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61명’의 허구,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노동사회

‘71,861명’의 허구,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편집국 0 4,927 2013.05.29 08:42

500일 넘게 직접고용,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KTX, 새마을 승무동지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은 홈에버와 뉴코아 비정규노동자들의 해고자 복직·계약해지 중단·외주용역화 반대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올해 7월1일부터 공공부문과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는 비정규법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누구를 위한 보호이고 어떤 악법인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3년을 일하고도 하루아침에 계약해지가 되어 절망감에 몸부림치던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자살시도를 접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2003년 늦가을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던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동자 이용석 열사를 떠올리고 있다. 

지난 2004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나온 후 2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이라고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 879만명에 이르게 된 현실뿐이다. 이는 정부와 사용자가 임금?고용유연화, 정규직 양보론 등 자신들의 주장을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따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공부문이 비정규직의 확산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2006년 8월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공공부문이 선도한다는 미명 하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대책을 기준으로 6월26일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71,861명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무기계약 전환, 외주화 개선 및 차별시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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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20일, 100일이 넘도록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광주시청비정규직 조합원들이 108배를 하며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 공공노조 ]

‘짝퉁 정규직’ 양산하는 정부

정부가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핵심은 상시지속 업무에 2년 이상 계속 근무할 경우 무기계약으로 전환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통상 “고용기간을 정하지 않고 있는 노동자”를 정규직이라고 칭하는 반면, ‘무기계약’은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기계약 전환 원칙을 표명하며 “무기계약 = 정규직이 바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즉 상시지속 업무일지라도 예산과 인력 통제를 이유로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기간제노동자를 고용해 비정규직을 양산해왔던 정부가, 이제는 무기계약이라는 ‘짝퉁 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합리적 차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상시지속 업무에 2년 이상 계속 근무” 기준을 판단함에 있어 기간제법이 광범위하게 정한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 예외사유” 조항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모법이라고 할 수 있는 기간제법의 협소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기계약 전환과 관련해 2년 이상 기간제노동자 중 22,261명이 전환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이 중 직접수행에서 간접수행으로 업무수행방식을 변경할 6,089명(27.4%)은 구조조정, 외주화의 대상으로 계약해지 등 고용불안에 직면하고 있다([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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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무기계약 전환대상 71,861명에 대해 유사 동종 정규직을 고려한 처우개선을 위한 2008년 소요예산 추정치로, 1,306억원을 산정했다.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의 소속 기관과 직종에 따라 처우개선에 필요한 구체적 금액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나, 정부가 추정한 2008년 소요예산을 전환규모로 단순 평균할 경우 1인당 한 달 평균 151,450원이 인상되게 된다. 이는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대비 53% 수준임을 감안할 때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무기계약으로 전환되더라도 실질적인 처우개선이 되지 못함을 드러낸다. 결국 정부가 책정한 소요예산은 차별적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실제로 학교비정규직의 경우 교육청 예산 지원 없이 학교 자체예산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면서, 호봉제를 연봉제로 강제전환하거나 호봉상한제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정부대책의 비현실성을 말해주는 사례다.

이미 시작된 계약해지, 늘어나게 될 외주화

한편 정부는 무기계약 전환대상에서 제외된 2년 미만의 기간제의 경우, 2008년 6월에 2차 대책을 시행하여 전환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령, 예산 등으로 사업의 종료, 폐지 등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용계약을 종료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이 2년 미만의 간호사를 계약해지 하려다 당사자와 노조가 기자회견 등 투쟁의사를 밝히자 6개월 재계약을 체결한 사례가 있었다. 여기서도 드러나듯 “고용계약 종료의 합리적 사유”가 무엇인지의 판단은 권력의 절대적 우위에 있는 사용자에게 맡겨져 있다. 결국 지금 이 시간에도 계약해지를 당하고 있는 다수의 노동자에게 정부의 ‘2차 대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산별연맹은 2006년 8월 정부대책 발표 후 계약해지 등 노동현장의 고용불안이 심각해질 것을 예상하여, 정부대책이 확정 발표되기 전까지는 최소한 현행 고용을 유지하도록 정부가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해당기관에 시달할 것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계약해지, 전환 제외자에 대한 무대책 등의 문제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자 뒤늦게 2차 대책 추진을 언급하고 있으나, 현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고용불안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부는 외주화와 관련해 18개 업무 354명만 직접수행으로 전환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277개 기관 외주업무 노동자 7만여명 중 0.49%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각 기관에서 직접수행으로 전환 요청한 33개 업무(지난 4월 「외주화타당성점검 주요검토기준안」)를 대폭 축소한 것이며, 정부 스스로 ‘고유 업무’라고 밝히고 있는 69개 업무, 1만여명조차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서울시의 경우 기존 업무들에 대해서 외주화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시립병원, 물재생센터 등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기관을 민간위탁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 더욱이 종합대책 마련에 참여했던 연구원조차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는 KTX 승무원들과 관련해서도 “각 정부 부처의 반발”을 이유로 이번 대책에서 제외한 것은 정부가 외주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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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구청은 단 1명의 비정규직만 무기계약으로 전환하고 35명의 비정규직을 6월30일자로 해고했다. 이것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결과다. 7월5일 열린 송파구청 비정규직 해고 규탄 기자회견. ▶ 공공노조]

구멍난 입찰기준 강화가 해고를 부른다

정부대책은 청소, 경비 등 단순노무 외주업무의 입찰 예정가격 산정 시 당해년도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고, 낙찰하한률을 조달청 기준(87.8%) 이상으로 하는 제도개선 방침을 시달했다(재경부 회계예규, 2200.04-149-18, 2006.12.29). 또한 이 기준을 올해 7월 새로운 외주계약 체결부터 적용하도록 개선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8년 외주용역 업체 선정 시부터 최저임금 기준이 아닌 당해연도 시중노임단가 적용을 강제할 경우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이 일정하게 오르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공공기관들은 정부지침으로 입찰제도를 형식적으로 개선하기는 하겠지만 예산부담을 피하기 위해 인원감축을 단행할 것이다. 이는 청소, 경비 등 저임금 직종을 대부분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결국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져 노동조건의 악화가 예상된다.

한편 외주용역업체의 임금체불 등 각종 불법과 탈법행위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고용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격심사기준으로 “근로조건 보호”와 “위반업체에 대해 일정기간 입찰 자격제한”이 반영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원청인 공공기관이 감독,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기준을 형식적으로 적용함에 따라 계약기간 중 외주업체가 임금체불, 노동관계법 위반 등 불법, 탈법을 자행할 경우,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 것은 대책의 문제점이다. 현재 광주시청 청소용역 비정규노동자들이 용역업체의 임금체불 등 불법에 맞서 노조에 가입하였으나 원청인 광주시청은 용역업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계약해지 된 조합원을 탄압하거나 수수방관하고 있다. 원청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정부는 2006년 5월 1만여 개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와 심층조사를 진행하면서 몇 차례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8월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대책은 비정규법의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명칭만 바꾼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었다. 이 대책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비정규노동자 계약해지, 기간단축, 외주화 등의 고용불안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해당 기관들은 기관별 계획을 수립하면서 노조 및 당사자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공공부문 노동계 등에서 여러 차례 면담, 간담회 등을 요청하였으나 정부는 ‘검토 중’이라는 이유로 노동계 의견을 반영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 발표 이전인 5월 중순부터 8월까지 부처 간 의견조율, 추진위원회 위원장 주재 ‘추진단 종합검토회의’ 등을 10여 차례 진행한 것과 대조적으로, 종합대책 발표 이후에는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단 한차례의 간담회도 열지 않았고 자료요청마저 거부하였다.

그 결과 나오게 된 정부대책의 “7만여명의 무기계약전환”이라는 포장을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그 본질은 ‘계약해지와 외주화 확산의 제도적인 뒷받침’이며 이는 비정규노동자의 목줄을 더욱 조이는 정책일 뿐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민간부문을 선도하는 흐름을 형성하려면 상시지속적 업무의 경우 근속기간에 상관없이 정규직 업무로 전환해야 한다. 즉, 근속기간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할 경우 사용자가 얼마든지 2년 사용 후 교체사용이 가능하므로 비정규직을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2년 미만을 이유로 무기계약 전환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은 즉시 전환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일시 간헐적 업무, 휴직, 파견 등 대체인력 활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간제 사용을 억제해야만 비정규직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상시지속업무임에도 주변·단순업무로 분류돼 외주화된 대부분의 업무가 저임금노동자를 양산하고 온갖 비리, 탈법의 온상이 되고 있음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외주화를 통한 비용절감(인건비 절감)을 “조직운영의 효율성 확대”로 평가하여 외주화를 부추기고 있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외주화를 막을 수 없다. 

정부는 비정규법의 취지를 사용자들이 악용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계약해지, 외주화 등의 문제가 법과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의 ‘일시적 홍역과정’일 뿐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차별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비정규법의 역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법이 전면적으로 새롭게 검토되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실무추진단과 추진위원회에서 검토한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해당기관과 노조, 비정규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올바른 대책 수립을 위한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조직화로 이뤄내는 승리의 길

공공서비스노조가 출범한지 7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현재 투쟁 중인 사업장은 광주시청 비정규직, 청주대 환경미화 비정규직, 구로선경오피스텔 청소·시설관리 노동자들로, 대부분이 용역업체 전환을 빌미로 계약해지 되어 고용승계 투쟁을 하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들이다. 또한 정부대책으로 인해 학교, 지자체 등에서 사업폐지, 예산없음을 이유로 계약해지 된 기간제 노동자들의 노조가입과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정규직(기업)지부는 직간접고용 비정규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고 정부의 종합대책에 대해 미온적인 대응을 하는 등의 문제를 극복하여야 한다. 공공노조는 사업장내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방침을 실천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비정규법에 의해 차별대우를 받는 무기계약노동자, 무기계약 전환 예외자, 계약해지·외주화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노동자 등의 노조 가입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사업장 비정규직 현황과 비정규법의 현장 악용사례를 신속히 파악하여 정부대책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과 더불어, 지부 단체협상 등을 통해 정규직전환, 차별처우가 시정될 수 있도록 투쟁하는 것이 요구된다. 특히 전환자 관리를 위한 인력관리(무기계약 관리지침)와 공기업 및 산하기관 전환 대상관련 정비(정규직 정원 또는 별도 직군에 따른 정원으로 직급, 임금체계 설계, 인사관리규정 마련, 소요예산 확보, 전환대상자 선정)를 9월30일까지 확정, 10월부터 시행하게 되므로  7~9월까지 조직적으로 집중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법 시행 이후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인상과 무모한 파업이 비정규직 양산과 불평등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다시금 ‘정규직 양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양산 원인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정규직노동자에게 책임으로 전가시키려는 정부와 자본의 노동자 분열공작이다. 이 흐름을 막고 산별노조의 형식적 건설이 아닌 총자본에 맞선 계급적 산별노동조합을 강화하고, 조직화와 투쟁의 모든 과정을 차별철폐?정규직화 쟁취 등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의 장으로 만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발굴, 육성하여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게 해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