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을 ‘거대한 소수’로 조직하기 위하여

노동사회

비정규직을 ‘거대한 소수’로 조직하기 위하여

편집국 0 3,234 2013.05.29 08:22

국회는 입법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또한 국회는 ‘쪽수’로 승부하는 곳이며 어떤 의안이든 과반수 통과가 되어야 입법되는 곳이다. 논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17대 국회도 합리적 상식과 논리가 별로 통하지 않는 곳임을 비정규개악 통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 기조는 첫째, 진짜 보수 대 진짜 진보의 구도 지향, 둘째, 거대한 소수정당 전략 구사 등이다.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농민·서민 등 사회적 약자의 이해를 대변하고 의제형성 - 의제 여론화 - 입법발의 등의 입법화 경로를 통해 국회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소수정당으로 이해당사자의 ‘조직화’가 먼저 필요하고 원외가 원내를 압박하는 형국을 조성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은 공청회에서부터 이해당사자의 직접 발언(청원 포함), 사진전, 전문가 초청토론회, 국가인권위 권고안 도출, 증언대회, 거리선전전 등 갖은 노력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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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표결처리 된 후, 본회의장을 빠져 나온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출처 : 진보정치 ]

비정규개악법 투쟁, 정책대안과 대중투쟁의 너무 먼 사이 

이러한 의정활동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840만명이 넘는 비정규노동자의 처지와 조건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비정규직 권리보장법안을 발의하였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차별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방향 아래 2004년 7월1일 민주노동당이 제출한 전략적 입법안이었다. 이후 비정규직권리보장법안은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안에 맞서는 법적투쟁의 근거였으며, 2년 6개월 이상을 싸워오면서 민주노동당 의원들 전체의 행동통일을 가져오는 전략적 방침이 되었다.

그러나 투쟁은 승리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비정규법안을 최우선적인 의정활동으로 삼고, 점거, 의사일정 무시, 농성 등을 이어가며 정말 적극적 자세로 임했지만 정부의 개악안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비정규법안투쟁은 과정 내내 힘겨운 싸움이었다. 직접적 당사자인, 조직화되지 않은 대다수 비정규직들이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비정규악법 개악저지투쟁은 향후 비정규직이 더욱 확산되는 과정에서나 그 대중적 평가를 기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체들의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지난 시기 비정규투쟁을 간단하게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내투쟁의 성과와 한계는 명백했다. 성과는 2년 6개월의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전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문제가 국민들 사이에서 사회양극화의 주원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계도 명확하다. 어쨌든 결국 비정규개악안이 통과된 것이다. 그러나 당은 무기력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기간제 사유제한 전선을 중심으로 이후 투쟁을 조직해나가야 한다. 비정규개악안이 정규직화가 아니라 계약해지와 파견근로의 전환 등을 통한 만성적인 비정규직 확산을 불러올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이러한 동의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2년 6개월여의 투쟁과정은 대규모 군중투쟁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비정규권리보장법안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둘째, 개악을 전면저지하지 못하고 ‘차악’을 만들기 위해 대화와 투쟁을 병행했다며 민주노동당 의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일부에 있다. 이러한 비판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둘 다 갖고 있다. 먼저 긍정성은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민중진영이 파견한 ‘전사’들이며 이 전사들에게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철저함이 요구된다는 점을 좀 더 확고하게 인식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부정성은 역동적인 대중투쟁의 밀접한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소수 의원만으로는 힘의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대중조직과 민주노동당 간의 상호 질책은 면피주의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공동의 책임과 공동의 반성과 공동의 지향을 중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가운데 진심어린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7월1일부터 시행되는 비정규개악법은 결국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시킬 것이다. 이미 이런 법을 전제로 명백한 불법파견 사업장에서 합법도급 판정이 내려져 사용자가 처벌받지 않게 되었다. 또 2007년 7월1일 이전에 정규직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생각하는 핵심업무만 제외하고는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용안정투쟁이 광범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간제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경우 법 시행일 이전에 광범위한 계약해지 등이 벌어지고 있다. 파견대상업무를 대폭 확대하는 시행으로 인해 현행 13만명의 파견 노동자 수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조직화를 위해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거대한 소수전략을 뒷받침할 비정규직 조직화 

2005년 2월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중앙당에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상시적으로 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운동본부는 곧바로 2월 임시국회에서 즈음해서 비정규권리보장법안의 실질적인 내용을 선전하는 사진전을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긴장된 자세로 여론전 및 의제화사업을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특히 원내·외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사업을 진행했다는 점, 또 정책연구원까지 함께하여 매주 한 차례 회의를 진행하고 국회일정에 발 빠르게 대응을 해나간 점은 느슨한 당 체계로 보면 타 부서의 모범이 될 만했다.

문제는 비정규직 조직화였다. 원내쟁점 형성 → 사회적 이슈화 → 대중투쟁 촉발 → 원내 압박이라는 ‘거대한 소수전략’이 가능하려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비정규노동자의 조직화가 필수조건이어야 하나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정규직 옹호 정당”, “민주노총만의 당”이라는 악의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모순의 피해자가 모순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비정규직문제의 해결주체는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은 노조가 아니다. 당이 취할 태도와 방향은 조직화에 일조하고 이를 지지 엄호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본격화될 산별노조 시대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동자라면 누구나 산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실업자, 예비노동자까지도 가입이 가능해지는 시대다. 그러나 현재 기간제 노동자의 조직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 하청노동자를 제외하면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조직화는 결국 노조의 몫이다. 노동조합 총연맹은 계급내부 연대를 기본으로 하는 조직화 방식을 채택하고 산별지역본부와 광역지역본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업종에 상관없이 300인 이하 사업장을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전국일반노조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중기적으로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를 위해 예산의 1/3 이상을 투입해서 노동자 조직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중앙과 지역사회를 네트워크화하고 부동산, 보험 등 비정규직을 둘러싼 생활·사회 의제를 적극 개발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이것이 조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2007년 민주노동당 사업방향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이 코앞에 닥친 이상 민주노동당의 노동사업 역시 기본토대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계급투표를 조직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에 초점이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선과 총선 시 사용할 정책적 무기, 즉 노동 및 비정규직 의제화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비용 산출과 재정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전국적인 비정규운동 네트워크를 형성해 활동고자 한다. 당의 230개 지역위원회들이 노동주체를 발굴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작년에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서울 동부, 안산시흥, 광주, 부산 등지의 거점비정규센터를 확대·강화하여 비정규직 조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정규직문제 관련 지역사회 개입전략을 마련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문제에 대처해 나가고 있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은 지역사회에서는 지역위원회 차원의 선전사업을 강화해 나가고, 중앙차원에서는 산별교섭 관련 법·제도 개선사업을 민주노총 등과 함께 강화하여 산별운동에 기여하고자 한다. 또한 청년실업비정규포럼 등을 구성하고 강화하여 비정규직문제, 고용 및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당의 정책·정치적 개입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아래는 이러한 사업방향에 따른 구체적인 사업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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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적인 노동사업 체계 확립

전국 230개 지역위원회 중 90여 곳의 지역위원회가 노동사업 주체가 있거나 노동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이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미약한 조직체계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역위원회는 시군구까지 전국적으로 존재하여, 1인 시위를 하더라도 동시에 전국적 사안에 대해 실천이 가능하고 다양한 지역현안에 대해 지역개입전략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따라서 전 지역위원회에 노동사업 단위가 구성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완료할 것이다. 서울의 경우 지역위원회 상근자 동지들이 300인 이하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하는 서울일반노조에 가입하여 일상적 상담활동을 통해 조직화에 기여하고 있다.

주요 거점센터 사업 강화와 확대

2005년 비상대책위원회 시절부터 당의 발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지역위원회가 어떤 행보로 당의 전략적 지지층이 되어야 할 비정규직의 마음을 획득하느냐’였다. 이에 따라 작년 9월 지역과 지역위원회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선발하여 서울 동부, 안산·시흥, 부산, 광주 등에서 지역활동가들과 중앙당이 공동으로 비정규노동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모든 사업을 추진단 차원에서 공동 집행하고 지역실정에 걸맞은 비정규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이 네 곳에서 지역비정규노동센터의 모범을 세워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추진 중이다.

비정규센터들은 현재 대학 4학년 취업준비금 실태조사, 감시단속적 노동자 실태조사, 비정규노동자 생활 및 사회정치의식 실태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영세사업장노동자 건강권 사업 등과 각종 비정규관련 지역토론회, 대언론 여론화사업, 최저임금 등에 대한 교육선전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당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지역비정규센터와 공동으로  비정규직 차별신고 접수 및 상담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단일번호인 ‘1577-2260’ 상담시스템을 구축하여 진행 중이다.


비정규 의제화사업 강화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과 함께 사실상 산업고용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구조에서 대기업 중심의 원·하청 수직계열화는 비정규직 양산의 중요한 원인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 마련은 민주노동당에게도 무척 중요한 과제다. 또한 심각한 청년실업과 함께 일자리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임을 감안할 때 청년실업및 고용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민주노동당은 산업정책모임과 청년실업비정규포럼 등을 구성하여 정책적 대안을 마련 중에 있다.

청(소)년(예비노동자) 노동권교육 사업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으로 될 수밖에 없는 24세 이하 청소년·청년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하여 비정규운동의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중장기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여기에는 전국노동인권교육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관계하고 있다. 설립 초기에는 20대의 지지율이 제일 높았던 민주노동당은 이제는 그러하지 못하다. 학생운동의 부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결국 당이 앞으로 노동시장에 편입될 청년층에 대한 사업을 기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청년들의 지지를 확고히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인권교육사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정책을 개발하여 대중운동과 결합시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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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