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에 멈추어 선 민주노동당 경선 풍경

노동사회

안개 속에 멈추어 선 민주노동당 경선 풍경

편집국 0 3,361 2013.05.29 08:51

지난 8개월간 내달려온 민주노동당의 경선 레이스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조만간에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대표할 ‘선수’가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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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1일 있었던 인천지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합동연설회 모습. ▶ 노회찬의원 의원실 ]

유동적 판세, 자주계열 결속력 및 노동계 표심이 변수

현재의 판세는 노회찬, 권영길 후보의 선두권 각축과 심상정 후보의 약진으로 요약된다. 7월 말 심상정, 노회찬 선본이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대체로 이와 같았다. 세 후보의 당내 지지율은 ARS 방식으로 실시된 심 후보의 조사에서 노회찬 35.5%, 권영길 31.9%, 심상정 22.5% 순서를 보였다. 노 후보의 조사에서도 노회찬 38% 수준, 권영길 36% 수준, 심상정 16~17% 수준으로 심 후보 측 조사치와 동일한 순서를 나타냈다. 다만 여기서는 심 후보의 지지율이 좀 더 낮게 나왔다. 권 후보 측은 8월 초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나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객관적인 자료로 외부에 제시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현재의 판세를 어렴풋이 가리키는 것일 뿐,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점치기 힘들다. 심 후보의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은 무려 40%가 넘었다. 다만 아직 절대 강세를 띠는 후보가 없다는 점에서 1차 투표로 당선자가 가려지기 힘들 것이라는 데만 대체적으로 분석이 일치한다.  

앞으로 표심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권 후보 지지를 선언한 당내 자주계열의 표 결속력이다. 앞서 든 조사에서 권 후보가 노 후보에 근소하게 뒤지는 것으로 나온 것을 놓고, 자주계열의 결집이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이번 경선의 경우 표 결집 강도가 당직선거 때와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권 후보의 현재 지지율에 반영되는 수준보다는 결속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른 변수는 노동계의 표심이다. 투표일이 다가오고 본격적인 조직 선거가 시작되면 민주노총 내에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는 권 후보와 심 후보에게 유리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러나 일반 조합원을 중심으로 하는 ‘바닥’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는 게 노 선본의 주장이다.  
      
심 “비전과 정책”, 노 “국민과의 소통”, 권 “진보의 통합”

이번 경선에서 세 후보는 각자 다른 강조점을 내세웠다. 심 후보는 정책과 비전을 강조했다. 일찌감치 ‘세 박자 경제론’을 내놓고 정책선거를 주도했다. 보수와는 다른 근본적 대안을 제시해야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활동을 통해 정책에 강하다는 정평을 얻은 심 후보의 특징과도 맞물린다. 노 후보는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또 정책의 정치화를 역설했다. 이것 역시 당의 탁월한 통역사 역을 해온 노 후보 개인의 전사와 닿아 있다. 권 후보는 진보의 통합과 단결이라는 가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을 만들고 이끌어온 권 후보 자신의 리더십에 부합하는 가치다.  

물론 세 후보는 대안, 소통, 단결을 모두 중시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지금 경시되어도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중 무엇을 최우선적인 것으로 놓느냐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구체적인 현실로 들어가면 이들 가치가 미묘하게 충돌하는 지점이 나타난다. 단적으로 권 후보의 ‘100만 민중대회’에 대한 후보들의 시각차가 그렇다. 

권 후보는 ‘100만 민중대회’를 통해 진보적 역량을 총결집함으로써 내부적으로는 자신감을 고취하고, 외부적으로는 힘을 과시한다는 구상인 듯하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을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비전과 정책을 선보여야 한다.”면서 “집회의 상을 그려놓고, 모입시다, 바꿉시다, 하는 것은 낡은 운동 방식이다. 우리끼리 노는 정치는 진보정치도 아니고 새 시대가 원하는 정치도 아니다.”고 비판한다. 심 후보의 경우 ‘100만 민중대회’의 기본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떤 대안적 내용을 갖고 대회를 준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덧붙이는 것 같다.  

또한 세 후보는 저마다 본선경쟁력을 자신한다. 심 후보는 확실한 대안과 비전을 갖춘 자신이, 노 후보는 진보적 가치를 놓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이, 권 후보는 진보진영을 아우를 수 있는 자신이, 각자 본선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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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7일 문래동 당사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 경선후보 공동선언문 발표 및 협약식’에 참석한 세 후보가 공정경쟁, 정책대결, 투명한 선거를 약속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 레디앙 ]

‘내부토론 정책선거’에 충실한 민노당 경선

민주노동당의 경선은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한나라당 경선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먼저 공화국의 ‘시민’이 될 자격과 소양을 갖췄는지에 대한 후보 상호 간의 불신과, 그 불신의 근거 있음을 나날이 보여준 한나라당의과는 달리,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정책선거’에 충실한 양상을 띠었다. 

지난 8월9일까지 8차에 걸쳐 후보 정책토론회를 치르면서 통일방안, 동아시아 호혜공동체, 택지국유화, 100만 민중대회 등에 대한 입장 차가 드러났고, 택지국유화와 같은 일부 쟁점에서는 후속 논의를 통해 후보 상호 간의 입장이 정교해지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물론 차이가 실제보다 과장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한나라당 경선과의 또 다른 차이는 언론이 보여준 태도다. 한나라당 경선은 언론의 관심을 독점했고, 민주노동당의 경선은 언론의 철저한 냉대를 받았다. 민주노동당 대선준비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신문과 방송을 합친 보도횟수에서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의 4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중의 무관심을 전적으로 언론의 불공정 탓으로만 돌리는 건 적절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미디어의 냉대가 민주노동당에게 일종의 상수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별도의 기획이 필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후보들이 대중들과 접점을 형성하면서 경쟁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주일에 2회 꼴로 잡힌 정책토론에 파묻혀서 정작 선거운동 기간에 평시 의정활동을 할 때보다도 대중과의 접촉면이 좁아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게다가 전국에, 혹은 지역에 생중계된 토론의 쟁점들 -이를테면 북한 혁명열사릉 참배,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통일방안의 차이 등- 은 평균적인 국민이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내부토론’을 공개적으로 한 셈이 된 것이다. 물론 내부토론이 무익한 것은 아니다. 경선에서 내부토론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정당의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 적정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그리고 설혹 그 거리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해도 외부와 내부에 대한 복합적인 고려 없이 설계된 토론 방식에 대해서는 더욱 더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후보 선출 후 한 달, 낙관도 비관도 뚫고 달려야

이제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약 3개월이다. 진보 진영으로서는 낙관도 비관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변수는 많다. 범여권의 지리멸렬은 기회다. 역으로 범여권이 단일화에 성공해 한나라당과 양자구도를 형성할 경우 민주노동당은 비판적 지지의 압력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2차 남북정상회담은 정치적 셈으로만 따지면 민주노동당에 유리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 대북정책의 주도권은 노무현 대통령과 범여권이 쥐고 있고 정상회담의 수혜 역시 그들에게 집중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현재의 추세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전제에 입각한 전망이다. 곧 민주노동당이 하기에 따라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라는 맥락에서 대북정책의 이슈를 급진화, 여론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대안을 갖춘 진정한 ‘평화세력’의 본때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느냐에 따라 상황의 유불리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은 범여권의 지리멸렬로 가변성이 높아진 이번 대선 정국의 특징이다. 평화 이슈도 그렇고 심지어 ‘선거연합’ 문제도 그렇다. 

8월20일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됐다. 그리고 늦어도 9월15일에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확정된다. 민주신당은 10월14일경 후보가 확정된다. 약 한 달 가까이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노동당 후보만 있게 된다. 범여권이 비어 있는 이 한 달을 활용해서 한나라당의 대척점에 서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일차적 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