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자본의 비정규직화 전략과 노동조합의 대응

노동사회

유통자본의 비정규직화 전략과 노동조합의 대응

편집국 0 7,589 2013.05.2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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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우리 홈에버 식구들은 요즈음 비정규직 철폐와 해고문제로 
월드컵 상암점에서 전면 파업 중이야. 요즘 뉴스 많이 보았니?
밖에서 우리 좀 응원해주지 않을래? 많이 응원 좀 부탁해.
그리고 친구가 아는 사람들한테도 비정규 악법에 대해 설명 좀 부탁한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싸우고 있는지.
이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여기 상암점에서 숙식을 하고 있어. 
우리가 여기서 지면 모든 비정규 직원들이 정말 힘들어질꺼야.
이길 때까지 열심히 싸울거야.
친구야!
많이 보고 싶다.
싸워 이기고 나가서 만나자.
웃으면서 말이야.
그때까지 우리에게 많은 힘을 불어넣어 줄 거지?
승리를 위해 파이팅!!!

- 2007년 7월 3일 홈에버 상암점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어느 조합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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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 자본은 '대규모 계약해지에 이은 외주용역화'라는 비정규직법 대책을 선택했지만 그 희망사항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매일노동뉴스 ]

비정규직법 시행 전후 유통업 비정규직 문제

최근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법안 시행을 전후하여 주요 유통업체인 이랜드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직접고용 형태에서 파견 및 용역 등의 간접고용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애초 노동계에서 비정규직법안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했던 사항들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취지를 사용자들이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정규직법안 문제점에 대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할인점과 백화점 같은 유통업 사업장들에서는 비정규직법안 시행 이후 자본의 비정규직 해고와 외주화 같은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나라 유통업 노동자들은 해당 사업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취업하더라도 동일 노동을 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은 거의 없으며, 유통업 핵심 업무 중 하나인 계산 업무를 외주화한 사례도 없다. 반면 우리나라 유통업 비정규직은 개별 사업장 내의 노동권뿐만 아니라, 사회적 보호조차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유통업의 주요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산업구조변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파트타임, 외주화 등), △유통업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직·간접적인 차별, △유통업의 다양한 고용형태(삼각관계 등)로 인한 노동권 침해, △유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미조직화로 인한 이해대변기구 부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글은 유통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제기되고 있는 자본과 노동조합의 태도를 짚어보고 향후 노동조합의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할인점의 폭발적인 성장과 업계 재편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지난 10년간 유통업의 변화 추이를 보면 편의점(1,885→8,247)과 대형할인점(28→275), 무점포판매업(11,579→15,270)은 성장하고, 백화점(109→96), 영세소매업체(705,916→625,986)는 줄어들었다. 이러한 추세라면 현재 1,654개의 재래시장 가운데 3분의 1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3분의 2는 사라질 것이다. 한편, 유통업계는 이러한 추세로 가면 2009년 할인점은 약 470여개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유통업 중 대형마트(17.3%)의 비율은 미국(18.9%)보다는 낮으나 일본(12.5%)에 비해서는 높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백화점과 할인점의 추세를 보면, 할인점은 약 3분의1(점포 수 257개→352개, 시장규모 19.5%→25.5%)이나 증가한 것에 비해 백화점은 정체(점포 수 87개→91개, 시장 규모 17.3%→18.1%) 현상을 보이고 있다([그림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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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업은 1996년 유통시장이 전면 개방된 이후 세계 1?2위의 다국적 유통그룹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국내사업을 접고 철수하기까지 두 차례의 재편을 겪었다. 우선, 지난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하여 유통업체의 도산(27개) 등으로 인해 국내 유통업체간 1차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외국업체들이 철수한 이후 국내업체들 간의 인수합병(M&A)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내 유통업은 IMF 경제위기 이후 지방의 중소 유통업체와 중견기업들이 몰락하고 사실상 재벌그룹에서 운영하는 유통업체에 편입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이들 유통업의 대부분은 몇몇 소수 재벌에 이해 독과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006년 12월 말 현재 백화점 빅3(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시장 점유율은 77.7%이며, 할인점 빅4(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랜드 리테일의 홈에버-뉴코아-2001 아울렛)의 시장 점유율은 86.2%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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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계는 비정규직 모두를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마트의 한 점포의 모습. ▶  매일노동뉴스 ] 

과당경쟁이 비정규직 확대를 손짓해 부른다

이와 같은 유통산업의 변화는 유통업의 고용이나 노사관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유통업 종사자들의 수는 유통시장이 개방된 이후 감소(1996년 15만명→2001년 14만명) 경향을 보였으나, 2001년 이후 다소 증가(2001년 14만명→2005년 15만명)한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KOSIS). 이것은 IMF 경제위기 이후 유통업체들이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랜드 홈에버 33개 매장 중 25개 매장의 비정규직 규모를 보면 2,250명에서 2,555명으로 1년 사이에 305명이나 증가했다. 

특히 유통업은 산업구조 변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의해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업종 중 하나이며, 실제 유통업에 종사하는 상당 부분의 노동자들은 직접고용 비정규직(계약직, 파트타임) 혹은 간접고용 비정규직(파견 및 촉탁 형태) 노동자들이다. 일례로 A백화점의 경우 정규직은 약 3,000명이나 비정규직은 2,500명(직접고용 비정규직 950명, 간접고용 비정규직 1,600명)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 노동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상황이며, B할인점의 경우 정규직은 약 1,400명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1,700명(직접고용 비정규직 450명, 간접고용 비정규직 1,260명)이나 된다.

이와 같은 유통서비스 부문의 비정규직화 현상은 유통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심화와 노동조건 악화의 주된 요인 중 하나이며, 이로 인해 유통서비스 노사관계는 자연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이랜드가 까르푸 인수한 후 계약해지로 인해 노동조합과 빚고 있는 갈등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유통업은 국내 대기업과 초국적 기업의 시장진입이 확장되면서, 한정된 영역 내에서 대형유통업의 슈퍼체인사업 진출과 전자상거래 활성화, 영업시간 연장 등으로 인해 과당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은 비용절감이라는 측면에서 비정규직 채용, 성과급형 임금체계 도입, 기존 인력의 재편(사업부 외주·용역·분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및 고용안정 문제와 함께 노동조합의 미래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미약한 조직률이여, 근로조건 악화를 어찌할 것이냐

그런데 유통업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주체 중 하나인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매우 미비하다. 유통서비스 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2.41%(정규직 9.79%, 비정규직 0.88%)로 전체 노조 조직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유통서비스부문 정규직 유노조 조직률 22.5%, 비정규직 유노조 조직률 0.5%). 실제로 주요 유통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살펴보면 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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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유통업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다소 증가(2003년 1.8년→2006년 2.3년)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결과는 2006년 설문조사 대상 중 정규직이 65.7%(2003년 26.3%)를 차지한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유통서비스 부문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2년 미만(2003년 1.6년→2006년 1.7년)으로 정규직(2003년 2.4년→2006년 2.7년)에 비해 1년가량 낮다.

한편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연장근로를 제외한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다소 줄어들었으나(2003년 41.6시간→2006년 33.7시간), 연장 근로시간을 포함하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2003년 46.9시간→2006년 45.8시간)은 큰 변화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고용형태, 업체유형, 성별에 따라서 동일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또한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월 평균 휴일 수는 증가(2003년 4.6회→2006년 7.3회)했지만, 주당 평균 잔업과 같은 업무준비 및 마무리 시간 역시 다소 증가(2003년 7.6시간→2006년 7.9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평균 초과 근무 횟수가 늘어남(2003년 3.3회→2006년 3.5회)에 따라 연장 노동시간 또한 크게 증가(2003년 5.3시간→2006년 12.1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2006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의하면, 유통업에 해당되는 도소매업 취업자는 365만명이고 임금노동자는 188만명인데, 이 중에서 비정규직은 129만명(68.7%)이며 여성비정규직은 75만명(39.7%)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유통업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비정규직은 월평균 임금총액이 92만원(남성비정규직 137만원, 여성정규직 152만원, 남성정규직 228만원)으로 도소매업 평균 임금(140만원)의 70% 수준에 지나지 않는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어 있다.

유형별로 알아보는 자본의 비정규직법 대책

유통업 비정규직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 논의의 핵심사안은 거대 유통자본이 시장상황과 경영전략에 따라 인력조정이 용이한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거나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간접고용으로 전환하고 있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훨씬 적은 비용이 들고, △수요변화에 대응한 유연성 확보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리하며, △노동조합의 회피전략으로서 유용하다는 점 때문에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현재 유통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비정규직 대책은 △정규직화 유형(신세계, 롯데, 애경, 갤러리아), △직군분리 및 무기계약 전환 유형(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농협유통), △계약해지 및 외주화 유형(이랜드 홈에버 및 뉴코아, 현대백화점, 세이브존I&C)으로 구분된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 [표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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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정규직화 경로는 노조도 결정할 수 있다

이들 유형을 노사관계 성격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노조의 태도(조직력, 이념 및 운동성, 일상활동 등)와 사용자 태도(비정규직 관리전략/지불능력/기업가치 등)에 의해 구분될 수 있다. 물론 해당 업종의 노동시장 특징(고용관계, 직무성격 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 된다. 이런 기준들은 각 사업장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경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먼저 최근 이랜드 홈에버와 뉴코아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자본의 성격이나 노조의 태도가 정규직화 경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랜드 자본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계산직 외주화 방침을 내놓았다. 지난 2007년 7월 이랜드 그룹의 산하 법인 중 하나인 뉴코아는 계산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 100여명을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하고 그 밖의 220여명은 용역으로 전환했다. 또한 같은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는 전국 32개 매장에서 보안이나 시설을 담당하던 직원 약 600여명을 감원했으며, 계산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350명의 계약을 해지하고 521명을 선별하여 (가짜)직무급제로 전환했다. 

게다가 이랜드 자본 태도를 보면 노조가 홈에버 매장을 점거한지 열흘이 지나서야 노동부의 중재로 마지못해 교섭에 임했으며, 8월11일 5차 교섭이 진행된 이후 현재까지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홈에버 사측은 까르푸 시기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18개월 이상 근무자 정규직 전환) 조항조차 지키지 않았으며, 관행적으로 지켜져 왔던 ‘3개월 이후 6개월, 9개월, 12개월 재계약’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뉴코아 사측 역시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변경(3개월→1개월 등)하거나 관리자가 임의적으로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는 부당노동행위(계약기간 미 기입)를 자행했으며, 지난 8월14일과 16일에는 6개 점포를 직장폐쇄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선별적인 계약해지 및 외주화 반대(뉴코아노조), 직무급제 반대(이랜드일반노조)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10일 1차 파업을 시작으로 매장 매출제로투쟁과 두 차례(홈에버 상암점 6월30일-7월20일, 뉴코아 강남점 7월8일-20일 및 7월29일)의 점거 농성을 진행해 왔으며, 현재까지도 이랜드 자본의 반 노조적인 행태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만약, 이들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거나 조직력이 미약했다면 해당 사업장의 대부분의 일자리는 외주화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는 1년 전부터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내부 조직력을 기반으로 자본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이번 이랜드 자본에 대한 투쟁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노동운동 외곽 진영까지 폭넓게 결합하여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함께하는 성과를 남기고 있다. 이런 이랜드 자본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자본의 성격이 정규직화 경로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노조의 태도 역시 그에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착한 자본? 영악한 자본?

다음으로 자본의 경영전략과 시장상황, 그리고 업태의 성격 등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경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당 사업장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부족하여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실제로 백화점 업태의 경우 대체적으로 일정하게 (가짜)정규직화 형태나 무기계약 등으로 전환하고 있다. 물론 할인점의 경우에도 이와 동일한 경로를 밟고 있는 곳도 있지만 이들 사업장은 백화점과 동일 자본에 속한 법인이다. 이런 경로를 밟은 대표적인 자본인 롯데나 신세계의 경우, 유통업계 순위 1·2위일 뿐만 아니라 시장 점유율(롯데백화점 42.2%, 신세계 22.8%)과 자본 유보율(롯데백화점 5,075%, 신세계 2,917%)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경영상황의 공통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두 자본 모두 노동조합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곳은 아니다. 신세계의 경우 무노조 경영전략으로 유명한 삼성 자본에 뿌리를 두고 있고, 실제로 몇 년 전 이마트에 계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하자 조합원들에 대한 탄압과 회유로 노조를 와해시키기도 했던 대표적인 반 노조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롯데 또한 같은 롯데 자본인 롯데호텔의 경우 지난 2000년 보여줬던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억압적인 태도에서 반 노조 정서가 확인되었으며,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올해엔 이랜드처럼 200여명의 비정규직 중 33명만을 선별적으로 정규직화하고 나머지 인원은 외주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신세계나 롯데의 유통기업들이 계산직 업무를 정규직화 형태로 전환하거나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정규직화 경로를 선택한 것은, 기존의 노동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백화점 업태는 고품질 서비스 전략을 기업 이윤으로 연결시키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저가의 상품 판매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산출하는 할인점(마트)과는 시장상황이나 경영전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증가에 스며든 남성 중심의 ‘숙련’ 이데올로기

한편, 유통업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쟁점은 계산직 업무의 외주화에 따른 노사관계의 불안정성 문제이다. 현재 주요 유통업체 중에는 계산직 비정규직을 정규직 형태로 전환한 경우도 있고 외주화한 곳도 있다. 이 중에서 비정규직법 시행 전후로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간접고용(용역-파견)으로 전환한 곳은 이랜드 뉴코아, 세이브존 I&C, 현대백화점 등이다. 그런데 이들 유통업체에서 계산업무를 담당하는 일자리는 원래 정규직?기간제?파트타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그 중 기간제나 파트타임과 같은 비정규직은 애초에는 정규직의 병가나 출산 휴가를 대체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즉 이들 업체들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체하거나 간접고용으로 전환하는 등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용절감을 위한 자본의 전략적 태도로 볼 수 있다.

또한 서비스업의 등장과 노동력의 여성화 간에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데, 대부분의 유통업체에서 가장 많은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계산, 판매, 식품, 안내 및 고객서비스 등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지배적인 영역에서 비정규직 고용이 제도화(성별분업화)되고 있는 것은 전체적인 논의에서 우리에게 여성노동을 탈숙련화된 것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업무의 맥락과 관계없이 기술을 가진 업무를 잘 다룰 수 있고, 여성에 비해 숙련업무를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때문에 유통업에서도 정규직 남성은 매장관리나 구매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비정규직 여성은 판매, 판촉, 계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정규직과 여성노동의 숙련·가치문제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계기로 거대 유통자본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업무를 구분하고 있으며, 계산이나 식품 안전관리 등의 주요 업무조차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제기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계산 업무가 구별되는 유일한 논리는, “비정규직의 업무가 덜 가치 있고, 복잡하지 않으며, 기간의 지속성이 불확실하다(이직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홈에버 비정규직 계산원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과 동일한 숙련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정규직보다 낮은 보상을 받고 있다(정규직 121만1천원, 비정규직 86만2천원). 실제로 유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강도 높은 훈련과 경험이 요구되는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음에도 교육훈련 기회 등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비정규직 계산업무 일자리들은 기존의 정규직이 하던 업무들이다.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 간접고용 비정규직

다른 한편으로 간접고용화(외주화)된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노동과정과 통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작업장 내의 위계질서 구조 안에서는 맨 아래에 위치해 있다. 이에 따라 이런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더 높은 노동강도에서 일을 하고 있으나, 실제 보수는 더 적게 받고 승진 기회도 없으며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도 박탈당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용역이나 파견업체에 의해 고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임금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할 경우 언제든지 정규직으로의 상향적 사회 이동(upward mobility)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꿈에 그리는 정규직 노동자”가 되기를 바라는 유통업 판매 사원이나 계산직 등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매장에서 고객 안내나 사무보조업무를 담당하는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한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특히, 파견-용역노동자)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막장 일자리’(dead-end job)를 차지하고 있다. 자본은 유통업 사무직 매장 관리?구매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임금-고기술의 승리자’로, 계산 업무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저기술의 패배자’로 나누어 버렸다. 이와 같은 문제는 유통업 노동시장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다시 직군분리나 무기계약과 같은 편법을 통해 유통업 사업장 내 성불평등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 법제도 개선 투쟁!

한국 사회에서 유통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지난 몇 년간 거의 변화된 바 없으며, 특히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법안 시행을 앞두고 이랜드 자본은 경총의 비정규직 대처 방안을 이행하기라도 하듯이, 비정규직 차별시정과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파견 용역 등의 외주화 등을 선택했다. 정부의 비정규직법안 통과 이후 노동운동 진영에서 문제 삼았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은 현재 비정규직법안의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며,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한 현장에서의 노동조합의 대응방안을 준비 중이다. 또한 이런 유통업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한데, 과연 정부가 그럴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비정규직 차별규제(외주화 규제 및 차별시정제도 강화)에 대한 법제도적인 개선 투쟁이 가장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현 시기 유통업에서 비정규직의 확대를 막고, 정규직과 유사 혹은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는 등의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과제로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직접적 노력”(2003년 19.8%→2006년 19.9%)을 꼽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서비스 활동”(18.8%)과 “임단협 등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연맹 활동”(2003년 18.3%→2006년 18.6%)을 꼽았다. 또한 특히 2006년의 경우 “노동법 법개정 투쟁 등 법제도 개선 활동”(19.5%)에 대한 의견이 2003년(13.4%)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는 점과 단위 노조의 과제로 “비정규직 정규직화”(2003년 25.6%→2006년 28.5%)와 “임금 인상 등 차별철폐”(2003년 25%→2006년 28.5%)가 꼽히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유통현장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집단적인 노사관계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유통서비스 부문 비정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통업 주요 현안 문제인 입점업체 판촉직원의 고용보호 문제나 유통업의 정기휴무 및 영업시간 규제문제 그리고 유통업 작업장에서의 노동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유통업 비정규직 일자리들에 대한 직무가치와 평가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과연 유통업에서 ‘돈’을 다루는 일자리인 계산 업무를 외주화할 수 있는 직무로 구분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