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민영화를 뒤집은 탄자니아

노동사회

실패한 민영화를 뒤집은 탄자니아

편집국 0 4,144 2013.05.29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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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정보
● 수도: 정치수도 도도마(Dodama), 상업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 정부형태: 공화국
● 인구: 3,700만명
● 국가 빈곤선 이하 인구: 36%
● 기대수명: 46세
● 문자해득률: 69%

경제
탄자니아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농업은 탄자니아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산업이며 고용 비중도 가장 높다. 때문에 이 국가는 가뭄이나 홍수 같은 외적인 충격에 극단적으로 취약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쌍무원조단(Bilateral Donors)의 원조는 탄자니아의 높은 GDP 성장률에 기여하지만, 지탱할 수 없는 외채부담은 빈곤감소 노력에 족쇄가 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 탄자니아는 쌍무원조단들로부터 많은 부채를 탕감받았고, 2000년에는 세계은행의 외채과다빈국 채무탕감 프로그램을 수용했다. 탄자니아는 2006년 G8 정상회담 채무협정을 통해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대한 채무를 탕감받을 계획이다.          
● GDP*: 270억 달러
● 1인당 GDP*: 720달러, 평균 GDP 성장률(2000~2005): 6.5% 
● 실업률: 알려지지 않음
● 외채: 75억 달러
● 외채상환부담률: 5%

노동 이슈
ICFTU의 『노동조합기본권 연간조사보고서』(2005)는 탄자니아에서 노동기본권이 심각한 제약에 처해 있으며, 특히 민영화된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단결의 자유와 단체협상의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고, 장시간 노동 및 강제적인 야간교대와 초과근로, 고용불안과 저임금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 보고서는 또한 길고 복잡한 관료적 조건 때문에 이 국가의 모든 부분에서 노동자들이 합법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매우 어려움을 지적한다.     
● ILO 핵심협약 비준: 29-87-98-100-105-111-138-182
● 주요 전국단위 노동조합단체: 탄자니아노동조합총연맹(Trade Union Congress of Tanzania), 잔지바르노동조합총연맹(Zanzibar Trade Union Congress)


국제금융기구와 관계
탄자니아는 2006년 G8 채무계획 하에서 다각적인 채무구제를 받을 예정인 18개 외채과다빈국(HIPC) 중 하나다. 다년간에 걸쳐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좇은 끝에 2001년 HIPC 달성 점수를 획득했다. 세계은행의 탄자니아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는 도합 16억 달러에 이르는 23개 실행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탄자니아는 IMF에게 35억 달러를 빚지고 있다.
- 특별한 표시가 없는 경우 2005년 11월1일 업데이트된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Country Profile and Country Report for Tanzania에서 인용한 자료임. 
- *표시가 된 것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2005에서 인용한 수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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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lee_01.jpg2005년 5월17일 탄자니아 정부는 유케이워터(UK water)가 이끄는 민간 컨소시엄회사 시티워터(City Water)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이 계약은 탄자니아의 상업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의 상수공급 및 하수처리 체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수자원및목축개발부 장관 에드워드 로와사(Edward Lowassa)는 기자들에게 이러한 계약취소가 “형편없는 실적”에 의거했으며, “그 회사의 무능력에 대한 도시거주민들의 지속적인 항의”에 따른 것이라 밝혔다. 시티워터가 상수도 체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했고 또 “저소득층에 대한 상수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기금을 내놓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탄자니아 정부에 따르면 시티워터는 계약체결 직후 2년 동안 85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으나 단지 410만 달러를 내놨을 뿐이었다. 

시티워터로부터 계약을 인수받아 새로운 공기업인 다르에스살람 상하수도기업(DAWASCO)이 만들어졌다. 과거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나 세계은행과 전혀 협의하지 못했던, 시티워터의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탄자니아산업및상업노동조합(TUICO)은 민영화를 중지시킨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이와 관련하여 탄자니아노동조합총연맹(TUCTA)의 하산 라하(Hassan Raha) 사무총장은 DAWASA 계약이 깨진 저변에는 “수많은 약속 파기, 투자와 준비 그리고 수자원사업에 대한 실제적 지식과 경험의 부족” 등이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탄자니아 정부의 결정은 바이워터(Biwater)와 그들의 독일 및 탄자니아 협력업체들이 시민들의 수자원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또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부정, 즉 준자율적 성격의 다르에스살람 상하수도기구(DAWASA)를 민영화하라고 5년이 넘도록 탄자니아 정부를 압박했던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부정을 의미했다. IMF는 외채과다빈곤국 채무경감 방안(HIPC initiative)에 탄자니아를 포함시키는 조건으로 DAWASA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다시 말해, 탄자니아는 외채과다빈곤국 지정을 통해 상당량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대가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그들의 수자원체계를 헐값에 팔아치울 것을 요구받았다.   

배경: 민영화를 요구하는 국제금융기구들의 압박 

1980년대 초부터 탄자니아는 사회주의와 자립경제 노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그 국가의 정부는 자금을 지원한 공여자들로부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라고 압박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9년에는 세계은행이 탄자니아의 새로운 시장 지향적 접근방식을 격찬하기에 이르렀다. 그 격찬의 구체적인 대상은 민간부문 개발을 지원하고 민영화 프로그램을 가속화할 것을 목적으로 4,260만 달러의 차관 수용을 기획한 문서였다. 

세계은행을 좇아 탄자니아는 1994년에서 1998년에 걸쳐 270여개의 공기업들을 매각했다. 교역재 부문의 중소기업들이 대다수였지만, 양조공장이나 담배회사 등 대규모 공기업들도 여기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1996년 후반 탄자니아 정부는 민영화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수자원, 통신, 항구, 철도, 전력 등 주요 공공사업체 및 기반시설들, 그리고 은행과 농업 및 광산업 분야 공기업들을 전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탄자니아 정부가 발표한 계획으로는 이 모든 기업들의 매각이 2000년까지 완료될 것이었다. 

이러한 거대한 민영화를 이행하기 위하여 탄자니아는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PSRC)를 설립하고, “공기업 채무 처리와 종사자 수의 축소에 관한 명확하고 지속적이며 포괄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탄자니아 정부가 그 프로그램들을 수행할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 민영화 계획이 세계은행 말마따나 “상당한 위험성을 수반”했기 때문이다.

음카파(Benjamin William Mkapa) 대통령은 변화를 가속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여당(CCM) 안에 현재의 개혁 노력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증거밖에 찾을 수 없다. 앞으로 3~4년에 걸쳐 진행될 주요 공공사업체와 기반시설 공기업들의 매각 과정은 탄자니아 국민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그리고 기술 및 경영상의 수용성이 매우 제한된 정치적, 규제적 이슈들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정부가 필수적인 개혁을 수행하기에도 불충분한 약속을 해놓고 외국인들에게까지 민간투자를 강요할 위험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곧 민영화에 수반된 어떠한 문제들도 정부의 잘못이지 국제금융기구나 민간투자자들이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국제금융기구들 특유의 화법으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1999년 11월 세계은행은 민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탄자니아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4,590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이 자금의 사업평가서는 DAWASA의 민영화를 통신서비스, 컨테이너 터미널, 해상서비스, 발전 등의 민영화와 더불어 탄자니아의 민간부분 프로그램의 핵심요소로 규정했다. 세계은행은 “(차관 임대계약을 통해) DAWASA의 구조조정과 민영화, 즉 산업건설, 계약준비, 요금 및 부문 규제의 준비, 우선재건투자 등을 원조”하기로 약속했다.  
    
그 사업평가서에 따르면, 이렇게 세계은행 자금의 기술적 지원을 받는 핵심적인 부문 중 하나는 “관련 이해당사자 단체들, 특히 『스와힐리』(Swahili) 신문의 언론인 등 여론형성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공적인 교육과 의식고양 프로그램”이었다. 세계은행 자금은 또한 “정부와 민간부문 사이에서 핵심정책과 규제 및 제도개혁의 내용이 정의될 수 있도록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원조했다. 그 개혁의 목적은 “민간투자와 외국인직접투자(FDI) 증대를 위한 경영환경 개선”이었다.

세계은행은 외국 투자자들 사이에 퍼져있는 탄자니아의 국가이미지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절차를 밟고 투자자들에 대한 동등처우를 보장하여, 국가위험성에 대한 투자자자들의 선입견을 점차적으로 감소시켜 나가기 위한”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탄자니아는 “대폭 개선된, 그리고 투자자 우호적인 국가이미지의 해외확산을 더욱 촉진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은행은 탄자니아 정부가 “경쟁입찰을 통해 수준 높고 경험 많은 국제 투자전문가들과 계약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세계은행의 사업평가서 안에는 노동조합의 투입 및 활동중지에 대한 규정도 들어 있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9년 전에는 탄자니아 정부의 민영화 프로그램에서 “노동은 공식적으로 대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에는 전임 노동부 장관뿐만 아니라 탄자니아노동조합총연맹의 위원장도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에 자리를 같이 했다. 또한 세계은행은 “급료삭감 지침을 새롭게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노동과 협의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계은행은 그 급료삭감 시스템이 “사회·경제적 비용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당시의 급료를 “폭넓게 다양화하도록 이끌 것이며, 또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도 했다. (아래 언급되기도 하지만 실제 수자원이 민영화될 당시 노동조합과의 협의과정은 없었다.)

더욱 중요하게, 세계은행은 “유동성과 강한 노조”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탄자니아 정부가 정한 법정 최저임금을 넘어서 훨씬 더 많은 급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급료는 8천 달러에서 1만4천 달러에 걸쳐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일부 노동조합들이 “공기업들의 민영화 및 구조조정에 필수적인” 급료삭감에 반발하여 “저항하도록 이끌었고,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다.” 대기업들이 민영화될 때 세계은행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상기 급료 범위에서 제일 위쪽을 차지한 사람들이 더 적은 급료삭감을 감당한다면, 급료삭감 과정은 매우 높은, 어쩌면 감당하기조차 불가능한 재정비용을 야기할지도 모른다.” 이에 따라 4,590만 달러 차관 중 일부는 급료삭감의 비용을 평가하는 위원회에서 사용됐다. 세계은행은 노동조합진영이 이러한 논의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999년 IMF는 탄자니아에 대한 융자조건에 DAWASA의 민영화 요구를 추가했다. 탄자니아 정부는 1999년 7월13일 IMF와 맺은 양해각서에서, “대형사업체의 민영화는 복잡한 과정이다”라고 언급하면서도, 어찌됐든 1999년 7월 말 잠재입찰자들과 수자원사업체 민영화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11월까지는 계약을 체결하기로 약속했다. 양해각서에는 “그 사이에 다른 핵심 준국영기업들의 매각 준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IMF는 약 6개월 뒤에는 외채과다빈곤국 채무경감 방안(HIPC initiative) 아래 진행되는 탄자니아의 채무구제 승인조건에서도 DAWASA의 민영화를 추가했다. 즉, 탄자니아 정부가 보증해야 하는 개혁정책 중에는 “민영회사들에게 DAWASA의 자산을 양도하는 컨세션 계약을 체결”할 것과 “사업체 실적 개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 웹사이트에 기록된 공식적인 민영화의 역사에 따르면 탄자니아 정부가 DAWASA에 민간부문이 참여할 것을 처음으로 요청한 것은 1997년이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어떤 협정도 맺어지지 않았는데, “주로 그 프로젝트에 요구되는 자금을 투자하거나 위험부담을 짊어질 준비가 된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2000년이 다 되도록 어떤 협정도 맺어지지 않았고 탄자니아는 HIPC 협정 조건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탄자니아의 채권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수용했고 어떤 식으로든 채무구제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국제금융기구들의 압박이 완화됐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액션에이드(ActionAid International)가 발간한 탄자니아 수자원 민영화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에서는 그러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융자조건을 기록한 문서들에서 컨세션 계약의 체결과 관련된 내용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대신에 좀 더 완화된 형태의 민영화가 1억 4,300만 달러짜리 다르에스살람 상·하수도프로젝트(DWSSP)를 통해 압박되었다. DWSSP에는 민영회사와의 임대계약(lease) 체결과 관련된 내용이 하부구성요소로서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전통적인 융자조건 프로그램과는 구별됐지만, 어쨌든 융자조건으로서 성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자원분야에는 자금이 필요했고, 세계은행이 민간부분의 참여가 이뤄지는 사업과 관련해서만 대출을 해주리라는 것은 탄자니아 정부에게 너무도 명백했다. 
실패한 수자원관리체계에 직면해 있던 탄자니아 정부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결국 세계은행이 제시하는 조건을 수용하고 자금을 제공받았다.
 

이로써 세계은행-IMF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1999년 세계은행이 탄자니아에 제공한 2,520만 달러의 차관 중 130만 달러는 영국에 있는 아담스미스연구소(Adam Smith Institute)의 소유분이었다. 이 연구소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아담스미스연구소는 “민간부문 참여를 위한 명확한 정책틀을 개발해 각국 정부를 원조하는 데 상당한 경험을 가진” 자유시장 싱크탱크다. 또한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이라크, 르완다, 가이아나, 네팔, 마케도니아 등 수많은 국가들에게 민영화 지원을 제공했으며, 탄자니아에서는 “대통령직속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에서 수석 커뮤니케이션 자문역”을 했다. 이들이 탄자니아에서 수행한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것들 중에는 “세계은행 최초의 민영화 랩 뮤직비디오(rap-video)를 생산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02년 세계은행의 도움을 받아 탄자니아 정부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수자원 컨세션 계약은 어떻게 결정되었는가    

jhlee_02.jpgDAWASA는 1981년 준자율적 공기업으로서 만들어졌으며, 다르에스살람과 해안지역 일부에 상·하수도 서비스 제공을 책임졌다. 그 회사는 약 800킬로미터의 수자원 운송망을 운영했다. DAWASA는 모범적인 사업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파손과 정비불량, 투자 부족, 심각한 낭비, 형편없는 서비스 보급률”을 특징으로 하는 업체였다. 1991년 탄자니아 정부는 새로운 수자원정책을 개발하고 수자원 사업체들에게 지급되던 보조금을 없애버렸다. 그 기업들에서 “점차적으로 자기금융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2003년이 되었을 당시 수자원시스템은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를 액션에이드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수자원시스템은 그 도시의 인구성장에 걸맞게 체계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그리고 2003년이 되자 인구 250만명의 도시에서 오직 9만8천여 가구에만 직결급수를 받을 수 있었다. 청구서가 발송되는 상수도는 겨우 26퍼센트였고, 60퍼센트는 구멍으로 새나가고, 13퍼센트 이상의 물은 무단사용, 불법 수도구멍, 체납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연결된 수돗물조차 부정기적으로만 받을 수 있었고 수질이 형편없었다. 소득이 낮은 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가구가 수돗물을 전혀 받지 못했고, 간이매점이나 상인, 또는 자신의 이웃에게 원래 가격의 세 배 이상을 주고 구입하는 물에 의존했다.  
             
공공서비스가 사실상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에 정부의 용인 하에 소규모 민간회사들이 도시 용수의 상당량을 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직속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집으로 물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물 컨테이너를 나르는 개인 운송수단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도시의 특징은 20리터 들이 컨테이너를 주문제작 수레에 싣고, 사람들의 집으로 물을 운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수많은 상인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 정부가 얼마나 낭패감을 느끼는지 강조하려는 듯, 이 문장은 정부 관료가 내뱉은 것처럼 보이는 다음과 같은 충고로 이어진다. “왜 우리가 이러한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는 DAWASA의 목적에 복무하는 행동이 아니다. 나는 이 문장이 삭제돼야 한다고 제안할 것이다.”)

1997년이 되자 정부는 10년 임대(lease) 방식으로 DAWASA에 민간부문 참여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개혁위원회는 그 계약과 관련하여, “DAWASA가 미화 1억 2천만 달러를 당장 필요로 하는 다르에스살람의 투자 프로그램 대부분을 책임질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첫 번째 입찰과정이 1997년에 열렸고, 4개 회사가 접수했지만 어떤 회사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리고 1999년 5월에 개혁위원회는 유나이티드워터(United Water)와 템스워터(Thames Water)라는 영국의 두 회사에게 민간참여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입찰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다른 회사 노섬브리아(Northumbria)도 거래에서 철수했다. 입찰 경쟁에는 영국의 바이워터(Biwater PLC), 프랑스의 소어(Saur)와 비벤디(Vivendi) 등 세 개의 회사가 남았다. 그러나 입찰자들 중 아무도 탄자니아 정부가 요구하는 돈을 제공할 수 없었고, 결국 개혁위원회는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1년 탄자니아 국회는 DAWASA의 민영화를 위해 제정된 법률을 통과시켰다. 어느 탄자니아 노동조합 간부에 따르면 이 법은 “다르에스살람 계획지구의 규제 틀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다르에스살람 상하수도기구의 기능, 권한, 면허” 등을 규정했다. 그리고 이 법안의 제7조에 따르면, “DAWASA는 자신과 다른 사업자 사이에 맺어진 컨세션 계약 또는 협정에 명기된 바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법률에 의해 소유권이 부여되어 그 권한을 행사하고 기능을 수행하는 사업자를 지정할 수 있다.” 

2002년이 되자 정부는 “민영회사가 광고, 요금수금, 정기보수 등을 책임지도록 하는 ‘운영임대계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DAWASA는 자산 소유권을 유지하면서도 부흥하며 네트워크를 확장하게 될 것이었다.” 당시 단 하나의 입찰자가 나섰다. 바이워터와 독일의 가우프(Gauff)와 탄자니아의 슈퍼돌(Superdoll) 등이 연합해서 만든 벤처회사 시티워터였다. 이 회사가 2002년 12월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민영화 거래는 거의 모든 국제금융기구 자본들에게, 궁극적으로 탄자니아 정부에게도 색다른 것이었다. 이 1억 6,45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에는 세계은행, 유럽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이 출자한 1억 4,300만 달러가 지원됐다. DAWASA도 1,250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원했다. 시티워터는 그 회사에 화몰 송장을 보내도 좋다고 확신을 주는 데 필요한, 컴퓨터와 미터기 등의 “이동자산(removable assets)” 준비를 위해 850만 달러를 투자하길 요구받았을 뿐이었다. 액션에이드는 “종합적으로 시티워터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이지도, 공공부문의 위험성을 제거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불공평하게 치우쳐진 거래를 두고 어느 아프리카 언론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상무부가 이 프로젝트를 두고 ‘탄자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 기회’라고 묘사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이워터로의 사업 이양은 2003년 8월1일 이뤄졌다. 2년 후 그 계약의 폐기를 공표하게 될 에드워드 로와사 수자원및목축개발부 장관은 그 당시에는 정부를 변호했다. 그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 특히 “길고 복잡한 과정에서 최대한의 협조를 제공한 DAWASA의 직원들과 그들의 노동조합 TUICO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정말 협의과정을 거쳤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라하 TUCTA 사무총장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노동조합은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못했다. 우리가 탄자니아연방공화국의 정부와 사업자들 사이에서 맺어진 양해각서를 요구할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졌던 정보는 그 기업체의 구조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세계은행에 대해서 라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직접적인 이권이 무엇인지 그 이전에 정보를 제공받지도, 이 공공사업체의 민영화와 관련하여 그들과 만나 논의할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로와사 장관은 사업 이양과 관련한 연설에서 “소비자들이 상수도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특히 수도요금을 제 때에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동시에 “시티워터는 정확하고 적절한 수도요금을 매길 것이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시티워터의 최고경영자 그래함 고로드(Graham Gorrod)는 어느 연설에서 자기 회사의 목적이 “야심차지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DAWASA가 넘겨준 기존 시스템과 관련하여 시티워터가 실질적인 과제들을 처리하는 동안 소비자들께서 인내해주길” 요구했다. 그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적절한 요금의 상수공급 및 하수처리 체계”에 대한 기대를 “우리들 스스로가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충분히 진지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시티워터의 문제점들

jhlee_03.jpgDAWASA 리스계약을 운영하기로 선택된 회사 바이워터는, 6천8백만여 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영국 최상위 재력가 아드리안 화이트(Adrian White)가 지배주주인 상하수도 기업이다. 이 기업은 “물은 우리의 비즈니스, 순수하고 완전하다”라는 모토 아래, “1989년 만들어진 이후 줄곧 영국의 물 사유화로 돈을 벌고 있다.” 그 회사는 물과 같은 귀중한 자원을 보관하는 기관치고는 질 나쁜 이력을 갖고 있다. 이 회사의 비행은 액션에이드와 워싱턴에 위치한 비정부기구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이 작성한 보고서에 잘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1999년 바이워터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짐바브웨의 수자원 프로젝트에서 철수한 적이 있다. 어느 바이워터 임원은 그 물 민영화 프로젝트에 내재한 모순을 강조하면서 퉁명스럽게 회사 입장을 설명했다. 그 임원이 짐바브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그들이 합당한 기회를 얻을 것이라 납득될 필요가 있”는데 “이 프로젝트들은 사회적 관점에서는 실용적이지만, 불행하게도 민간부문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례들도 있다. 바이워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수자원 컨세션 계약에서 약속했던 투자를 하지 않는 대신, “충분한 수익을 못 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상수도 요금을 세 배로 올리고 접근기회를 확장하길 거부했다. 멕시코에서는 하수도와 관계된 “운영상의 어려움과 재정적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세계은행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인도에서 이 회사는 상수도에 너무 많은 요금을 매긴 후 재무상의 불법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 퇴출당했다. 필리핀에서는 상수도 계약을 맺은 후 요금을 7배나 인상시켰다.

이러한 기록들로 · 미루어보면 바이워터가 탄자니아 컨세션 계약에서 어깃장을 놓은 것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티워터가 DAWASA를 운영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던 2002년, 영국의 비정부기구 액션에이드는 이 회사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수도요금은 계속 인상됐던 반면 수질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고발했다. 이러한 결과는 “원하는 바가 전혀 아니었다.” 액션에이드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민영화 프로그램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상수도 접근기회 확장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 불균등하고 비정기적인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요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밤에만 수도가 나온다든가 일주일에 몇 시간만 나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 인터뷰를 통해 확보한 증거들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민영화 필요성에 대한 공개 토론도 한번 하지 않고서 계속해서 수도요금을 인상시키고 있다는 데 분통을 터뜨렸다. 서비스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고, 시티워터가 소비자들이 내는 비용에서 과도한 이익을 챙기고 생각한다. … 액션에이드는 시티워터가 이따금씩만 수도가 나오는 가구에도 지속적으로 비용을 청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사람들이 때때로 두 배 이상의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즉 나오지도 않는 수돗물에 대해서도 요금을 내고 거기에다가 훨씬 비싼 가격으로 자영업자들에게 물을 사서 써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지역 시민운동가의 표현을 빌자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시티워터 수금원들이 “개한테 쫓겨나거나 칼로 위협을 당할” 수준이었다. 요금지불을 거부한 가구들은 곧 더 많은 비용을 청구 받거나 단수 위협을 받았다. 심지어 요금을 내는 사람들도 종종 단수가 되곤 했다. 시티워터가 수도를 불법연결한 사람들에게서 요금을 정산 받으려고 지역 전체의 수도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DAWASA와 시티워터의 계약이 종료된 지 두 달 후인 2005년 6월, 케냐의 『동아프리카』(East African) 신문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ricewaterhouseCoopers)가 작성한 시티워터에 관한 신뢰할 만한 보고서 복사본을 입수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는 민영화와 관련하여 국제금융기구 및 각국 정부들에게 빈번하게 컨설팅을 제공해온 회사다. “탄자니아 수도서비스 민영화 시도의 좌초에 대한 소수의 독립적인 회계감사 중 하나”인 이 보고서는 액션에이드의 비판적인 연구물보다도 훨씬 강하게 악평한다. 동아프리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의 보고서는 “정당들이 불분명한 입장을 취했고, 또 외국인 투자자들이 리스계약을 수행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시나리오 속에서 움직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그 보고서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는 다르에스살람 수도서비스가 운영된 후 11개월이 넘도록, 약품처리작업 그리고 저수지 또는 수도 본관에 고정 용적측정기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생산 또는 사용된 수돗물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 “임대계약 1년 동안 공급된 실제 수돗물 양의 결산에 근거한, 신뢰할 수 있는 유량정보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감사보고서는 시티워터가 운영 첫해에만 500만 달러를 기여하기로 약속했음에도 그 프로젝트 전체에 단지 390만 달러만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시티워터와 노동조합

그러나 이러한 민영화는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중요한 측면이 있었다. 바로 DAWASA와 상업및산업노동조합(TUICO) 사이에 인원절감이 없도록 협정이 맺어진 것이다. TUCTA의 라하는 이 협정이 “치열한 전투 끝에” 작성됐다고 상기했다. 그의 보고서는 상세하게 인용할 만하다. 

(1999년 9월) DAWASA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TUICO가 DAWASA 경영진과의 특별 단체협정에 서명했다. 뒤이어 이렇게 서명된 단체협정이 관련 법률에 따라 산업 법원(Industrial Court)에 등록됐음을 보증하는 법적 절차가 진행됐다. 긴 관료주의적인 절차에 따라 단체협정문은 먼저 노동부의 노동감독위원(Labor Commissioner)에게 갔다가, 곧 정밀조사와 비평을 위해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의 민영화된 준국영기업 관리자들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이에 앞서 재무부 등록관의 승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문서는 산업 법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다시 노동부로 되돌려져야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편파성과 부패가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DAWASA 민영화라는 숨은 동기 속에서 재무부와 연합한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 정부 관료들은 비밀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그 과정에 개입하여, DAWASA 경영진과 TUICO 사이 맺어진 단체협정이 등록되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DAWASA를 민간 투자자들에게 임대하는 데 피치를 올리면서 말이다.

노동조합이 재빠르게 대응했다. 

책임감 있는 노조인 TUICO는 이러한 민영화 거래를 눈치 채고, DAWASA 경영진과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에 대항하여 조합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 사건을 법원(High Court No. 405)에 기소하는 등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 주요 요구는 소송 결과가 나오고 법원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가 DAWASA의 민영화와 인원감축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 법원이 사건을 심리하기에 앞서 원고인 TUICO와 피고들이 타협을 통해 우호적으로 사건을 매듭지을 수 있도록 시간이 주어졌다. … 그러나 양 당사자들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사건은 결국 법원으로 되돌아왔고, 심리 날짜는 2003년 3월로 정해졌다.

라하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정해진 심리 날짜가 되기도 전인 2002년 12월16일, 준국영부문개혁위원회와 DAWASA 경영진은 공영매체와 민간매체들을 동원하여 DAWASA가 바이워터/가우프(Biwater/Gauff)에게 공식적으로 임대되거나 소유이전을 할 것이며, 모든 종업원들은 자동적으로 새로운 투자자에게 인계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TUICO 중앙 및 지역 간부들은 2002년 12월18일 이러한 사기극에 대항하는 전략을 세우고 새로운 운동을 조직하기 위하여 변호사를 대동하고 회의를 가졌다. 노조간부들은 12월19일 수자원및목축개발부 장관과 면담하기 위해 소집됐다. 그들의 논의 초점은 특별 단체협정의 불안한 운명과 집단적인 인원삭감 문제에 맞춰져 있었다. 정부와 TUICO는 12월28일 마침내 협정에 도달했다. 양해각서가 준비됐고, 정부와 TUICO 양자가 서명했다. 이후 이 각서는 등록을 위해 법원(High Court)에 접수됐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와 최후의 이익을 지켜낸 것이다.

이처럼 노동조합들의 특별한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투자자는 모든 DAWASA 종업원들의 고용을 모두 인수했고, 한 명도 감원되지 않았다.”     

탄자니아 정부의 컨세션 계약 종료 결정

2005년 5월17일 음파카 대통령이 주최한 각료회의는 시티워터와의 계약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시티워터가 새 수도관을 전혀 설치하지 않았고, 약속했던 자본도 투자하지 않았으며, 수질은 더 나빠졌고, 수익이 줄어들었다고 비난했다. 

다음날 이해관계자 회의에서, TUICO 시티워터지부 음토로(Juma Mtoro) 사무총장은 로와사 수자원및목축개발부 장관에게 노동자들은 정부의 결정을 지지하지만, 미래 노동조건과 이익에 대한 보다 확실한 보장을 원한다고 말했다. 음토로는 “우리는 시티워터와 계약을 종료한 정부의 방침을 지지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새로운 고용주와의 맺게 될 용역계약에 대해서도 정부가 확증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와사 장관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로와사 장관은 당시 청중석에 있던 시티워터 임원진들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봐 시티워터의 관리자들, 나는 당신들이 실직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좋겠어. 여긴 독립적인 국가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짓누르진 못해.”     

그해 6월, 탄자니아 정부는 바이워터 임원진들을 구류한 후 국외로 추방했다. 몇 주 후에 바이워터는 계약위반으로 탄자니아 정부를 런던에 있는 국제중재재판소에 고소했다. 3백만 달러를 지불받아야 하고, 탄자니아 정부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위협을 받았다는 거였다. 그러나 시티워터의 탄자니아 내부 파트너 슈퍼돌(Superdoll Trailers Manufacturing Ltd.)은 이 소송에 참여하길 거부했다. 슈퍼돌은 시티워터의 지분 중 49퍼센트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그 탄자니아 회사는 다른 불만을 터뜨렸다. “슈퍼돌은 시티워터의 최대주주임에도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컨소시엄에 참여한 외국 파트너들로부터 소외돼 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3년 8월 시티워터가 출범한 이래 슈퍼돌은 시티워터의 회계감사 장부를 받지도 못했고, “이사회 전에 예산안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시티워터에서 이뤄진) 대부분의 결정은, 그 대표자들이 컨소시엄에서도 상위 임원직을 맡고 있는 바이워터가 내렸다.”

노동자들의 고용이 유지되고 서비스가 개선되다

탄자니아 노동운동은 상수도기업의 탈민영화를 옹호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양해각서에 탄자니아 정부가 서명을 하기 직전까지도, 민영화 과정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를 얻기 위해 인민들을 동원하지 못했다”다는 게, TUCTA의 라하 사무총장이 설명하는 그 이유다. 가장 우선적으로 민영화에 저항한 단체는, “민간경영자의 약속을 반대한다”는 탄자니아 젠더 네트워킹 프로그램(TGNP)이었다. 라하는 “또한 상수도 소비자인 일반 인민들의 외침이 영향력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수동적으로만 움직였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영화 기간 동안 노동조합의 핵심 이슈는 고용안전, 임금상승, 노동조건 등이었다. 노동조합의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민영화 이후에 인원 감축이 없을 거라 보장받았고, 민영화 기간 동안에도 어떤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 이는 그 자체로 승리다. 

또한 현재 새로운 수자원기업인 DASASCO에서 제공되는 소비자 서비스가 현저하게 개선됐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탄자니아의 『익스프레스』(The Express) 신문에 따르면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렸던 도시거주민 중 상당수가 지금은 약간이나마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그 신문이 인용한 DASASCO 최고경영자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몇 년 동안 수돗물이 전혀 나오지 않았던 일부 지역에서도 공급이 한층 개선됐다.” 이러한 변화는 2005년 7월에 시작된, “DAWASCO의 100일 구조계획 전략(100 Days Rescue Plan Strategy)”에 따른 결과였다. 

그 후 7월부터 9월 사이에 DAWASCO의 기술자들은 전체 10,373개 중 9,927개의 누수문제를 처리했고, 168명의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수도를 연결했다. 또한 DAWASCO는 무료장거리 직통전화를 설치해 “수도 시설물을 파괴하거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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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