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을 넘어 독립언론으로

노동사회

폐업을 넘어 독립언론으로

admin 0 3,651 2013.05.07 10:13

광주지역에 소재한 한 신문사의 응달진 주차장 한켠에 마련된 천막건물에서는 오늘도 언론사주의 부당한 폐업조치와 야수적인 폭력에 맞서 언론개혁과 독립언론 실현을 요구하는 언론종사자들의 피맺힌 외침이 60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광주매일지부(위원장 정한진, 이하 광매지부)는 지난 10월26일 광주매일(사장 고경주) 사측이 적자 신문사 도태와 지향점이 다른 언론과 기업 병행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반납하고 자진 폐업에 들어가자 부당폐업 철회와 독립언론 실현을 위한 광주매일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즉각적인 폐업철회 투쟁에 돌입했다. 이로써 광주매일은 1991년 11월1일 힘찬 굉음을 울리며 윤전기가 첫 신문을 토해낸 이후 만 10년을 불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지령 3034호를 마지막으로 윤전기의 가동을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애초에 3.7% 임금인상 요구로 촉발된 파업이 폐업이라는 비극적 결과로 이어진 여간해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한 사측

ydjung_01.jpg광매지부는 그동안 전국언론노조 산별 공동교섭단에 2001년도 임금협상을 위임, 광주매일 사측과 수 차례에 걸쳐 임금협상을 벌였으나 사측은 협상기간 내내 불성실한 교섭으로 일관하다 광매지부가 9월26일 총파업에 돌입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신문발행을 중단하고, 10월6일 직장폐쇄를 거쳐 26일에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끝내 자진 폐업을 단행했다. 모기업의 파산 등 특별한 사유 없이 신문사 스스로가 자진해서 폐업한 것은 지난 1987년 언론 자유화 조치 이후 전국에서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동교섭단은 2001년도 임금협상 과정에서 1997년 임금을 기준으로 민주노총의 가이드라인인 12% 인상안을 제시했다가 사측이 난색을 표하자 올해 물가인상률만을 반영한 3.7% 인상안(년차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개인당 평균 30∼50만원 수준)으로 수정제의 하는 등 협상의 원만한 타결을 위해 최대한 성의를 보였지만 사측은 끝내 기본급 5%인상, 상여금 400%삭감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등 사실상 파업을 유도 내지는 재촉했으며 결국 노사 양측은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폐업이라는 비극적 파국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번 임금협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광주매일 사측의 원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 것 같다. 광주매일은 지난 1997년 IMF 구제금융 시기에 87명의 언론종사들을 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에 대량 해고하여 길거리로 내몰았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며 1998년 한해동안만 상여금 600%와 9월 급여를 반납케 하는 등 노동조합의 무력화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 광매지부는 1997년 이후 2001년까지 급여 및 제수당을 포함한 상여금 13억3천만 원을 회사의 경영정상화와 존속을 위한 고통분담의 대가로 고스란히 반납했었다. 

그 같은 힘의 역전 현상은 필연적으로 저임금 구조의 고착화와 왜곡된 시장구조의 온존을 가져왔으며 지역언론사의 난립이라는 또 다른 병폐로 나타났다. 아울러 자본은 구조조정이라는 칼자루까지 잡음으로써 이들 언론종사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효과만점의 카드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결국 조합원들은 연월차 사용은 차치하더라도 정기휴가 마저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내몰리며 하루살이 신문쟁이로서의 설움을 묵묵히 감당했지만 되돌아오는 건 얄팍해진 임금명세서와 빚 투성이 가계부뿐이었다. 그 몸서리 쳐지던 상황은 매년 임금협상 기간동안 악몽처럼 되풀이되며 언론종사자들의 가슴을 새까맣게 태우면서 2001년까지도 개선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했을 때 사측이 제시했던 기본급 5%인상, 상여금 400%삭감안은 10년차 언론 종사자를 기준으로 연봉 2천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이며, 이들의 자조섞인 표현에 따르면 자신 소유의 자동차만 팔아치운다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구 영세민)의 수혜대상자에 즉각 편입될 수 있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여기에 한 조합원의 말을 빌어 좀 더 현실적인 얘기를 들어보면 그 같은 임금은 딸아이가 여섯 살이 되도록 유치원에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채 허리띠를 졸라맸던 조합원들을 생존권의 벼랑으로 내모는 악질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호남 최대재벌로 성장한 고씨 족벌

광매지부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임금 확보, 언론개혁을 위한 청사진 제시 등을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광매지부의 선택은 살인적인 저임금 구조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언론노동자들의 정당한 제몫찾기 운동이었으며, 지난 10년 동안 자본과 권력에 곡학아세했던 굴종의 필봉을 꺾고 정론직필이라는 현실명제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언론개혁을 담보해 내겠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몸짓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고경주 사장은 광매지부 조합원들의 피맺힌 절규를 끝내 외면한 채 폐업이라는 비수를 들이대고 125명의 사원들을 향한 2차 대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현재 폐업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광주매일은 금광건설로 부를 축적한 창업자 고제철 회장과 아들 고경주 사장이 건설업만으로 경영의 한계를 느껴 설립한 대표적인 기업방패막이 신문이다. 이들은 광주매일 창간 10년 동안 언론을 기업이익을 위해 사유화하는 등 갖은 전횡을 일삼다가 광매지부의 거센 언론개혁 압력에 직면하자 '기업 이윤논리'라는 치졸한 이유를 내세워 '기업가의 사회적인 책임'을 저버리고 신문사를 용도폐기 한 부도덕한 악덕기업주의 대명사로 비난받고 있다. 고씨 일족의 이 같은 행태는 제왕적인 경영형태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회의 공기인 언론사가 자신들의 수족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상식이하의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고씨 족벌은 그동안 광주매일을 방패막이로 송원그룹을 설립하고 1조원이라는 산술적인 한계를 벗어나는 엄청난 부를 축적해왔다. 송원그룹은 광주매일과 토목·건축사업으로 전남도급순위 1위인 금광기업, 대아건설, 금광주택, 금광주택산업, 현대백화점 광주점, 익산 송원백화점, 송원물류, 기호물류, 광주CC, 송원리조트, 송원산업, 금남지하상가, 송원학원 등 무려 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광주 전남의 대표적인 토착재벌로 성장했으며, 줄잡아 자산이 4조원을 상회하는 지역 연고 업체 중 금호 다음의 거대 공룡재벌이다.

지난 1991년 광주매일 창간 당시 고제철 송원그룹 회장은 "신문을 통해 부의 사회환원으로 지역 문화사업 창달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창간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아들인 고경주 사장을 앞세워 자신의 말과는 180도 모순된 작태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그룹 방패막이로 사용했던 광주매일을 문화사업 창달에 기여하기는커녕 적자기업 도태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내세워 교묘하게 폐업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광매지부는 지난 10년의 공과에 대한 지역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준엄한 비판과 애정 어린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시도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독립언론의 길을 천명하고 나섰다. 광매지부는 이를 위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의 완전한 독립, 광주매일 제호의 무상양도, 윤전기를 포함한 신문제작 시설에 대한 무상대여, 광주매일 정상화 기금 출연 등 독립언론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자본과의 새로운 싸움을 조직하고 있다.

폐업을 넘어 독립언론으로

ydjung_02.jpg신문발행중단 60일째를 맞는 광주매일의 폐업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시선은 당사자들의 처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싸늘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들 시민단체들의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태도의 대부분 책임은 광주매일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업보이자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아무 소리도 없이 언론권력을 향유하다 이제 와서 회사가 폐업을 하니까 언론개혁을 하겠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아도 언론사 수가 많은 데 문 닫으면 또 하나의 신문을 만들겠다는 발상 아니냐", "이 지역에서 독립언론이란 게 말처럼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며 비판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같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으며 광매지부가 새겨들어야 할 내용도 많다고 생각된다. 나아가 이들 시민단체의 주장에는 지역민들의 여론이 일정정도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광매지부의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복선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광주매일 사태에 대한 언론종사자와 독자 및 시민사회단체간의 올바른 해법의 중지를 모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며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광매투위는 이 같은 외부의 따끔한 시선을 의식하고 지난 9월26일 총파업에 돌입한 이후 광주매일 10년의 세월을 곱씹으며 혹독한 자기반성과 철저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광매지부 차원의 기자윤리강령 제정, 촌지거부 자정운동, 공정보도를 위한 보도준칙 마련 등 세부일정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참언론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소원했던 언론단체 등 제 시민사회단체들을 망라하여 독립언론추진을 위한 범시민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에 원칙적으로 합의를 마친 상태며, 각계의 의견이 결집되는 대로 구체적인 건설 경로를 밟아 자본과 권력의 예속에서 벗어나 광주 전남 시도민들이 주인이 되는 독립언론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펜 하나'라는 아이디를 가진 조합원의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펜은 빼앗겨도 먹물은 흐른다

펜은 빼앗겨도 먹물은 흐른다/ 자본이 제아무리 힘세다 한들/ 노동자의 가슴속에 도도히 흐르는 먹물을 막을쏘냐/ 우리가 10년 청춘을 쥐어짜 만든 강/ 그 물결에 낡은 배를 수장시키고/ 신새벽의 샛별을 비추이자/ 펜은 빼앗겨도 먹물은 흐른다/ 찻잔을 넘친 물이 어느 새 바다가 돼/ 이렇듯 집채만한 파도로 요동치니/ 거짓과 배신은 난파당하리라/ 먹물은 비록 힘없는 존재이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고 진실의 역사를 쓴다/ 자본이 펼쳐놓은 화선지위에/ 우리들의 큰 이름을 남긴다/ 먹물은 살아서도 먹물이고/ 죽어서도 먹물이다/ 영원히 이 땅을 흐르는 불사조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광주매일지부 http://todaykwangju.wo.to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