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메이데이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하여

노동사회

21세기 초 메이데이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하여

편집국 0 3,743 2013.05.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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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제 노동일은 않을 테야
일해 봐도 보람도 없는 그런 일은 않을 테야
겨우 연명할 만큼 주면서 생각할 틈도 안 주다니 
진절머리가 난다네
우리도 햇볕을 보고 싶다네 꽃 냄새도 맡아보고 싶다네
하나님이 내려주신 축복인데 우린들 아니 볼 수 없다네
우리는 여덟 시간만 일하려네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점포에서
우리는 힘을 길러 왔다네.
우리 이제 여덟 시간만 일하세
여덟 시간은 휴식하고 남은 여덟 시간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세

 『미국노동운동비사-알려지지 않은 얘기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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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미국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부른 노래다.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구두를 신고 8시간 노동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노래했다. 마침내 5월1일 토요일 미국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대대적인 파업 시위를 벌였다. 전국적으로 19만명이 파업을 벌이고 34만명의 노동자가 시위에 참가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 무장경찰, 민병대, 구사대의 감시와 공포분위기를 압도하였고, 시위는 평화로운 축제로 마쳤다. 

그러나 경찰은 맥코믹 농기계공장에 들어가 파업 중인 노동자 6명을 총으로 쏘아 살해한 데 이어, 다음날 헤이마켓 광장에서의 항의 집회에 폭탄을 던지고 무자비한 살육전을 감행하였다. 그리고 8명의 노동운동가들을 폭동죄로 체포하여 1년여의 재판 끝에 그중 4명을 사형시켜 버렸다. 3년 후 7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는 1890년 5월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고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117년째 되는 메이데이의 출발이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지난한 노동시간 단축의 여정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노동운동의 역사이다.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이 잉여이윤 축적의 원천이고, 이를 개선 혁파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에 이르는 길임을 자각한 노동자들이 끊임없는 저항투쟁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19세기 전반기에 하루 13시간에서 16시간이던 노동시간은 그 후 1914년까지 약 100년 동안 조금씩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19세기 중반 12시간 노동제가 확립되었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10시간 노동제가 대체로 실현되었다. 이 모든 것은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의 결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폭발적인 노동운동의 발전과 함께 8시간 노동제가 실현되었다. 세계대공황을 겪은 후인 1935년에는 국제노동기구(ILO) 제19차 총회에서 주40시간제 조약이 채택되었고, 프랑스 인민정부는 주40시간제를 도입하였다. 대량실업사태에 직면하여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삶의 조건 향상만이 아니라 실업 해소방안의 하나로 인식된 결과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 기간 중 대폭적인 노동시간 연장의 쓴 경험을 토대로 제2차대전이 끝나자 노동자들은 다시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힘차게 밀고 나갔다. 그리하여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주40시간제가 일반화하였고 35시간제도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과 같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나 제3세계의 노동자들은 장시간노동에 오래 시달려 왔고, 지금도 생존비 이하의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조건 속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쟁취투쟁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었다. 그것은 임금을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노동과 휴식과 건강과 문화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생활의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거의 200년 동안 때로는 기업주에 대항하여 때로는 국가에 대항하여 제도정립을 요구하며 싸워왔던 것이다. 이 투쟁은 과잉노동력을 악용하여 한사코 임금인상을 거부한 기업주들과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자각과 결단이 작용한 결과기도 하였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일그러진 한국 노동자의 삶 

우리나라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역사도 꽤나 길어, 이미 192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22년 10월 결성된 조선노동연맹회는 다음 해 5월1일 서울 장충단 공원에서 1만여명이 참가하는 메이데이 집회시위를 계획하였다. 이 행사는 일제의 엄중한 탄압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양화공, 양말공, 인쇄공 등은 휴업을 단행하였고 큰 공장 노동자들도 단체 또는 개인별로 휴가를 Tm는 예가 많았다. 이후 많은 파업투쟁에서 노동시간 단축 또는 8시간 노동제 요구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대 이후 전쟁체제로 들어가면서 오히려 노동시간을 훨씬 더 늘렸다. 

해방 후 결성된 전평의 일반행동강령은 8시간 노동제의 요구를 구체화하였다. 전평은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라”, “7일 1휴제와 연 1개월간의 유급휴가제를 실시하라”, “부인노동자의 산전 산후 2개월간 유급휴가제를 실시하라”, “유해·위험작업은 7시간제를 실시하라”고 요구하였다. 이 노동시간 강령은 1953년 처음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반영되었다. 비록 단서조항이 많아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었지만, 노동시간과 휴게 휴일의 범위와 기준을 정했다는 데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법으로 1일 8시간 주48시간제(유해작업은 1일 6시간 - 주 36시간, 13세 이상 16세 미만 1일 7시간 - 주 42시간)가 도입되었고 주휴, 월차유급휴가, 연차유급휴가, 연소자, 여성의 야간·휴일근로 및 갱내근로 금지, 여성 유급생리휴가 월 1일, 산전 산후 60일의 유급휴가, 1일 2회 각 30분의 수유시간 등이 규정되었다. 물론 이 규정들은 감독관청도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사실상 유명무실하였다. 따라서 노동시간은 기업주 결정에 맡겨져 있었다. 

이런 경향은 공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곧 1963년 주 47.5시간(제조업)이 1969년에는 57.2시간으로 늘어나고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후 1974년까지 50시간대로 낮아지다가 1977년 이후 다시 늘기 시작하여 1980년대 중반에는 55시간까지 연장됐다. 이것도 통계상의 기록일 뿐 실제는 잔업, 철야, 특근을 통한 장시간노동이 강요되었다. 이는 외국차관에 저임금 장시간노동을 결합하여 수출한다는 개발독재시대 경제성장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은 시키는 대로 품삯은 주는 대로”식의 노사관계에서 취약한 노동조합운동의 힘으로는 이를 저지하기가 어려웠고 오로지 임금인상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1960, 70년대 노동자 요구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렇듯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은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 기록에 훈장처럼 따라 다녔다.  

노동시간 단축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은 역시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었다. 법률에는 여전히 1일 8시간, 주 48시간이고 당사자 사이에 합의하면 주에 12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통계상 노동시간은 1987년 54시간대에서 매년 낮아져 1990년에는 50시간대가 허물어지고 2003년에는 제도상 주40시간, 주5일제 시대 개막을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올 2월에는 드디어 주40시간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고 노동부는 보고하고 있다.  

1920년대부터 치면 80여년 만에 1일 8시간 주5일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제도에 정해진 대로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어 근로자 전체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기업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도입되었고 생리휴가 무급화와 연월차휴가 축소가 노동시간 단축의 대가로 규정되었다는 점에서, 노동자 삶의 조건보다는 경영의 편의에 더 비중이 실렸다는 의구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연간으로 치면 2,000시간을 훨씬 웃돌아 선진국보다 몇 백 시간이나 더 긴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여전히 자랑(?)하고 있는 형편이다. 짧아진 노동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경쟁력 강화를 빙자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일상화한 구조조정의 위협과 함께 노동자들의 기를 짓누르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장의 모습이다.

불안한 고용… 21세기 메이데이에 짙게 드리운 그늘

메이데이로 시작되는 우리나라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같은 좋다는 날은 다 들어 있다. 올해는 북한 노동자대표단이 남한에 내려와 사상 최초로 공동 노동절 행사를 벌이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 이채로운 분위기다. 어쩌면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같이 해결해야 하는 우리 노동운동의 과제를 재확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올 메이데이도 어두운 그늘이 꽤나 짙어 보인다. 노동사회에 밝고 희망찬 면보다는 어둡고 낙심스러운 구석이 더 많고, 가까운 시일 안에 쉬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잘 서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비애가 크다. 생존비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저임금에 제멋대로의 계약기간이 늘상 공포로 다가와 있고 사회보험 적용률은 개선될 가망이 안 보인다. 어쩌면 비정규직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사치스러운 꿈이다. 고용만 안정되면 몇 시간씩 더 일해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소영세기업의 이른바 3D업종에서 주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정규직은 안전한가? 취업전문업체 잡코리아와 비즈몬이 조사한 “고용안정성 만족도”에 의하면 두명 중 한명 이상이 현재의 고용상태에 불안을 느낀다고 했다. 작년보다 늘었다는 것이고, 그것도 월급도 많고 잘 나간다는 업종에서, 또 한창 일해야 할 40대가 제일 심하다고 한다. 세계 12대 경제대국에서 산업재해는 한해에 9만 건 가까이 일어나고 연간 2,400여명, 하루 6.8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 그것도 50인 미만의 중소 영세업체가 73.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노동자 보호 불감증’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었다는 법의 시행령 안에는 정규직 전환 가능직종을 좁히거나 파견대상업무를 대폭 늘리는 따위의 모순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조사에 의하면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1,085개의 공공기관 가운데 61.6%가 노동관계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단체는 노동정책이 노동자 편향이라고 불만을 터뜨리고 비정규노동법에 합의한 경총은 법망을 피해갈 ‘묘안’을 회원사들에게 제시하는 판국이다. 그리고는 “법과 원칙”을 외친다. 

이런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대응해야 할 노동조합은 10%대의 조직률을 부여잡고 재도약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현실의 장벽은 너무도 험난해 실천이 더디기만 하다. 비정규직노동자와의 연대는 고사하고 양대 노총의 연대마저도 붕괴된 채로, 노동자는 하나라고 목청만 높이고 있다.  

차별과 분단 극복이 21세기 초 노동절의 목표

얼마 전 한미 FTA에 반대하여 산화한 허세욱 열사의 추모식에서 송경동 시인은 이렇게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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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는 안다.
허세욱 당신을 죽인 것은 부패한 저들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당신을 죽였다. 진정한 민중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면서도 
무능한 우리의 운동이 당신을 죽였고 
한사람이 거리에서 피워올린 작은 불꽃을 
수만개 수십만개 수백만개 
분노의 불꽃으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가난함이 당신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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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노동자와 그 가족이면서 노동자의 죽음을 눈뜨고 보아야 하는 현실은 다시 되풀이될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대중 스스로의 자각이 있어야 한다. 특히 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날의 메이데이 역사는 노동자의 권리란 스스로의 자각과 단결과 연대투쟁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19, 20세기 노동자들이 숙련공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반숙련 미숙련 노동자의 조직으로 바꾸어내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벌였다면, 21세기 초 우리의 노동절은 차별과 분단을 극복하는 데 뜻을 두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약한 노동자, 곧 비정규직, 중소영세기업, 장애자, 외국인 노동자문제 해결에 본디의 뜻을 두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노동조합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산별노조의 건설도 정치세력화의 확장도, 결국은 광범한 힘없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개선하고 보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사하고 청명한 계절의 여왕 오월의 첫날, 기념집회 시위도 뜻이 있고 마라톤대회도 흥겹겠지만, 어두운 시대를 털어낼 수 있는 보다 희망차고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함으로써 10년째 울분과 우울함이 겹치는 메이데이를 마감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