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한미FTA 저지파업의 ‘평가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노동사회

금속 한미FTA 저지파업의 ‘평가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편집국 0 3,327 2013.05.29 08:40

금속노조의 한미FTA 저지 총파업은 ‘성공’했는가? 그러나 성공이다 실패다 하는 결론을 내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금속노조 내부에서 각자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에 따라서만 결론을 짓는 것을 경계하자는 제안의 성격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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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25일 있었던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안건에 대해 표결하고 있다. ▶ 금속노조 ]

한미FTA 저지 총파업은 성공했을까 실패했을까 

지난 4월25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는 2쪽짜리 현장대의원 발의 안건이 제출되었다. 이는 한미FTA 저지 총파업을 하되, ‘일주일 동안의 권역별 파업’과 ‘이틀간의 전국총파업’을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토론과정은 복잡했고, 결과는 찬성률 58.5%였다. 이 안건에 대한 토론과정을 지켜보면서 토론의 초점이 묘하게 엇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한쪽은 전술문제에 대한 제기를 하는데 다른 쪽은 파업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업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의원들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이라는 기간, 일말의 전술적 유연성을 보이지 않는 권역별-전국총파업이라는 방침까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여기에 짧은 기간 동안 조합원을 조직해야 하는 임무까지 부여됨으로써 논란은 한층 가열됐다. 이 안건에 대한 수정안을 낸 동지들의 입장은 “파업을 하되 구체적인 전술방침은 중앙집행위원회나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한미FTA만이 아니라 금속노조 중앙교섭 쟁취 등을 파업의 목적으로 추가해 명시하자”는 의견도 제출되었다. 하지만 모두 부결되었다. 이러한 속에서 얻어진 58.5%의 찬성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의 필요성이 공유되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의원대회 이후 집행부는 한미FTA 총파업을 수행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고자 했고, 이러한 방침은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추인되었다. 그러나 중앙위원회에로 넘어온 이 방침은 다시 번복되어 찬반투표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결과 일부 완성차공장 지부장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현장에서도 일부 자발적인 그리고 일부 조직되었다고 여겨지는, 조합원들의 ‘절차상 문제제기’가 뒤따랐다. 정부가 ‘불법파업’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면서 노골적으로 강경대응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러한 중앙위원회 결과가 알려지면서부터였다.

파업과정 또한 순탄치 않았다. 현대자동차 지부는 내부의 반발로 권역별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전국파업에만 참가했다. 쌍용자동차 지부는 아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대우자동차 지부는 조합원 교육을 빌어 2시간만 동참했다. 6월28일 파업에는 11만명이 참가했고, 당일 ‘한미FTA 저지를 위한 집회’에 2만여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금속노조의 파업일정은 일단락되었다.

파업 참여자 11만명, 그들의 정체는? 

“11만명이나 파업에 동참했으니 성공이다.” 
“아니다 파업의 대가로 위원장부터 모든 지도부에게 출두요구서와 체포영장이 떨어졌으니 조직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조직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외부의 탄압은 오히려 조직을 강하게 단련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일이 못된다.”


shkim_02.jpg다양한 평가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일단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11만명이나 파업에 동참했다는 것은 분명 성과다. 그러나 파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면, 그리고 파업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고려한다면 대답은 좀 더 복잡해진다. 정말로 한미FTA 협정을 체결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내려져야 한다. 정부가 벌써 미국의 입맛에 따라 재협상까지 해치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업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애초 금속노조가 총파업을 결정하면서 달성하고자 했던 정확한 목표는 무엇이었을까를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파업은 정말로 한미FTA 저지라는 적극적인 목표를 갖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주변 정세에 조응해 그냥 ‘뭔가 해야 한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인식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덧붙여 내부적으로는 15만 금속노조 출범 후 채 정비되지 않은 조직을 총파업 과정에서 제대로 정비하고, 금속노조의 위력을 정부나 사용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한 이를 계기로 완성차 사용자들이 중앙교섭에 참가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목표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목표들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곧 파업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먼저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표면적인 ‘사실’은 말 그대로, “한미FTA 저지를 목표로 일주일간의 파업을 계획했고 결과적으로 11만명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이 문장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금속노조의 한미FTA 저지 파업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한미FTA의 저지라는 명시적 목적, 둘째, 가능한 범위에서 가장 위력 있는 대중파업의 결과달성이라는 조직적 목적. 전자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후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사실 금속노조의 파업만으로 한미FTA 저지를 달성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이를 인정한다면, 그래서 후자를 달성하는 것이 실제 목표였다면 금속노조의 파업은 성공한 셈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 이르는 과정까지 고려한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가 내려질 수가 없게 된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그 11만명의 내용이 문제라는 것이다. 즉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과정을 거쳐 모였는지가 검토돼야 성패 여부를 확실하게 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의원대회 결정이 집행되는 그 일주일 동안, 총파업의 조직화는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이었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는가? 이렇듯 평가가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대의원대회 결정의 ‘결과’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결정 및 집행 ‘과정’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제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찬반투표 혼란 속의 “한다면 하면 한다”는 금속노조의 전통

먼저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 현장대의원 발의 안건이 처음 제기됐을 때로 돌아가자. 금속노조의 규약·규정은 현장 발의안건 제출을 대의원대회 소집공고 이후 일정 기간 이내에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의원대회 당일에 안건이 제출되면 효과적인 토론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물론 대의원들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조직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안건들을 다룰 때 조합원들과의 논의, 아니 최소한 집행라인에 있는 지회장들과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한미FTA 저지 파업 현장 발의 안건은 사전 검토를 얼마나 거친 것이었는가? 

어쨌거나 3월25일 경 대의원대회 소집공고가 나간 후 현장 발의안건이 제출됐으니까, 최소 2주일간의 논의시간이 있었다. 조합원과 대의원들은 이 안건의 파업 필요성 주장을 통해 한미FTA의 영향을 다시 한 번 고민할 수 있었을 테고, 이를 위한 전술방침과 관련하여 조합원들의 상태를 판단하고 조직화 방식 검토하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권역별파업-이틀 총파업’ 등으로 세부 전술방침까지 사전적으로 규정한 (듯한) 안건이라면, 더군다나 15만명으로 조직이 확대되고 내부정비가 채 끝나지 않은 금속노조의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더 확대된 토론이 필요했다. 또한 다소 부차적인 지적일 수도 있지만, 안건 작성 방식도 좀 더 친절할 필요가 있었다. 대의원대회에 제출된 안건은 주문사항과 예시를 구분하지 않았고, 결국 주문사항보다는 방침예시 때문에 대의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논란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대의원대회 이후 파업 찬반투표를 둘러싼 결정의 번복과정을 살펴보자. 이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파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의구심과 현재의 준비상태에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을 때 부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뒤엉킨 결과였다. 어쨌든 금속노조의 의결과정에서 이번처럼 중앙집행위원회 논의결과가 중앙위원회나 대의원대회에서 뒤집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번복은 집행의 혼선과 차질을 빚어냈고, 결국에는 파업 참가 동력의 편차를 가져왔다. 의사결정의 번복과정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스러움이 외부의 압력과 결합하여 결국 일정하게 조직된 내부 반발로 나타났고, 권역별파업에서 현대자동차 지부가 이탈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중앙위원회 표결 결과에서 기권표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기권표는 안건에 대해 어떻게도 판단을 못 내리겠다거나, 어떤 결정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시이다. “결정하고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안 하겠다”고까지 위원장이 공언했던 총파업을 두고서, 즉 결정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행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을 두고서, 이렇게 기권표가 존재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금속노조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한 번 결정한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다”는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의 기반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자충수를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돌쇠정신’이 아니라, 모든 지부의 현실조건을 최대한 논의과정에 올려놓고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치열함’이 있었다. 즉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지루하고 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과정이 이러한 집행력을 담보하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4만 금속노조의 전통은 15만 금속노조에 걸맞게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파업 찬반투표를 둘러싸고 보여준 논박과정이, ‘치열한 논의과정과 내부 조직화과정의 결합’이라는 금속노조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었는지는 제대로 검토되어야 한다.  

15만 금속노조 의결 및 집행 문제점 드러낸 총파업과정  

총파업 관련 안건은 400여명이 참석한 대의원대회에서 다섯 시간 만에 결정됐다. 이 논의에서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변수는 과연 얼마나 고려됐을까? 금속노조가 놓여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은 얼마나 심도 있게 토론됐을까? “한 번 결정하면 집행해야 하는 문화” 속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결정’이 아니라 ‘결정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것이 한미FTA 저지 파업 평가가 그 결정과정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는 이유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금번 총파업 결정과 집행 과정은 현재 15만 금속노조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파 간 갈등과 맞물려 있는 지도부의 불안정성, 조직 간 동원능력의 격차 확대 및 기존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신규 조합원들 사이 인식의 편차를 해소할 방안의 부재 등등. 또한 이번 파업 과정에서는 불만 섞인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파업을 반대하고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의 주장을 단순히 “사용자들의 알바 짓”으로만 치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정비본부의 ‘반란’이 정말로 사측에 의해 조직된 것이었을까?  

완성차공장의 노조들이 높은 지분을 갖고 있는 현재의 15만 금속노조는, 성장 과정에서 기업별 교섭 및 조직체계의 잔재까지 흡수한 상태다. 그로 인해 ‘부분(사업장 단위조직)’없는 ‘전체(금속노조 중앙)’는 존재할 수 없지만, 전체 없는 부분은 존재가능하다는 역설적 지형에 놓여 있다. 이 지형을 극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금속노조의 주체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미 현장 활동가들 수준에서는 실리적 대중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정착되어 있음 역시 인정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에 대한 보상기제로 오히려 상층 임원들에게는 더욱 강경한 목소리를 낼 것을 주문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도 한다.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앞에서 지적한 조직 내부의 불안정성과 편차를 조정하고 통합력을 갖추기 위한 세밀한 방안이 하루빨리 구축되지 않는다면, 금속노조에서도 실리주의를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임원진들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현재 임원진들은 각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로 균질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는데, 금속노조의 전체적인 전략방향과 방침을 제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치열하게 소통해 나가야 한다. 

무엇이 조직의 신뢰를 만드나 치열하게 성찰해야

개인적으로는 이번 금속노조의 한미FTA 저지 파업이 주는 단 하나의 교훈은 ‘의사결정 및 집행체계의 결합력의 중요성’에 대한 학습효과라고 생각한다. 치열할 뿐 아니라 넓고 다양한 논의를 통한 결정과 일사불란한 집행이 결합하는 것의 중요성, 즉 7일이 아니라 7분을 파업하더라도, 그것이 주체의 모든 조건을 검토한 방침결정과 하부조직의 적극적인 복무자세 및 상부조직의 내부조직화 노력이 결합한 것이어야 효과가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렇게 될 때만이 15만 금속노조의 선언이 사용자와 정부에게 그냥 해보는 공갈이 아니라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조합원들에게는 조직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FTA 저지 파업의 결정 및 집행 과정을 간략하게 검토해봤다. 이러한 검토는 파업의 성패에 대한 명확한 평가보다는 평가의 준거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비로소 묻는다. 이번 금속노조 총파업의 성과는 무엇인가? 그 성과를 내온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금속노조 총파업의 한계는 무엇이었는가? 어떤 한계를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종합적으로, 성과를 중심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한계를 중심으로 봐야 하는가? 금속노조 내부의 각 집단적 주체들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더욱 발전해야 하는 15만 금속노조를 위해서, 책임미루기 공방 따위가 아닌 정말로 치열한 논의와 솔직한 대답이 요구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