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경기보조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노동사회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

admin 0 3,402 2013.05.07 10:10

사계절 내리쬐는 햇볕, 바람을 맞고 하루 종일 걸으면서도 경기보조원은 단정한 용모와 에티켓, 경기규칙에 깊은 이해, 코스 보존·관리, 그리고 내장객의 동반자로서 골프경기가 원할히 진행되도록 성심을 다해 일해왔다. 골프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하고 있지만 고객에게 봉사료를 지급 받는다는 이유로 타구사고와 카트사고가 나도, 성희롱을 당해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정부도 외면하는 경기보조원의 소중한 권리를 찾기 위해 대영 루미나 CC노동조합이 파업 투쟁에 나섰다. 

56명 경기보조원의 집단해고

jhkim_01.jpg경기도 여주의 대영 CC 노동조합이 속한 대영관광개발이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매각되면서 2001년 7월16일 광주 건설업체인 호반리젠시빌이라는 회사로 넘어갔다. 그런데 회사는 인수하자마자, 기존의 노조간부들을 다른 곳으로 발령내고, 노조간부들에게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해산을 노골적으로 강요했다.  

기존 단체협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경기보조원 자율수칙이라는 것을 만들고, 경기보조원들의 근무형태를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9월14일 이 자율수칙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게 하고, 이를 거부하는 조합원들의 출근을 막았다. 급기야 9월21일에는 출근을 막아놓고도 무단결근이라며 경기보조원 56명을 집단 해고했다. 부당전직, 노골적인 노조해산 압력, 노조탈퇴 회유 협박 등에 이어 회사규정의 변경과 경기보조원의 채용 등에 대해 사전에 노조와 합의를 보도록 하고, 징계절차를 상세히 규정한 단체협약까지 무시한 노조탄압에 기가 찰 따름이다. 더구나 출근봉쇄, 노조원협박에 광주광역시에서 동원한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해 여성조합원들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노동자가 아니라고?

근래 보기 드문 탄압에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아니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도 아니라는 행정법원의 8월21일, 9월4일 판결이 그것이다. 아무리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대량으로 해고를 해도 근로자 아니기 때문에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노동위원회에서 각하되고, 설사 노동위원회에서 복직명령을 내려도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면 되기 때문에 마음대로 노조를 탄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회사관계자들도 이렇게 얘기한다. 법원의 판결이 회사의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 56명의 집단해고를 부추기고, 그것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노동부는 작년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들을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 취급해 근로기준법의 일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또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중소사업주나 직업훈련생의 특례적용방식을 준용하는 방안을 전제로 이 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녀평등·고용안정·산업재해 등 모든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데도, 근로기준법의 일부조항만을 적용하려는 것은 해결방안으로서 불충분하다. 아니 불충분하다기보다는 불가능한 정책이다. 준(準)근로자로서 근로기준법의 일부조항을 적용받는다 하더라도 노동조합 결성 등 노동3권의 확보나 성차별, 성희롱의 구제, 산업재해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자영업자로 취급되면 노동자로서의 법적 권리는 아예 없어진다. 노동자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얄팍한 정책만을 검토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근본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대로 경기보조원이 노동자가 아닌가.

경기보조원을 채용할 때 골프장 경기과에서 모집 광고를 하고, 골프장 해당 직원이 참석해 면접을 본다. 그리고 채용 후 길게는 한달 가까이 교육을 받는다. 직원으로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독립자영업자라면, 면접, 교육 등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업무내용인 골프채 전달방법, 화법, 응대요령, 내장객의 불만사항 등을 주1회의 조회를 통해 모두 지시하고 있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결근·지각하거나 진행이 느리면 백대기(무급 당번), 월3회 무단결근자 시말서 제출, 혹은 해고 등의 징계를 받고, 경기운영 위반, 용모 및 복장 위반, 소지품분실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징계를 받는다. 경기기록카드, 경기보조원 일지 등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도 법원은 캐디피를 내장객에게 직접 받고,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고, 회사로부터 구체적으로 업무지시를 받는 것도 아니며 골프장에 필수적인 업무도 아니라는 이유로 경기보조원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나이스 샷 뒤에 감춰진 산업재해

jhkim_02.jpg수많은 골퍼들이 골프장을 찾는다. 더욱 많은 골퍼를 받기 위해 간격 조절을 하지 못할 경우, 경기보조원들이 앞서 경기하는 팀의 골프공을 맞는 경우는 다반사다. 이뿐 아니라 골프백을 싣고 가는 전동카트에 발가락이 끼기도 하고, 무거운 골프백을 들고 다니느라 허리와 다리 등은 근육통과 관절염에 시달린다. 잔디에 살포하는 농약을 매일 들이마시며, 무거운 짐을 들고 온종일 걷고, 바쁠 때는 쉼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해야하는 게 경기보조원이다. 골퍼들로부터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생리불순과 유산, 과로 등을 겪는다는 사실은 경기보조원 산업재해 관련 보고서를 통해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유용태 노동부 장관의 출신지역인데도…

최소한의 기본권 확보마저 재정경제부 등 정부 부처의 반대로 입안조차 안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구조조정이나 노동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하고 강제하는 정부의 기본정책 때문이다. 다시 그 양산된 특수고용 등의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다. 원인인 정책 자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생색내기나 입막음의 논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법원의 보수적 판결조차도 이 정책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호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에 대한 재고임은 분명하다.

유용태 노동부 장관이 취임하자 여주군내 도로 곳곳에는 이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수없이 걸렸다. 그러나 같은 시기 대영골프장 노동자들은 집단해고와 노조탄압,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폭력에 신음해야 했다. 유용태 장관은 출신지역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말로만 "노사안정"을 외치고 있다.

대영 루미나 CC노동조합은 9월14일부터 70여일 동안 출근투쟁을 전개하다 11월23일부터 파업 투쟁을 시작했다. 행정법원의 계속된 보수적 판결과 회사측의 해고 및 폭력에 길거리로 내몰렸지만 노동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100일이 넘는 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