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지는 지구, 노동운동은 끓는 물속 개구리?

노동사회

더워지는 지구, 노동운동은 끓는 물속 개구리?

편집국 0 4,028 2013.05.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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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 능동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둘째, 비상 재난에 대비하는 일이다. 생활 속에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보자. 냉·난방 최소화, 대중교통 이용, 나무 심기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 손자들도 개구리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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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 관계자의 글이 아니다. 『매일경제』의 과학기술부장이 쓴 칼럼이다. 지구 온난화에 반대하는 이른바 ‘회의주의자’의 글을 받아쓰기에 바빴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국제연합(UN)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지난 4월6일 발표한 4차 보고서는 이처럼 충격이 컸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 뺨치는 보고서

ygkang_01.jpgIPCC의 4차 보고서의 내용은 할리우드 재난 영화를 뺨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2050년께 지구 온도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1.5~2.5도 상승하면 지구상의 동·식물 가운데 20~30%가 멸종 위기에 처한다. 2080년께 3도 이상 올라가면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이 멸종 위기에 처한다.

인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해 홍수 위험이 커진다. 3도가 올라가면 전 세계 해안의 30% 이상이 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전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홍수 위협에 노출된다. 농작물 수확의 경우 동남아시아와 같은 저위도 지역은 가뭄으로 곡물 생산이 최대 30%가 준다.

사실 이런 식의 경고는 그간 수차례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인간 활동으로 대기 중으로 방출된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를 데우고 있다는 사실을 상식처럼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간 사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회의자의자라 불렸던 과학자와 그들을 최대한 활용한 기업은 이런 경고를 환경단체의 정치선전으로 치부했다.

이번 4차 보고서는 이런 그간의 반응을 의식한 듯 인간이 소비한 화석연료 탓에 지구 온난화가 초래했을 가능성은 “90% 이상”으로 “아주 높다”고 강조했다. 6년 전 3차 보고서에서 인간 활동이 원인일 가능성이 “66% 정도”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한 것과 비교해보면 큰 차이다. 물론 지구 온난화 역시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unequivocal)”고 강조했다.

이번 발표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수십 년의 논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매일경제신문 과학기술부장도 이런 사정을 의식한 탓인지 다음과 같이 당혹스러움을 토로했다. “그런데 어쩌랴. 전 세계 130여개국의 내로라하는 과학자 약 2천5백여명이 참여해 6년에 걸쳐 집대성한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렇게 과학계에서 거의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정작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지금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역사 속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불과 수십 년 후에 지구가 결딴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왔는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태평할 뿐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다들 2050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협박에는 귀를 솔깃하면서도 정작 그 국민연금으로 살아가야 할 터전이 송두리째 흔들릴지 모른다는 경고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2050년이면 당장 지금의 20~30대가 60~70대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을 때인데 말이다.

불편한 진실, 누가 외면하나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는 사람들이 이렇게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이유를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기업과 그들과 유착한 정치인의 탓으로 돌렸다. 그들이 정부의 정책과 언론의 보도를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요리하는지는 몇 가지 예만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세계적인 과학 잡지 『사이언스』의 편집장 도널드 케네디는 “과학계에서 지구 온난화만큼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한 주제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공언했다. 『네이처』, 『사이언스』에 발표됐던 지구 온난화에 관한 논문 중에서 918편(10%)을 무작위로 선택해 살펴보니, 지구 온난화에 이견을 제기한 것은 단 1편도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에 지구 온난화를 의심하는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종종 접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언론에는 지구 온난화에 대해 의심을 드러낸 기사가 무려 절반이 넘는다. 그럼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구 온난화가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한 과학자는 다 거짓말을 한 것일까?

진실은 이렇다. 한때 국내외의 많은 언론은 110명의 ‘세계적인 대기과학자’가 지구 온난화에 반대하는 선언문(「라이프치히 선언문」)을 발표했다며 크게 보도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선언문에 서명을 한 110명의 명단을 확인해보니 대기과학자는 단 1명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심지어 서명자 가운데 25명은 텔레비전 기상캐스터였다.

그러나 이 엉터리 선언문은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국의 상·하원에도 권위 있는 대기과학자의 의견이라며 제출됐다. 바로 정치인에게 막대한 정치 자금을 대는 석유, 석탄 기업이 일부 과학자를 내세워 이런 선언문을 발표하게 한 후 언론인·정치인이 비중 있게 취급하도록 손을 쓴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2001년 6년간 미국석유협회와 함께 지구 온난화 주장을 흠집 내는 캠페인을 벌여온 필립 쿠니를 환경담당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쿠니는 4년이 넘도록 지구 온난화의 부정적인 면이 언급된 보고가 올라오기만 하면 삭제하곤 했다.

결국 이런 행동은 내부의 양심적인 고발자에 의해 언론에 폭로됐다. 결국 쿠니는 환경담당 보좌관 자리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는 사임과 동시에 곧바로 미국의 석유기업 엑손모빌로 출근했다. 그가 환경담당 보좌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부시는 계속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범지구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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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노무현대통령에게 기후재앙 공헌상을 시상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의 환경파괴는 곧 노동자들의 삶의 환경 파괴이기도 하다. 노동운동도 이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 출처 : 환경운동연합 ]

무책임한 미국을 따르는 한국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정보는 실제보다 과장됐기는커녕 축소됐을 가능성이 크다. IPCC의 4차 보고서가 발표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 4차 보고서는 예정됐던 시간보다 약 두 시간이 지난 후 발표됐다. 미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이 보고서의 내용이 너무 ‘세다’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IPCC가 정책 입안자를 위한 21쪽 분량의 요약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지구 온난화로 초래될 물 부족, 농작물 생산량 감소 비율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소비한 화석연료로 지구 온난화가 초래됐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과학자의 경고 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실제로 이들의 반발로 IPCC의 4차 보고서는 처음 내용과 비교했을 때 위험이 닥치는 시기, 피해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이 누락된 채 공개됐다. 잘 알다시피 미국, 중국은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고,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는 석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대표적인 산유국이다.

보고서가 발표되자마자 미국, 중국이 보인 반응은 더욱 가관이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어떤 규제도 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석유, 석탄 기업을 안심시켰다. 중국 역시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계획이지만 선진국에 비해 자본, 기술이 열세”라며 지구 온난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한국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은 2005년 2월부터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적용 대상국에서 빠졌다는 핑계를 대며 각국 정부의 눈치만 살필 뿐 지구 온난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4억4800만톤으로 세계 10위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면 지난 1990년에서 2004년 사이에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무려 104.6%가 증가했다. 1990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유럽연합은 불과 1.6% 증가했고, 일본은 14.8% 증가한 데 그쳤다. 심지어 미국조차 19.8% 증가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대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부터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의 1차 감축 기간이 시작된다. 한국은 2013년부터 시작되는 2차 감축 기간에 적용 대상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이에 대비한 준비에 소홀했던 한국으로서는 전 산업에 걸쳐서 큰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노동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에서 정한 만큼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그 국가는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미처 대비를 못한 기업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사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기업은 문을 닫거나, 경영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칼날은 노동자를 향할 게 뻔하다.

그렇다고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한 이 전 지구적 노력을 거부할 수도 없다. 한국 역시 수십 년간 지구 환경에 피해를 준 가해자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우리와 다음 세대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는 물이 끓는지도 모르고 죽는다. 자, 노동운동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