무수익여신을 갖고 있던 제일은행에 지원한 공적 자금 11조7천억 원의 절반 수준이다. 대우사태 처리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진 것도 이렇게 낮은 공적 자금 지원 때문이다.

올해 한빛은행이 인원 감축, 수수료 인상, 가계대출 집중 등을 통해 영업이익을 2조원으로 늘린다고 해도, 하이닉스반도체가 부도처리되면 다시 공적 자금을 추가 투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한빛은행이 3조5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부실채권 누적에 따른 대손충당금을 8조3천억 원이나 쌓는 바람에 5조원의 순손실을 본 전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서울보증보험, 서울은행 등 추가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는데도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 조성을 꺼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재정건전화특별법 때문이다. 현재 4%인 은행법 동일인 소유한도를 10%로 확대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될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의 '사영화'를 다그치면서 사실상 재벌들에게 은행을 주려는, 국민경제를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법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선거를 포함해 내년에 있을 두 차례 선거에서 '우리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재정적자도 없습니다'는 생색을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시보다 못한 DJ 경제정책

이로 인해 국민들의 '지금의' 삶과 복지가 파괴되고 있다. 현 경제 상황은 '건전재정=균형재정'이라는 잘못된 경제논리와 선거를 겨냥한 '나쁜' 정치논리의 악조합이 만들어내는 내부적인 인위적인 산물의 측면을 강하게 띠고 있다. 단순히 미국 정보통신(IT) 산업의 침체에 따른 반도체 수출의 부진에만 모든 원인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경기를 과잉침체시키고 국민들의 현재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것을 통해 재정건전화특별법이 균형재정을 달성한다고 해도, 그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미국이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미국 정치권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2000년 흑자로 돌아선 재정수지 흑자폭이 올해부터 2010년까지 1조87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이를 어디다 쓸 것인지 '수치놀음'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경기 침체로 재정적자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흑자는 '강한 달러-저물가-저실업'이 상징하는 '신경제'가 계속될 것이란 믿음에 바탕을 둔 환상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기 침체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하 연준)의 작품이다. 연준은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이자율을 1.75% 포인트 올렸다. 통화정책이 보통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고 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철강업을 비롯한 미국 제조업체들의 잇따른 파산은 연준의 금리 인상에 그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미국 장기호황의 동력은 기업과 가계의 차입을 통한 소비였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막대한 차입에 대한 금융비용 부담을 그만큼 늘렸다.

미국 철강업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이후 걸프스틸, 노던스틸 등 7개 업체가 줄줄이 쓰러졌고, 연말에는 업계 3위인 엘티브이스틸이 부도로 파산법에 따른 보호조처를 요청했다. 피어톤스틸과 유에스스틸 등은 수천명의 노동자를 거리로 내몰았다. 미국 제조업 전체로는 지난해 18만2천개를 포함해 1998년 6월 이후 2000년 말까지 63만8천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모두들 부시 행정부를 '골통'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9·11테러는 그런 부시 행정부의 업보의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민주적 선거결과를 찬탈하고 등장한 그도 경기 침체에 대한 대응은 적어도 우리 정부보다는 낫다.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대규모 재정투입으로 맞서고 있다.

애초 부시는 경기 부양을 구실로 부유층을 위한 감세를 고집했다. 물론 미국 경기가 한창 잘 나가던 1999년부터 이 주장을 한 것을 보면, 부시의 감세 정책이 경기부양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분명하다. 더욱이 부시는 재정흑자를 사회간접자본 확충, 교육·의료 등에 지출하는 것은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했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격인 사회보장(SS)의 장기재정이 바닥날 것이라고 협박하며 이를 사영화시키야 한다고 강변도 했다.

그런 부시가 경기침체에 맞서 1천억달러가 넘는 재정지출을 꾀하고 있다. 장기재정 전망이 불확실하다던 사회보장기금에서 재정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차입을 단행했다. 구제금융은 민간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며 '손을 떼겠다'던 태도를 바꿔 항공업계와 암트렉 등 민간 철도기업 등에 대규모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서민위한 경제정책 펴야

한국은행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현 상황에서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필요한 것은 적자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정정책을 적극 펼치는 것이다. 경기침체를 단기화시키고 침체의 폭을 줄이는 것만이 오히려 중장기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정부는 직접적인 소비 진작을 위해 실업급여를 인상하고 급여조건을 완화시켜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기업 및 구조조정의 원화를 위해 추가 공적자금 조성에 나서야 한다. 중장기 성장 동력을 다지고 취약한 내수 기반을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 물류비용 절약을 위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하후 상박' 형식으로 소득세를 내려야 한다.

법인세는 인하하지 말아야 한다. 현재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법인세가 높아서가 아니라 경제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순자산의 25%로 규정된 총액출자한도 때문에 투자를 하지 못한다는 주요 재벌들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예외조항까지 합하면 총액출자한도는 순자산의 25%가 아니라 35%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문제는 재정건전화특별법이다. 이 법이 존재하는 한 서민들에게는 '축소균형'만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균형재정을 달성할 수 있다는 식의 옹호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정부가 이 늪에서 탈출했던 것은 사회복지 축소 등을 통한 재정지출 감소보다는 10년간의 장기호황 덕분이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재정은 순환한다. 이것이 진보진영이 재정정책을 대하는 '민주적 적자'의 원칙이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