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조직화전략 수립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노동사회

노동조합의 조직화전략 수립을 위한 몇 가지 제언

편집국 0 4,378 2013.05.29 08:45

1990년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특히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은 그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크게 위축됐다. 그리고 이로 인한 노동양극화 등의 사회적 문제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수년 사이 교원 및 공무원에 대한 노동권이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되면서, 노동조합은 이들 신생부문의 조직화를 통해 조직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럼에도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하락세는 반전되지 않았고, 2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조직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 조직기반의 위기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직위기의 고착화는 어디서부터 초래됐을까? 넓게는 세계화와 탈산업화 등의 사회 환경적 구조변동에서부터, 좁게는 여성화·고학력화·고령화·군소조직화 등의 노동인구 구조의 변화, 그리고 기업별 노조조직체계와 사용자-정부의 반노동적 태도까지, 다양한 원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조직률 하락에 직면하여 노동조합운동이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껏 이렇다 할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양대 노총은 나름대로 조직화에 역점을 두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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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 중 하나로 조직활동가학교를 운영한 바 있다. 2003년 제1차 조직활동가학교 강의 모습. ▶ 노동과세계 ]

노조운동 조직기반의 위기, 그 해법을 찾기 위하여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기업별 조직체계의 산별체제로의 전환에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2006년 말까지 조합원의 75.6%가 산별노조에 편제하도록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대표적인 미조직 노동으로서 비정규직에 대한 전략조직화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총연맹 차원의 정책결의를 통해 조직화사업기금 조성과 조직활동가학교 운영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특히 비정규직 및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화는 양대 노총 주도보다는 대부분 자발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노조운동의 전략적 조직화사업이 전반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 노동조합운동이 우리보다 앞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전략적인 조직화활동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국가들의 노동조합은 분권적 교섭구조, 노동의 미약한 정치세력화, 작업장의 노동자 경영참여제도 미비 등 우리와 유사한 노사관계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과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조직화사업을 통해 거둔 성과 역시 제한적이지만, 노조도시(Union City) 사업 등 총연맹 차원의 적극적인 전략사업이나, 노조 또는 지역 차원에서 조직기반을 확충하는 데 성공한 몇 가지 사업 사례들은 우리에게 유익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를 테면, △노동시장 유동성 증대에 대응하는 지역·업종 노조주의적 접근, △지역 시민사회와의 연대 강화, △생활임금 캠페인 등 미조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활동의 전개 등을 손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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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하이오주의 노조도시(Union City) 행정부 건물과 직원들. 공공안전부, 건설토지부, 정비부, 공원부 등 주민들 실생활에 필요한 영역들을 파고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www.union.oh.us ]

또한 이들 국가에서 노조 지도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조직화사업의 추진주체를 공식화하고 전문화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의 내부조직화(조직 확장)와 미조직 노동에 대한 외부조직화(조직 외연확대)를 체계적으로 도모했다는 점, 지역사회와의 연대와 사회운동적인 집합적 조직화캠페인을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 역시 우리 노동조합운동이 깊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회적 지지 받는 조직화모델로

이와 같은 해외 노조들의 최근 사례를 참조하여, 우리 노조운동의 조직화전략 정책과제에 대해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 노조운동의 활동기조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체계에 의거하여 공공연하게 조성되어온 서비스모델의 활동기조, 즉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대변에 복무하는 노조활동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한다. 그리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최우선시하는 조직화모델의 활동원칙을 총연맹 및 산하 산업별 연맹단위에서 ‘공식화’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하기 위한 활동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해나가야 한다. 

이미 우리 노동조합운동은 조직화모델 방식의 활동 전개를 위한 조직강화 사업단위를 형식적으로는 대부분 구성해 놓은 상태다. 이제 이러한 사업단위가 실질적인 실천력을 담보할 수 있도록 재정과 활동인력의 상당한 비중이 투입·배치되어야 한다. 노조 지도부의 결단과 조합원들의 동의가 요망되는 부분이다. 

또한 노조운동의 조직기반 확충을 위해서는, 이러한 직접적인 조직화사업에 더불어 노조 가입에 우호적인 사회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운동 자체적으로도 사회 공공성 및 선도적 정책대안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단체협약이 미조직노동자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사회보험 및 노동정책기구 운영에 노조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좌절된 노조수요’ 충족을 위한 다양한 통로 만들어내야 

둘째, ‘좌절된 노조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노조운동의 조직기반이 지속적으로 위축되어온 배경에는, 상당한 비중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싶어도 기업별노조체계의 관행 및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가입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했던, ‘좌절된 노조수요’ 또는 ‘잠재적 노조조직률’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극복 또는 우회하기 위해서 조합원 공급구조의 재편을 도모하는 다양한 조직화전략이 개발되고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업별노조체계의 제약 극복을 위한 산별노조 건설은 더욱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산별노조 가입에 있어서도 지금과 같이 사업장단위 또는 기업단위로 조직화하는 방식에 집착하기보다는 개별가입을 보장하는 방안, 이를 위한 구체적인 조직관리 및 사후 교섭구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역단위 조직화사업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개발될 필요가 있다. 고용구조가 다변화되고 유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시장 편제방식이 기업 또는 업종보다는 지역과 직종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조직화 논의가 시사하듯, 특히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들의 경우 지역-업종별 조직화가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취약노동계층을 조직할 때는 지역시민사회와 연대사업 및 정책적 캠페인 등을 함께 기획하고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미국노총의 ‘노조도시’ 전략에서처럼, 주요 산업의 집중지역을 대상으로 총연맹 지역본부와 관련 각 산별 지역조직들이 결합하여 입체적인 조직화 추진단위를 구성해보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할 것이다.   

한편, 우리 노동운동에게는 지역일반노조의 전망을 둘러싸고, 각각 지역단위 조직화방향과 산별노조 조직편제를 중심으로 하는 상충된 시각이 존재한다. 또한 자발적인 조직화에 기반해 성장해온 지역일반노조의 사후적 조직관리와 교섭활동 등에는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총연맹 및 산별노조가 성공적으로 조직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지역과 업종이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소위 ‘지역-업종 조직화모델’이 모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즉, 지역단위 조직화를 도모하되, 조직된 이후에 사후적인 편제방식은 산별 조직전망에 맞추어 구성하자는 것이다.

관성을 넘어 시대 변화 속도에 맞춰가는 노동조합

셋째, 노동조합운동의 타성적 관행으로 인한 조직화활동 실천이 지체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이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 및 노동인구 구성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탈산업화 진전에 따른 서비스부문 고용인구 증대와 정보화 및 지식경제화에 따른 전문직 인력의 증가에 대응하는 조직화전략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들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노조 조직화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필요하며, 조직화 과정에서도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신흥 미조직부문 노동자들의 조직화 수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즉 언제 노동조합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자극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고용관계 현황 및 잠재적 고충과 노동문제 등에 대한 실태진단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객관적인 실태파악에 기초하여 홍보·가입유인·상담 등의 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내 특수고용직 노조 사례에서도 확인되듯이, 이들의 조직화 및 사후관리를 위한 구조는 직종별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국단위 직종노조조직이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들의 반(反)노동조합적 태도를 중립화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잉 전투적인 활동기조를 탈피하여 전향적인 파트너십전략으로 노조친화적 경영태도를 유인한 서구 노동조합들의 전략적 태도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반노조 경영태도에 대해서는 노동인권을 옹호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사회적 압박여론을 효과적으로 조성하여 이를 무력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삼성, 포스코 등의 무노조경영 사업장들에서, 그리고 이미 조직된 사업장의 미조직 종업원들에게서 노동조합 건설 및 신규 가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