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권과 ‘합리적 차별’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선택

노동사회

평등권과 ‘합리적 차별’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선택

편집국 0 6,477 2013.05.29 09:08

대한민국 헌법은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①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회를 들끓게 했던, 그리고 지금도 주요 쟁점현안인 비정규노동문제의 핵심에는, 노동시장과 고용관계라는 경제적 영역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겪는 이러한 평등권의 침해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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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27일 열린 ‘비정규투쟁 승리와 비정규 악법 폐기를 위한 서울지역 간부파업 결의대회’ 모습 ]

비정규노동자 ‘합리적 차별적 처우’라는 형용 모순 

비정규노동자는 제품시장과 기술변화에서 비롯되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전담하면서도 더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 이는 명백하게 비정규노동자들이 경제적 영역에서 ‘차별’받고 있음을 뜻한다. 이에 따라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에서는 기간제근로자, 단시간근로자, 그리고 파견근로자 등의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기간제법 제8조 ①항은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8조 ②항은 “사용자는 단시간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파견법 제21조 ①항은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는 파견근로자임을 이유로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파견근로자에게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고용법’) 제22조에서는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헌법과 법률상으로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하고, 외국인근로자까지도 부당한 차별적 처우를 받아서는 아니 됨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간제, 단시간, 파견 등 비정규근로자에게는 차별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반면, 외국인근로자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를 보면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은 사실 허울뿐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헌법과 법률에서 평등권 관련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이 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차별적 처우’를 정당화하는 다양한 논리나 조치들이 사실은 부당할 뿐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관련 사실들을 축적함으로써, 그 합리적 허울을 벗겨내는 일일 터다.  

차별 외면하는 정규직노조 위로 겹쳐 보이는 미국 노동운동사

비정규직법 시행에 앞서 지난 봄 사용자단체는 차별적 처우를 ‘합리화’하기 위해 “비교대상을 없애라”고 기업주들에게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비교대상 없이는 차별시정을 할 수 없으므로 동종유사업무 정규직을 없애기 위해서 정규직/비정규직 업무를 나누고”, “외주, 도급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권고에 충실히 따른 현장에서는 정규직은 수소를 돌보고 비정규직은 암소를 돌보게 한다든지, 정규직은 소를 도축하고 비정규직은 돼지를 도축하게 한다든지 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례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랜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아예 별도의 사업체에게 용역, 하도급을 맡기는 방식의 대응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차별시정의 대상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고용기간 제한 등 사용자가 직접 져야할 법률적 의무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차별함으로써 경영상의 이점을 얻고자 할 때 이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일차적인 역할이다. 차별적 처우를 합리화하는 논리와 조치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사실상 부당한 차별적 처우라는 점을 폭로하고 사회적 평등을 추구해나가는 것이 노동조합운동 본연의 임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적으로 자본은 인종적, 성적 차이 등 다양한 구별을 노동자 내부 차별의 근거로 사용했고, 노동조합운동은 이러한 차별에 저항해 왔다. 하지만 때로는 노동조합 자체가 배타적인 인종·성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경우도 있었고, 더 나아가 노동조합이 차별을 직접 시행하는 주체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은 미국의 노동운동사를 보면 명확해진다(아래 미국 고용관계에서의 차별에 관한 내용은 다음 책을 참조했음. Terry H. Anderson 지음, 염철현 옮김, 『차별철폐정책의 기원과 발자취』, 한울).  

평등과 민주주의, 포기할 수 없는 노동운동의 원칙 

흑인과 여성을 포괄하는 산업별 노동조합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직후 미국 노동조합은 인종차별 철폐 노력에 동참하기보다는 그 반대편에 서는 모습을 종종 보여줬다. 대부분의 노동조합에서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도제훈련의 대상에서 배제됐고 따라서 노동조합원이 될 수 없었다. 1966년 뉴포트뉴스 조선소에는 2만 2천 명의 종업원 가운데 약 5천 명의 흑인노동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백인과 동일한 일을 하고도 임금을 적게 받았고, 백인 부서로 전근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승진과 훈련에서도 제외됐다. 또한 세인트루이스의 배관공, 전기공, 판금공의 경우 노조원 5천 명 가운데 흑인은 3명에 불과했다.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제철소 노동조합원 850명 중 12명만이 소수민족 출신이었고, 배관 및 연관공 노조원 560여 명 가운데 3명만이 흑인이었다. 1,400명의 노조원을 가진 판금업자노조, 600여 명으로 구성된 엘리베이터 건설업자노조, 그리고 400여 명이 노조원인 석공노조에는 단 1명의 흑인 노조원도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 정부가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와 고용평등실천위원회(FEPC) 등을 통해 고용관계에서 성적, 인종적 차별을 줄여나가기 위한 조치를 추진했을 때, 미국 노동조합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차별철폐 운동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제소대상’이 됐다.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는 1973년 9월 미국자동차노동조합(UAW)을 포함해 차별 혐의가 있는 많은 주요 노조들을 제소했다. 그 결과 1974년 미국철강노동조합이 9개의 회사와 함께 225개 시설에서 4만 명의 여성과 소수민족 노동자에게 체불임금으로 3,10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현재와 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적 고용관계가 지속된다면 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들로 구성된 노동조합들에게 비슷한 상황이 도래하지 말란 법이 없다. 더군다나 1960년대 미국 노동조합과는 달리 인종적, 성적인 이데올로기에도 의거하고 있지 않은 한국의 노동조합은, 자신들만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내세울 근거도 ‘노골적인 금전적 이해관계’ 외에는 별게 없게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방치하고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노동조합운동의 주요 이념을 포기한다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노동운동이 아니게 될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현재 한국의 사용자들은 법망을 회피하기 위해 차별시정을 위한 비교대상을 없애고, 또 가능하다면 아예 외주용역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노동조합운동의 논리는 어떠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할까? 필자는 「남녀고용평등법」의 정신과 몇몇 조항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①항은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②항은 “동일가치 노동의 기준은 직무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조건 등으로 하고, 사업주가 그 기준을 정함에 있어 제25조의 규정에 의한 노사협의회의 근로자를 대표하는 위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다시 ③항은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의하여 설립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조항들로부터 비정규노동자들의 차별적 처우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업주의 다양한 술책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방안을 시사받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노동조합은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원칙”, 즉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입각해서 차별에 대한 판단기준을 노동조합 자체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조합 내 민주주의를 보다 확대하는 과정과 맞물려야 할 것이다. 또한 차별 판단기준을 노사 간 단체교섭의 주요 의제로 삼고 실질적으로 역량을 투여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개별 사업장 내부만이 아니라 지역 및 산업 전반에 걸쳐서 확대 적용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사내 협력업체의 경우 대부분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사업주에 의하여 설립된 별개의 사업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내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외부의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현실적인 수준에서나마 관철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보편성을 향한 노력들은 물론 현재 노동운동이 추진하고 있는 산별노동조합 건설과 산별교섭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완성된 산별노조의 통일교섭만이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닐 터다. 원청 대기업의 노동조합들과 하청 부품업체 노동조합들이 진지하게 소통하고 구체적으로 전략을 세운다면 지금이라도 실천 가능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무엇보다도, 차별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이자 노동자라는 확인에서 비롯된다. ‘나’에게 지금 적용되는 단체협약 혹은 임금규정이 왜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불합리한 허울을 벗겨낸다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게도 “나는 정규직이고 그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또는 “나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그는 중소하청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이르렀을 때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그’가 ‘나’와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이자 노동자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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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근로조건 전반에 걸친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의 차별 철폐는 노동자들의 중요한 요구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노동조합운동은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 노동자대투쟁 당시 울산 지역의 파업 투쟁 모습 ]

노동운동, 87년 노동자대투쟁의 함성에 답하라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사원’과 ‘공원’ 사이의 차별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지금이라고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한 관리직 및 사무직과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생산직 사이에, 임금수준에서부터 작업복, 작업모, 명찰 및 식당에 이르는 근로조건 전반에 걸쳐 순간순간 체감되는 ‘신분적 차별’이 존재했다. 이를 제거하라는 요구야말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노동자들이 외쳤던 가장 중요한 구호였다. 지난 20년 동안 차별구조는 새롭게 얼굴을 바꿔 덩치를 키워왔다. 이를 제거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을 계속 보인다면,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과연 사회 속 자신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운동의 적극적인 답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