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기가 아니라 품격 있는 투쟁을 위해서

노동사회

춤추기가 아니라 품격 있는 투쟁을 위해서

편집국 0 4,058 2013.05.29 08:51

 

book.jpg“춤추실래요?(Shall we dance?)” 이 책이 결론으로 던지는 제안이다. 누가 누구에게? 갈등하는 한국 노동조합운동과 사용자들에게, 한때 노동부에서 공무원생활을 했던 저자(단국대 경영학과 신은종 교수)가. 생산이 이뤄지고 사회가 작동하려면 노동과 경영이 맞물려 운동해야 하는데, 그 운동이 ‘춤’처럼 아름다우면 좋지 않겠냐는 거다. 둘 이상이 춤을 아름답게 추기 위해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저자가 자본주의 노사관계 시스템의 200여년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노와 사가 진정한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균형 있는 규칙’의 방향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대강이라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생산성동맹과 비대칭 균형의 노사관계

그렇게 지금 노사관계에 필요한 그 무엇을 역사에 대한 해석 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저자는 “주관의 오류를 무릅쓰고” 지난 200년의 노사관계를 몇 단계로 나누고 각각의 특징을 드러내는 이름을 붙인다. 저자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시스템 부재 속에서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며 직접적인 폭력으로 저항했던 19세기 초 경쟁자본주의 시대는 ‘저항의 노사관계’였고, 1870년대 유럽공항을 계기로 형성된 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거대한 산업별노조를 조직하여 노동조건과 임금을 개선하고 정치투쟁에 나서는 등 ‘투쟁의 노사관계’를 열어갔다. 

또한 세계대전에다가 세계공황까지 덮쳤던 20세기 초 전간기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에는 혼돈 속에서 ‘타협의 노사관계’가 형성됐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포드주의 대량시스템 하에서 활짝 열린 소위 자본주의 황금기에는 ‘교섭주의 노사관계’가 발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석유파동으로 비롯된 불황 속 고물가(Stagflation)가 지속되면서, 높은 임금과 사회복지, 사회적 합의 등을 특징으로 했던 교섭주의 노사관계는 빠르게 해체됐고, 거기에다가 1980년대 들어 세계화 바람 속에서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유연성의 자본주의’에서는 ‘갈등의 노사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에 조응하는 새로운 노사관계가 형성되지 못해 발생한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상과 같은 과거의 해석을 거쳐, 저자는 현재의 노사관계를 규정하고 노와 사 양 주체들이 어떤 부분에 시야를 두어야 할지를 조언한다. 저자가 보기에 교섭주의 노사관계가 해체된 후 자리 잡게 될 노사관계의 틀은 ‘비대칭 균형의 노사관계’다. 이미 전면화된 세계화와 유연성은 압도적으로 노동에게 불리한 시장 질서다. 그러나 이를 거부할 수 는 없다. 그렇다고 그 질서가 노동(조합)운동을 괴멸해 체제유지에 필요한 최소 요건마저 무너뜨리도록 할 수도 없으니, 노사 힘 격차의 압도적인 ‘비대칭’ 상황에서 어쨌든 무게중심을 잡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저자는 경영에게는 노동자와의 건강한 파트너십과 사회적 책임을, 노동조합에게는 구조조정이나 인사이동 개입을 넘어서는 생산적 경영참여를 요구한다. 즉, 노와 사가 ‘생산성 동맹’을 이루라는 소리다. 

노동의 눈을 통한 경영, 경영의 눈을 통한 노동

좌파 학자들의 분석까지 포함해 역사를 에둘러 왔지만, 하는 소리가 비교적 온건한 경영학자들이 노동조합을 향해 하는 일반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세계화와 유연성 강화는 어쩔 수 없는 대세고, 그 거센 경쟁 속에서 버텨내기 위해서는 노동조합도 경영자들과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춤 좀 춥시다”라며 이 책이 내미는 정중한 손길은, 노동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쩌면 ‘상황이 이런데 안 추면 어쩔 건데’라는 가시를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연대성과 자주성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노동운동에게 세계화와 유연성이 가져오고 있는 양극화를 “생산성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으라는 것은 근본을 뒤집으라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아무리 노동과 경영 사이에서 상당히 균형 있게 서술하더라도, 기본적인 입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류의 책이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줄 수 있는 쓸모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경영이 노동에 대해서 갖는 관심의 초점을 그들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알아야 면장도 하고 싸움도 한다. 사용자의 인식을 노동의 프리즘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의 틀을 통해서도 알고 있는 것은, ‘품격 있는 투쟁’을 위해서라도 노조활동가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그런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을 원하는 이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신은종 지음 생능출판사 냄 1만2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