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양극화와 산별노조운동의 과제

노동사회

노동양극화와 산별노조운동의 과제

편집국 0 7,588 2013.05.29 08:54

10년 단위로 역사의 매듭짓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올해는 멀게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가깝게는 1997년 외환위기 10주년으로 지난 역사를 재성찰할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실제 1987년과 1997년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서 뿐 아니라 노조운동에게도 심대한 성격 변화의 역사적 계기를 부여했던 만큼, 그 시대적 국면에 대한 음미는 뜻 깊다 할 것이다. 

1987년의 민주화와 노동자대투쟁은 병영적 노동통제에 기반을 둔 개발연대의 노동체제를 붕괴시키면서, 이후 노동운동의 공세적 진출과 노조정치 구도의 민주적 재편을 추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노동운동은 1987~1989년의 폭발적 고양기를 통해 노동자대중에게 사회적 시민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토대를 확보하는 한편, 조직 기반의 확충과 투쟁 동원능력을 과시하면서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한 위협적인 대항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대 초중반의 정체기를 통해서도 민주노조들은 괄목할 만한 세력 확장을 통해 국가권력에 의해 강요된 한국노총 중심의 독점적 노조 지배구조를 종식시켜 양대 노총 경쟁체제를 확립했을 뿐 아니라,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사회개혁적 의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회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 흐름의 절정에서 1997년 초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의 승리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말에 발발한 외환위기과 더불어 우리 노조운동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당시의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정부 주도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개방 정책, 그리고 기업들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decent job)’는 급격히 감소했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이 핵심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한마디로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와 노조운동은 ‘노동양극화의 덫’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방 경제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은 가운데, 고용형태·기업규모·성별의 ‘3중 분단선(fracture line)’이 중첩적으로 발현되는 분절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이로써 소수의 대기업 (남성) 정규직 조직노동과 다수의 중소기업 비정규직 (여성) 미조직노동 간에 이질적인 고용체제가 형성·심화되었고, 소위 ‘노동의 위기’(최장집 2005)와 ‘노동운동 연대성 위기’(이병훈 2004)가 초래되었다. 물론 엄밀하게 따져 보면 외환위기의 외적 충격에 편승하여 전개된 국가권력과 자본주도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이 기본적으로 노동양극화 또는 노동시장?노사관계의 이중구조화를 촉발·강화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조운동 역시 기업별 조직체계와 그에 따른 협애한 이해구조와 활동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계급적 연대성을 지켜내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더러는 조합원들의 조직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그 분절구조의 확대재생산을 ‘방조’했다는 따가운 비판과 질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듯 지난 10년 동안 날로 암담해지는 노동양극화의 현실 속에서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일궈온 것은 다름 아닌 산별노조운동이었다. 기업별 노조체계는 사업장의 구획에 따라 노동자대중의 이해구조와 연대 기반을 불가피하게 분절·파편화함으로써, 노동양극화의 극복을 위한 계급적 대응을 형성·강화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산별노조운동은 소속 기업과 고용형태 그리고 성별 차이를 넘어서 (산별 수준의) 노동계급 연대를 구현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값진 시대적 의의를 갖는다고 하겠다. 

실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보건의료산업의 산별노조 출범을 시작으로, 지난 10년 동안 상당수 노조들이 기업별 조직틀을 깨고 산별조직으로 집결·합류하여 새로운 노조운동의 대세를 이루어왔다는 사실에서, 노동양극화 극복을 위한 그들의 주체적인 결단과 목적의식적인 실천 노력은 높게 평가받기에 마땅하다. 하지만 고착되어 있는 노동양극화의 구조적 장벽은 여전히 엄중하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9년여의 태동기를 갓 지난 우리 산별노조들은 한편으로 자본과 정부의 비협조적인 대응에 시달리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 운동 관성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산별다운’ 운동논리와 활동체계를 갖추는 데 아직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10년이 산별노조 전환을 통해 그 조직?활동 기틀을 형성하는 데에 주력해온 ‘산별노조운동의 건설 단계’였다면, 이제는 건설된 산별노조들이 구현·지향해야할 산별운동의 목표와 전략을 분명하게 정립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해야 하는, 이른바 ‘산별노조운동의 안착 (또는 안정적 구축) 단계’로 옮겨가야 할 때라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당면한 노동양극화의 현실에 맞서기 위한 2기 산별노조운동의 새로운 실천과제를 모색·점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산별노조운동이 대면하고 있는 노동양극화의 실상을 간추려 살펴보고, 3장에서 산별노조운동의 발전궤적과 현 상태를 검토·평가하며, 4장의 결론에서는 향후 산별노조운동의 실천과제를 제언하기로 한다. 

II. 산별노조운동의 과업환경: 노동양극화

1997년 말에 발발한 외환위기는 1987년의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노동체제(labor regime)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성격 변화를 초래했다. 소위 ‘1997년 노동체제’는 양극화와 분절성으로 성격지울 수 있는 바, 노동양극화는 같은 시기에 등장?발전되어온 산별노조운동의 당위근거이자 실천적 극복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 우리 노동시장에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는 양적인 수급동향에 있기보다는 고용 질의 악화와 특히 고용구조의 양극화에서 찾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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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용의 질 측면에서 대기업부문의 고용조정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감소했다. [그림1]에서 보여주듯이 500인 대기업에 소속된 노동자 수가 1993~2005년의 기간에 210만 6천명에서 131만 8천명으로 감소되었으며, 그 비중 역시 전체 사업체 노동자의 17.2%에서 8.7%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재벌기업·공기업·금융기관 등과 같이 ‘평생직장’을 보장해왔던 대기업부문의 종업원 수가 1997년 10월 156만 1천명에서 2001년 4월 124만 8천명으로 줄어, 외환위기 전후 3년 반 동안 고용규모가 20% 감축되었다. 

또한 그 대부분은 권고해직(또는 명예퇴직)·계약해지·정리해고 등과 같이 사용자의 적극적인 고용조정 조치에 의한 비자발적 이직으로 분석되고 있다(김유선 2005). 다시 말해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대기업부문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된 구조개혁을 통해 내부노동시장의 심리적 계약관계(psychological contract relations)가 근본적으로 해체되었으며, 고용조정으로부터 살아남은 잔류 노동자들은 항상적인 고용불안과 더불어 기업경영 및 노조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이들에 대한 차별적 처우가 문제되기 시작했다. [그림2]에서 예시하듯이 임시·일용직의 비정규 고용규모가 1995년의 41.9%에서 2000년의 52.1%로 증가하여 경제위기 전후의 6년 동안 10.2%가 증가했다. 노동계의 추산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2001~2006년 55~56%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정부의 집계방식에 따를 경우 동기간 26.9%에서 35.5%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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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의 추정치는 물론이고 정부 추산의 비정규직 규모 역시 서구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표1]은 고용형태와 사업체규모를 교차하여 2006년 8월 현재의 고용규모 및 그 상대적 비중을 정리?예시한 것이다. 또한 지난 10년 동안 탈산업화와 산업공동화에 의해 안정적인 제조업부문 일자리가 축소됨에 따라 고용 질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97~2006년의 기간에 제조업부문의 GDP 생산비중이 26.3%에서 27.8%로 증가된 반면, 고용 비중은 오히려 21.4%에서 18.0%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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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양질의 (제조업) 대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비정규직-중소사업장의) ‘나쁜 일자리(bad jobs)’가 크게 늘어나는 고용구조 변동은 우리사회의 양극화 경향을 초래하는 주된 요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고용구조의 이러한 변화 추이에 따라 노동소득분배율과 도시가구 소득불평등이 더욱 악화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김유선 2005). [그림3]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1993~2004년의 기간에 중산층의 일자리가 상류층이나 하위 소득층의 일자리에 비해 그 증가세가 상대적으로 낮거나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 소위 ‘쌍봉형’의 고용구조 양극화가 그 기간에 상당히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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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이후 우리사회에서 확대된 노동양극화는 대기업 정규직의 1차 부문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2차 부문 간에 임금과 복리후생 등의 고용조건 격차에서 손쉽게 확인될 수 있다. 임금의 경우, [그림4]에서 예시하듯이 1994~2006년 사이 500인 이상 규모의 대기업(=100)과 비교하여 100~299인 기업은 78.1에서 72.3으로, 30~99인 기업은 74.4에서 65.9로, 10~29인 기업은 72.4에서 59.8로, 그리고 5~9인 규모의 영세사업장에서는 1999~2006년의 기간에 59.0에서 51.5로 전반적으로 그 격차가 확대되었다. 특히 그 임금격차의 폭이 영세사업장으로 갈수록 더욱 커지는 것을 확인케 된다. 또한 [그림5]에서처럼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자료를 통해 분석한 결과 정규-비정규직 임금격차는 2000~2006년 사이 53.7%에서 51.3%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표2]는 사업체규모와 고용형태를 교차?종합하여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100으로 기준 삼을 경우 사업체 고용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비정규직 고용형태일수록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지급받고 있는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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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간 고용구조 양극화 추세는 복지 및 교육훈련에 대한 지출 규모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표3]은 1998년과 2005년 기업규모별 노동자 1인당 비법정 사내복지와 교육훈련을 위해 지출되는 노동비용을 비교하고 있는 바, 1000인 이상의 대기업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사업체 규모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1998~2005년의 기간에 전반적으로 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0년 이후 비정규직의 법정복지 수혜 비율은 전반적으로 개선·확대돼 왔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적게는 64.2%, 많게는 84.5%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회보험과 법정 근로기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표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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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조의 조직보호 역시 양극화구조를 확대재생산하는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2005년 현재 노동조합 조직률이 전체 임노동자의 10.3%에 그치는 가운데 조합원의 대다수는 500인 이상 대기업 노조로 조직되어 있다. 500인 미만 사업장의 조합 수는 5,602개(93.6%)에 달하기는 하나 전체 조합원 수의 29.2%에 그치고 있는 반면, 500인 이상 사업장 대공장노조는 비율이 6.4%밖에 안 되지만 조합원 수로는 70.8%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2006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임시?일용직의 경우 노조 가입률이 각각 1.8%와 0.4%로 집계되며, 또한 동년 경활부가조사의 분류에 따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은 2.8%(26.7만명)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중소사업장 및 비정규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미조직되어 있는 가운데, 기업별 노조운동 관성이 그동안 대기업 조직부문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미조직부문 간의 고용구조 분절성을 심화시켜온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어 왔다(이병훈 2004a). 게다가 기업별 조직체계는 지난 1990년대 초 이래 지속되어온 노조 조직률의 하락 추세를 반전시키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행의 종단적 조직체계에서는 노동시장 분절성이 고스란히 노사관계의 양극화와 노동운동의 편중구조로 투영될 수밖에 없어,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기존 조합원들의 이익보호에 매달리게 되는 폐쇄적인 실천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중소사업장과 비정규직의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신규 조직화활동에 적극 나설 수 없는 구조적 제약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병훈·권혜원 2007). 이렇듯 우리사회에 노동시장의 분절구조가 지난 10년 동안 심화되면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비정규직 간에 삶의 질의 격차가 더욱 확대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병훈·김유선 2003). 

한편, 노동시장 양극화에 내재하는 또 다른 문제로서 분절된 1~2차 부문 간에 직업이동의 기회가 매우 제한되는 폐쇄적인 분단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재량·김태기(2000)와 한준·장지연(2000) 그리고 류기철(2001) 등과 같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직업이동성을 분석한 여러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비정규 일자리가 정규직 일자리로 이행하는 징검다리(stepping stone)로 기능하기보다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trap)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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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이중적인 고용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 노동자는 물론, 1차 부문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도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것으로 최근 연구를 통해 지적되고 있다(김유선 2005; 정이환 2006, 방하남 외 2007). [그림6]에서 예시하듯이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OECD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짧은 근속기간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으로 국한할 경우에도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저히 짧은 근속기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경직성’의 문제를 거듭 제기해온 사용자단체와 일부 언론의 주장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이들 부문의 노동자들조차 심각한 고용불안정을 경험하는 반면, 사용자들은 상당한 고용유연성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노조가 현장권력을 유지하는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조사업장들에서는 외주/분사화-생산합리화-비정규직 대체-해외공장이전 등과 같은 사용자 주도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에 의해 조합원들의 고용이 상시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노동양극화의 배경원인에 대해서는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 세계화?개방경제체제?정보화 등의 거대구조변동(mega trends), 기업·금융 및 정부부문의 구조조정과 활동방식 변화, 기업별 노동조합의 조직적 한계와 경직된 노동시장관행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양극화 문제가 1990년대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드러나기 시작해 급기야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 본격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세계화와 경제위기의 배경 하에서 우리사회에 이식·주입된 ‘신자유주의 경제개혁논리’가 이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담론은 시장왜곡의 독점구조, 과도한 단기 효율성 추구의 사회적 파급효과, 그리고 경쟁 열패자의 양산과 승자독식 등과 같이 수반되는 문제들을 애써 무시한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양극화와 같은 ‘사회정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이병훈 2007) 

또한, 세계화라는 환경여건 속에서 노동양극화를 촉발시켜온 직접적인 주범으로, ‘새로운 기업활동 방식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1990년대에 점진적으로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개방경제체제가 전면적으로 확립되는 가운데, 대기업들의 경영방식이 초단기적 수익관리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이는 외환위기 직전까지 부채 의존적인 투자확대 전략의 값비싼 실패경험, 그리고 주식시장을 매개로 한 해외자본의 영향력 행사 등으로 인해 우리 대기업들이 단기적 수익구조 개선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식 경영체제’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배규식 2007). 경제위기 상황을 활용하여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정규인력의 대규모 감축과 비정규직 노동의 대체 활용 및 사업구조의 외주화 등을 통해 상당한 인건비 절감을 도모하는 한편, 자신의 시장지배력을 내세워 중소협력업체들을 수직계열화함과 동시에 ‘수탈’적인 하도급 계약조건을 강요했다. 

이렇듯 단기수익 관리를 최우선시하는 경영방식이 대기업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각 산업 정상에 위치하는 원청 대기업들은 엄청난 수익실적을 거두며 국내외 투자가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후한 주주배당금을 안겨주는 반면, 종속적인 지위에 놓인 하청중소기업들은 빈사상태에 내몰리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원청 대기업들이 오로지 자신의 수익성 증대를 위해 하청 중소기업들을 압박하는 수익독식기제(squeeze-up mechanism)가 살벌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내부자(insider)와 외부자(outsider) 간의 고용분절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물적 토대가 형성되고 있다 하겠다.

III. 산별노조운동 평가

노동양극화의 추세에 맞서 우리 노동조합들은 지난 10여년 기업별 조직체계로부터 산별조직으로 재편하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했고, 실제 괄목할 만한 발전 궤적을 이뤄왔다. 1990년대 중반에 과기노조 등 소산별 노조의 탄생을 통해 산별 조직전환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으며, 1998년 2월에 보건의료산업노조의 출범으로 명실공이 산별노조시대가 개막되었고, 2000년 3월 금융산업노조, 2001년 2월 금속산업노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기할 점으로 민주노총이 [그림7]에서 예시하듯이 2003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2007년까지 8개 대산별 노조조직으로 통합·전환하는 사업계획을 천명?결의했으며, 그 계획에 따라 산별노조의 조직전환이 급속하게 진전되어 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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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6년에는 현대차노조?기아차노조 등을 비롯하는 금속연맹 산하 대공장노조 다수가 기존의 금속노조에 합류하는 조합원투표의 결의를 이루어 금속 대산별노조를 실질적으로 완성시켰으며, 같은 해 말에 공공연맹과 운수산업 노조조직들이 대통합을 이루어 공공서비스 산별노조와 운수산별노조로의 조직 재편을 부분적이나마 성사시켰다. 그 결과 민주노총 산하의 산별노조에 속한 조합원의 비중은 2006년 말 현재 전체의 76.7%(약 59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민주노총 2007). 2003년 당시 다소 무모하다고 평가되던 산별 전환 계획이 이처럼 대체로 그 일정대로 성사된 것이다. 이는 당면한 안팎의 위기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 및 교섭체계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인식아래 민주노총 지도부와 활동가들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집중적으로 경주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노총의 경우에도 조직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산별 노조 건설을 공식적인 정책사업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그러나 금융산업노조(2000년), 택시산업노조(2004년) 외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지 못하여 산별전환에 있어 상대적으로 지체되는 양상이다. 금속?화학 등의 제조업부문 연맹들이 ‘제조연대회의’를 통해서 대산별 통합조직을 도모했으나 내부 이견으로 별 진척을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금속 등의 일부 연맹조직에서 소속 단사노조들에 의해 밑으로부터 산별화의 전환요구가 자생적으로 형성?전개되면서 제한적이나마 산별조직 전환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 보건의료노조

지난 수년 동안 산별시대를 선도해온 대표적인 산별노조라 할 수 있는 보건의료노조·금속노조·금융노조를 중심으로, 그 발전 궤적과 활동성과를 간략히 점검해보기로 한다. 우선, 현재 본조 산하에 12개 지역본부(1개 본부 준비 중 포함), 139개 지부의 4만명 넘는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2000년에 산별노조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하여 산별교섭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으며, 2004년의 14일간의 총파업 압박을 통해 마침내 산별합의서를 체결하여 산별교섭시대를 개막했다(이주호 2007). 2006년에는 산별 5대 협약의 기본틀을 요구?관철시켰을 뿐 아니라, 사용자단체 구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7년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와 체결한 산별중앙협약은 5개 협약으로 구성되는데, 구체적으로 1장 산별기본협약(8개항)을 비롯하여 의료공공성의 강화를 구현한 2장의 보건의료협약(8개항), 비정규직의 고용 질 개선을 위한 3장의 고용협약(3개항), 사립대병원?민간중소병원?국립대병원 등 특성별 임금인상기준 및 산별최저임금을 제시하는 4장의 임금협약(3개항), 그리고 근로시간과 근무형태 및 휴가?휴직 등에 관한 5장의 노동과정협약(9개항)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더하여 중앙협약에서 합의된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기구로서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 <비정규직대책노사특별위원회>, <의료노사정특별위원회>의 설치?운영에 대한 부속합의가 이루지기도 했다. 또한 2007년 산별협약에서는 정규직 조합원의 임금인상분 일부(1.3~1.5%)를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철폐를 위한 비용으로 할애하여 노동양극화 해소에 실제적으로 기여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보건의료산업의 공공성 강화와 산업수준의 고용안정?직업훈련 및 임금체계에 관한 정책개발의 추진 기구를 설치하여 향후 초기업적 노사공동사업의 추진기반을 마련했다는 점 역시 주목된다. 이처럼 산별 5대 협약의 체계적인 틀을 확보한 보건의료노조가 [표5]에서 예시하듯 향후 중장기(2008~2010년) 조직발전과 산별교섭 강화의 전략적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하며, 산별노동체제의 완성을 지향하는 목적의식적인 사업작풍을 모범적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 역시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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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금속노조는 지난 2001년 2월 금속산업연맹 소속 108개 노조(조합원 30,795명)의 산별 조직전환으로 출범했다. 이후 2006년 대공장노조들이 대거 합류함에 따라 현재 216개 지회의 14.6만명에 달하는 대산별 노조로 거듭나게 되었다. 금속노조는 14개 지역지부를 근간으로 하는 조직체계에 5개 기업지부(현대차·기아차?대우차?쌍용차?만도)를 3년 한시 인정하고 있으며, 업종별로는 자동차부문이 전체 조합원의 78.3%(11만 5천명)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 지부집단교섭을 통해 통일적인 기본협약을 확보한 금속노조는 2003년부터 중앙교섭을 성사시켜 주40시간 근무제·비정규직 보호·근골격계 대책(2003년), 산업최저임금·손배가압류 금지·구조조정 노사합의 및 산업공동화대책(2004년), 비정규직 조합활동 보장 및 불법파견/용역 금지(2005년), 신기계도입/공장이전 시 노사합의·사내하청 처우개선(2006년) 등을 합의했다. 

특히, 2006년에는 사용자단체로 설립된 금속사용자협의회와 첫 중앙교섭을 진행했으며, 2007년에는 이전 5년 동안의 합의내용을 기본협약?중앙협약 및 부칙으로 구성된 산별협약으로 종합·체결했다. 아울러 2007년 중앙교섭에 참가치 않은 현대차·기아차 등의 대기업 사용자들로부터 2008년의 교섭참가를 위해 교섭방식, 안건, 절차 등에 관한 합의를 마련하는 추진기구로서 2007년 10월 중 <노사산별준비위원회>를 설치·운영키로 하는 확약서를 받았다. 그 기구의 성과에 따라 2008년에는 금속노조 중앙교섭이 소속 대기업들을 아우르는 전연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속노조는 중앙-지부-지회의 3층 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7년의 중앙교섭에 이르기까지 산하조직 대상의 임금교섭이 지부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보건의료노조 및 금융노조와 대비된다. 지부 중심의 임금교섭이 전개되는 것은 금속노조 산하 조직 간의 임금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보다 중요하게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김유선 등 2007). 그럼에도 금속노조가 산업 내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산별 최저임금과 비정규 보호 및 사내하청 처우개선 등을, 그리고 산업 고용안정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사공동위원회의 설치 등을 중앙협약에 포함시킨 것은 특기할 만하다. 

● 금융노조

2000년 3월에 한국노총 산하 조직으로서 가장 앞서 산별체제 전환을 이룬 금융노조는 현재 37개 지부 8만여명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다. 본조와 지부의 이원적 조직체계를 갖고 있는 금융노조는 2000년부터 산별교섭을 진행하여 현재 단체협약?고용안정협약?회사발전협의회협약?별도합의서 및 노사공동선언문 등으로 구성된 산별협약을 체결했다. 산별협약의 주요 내용으로는 2002년 노동법 개정에 앞선 주5일근무제 도입, 2003년 직장보육시설 설치 및 양성평등 관련 협약의 진전, 2004년 비정규직 처우개선, 2005년 금융기관의 사회공헌조항 산입, 2006년 교육훈련-전직훈련체계 구축, 그리고 2007년 (임금피크제 도입의 경우) 정년 60세 연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금융노조는 2002년부터 임금협약을 체결하여 산하지부에 대한 일정한 인상률±α의 단일 기준을 제시해오고 있는데, 실제 지부수준 보충교섭에서 그 ±α 인상분은 적잖은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권현지 2007). 2003년부터 은행연합회가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에서 실질적인 사용자단체로 기능해오고 있으며, 2007년 교섭에서 공식적인 사용자단체의 설립·운영에 대한 노사합의가 마련되기도 했으나 막판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둘러싼 노조내부의 논란으로 인해 유보되었다. 금융노조는 2004~2006년의 부속합의에서 비정규직의 임금인상률을 정규직의 2배 또는 2.5배로 합의하여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완화하도록 하는 한편, 2006년 금융산업 차원의 전직지원 및 직무능력개발센터 그리고 인적자원개발기금 조성 등에 관한 노사협의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기존 기업별 이해구조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산별노조운동의 선두주자로서 자리매김되는 3개 산별노조는 지난 수년 동안 기존 기업별 교섭을 대신하여 산업별 교섭체제의 확립을 위한 토대로서 사용자단체 구성, 중앙협약 체결, 산별기금 형성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노동양극화의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이들 노조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 그리고 산별최저임금 등에 대한 협약 체결을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 완화에 기여하는 한편, 산별고용안정체제 구축을 모색하는 노사협의체를 구성토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와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들 노조가 선도하는 산별노조운동은 적잖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우선, 신규 산별노조들이 기존 기업별 노조의 조직통합방식을 통해 탄생된 것이어서 아직껏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로 확대되지 못했다. 때문에 해당 산업부문에서의 조직적 포괄성이 매우 제한적이다(이주희 2004). 대표적인 3개 산별노조의 경우 해당 산업의 조직률이 10~20% 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조직사업장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조직화가 고작 보건의료노조 1,094명, 금속노조 3,500명, 금융노조 2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산별노조의 교섭 성과 역시 소속 지부/분회 중심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적용될 뿐 해당 산업?업종부문의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일반적 협약 구속력을 확보치 못함으로써 여전히 기업적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민주노총 2007). 그리고 산별노조체제의 구축에도 불구하고 기업별 이해구조와 기존 활동관성이 완강하게 작용하여 산업차원의 계급적 연대성을 확보하는 데 적잖은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임영일 2007). 구체적인 예로 보건의료노조 산별표준협약 체결에 반발한 일부 지부의 조직탈퇴, 금속노조 대공장지부/지회의 산별교섭 불참, 그리고 금융노조의 산별교섭 진행에 있어 일부 지부의 독자행동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일부 산별노조, 특히 금융노조의 경우 재정과 인력의 배치에 있어 기업지부/지회의 편중이 여전하여, 산별노조체제의 중앙집권적 사업운영이 제한되고 있기도 하다.

산별교섭의 구조와 절차를 둘러싼 노사 간 상당한 입장차이가 존재하여 노조의 의도대로 산업횡단적 교섭체계가 안착되기에는 적잖은 진통이 따르고 있다. 이를테면, 교섭수준의 구획과 위계구조, 교섭단위, 교섭대표 구성 및 실무교섭 활용여부, 쟁의행위의 승인절차 등에 대한 노조의 방침이 불분명하거나 일방적이어서 산별교섭에 대한 사용자단체와 특히 대기업 사용자들의 참여를 효과적으로 유인?강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체결된 협약의 이행여부를 감시하고 사용자의 불이행을 규율?시정할 수 있는 규제장치가 마련되지 못해 산별 협약의 실효성이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노동양극화에 맞서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산별노조운동이 목적의식적으로 건설?진전되어, 일부 노조를 중심으로 초기업적인 중앙교섭의 틀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은 괄목한 만한 성과로서 높게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산업수준의 계급적 연대를 구현하기에는 조직보호와 단체협약의 적용이 기존 기업별 조직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별교섭의 구조와 절차 그리고 협약이행 강제장치 등이 안정적으로 확보?운영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IV. 맺음말: 산별노조운동의 향후 과제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노동시장의 양극화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그리고 노동운동 연대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별 조직틀을 허물고 산업차원의 계급적 연대를 추구하려는 조직재편의 움직임이 무서운 기세로 확산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산별노조운동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기는 했지만, 엄중한 노동양극화의 현실 장벽을 고려할 때 그 운동적 역량과 기반은 매우 일천하고 취약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산별노조운동의 제2기 진군을 실현하기 위한 몇 가지의 실천적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산별노조운동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상(goal image)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현재 산별노조운동은 그 조직형식의 변화를 성취했을 뿐이다. 아직껏 조합원 대중의 이해구조와 조합간부들의 활동관성에 있어서는 기존 기업별 운동논리가 오랜 역사적 경로/전통에 의존하여 완고하게 작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산별노조운동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노동시장중심의 고용체제를 대체하는 ‘산업횡단적 고용체제’의 이념태(ideal image)와, 그 체제 전환의 타당성을 분명하고도 설득력 있게 마련·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산업횡단적 고용체제’란 노동자의 취업기반이 기업/사업장에 의존·종속되기보다는 산업 차원으로 확대하여 노조 주도로 일자리 이동을 원활하게 보장하는 취업지원이 제공되고 실업 시 안정적인 생계보장을 실현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소속 산별 수준의 고용생활안정성을 구현하는 ‘사회적 노동시장체제’로 정의해볼 수 있다. 산업횡단적 고용체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구현하는 산업차원의 ‘직무숙련급체계’에 기반한다. 또한 산업차원의 노동력수급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사공동으로 직업훈련 및 직무등급(능력)평정·취업알선/상담·실업자생계지원을 필요로 하며, 더 나아가 퇴직연금 관리, 노동자 가계지원 금융크레딧, 노동자 상담지원, 그리고 여가문화시설 운영 등의 다양한 노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같은 산별 고용체제의 확립·운영을 위해서는 산업차원의 비대칭적 기업(원·하청)관계에서 비롯되는 불균등 수익배분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즉 산별 단체교섭 또는 노사협의를 통해 수익비례 원칙에 따라 소요 기금을 일정하게 출연해야 한다. 또한 노사 공동관리의 고용보험기금 및 정부로부터의 정책 지원을 통해 추가 사업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 산업횡단적 고용체제는 기업들에게 양질의 숙련노동력 제공과 탄력적인 내부 인력조절이라는 이점을 제공할 것이고,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취업능력 제고 및 적극적 취업지원, 생활안정과 노동복지 향상 등의 혜택을 누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운동에 대해서도 이러한 산별 고용체제는 노동양극화와 복지 격차 등과 같은 산업 내 계급 분절선을 완화·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유럽의 겐트체제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시장에 대한 노조의 개입·규제력을 강화하여 조직기반을 확충하는 데에 크게 도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운동의 추구 목표(산업횡단적 또는 연대주의적 고용체제의 구축)를 성취하기 위한 ‘전략적 로드맵’을 수립하고 이를 목적의식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민주노총 산별노조 전환계획, 보건의료노조 산별노조 발전경로 등이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교섭 진전에 일정하게 기여했던 것을 모범사례로 삼아야 한다. 비록 2기 산별노조운동이 1기의 조직건설에 비해 훨씬 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적극적 실천에 임하면 안 된다는 법이 없을 것이다. 

한편, 1기 조직건설은 주체적 결단과 대중적 호응이 결정적인 실현조건이었다면, 2기 산업횡단적 고용체제 이행은 기업과 정부와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동반하는 노동시장의 개혁과정이며, 이를 노조 주도로 이끌어가려는 야심찬 기획이라는 점을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노동시장체제의 핵심 구성요소라 할 수 있는 임금-고용-노동시간-산업 또는 기업경쟁력은 서로 민감하게 연동되어 있다. 때문에 산업횡단적 고용체제의 추진과정에서 이들 요소에 대한 노조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자본의 협조?이탈?저항 등 다양한 대응이 나올 수 있다. 즉, 기존의 단선적인 전략접근은 의도치 않은 연쇄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들 요소의 가능한 배합 시나리오와 그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실천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요망된다 하겠다.

셋째, 산업횡단적 고용(또는 연대적 노동시장)체제로의 이행을 도모함에 있어, 단기적으로는 교섭틀 안정화를 위한 ‘유연한 전략접근’과 조직운영의 ‘집권적 민주화’가 요망된다. 우리나라 산별노조운동은 기업별 교섭모형으로부터 산별교섭으로 이행하려 한다는 점에서 최근 교섭체제 분권화경향을 보이고 있는 서유럽 산별노조들과는 매우 상이한 변화궤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오랜 기업별 교섭구조의 관성을 감안하여 파편화된 교섭지형로부터 고용조건의 통일성을 확보하고자 할 때, 최근 서구의 ‘조율된 분권화(coordinated decentralization)’ 교섭모델은 우리 산별노조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박태주 2007). 

이럴 경우 그 조율 대상을 단체교섭과 정책협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산별 교섭틀에 사용자 참가 유인과 중앙교섭 중심의 조율 능력 제고를 위해, 교섭구조의 중복이나 협약효력 위계 간 혼선을 예방·정비하여 불필요한 교섭비용의 발생을 자제토록 해야 한다. 또한 업종 또는 지역 교섭단위 설정에 있어서 교조적인 원칙의 강조보다는 직무의 상호연관성과 고용조건 유사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실태조사에 입각하여 전략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산별교섭의 시장규율능력 및 산별노조의 조직내부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임금협약을 비롯한 핵심 근로조건의 결정을 단계적으로 중앙교섭 수준으로 상향배치하는 것이 요망된다(노진귀 2005).

산별교섭의 부가 영역으로서 (보건의료노조에 의해 모범적으로 시도되듯이) 해당 산업 관련 정책·제도의 조율을 위한 노사 또는 노사정 간 정책협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겠다. 또한, 산별노조 협약효력의 제한적 적용 현황을 고려할 때, 효력확장 대상지역의 전략적 선정, 협약효력 확장의 제도 개선을 위한 법개정안의 노사합의·제출, 그리고 원청기업의 공급자망(supply chains)에 대한 고용조건 개선의 책임 부과 등 다양한 전략적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산별노조는 자신의 취약한 조직기반과 동원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조율을 강화하여, 대기업들의 수익 독식행태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제하는 전술 개발을 검토할 만하다. 노조의 동원정치에 있어서는, 기업활동의 네트워크화에 착안하여 무리한 자원동원이 요구되는 전면파업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산업 구조의 취약고리를 제압?공략하는 유연한 파업전술의 조율을 기획하는 것도 제안해볼 수 있다.

내부민주주의와 조직효과성 간의 모순적인 관계(조효래 2004)가 지적되긴 하나, 당면한 노동양극화와 분절적인 기업별 관행을 극복?해소하면서 산업횡단적인 노조체제와 노동시장구조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추진동력의 확보·작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계급연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재정과 인력의 본조 집중이 요망된다. 다만 현장 조합원과의 괴리 또는 본조 조직의 관료화를 제어하기 위해 노조의 핵심의제 및 현안에 대한 조합원 직접투표제의 실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본조와 현장과의 쌍방적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현장대의원의 지위와 역할을 공식적으로 부여하여 활동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협약위반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