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정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적극적 전술이 필요하다

노동사회

재개정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적극적 전술이 필요하다

편집국 0 3,105 2013.05.29 08:40
 

“월 80만원, 일 년에 960만원이라도 안정적으로 벌게 해 달라.”는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공권력으로 두 차례나 진압되었지만, 그 투쟁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민주노총을 필두로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이랜드기업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학계·언론계·문화계·종교계까지 이랜드투쟁 지지에 동참하는 등, 이랜드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사회 전반으로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이제 이랜드사태는 일개 사업장의 문제를 뛰어넘어 880만 비정규노동자 전체의 문제를 드러내며 그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이랜드사태의 발단이 된 비정규직법은 2006년 12월 공포돼 올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비정규직법은 2년 넘게 고용할 경우 정규직화하도록 하고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했지만, 이를 악용하는 기업의 편법 행위가 줄이어 발생했다. 고용형태별로 나타난 사례를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이 사례들은 2007년 8월 현재 언론보도와 현장방문을 통해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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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시정제도의 전술적 활용은 비정규직법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비정규직-정규직노조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첫 차별시정 사건으로 기록된 농협중앙회 고령 축산물공판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차별시정 접수 기자회견. ▶ 매일노동뉴스 ]

은행·유통·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법이 불러온 변화

먼저 은행권은 ‘무기계약화’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우리은행은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직군분리를 통해 무기계약화를 도입했다. 개인금융서비스, 후선업무, 콜센터업무를 별도 직군으로 분리하고 이들 직군에 포함된 3,076명을 무기계약화했다. 무기계약직은 59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고 복지후생도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받도록 했다. 이어 부산은행이 직급(7급)을 신설해 606명을 정규직화하고, 정년보장 및 복지후생 부분의 차별을 개선하였다. 외환은행도 영업점 직무분리와 함께 1,000명을 무기계약화했다. 한편으로 하나은행은 1년 이상 된 141명의 계약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했으며, 산업은행은 직무급제를 도입해 131명의 노동자를 직무급으로 전환했다.

유통서비스 업종은 계약해지, 외주용역, 무기계약화가 중첩되어 나타났다. 홈에버는 비정규직 계산원 1,100여명 중 2년 이상 근무한 521명에 대해 직무급 전환을 시도했고, 비정규직 350명은 재계약하지 않고 집단 해고했다. 뉴코아도 계산원 320여명 중 정규직 100명을 다른 업무로 배치하고 비정규직 223명은 외주로 전환했다. 롯데호텔도 40여명에 대해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고, 세이브존은 230명이 일하는 계산업무를 외주화했다. 현대백화점은 정규직 계산원을 전환배치하고 비정규직 계산원 125명을 외주화했다. 이 밖에 홈플러스나 롯데마트는 2년 이상 또는 동일유사업무를 기준으로 일부를 정규직화했다. 

공공부문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지난해 말부터 계약해지가 줄을 잇고 있다. 2006년 12월 법원행정처는 40여명의 비정규노동자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직접고용노동자를 용역직으로 전환했다. 서울대병원도 2006년 8월 단계적 정규직화(240명)에 합의했지만 이를 어기고 70~80명의 노동자를 계약해지했다. 또한 오랫동안 반복갱신계약으로 일해온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더기 계약해지되었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05년 합의한 정규직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현재 500여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원, 외주용역으로 전환된 새마을호 승무업무 또한 비정규직법이 불러온 결과다. 

지난 6월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관련해서도, 역시 10월 시행을 앞두고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철도공사는 2,800명(40개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2년 이상 1,392명(14개 직종)의 기간제노동자들을 무기계약으로 전환시키되 별도 운영지침을 마련해서 관리하기로 했다. 운영지침에 의하면 이들 노동자들에 대하여 단체협약 일부를 동일 적용하되 임금은 별도 체계로 하며, 업무가 축소되거나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계약해지가 가능하다. 서울대병원도 이미 없어진 6급을 신설해 2년 미만 사무기술직 노동자들의 별도 직군을 추진하고 있다.

완성차 및 사무금융에서 변화, 그리고 보건의료노조의 성과

자동차사업장들에서는 외주전환과 불법파견 소지가 있는 공정의 전환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6월 각각 사무계약직 377명, 109명을 5급 사원으로 편입, 정규직화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정규직화 직후 개별적 합의를 거쳐 전환배치를 추진했으며, 이에 반대해 합의를 거부한 3명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전환배치를 철회했다.

GM대우 창원공장은 불법파견 공정의 전환배치를 추진하여 불법파견 시비를 없애고 있으며, 부평공장은 사내 하청노동자의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다. GM대우 부평공장은 올해 1월부터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를 분리하고 주로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비핵심업무를 외주화하고 있다. 또한 ‘생산성 향상 15%’ 추진을 이유로 공정별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차체1부 4명이 6월 말 정리해고 됐으며, 조립1부 10여명도 정리해고가 예상된다.

사무금융연맹 소속 노조들의 경우 분리직군, 직급 신설 등으로 정규직 전환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노조 소속인 제일화재지부는 9월까지 정규직화 프로그램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LIG지부는 240명의 비정규직노동자 중 174명을 직무급으로 전환했다. 현대해상화재지부는 직급을 신설(6급)해 166명의 비정규노동자 중 32명을 정규직화했다. 서울보증지부는 2005년에 합의한 정규직화 시기를 2008년까지 앞당기기로 합의했으며 직군전환제도를 도입했다. 증권업종본부 소속인 CG투자증권도 6명의 콜센터 비정규직과 운전기사 21명을 정규직화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가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정규직 임금인상분 4.0~5.3% 중 1.3~1.8%를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시정에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이번 합의로 보건의료 노사는 300억원 이상을 확보하게 됐으며, 이를 통해 11,800명 중 5,500명을 정규직화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외주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복지혜택도 가능하게 되었다.

‘비정규직법 전면 재개정’ 기조 아래 민주노총의 대응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전면 재개정’을 기본방향으로 대응해왔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법 악용 및 시행령 제정을 반대하는 대정부 투쟁이 배치되었고, 사회적 쟁점화를 위한 증언대회 등이 추진되었다. 한편 일방적 계약해지에 맞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발생했음에도 집중되지 못하고 당사자 투쟁으로 전락해왔던 조건에서, 뉴코아·홈에버 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계약해지 및 외주용역화에 반대하며 시작된 이랜드노조 공동파업은 점거농성, 매출제로투쟁, 불매운동 등을 통해 민주노총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로까지 확대되었고, 국민적 지지여론과 결합하면서 비정규직법 재개정국면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산별노조를 중심으로도 비정규직법 대응이 이루어졌다. 민주노총은 올해 임단협에서 △1년(2년) 이상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화, △차별해소 방안을 구체화할 것 등의 지침을 제시했다. 이를 산업별 조건에 맞게 진행한 곳이 보건의료노조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산별교섭에서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일부를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시정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로 인해 5,500명을 정규직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외주노동자의 차별해소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듯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을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뤄냈다. 또한 정례적 협의구조(비정규직 대책 노사특별위원회)를 확보하여 산업 차원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한편으로,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과 인사, 승진 등에서 정규직내 차별을 인정하는 분리직군 및 직무급제 도입 또한, ‘정규직화’의 한 방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차별을 고착화하는 무기계약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들은 주로 금융, 사무직 쪽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업종별 특성으로 인해 직무분리가 손쉽다는 점과, 이전부터 직무(군)분리가 경영전략 차원에서 진행되어왔다는 측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들은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기 위한 악용수단으로 활용되고 고용형태 차별을 고착화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들에 대해서 정규직노조 입장에서는 ‘반대’ 외에는 다른 대처방안이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즉 투쟁력으로 돌파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면 자본의 의도대로, 또 비정규직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기업별로 분산 대응하면서 전국적 쟁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노조의 이러한 실리적 합의를 가능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리직군 및 일방적 직무급제는 차별금지를 회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보다 구체적 대응방안이 필요하며, 또한 무기계약화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외주용역화에 대한 대응 및 차별시정제도의 ‘전술적 활용’

이랜드투쟁으로 비정규직법 재개정국면이 열렸지만 이것이 9월 국회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정부는 현 비정규직법의 안착을, 경총은 2년으로 명시되어 있는 기간제한을 없애거나 3년으로 연장하자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도 재개정보다는 비정규직법 안착과 후속대책 마련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조건을 감안하여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 재개정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되, 당장 하반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건을 고려하면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법개정투쟁은 하반기에는 대선국면과 맞물려 쉽지 않은 조건이다. 오히려 ‘재개정 전면전’보다는 민주노총의 요구를 대중적 사업으로 전면화해 재개정투쟁의 ‘정당성 확보 과정’이 밀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원청 사용자성 책임 확대, △사용사유 제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차별시정 노조신청권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들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간접고용(외주용역 등)에 대한 규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비정규직법을 피해가기 위해 외주용역으로 전환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외주노동자들은 비정규직법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화와 차별시정을 ‘합법적’으로 피해갈수 있고, 다음으로 노동3권 보장과 노동법에 있어서도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노동부 조사에서도 기업의 30% 이상이 외주용역 전환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공공부문,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외주용역이 광범위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외주용역화 등 간접고용을 규제할 수 있는 법제도개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현행 비정규직법 차별시정제도는 자체 결함을 안고 있다. 현행 제도는 노조의 신청권을 배제하고 있고 “차별적 처우가 있었던 날로부터 3개월”로 제척기간을 설정하는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스스로 차별시정에 나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민주노총은 차별시정위원회 참가를 결의했지만 조직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는 못했다. 노동위원회의 편파적 판정이 뻔한 조건에서 잘못된 차별시정제도를 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문제의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시정제도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차별시정제도의 전술적 활용은 비정규직법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비정규직-정규직노조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농협중앙회 고령 축산물공판장 비정규직노동자들과 철도노조 성과상여금에 대한 차별시정 접수는,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반기 전국에서 집단적 차별시정을 조직하여 차별제도의 한계를 폭로하고, 나아가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권을 실질적으로 쟁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규직노조들이여, 문열어라 조직하라 연대하라

마지막으로 정규직노조들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비정규직법 시행은 우리사회에 비정규직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던졌고, 또한 정규직노조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상반기부터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지만, 정작 노조의 대응이 힘 있게 진행되지 못했다. 집중투쟁이 안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비정규직문제는 정규직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거나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 도사려 있다. 비정규직문제가 사회 쟁점화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비정규직의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고용불안의 해소책으로 생각하는 것도 여전하다. 정규직노조들은 “노동자는 하나다.”란 주장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관철될 수 있도록, 규약의 문을 활짝 열어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노동자에 대한 적극적 조직화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정규직노동조합들은 비정규직법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단위사업장이나 산별연맹에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 나아가 자본과 정부를 상대로 하는 교섭과 투쟁에서는 더더욱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전 조직적으로 하반기 실태조사 및 의제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이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고용은 더욱 불안해지고 삶은 피폐해지고 있지만 새로운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뉴코아·이랜드 투쟁은 이러한 가능성의 시발이다. 정규직노조와의 굳건한 연대, 국민의 지지여론 등으로 비정규직투쟁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이들의 투쟁에 굳건하게 연대하여 승리를 안아오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비정규직문제는 ‘원칙적 구호’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현실적 대응력을 높이지 않으면 자본의 노동시장 지배력을 뛰어넘지 못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철폐’라는 전략노선을 분명히 하되, 정규직노조 차원에서 다양한 해법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