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결정 방식으로 최저생계비 ‘희망 UP’

노동사회

상대적 결정 방식으로 최저생계비 ‘희망 UP’

편집국 0 5,412 2013.05.29 08:58

최저생계비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선정기준이자 급여기준이다. 또한 경로연금과 장애수당 등 정부의 복지제도 운영의 기준선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수준이 너무 낮은데다가, 지난 7년 동안 인상폭이 지나치게 제한되어 최저생계비로 살 수 있는 생활의 수준은 더욱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수급자들의 생활은 7년 전인 2000년에 멈춰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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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복지학교 참가자들. 3명이 간신히 앉을 수 있는 공간에서 찜통더위 속에 최저식료품비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 참여연대 ]

2000년 이후 매년 낮아지는 최저생계비 상대 수준

최저생계비는 정부위원 5명, 관계 전문가 4명, 공익대표 4명으로 이루어진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위)에 의해 결정되며, 매년 9월1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표한다. 중생보위는 3년마다 실계측하는 최저생계비 수준을 토대로 생활수준을 고려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해야 한다. 중생보위 위원들의 손에 160여만 명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삶의 질과, 최저생계비보다 한두 푼 더 벌어 기초생활보장을 못 받고 있는 차상위 극빈층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려 있다. 

현재 최저생계비가 정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일까? 우리의 헌법은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부가 인정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삶의 수준은 건강과 문화 따위는 염두에 두기 어려울 정도다. 단적인 예로 현행 최저생계비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1년에 단행본 2권, 아이들에게는 1년에 인형 1개와 장난감 자동차 1개만을 인정하고 있다. 양말은 자녀별로 1년에 3켤레, 운동화는 2년에 1켤레를 인정한다. 최저생계비는 용돈이 아니라 주거와 교육, 의료와 식비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포함된 것이다. 최저생계비에 맞춰 생활하라는 것은 반문명적 수준의 삶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최저생계비의 수준은 국민들의 평균적인 삶과 점점 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실제 2007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는 1,205,530원으로, 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대비 최저생계비 비중은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1999년 38.2% → 2004년 30.5%). 이는 현행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이 필수품을 장바구니에 담아 그 비용을 더하는 ‘절대적 방식’이고, 실계측이 이뤄지지 않는 3년간은 물가상승률 3%만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을 유지한다면 향후 최저생계비의 수준이 더욱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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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에 포함된 필수품의 질적·양적 변화와 더불어,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을 ‘상대적 방식’으로 바꾸는 구조적 변화가 시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적 방식이란 최저생계비를 중위소득이나 평균소득의 일정 퍼센트를 감안해 결정하는 것으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상대적 수준균형방식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2007년에 실계측한 최저생계비가 평균소득의 37%라면 2008년 최저생계비는 적어도 2008년 평균소득의 37%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도록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침없이 희망 UP! 최저생계비를 바꾸자

2007년은 1999년과 200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돌아오는 최저생계비 실계측년도다. 이에 맞춰 중생보위에서는 2008년도 최저생계비의 결정뿐만 아니라, 최저생계비의 계측 방식을 전환하는 것에 대한 결정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다. 참여연대, 한국여성연합,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중생보위 공익대표로 참여해 최저생계비를 현실화하고, 상대적 수준 하락을 막기 위해 최저생계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예산상의 이유로 관철되지 않았다. 

한편,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처럼 수년간 반복되어온 최저생계비 계측 방식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최저생계비가 상대적 방식으로 결정되도록 하기 위해 8월 말 최저생계비 결정에 앞서 7월 한 달 동안 <거침없이 희망 UP! 최저생계비를 말하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2004년에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의 수준을 적정화하기 위해 하월곡동에서 한 달 동안 최저생계비에 맞춘 삶을 체험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 UP>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이러한 캠페인 등의 영향으로 2005년도 최저생계비는 전년 대비 8%가 인상되었고, 최저생계비의 실계측 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축소되기도 했다. 

2007년 <거침없이 희망 UP!> 캠페인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참여연대의 시민운동 현장체험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으며,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토론, 체험, 그리고 직접행동 실천 등 총 11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과 수급자와의 간담회와 쪽방에서 하루나기 등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을 체험하고, 인사동 거리에서 <물풍선 펑, 최저생계비 UP> 캠페인을 직접 기획해 실천했다. 학생들의 체험은 『한겨레신문』의 인터넷 동영상 뉴스와 기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됐으며, 이로 인해 대선 등으로 가려졌던 최저생계비 문제가 조금이나마 공론화될 수 있었다. 

중생보위가 개최되는 8월 중순부터는 5회에 걸쳐 ‘중생보위 위원에게 보내는 긴급 릴레이편지-최저생존도 보장 못하는 최저생계비 이제 바꿔야 합니다’를 진행했다. 캠페인 참가자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들이 중생보위 정부위원인 변재진 보건복지부 장관, 김석동 재경부 차관, 반장식 기획예산처 차관 등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이는 인터넷 언론인 『프레시안』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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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 거리에서 최저생계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거침없이 희망 UP!> 참가자들. ▶ 참여연대 ]

올해도 반복된 예산 끼워 맞추기 식 결정

중생보위 개최일인 8월22일 아침, 빈곤사회연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중생보위가 열리는 팔레스 호텔 앞에서 최저생계비 수준을 현실화하고, 상대적 방식을 도입하라고 목청껏 외쳤다. 그러나 12층 에메랄드 룸의 중생보위 정부위원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중생보위는 경제부처 정부위원들의 주도로 2008년도 최저생계비를 전년대비 5%가 오른 월 126만 5,848원(4인 가족 기준)으로 확정하고, 상대적 계측방식의 도입은 차기 계측년도인 2011년으로 미뤘다. 예년에 비해 절대적인 인상률은 높아졌지만, 현 최저생계비 수준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란 점에서 여전히 불충분한 수준이다. 또한 평균소득에 대비한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수준이 하향화되고 있는 상황 역시 반영하지 못했다. 

중생보위는 이번에도 “최저생계비의 수준 하락을 막기 위해서 상대적 계측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민간 공익대표위원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차기 계측 시까지 논의구조를 만들어 사회적 합의를 모으겠다.”는 실현이 불투명한 계획만을 제시했다. 최저생계비의 상대적 결정기준 도입 유보는 이미 최저생계비의 수준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31.1%로 떨어진 마당에 최저생계비 수준을 평균소득의 30%이하로 떨어뜨림으로서 ‘빈곤억제’라는 제도의 취지마저 왜곡시킬 수 있는 우려스러운 결정이다. 

현행 전물량 방식은 필수품 포함 여부에 대한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계측년도의 생활수준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일례로 그간 여러 차례 논란이 되었던 휴대폰은 전 국민의 휴대폰 보유율이 80%에 이름에도, 올해도 필수품목에서 제외되었다. 필수품목을 모두 더하는 계측 방식으로는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최저생계비 결정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올해는 3년마다 돌아오는 최저생계비 실계측년도로 최저생계비를 직접 조사해 비계측년도에 반영하지 못한 생활수준을 반영해 최저생계비를 결정해야 한다. 중생보위는 2007년 실계측한 최저생계비 수준을 반영해 최소한 6~7%(4인 가족 기준)는 인상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올해 중생보위에서도 경제부처들이 중심이 된 ‘예산 끼워 맞추기’식 최저생계비 결정이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공익대표들이 실계측치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묵살 당했다. 실제 조사된 수치가 있음에도 이를 반영하지 않고, 예산범위 내에서 최저생계비를 정한다면 실계측을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생계지원을 위한 실질적 제도도 될 수 없다. 

최저생계비의 정책목표는 예산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

비록 올해에는 상대적 방식으로 최저생계비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번 결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중생보위 결정의 한계와 최저생계비의 비현실성이 드러났다.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는 빈곤층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질빈곤층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켜 ‘탈빈곤’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만든다.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상대적 방식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최저생계비는 우리 국민 모두가 빈곤이라는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하는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저생계비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예산이 얼마냐’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결정해 왔다. 언제까지 돈에 얽매어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등한시할 것인가? 정부는 올해 안에 상대적 방식 도입을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차기 계측년도가 아닌 내년에 이뤄지는 2009년도 최저생계비 결정부터 상대적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참여연대는 2007년 대선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새로운 시발점으로 삼아, 상대적 방식 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갈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