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격변의 시기 대중의 역동성을 조직하라!

노동사회

예정된 격변의 시기 대중의 역동성을 조직하라!

편집국 0 3,206 2013.05.29 08:21

비정규법안 및 노사관계 로드맵 강행통과,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등 2006년 말과 2007년 초는 전선 후퇴와 패배의 시기였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후퇴와 패배주의라는 암울한 기운은 당분간 민주노조운동 전반을 옭아매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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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4월 있었던 덤프연대 총파업 결의대회. ▶ 출처 : 전비연 ]

민주노조운동에 드리운 패배주의 먹구름

작금의 절박한 상황은 지난 운동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반성 그리고 이후의 전망을 만들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투쟁을 민주노조운동에 요구하고 있으며, 그 핵심과제는 다름 아닌 ‘비정규직의 조직화’이다. 만일 이러한 조직화 노력으로 다시 한 번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폭발적 진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후퇴와 패배주의를 걷어내는 특별한 변수를 우리 손에 거머쥐게 될 것이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이하 ‘전비연’)는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전국적 공동투쟁을 위한 비정규노조들의 자발적 연대체이다. 따라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전문영역으로 하는 기구라기보다 공동투쟁·연대투쟁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특히 조직화와 동시에 파업투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비연 소속 노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투쟁들 대다수가 조직화와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운동의 흐름을 보더라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전비연 자체가 2003년부터 다시 분출하기 시작한 비정규직의 대중적 조직화와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조직화와 비정규투쟁이 어떤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비정규운동과 투쟁 및 조직화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려울 때 살펴보는 비정규노조 조직화의 역사

1998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결성을 필두로 비정규직투쟁은 재능교사투쟁, 이랜드투쟁, 방송사비정규투쟁, 한국통신계약직투쟁, 레미콘노동자투쟁, 캐리어사내하청투쟁 등을 거치면서 1999~2001년에 최고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정규직노조운동을 태동시켰던 치열한 투쟁들(한국통신계약직, 캐리어사내하청 등)이 2001년경 대부분 장렬하게 패배한 가운데, 2002년에는 이렇다 할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의 흐름들이 거의 진행되지 않는 소강상태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투쟁의 장렬한 패배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99~2001년에 벌어진 수많은 비정규투쟁은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비정규직 문제해결 방안’ 논란이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인 노무현 후보조차도 “차별시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비정규직문제를 선거의 주요 이슈로 제시해야만 했다.

비록 2002년에 조직적인 저항과 투쟁이 소강상태에 빠지기는 했지만, 격렬하게 타오른 비정규직투쟁은 해당 주체들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이미 사회 전체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IMF 공황 이후 비정규직의 급격한 확산, 그리고 극심한 차별과 억압이 진행되자 사회 저변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2001년까지 타오른 비정규투쟁은 수많은 변혁적 활동가들에게 깊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기존 투쟁의 한계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 속에서, 한편으로는 직접 비정규직현장을 조직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또 한편으로는 정규직 중심 운동 내부에서 비정규투쟁에 대한 지원과 연대를 강화하려는 흐름이 준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2002년의 비정규직노조운동은 외형적으로는 소강상태를 보였지만, 사회적 조건 성숙이나 주체적 준비라는 측면에서 수면 아래에서의 발전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정규대중의 분출을 담아낼 그릇으로 탄생한 ‘전비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대중들의 능동성과 자발성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이 수많은 활동가들의 내적 준비와 맞아떨어지면서 2003년은 비정규직노동자의 생존권보장, 권리보장 요구가 다시금 대규모적으로 표출되거나 조직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투쟁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 아래 전국의 물류를 마비시키며 떠오른 화물연대의 5월 파업투쟁이었다. 화물운송기사들은 화물연대로 결집하여 생존권보장, 권리보장 요구를 내걸고 2차례의 파업투쟁을 전개했고, 레미콘운전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투쟁이 지속되었다.

또한 2003년은 비정규직노동자투쟁에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바로 대공장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대중적인 노동조합 조직화에 속속 성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식칼테러’라는 극악한 자본의 공격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민주노조가 서있는 자동차산업 내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대중적 폭발과 진출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2003년 3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식칼테러 사건을 계기로 아산사내하청지회가 결성되었고, 이 흐름은 곧바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으로 넘어와 7월에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가 결성되었다. 다시 울산의 다른 대공장인 현대중공업에서 8월에 사내하청노조가 결성되었고, 그해 11월에는 광주의 화학섬유사업장인 금호타이어에 비정규직노조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계속 2005년 말까지 계속 이어져서, 하이닉스매그나칩, 동희오토, GM대우창원, 기아자동차, 현대하이스코, 기륭전자, 라파즈한라 등지에서 사내하청노조가 결성되었다.

또한 화물연대의 거대한 투쟁에 영감을 받은 덤프트럭 기사들이 2004년부터 대중적 조직화를 시도하여 ‘덤프연대’를 결성하였다. 덤프연대는 2005년에 3차례 총파업을 벌이면서 파업 때마다 조직력을 2배, 3배로 키워, 현재 1만여명의 조합원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렇듯 2002년 소강상태에 빠졌던 비정규투쟁은 2003년부터 다시 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계기 중에 하나는 새롭게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미조직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비정규노조운동뿐만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에 활력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화물연대의 투쟁이 전체 비정규운동 성장의 신호탄이었다면, 같은 해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진 사내하청노조의 출현은 2004년부터 시작된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전국투쟁’을 예고했다. 2004년부터 결성을 준비해온 덤프연대는 2005년에 진행된 특수고용노동자 조직화 및 총력투쟁을 예고한 것이었다.

한편, 2003~2005년에 대중적으로 터져 나온 비정규투쟁은 이제 전국적 연대틀을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2004년 1월에 준비위원회를 결성한 이후 정부 비정규악법에 맞선 과감한 선도적 투쟁과 총파업투쟁을 거치며 2005년 10월에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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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연은 작년 4월 ‘전국동시다발 비정규노동자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사진은 KTX승무원지부 노조의 결의대회 모습. ▶출처 : 전비연 ]

뼈저린 반성과 함께 돌아보는 2006년 투쟁

그러나 2006년의 경우 예년과 달리 신규 비정규노조 조직화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기존 조직된 비정규노조들이 처절한 투쟁을 이어갔다. 2006년 주요 투쟁을 살펴보면 거의 다수가 이미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2~3년 이상 활동해온 노조들의 투쟁이다. 이는 2004년과 2005년 비정규투쟁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2003~2005년 비정규노조들의 분출과 치열한 투쟁에도 엄청난 탄압과 피해를 입는 상황이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을 위축시켜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다. 물론 현장조직력을 일정하게 갖추고 있는 몇몇 노조들의 경우 과감한 대중투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성과 원청 사용자성을 개별 자본가로부터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전체 투쟁전선에서 그러한 성과보다 깨지고 밀리는 양상이 더 크게 보였던 것이다.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단순히 비정규노조운동만을 보고 내린 평가가 아니다. 이는 민주노총과 각급 산별연맹의 투쟁 전반을 바라보는 시각 속에서 나오는 태도라고 볼 수 있기에 좀 더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는 특히 2005년 말 강승규 씨 독직사건으로 인한 민주노조운동의 위상 추락도 한몫을 하였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상승과 하강에 신규 민주노조의 조직화가 하나의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2006년 투쟁은 초기부터 전체 전선이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비정규투쟁 또한 비슷한 양상이었는데, 몇몇 성과에도 불구하고 2006년 비정규노조들의 전국적 공동투쟁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6년 비정규노조운동의 분명한 한계는 비정규노조들이 자신의 문제에 너무 몰입하면서 비슷한 영역의 공동투쟁 이상으로 단결과 연대가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는 현상은 조건과 처지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적 한계로 지적되는 ‘조합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비정규노조들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과제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비연 스스로가 전국적 공동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뼈저린 반성을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비정규악법 및 노사관계로드맵의 강행통과 국면에서 제대로 된 저지투쟁이나 항의규탄투쟁조차 조직하지 못한 부분은 더욱 뼈아픈 반성을 요구한다 할 것이다.

현장투쟁의 양상도 유사했는데, 무엇보다 2003~2005년에 이곳저곳에서 벌어진 ‘역동성’과 ‘능동성’을 2006년에는 발견하기 매우 어려웠다. 투쟁의 치열함과 처절함은 과거와 다를 바 없었지만, 대다수의 투쟁은 현장지도부의 사전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2006년은 대중의 수동성이 증가하고 있었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신규 조직화가 주춤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양상의 직접적인 결과가 최근 민주노총이 보이고 있는 비정규법안 관련 투쟁기조의 혼란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법과 관련한 입장을 “비정규악법 전면재개정”으로 공식화하였다. 어느 누가 보아도 “비정규악법 폐기”라는 슬로건에 비해 분명하지 않은 구호이다. 물론 비정규악법 폐기가 단시일 안에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원칙’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전술 구사에서 지속적으로 혼선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본법 자체가 문제인데 시행령 논의에 개입한다는 명분으로 공식 의사결정단위도 거치지 않고 노동부가 소집한 노사정 정책협의회에 들어간 문제, 특수고용 관련 노사정 TFT 제안을 덜컥 받아오는 과정 등은 모두 이러한 원칙과 목표를 분명히 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히 정파적인 문제가 아니며, 민주노조운동 전반이 후퇴와 패배주의의 수렁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정규직 고립화’의 사회심리적 토대를 쌓을 비정규직법

올해 비정규 관련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7월1일부터 시행될 비정규법안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규직과 직접고용 중심의 고용형태를 비정규직과 간접고용·특수고용 중심의 고용형태로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놓는 ‘매개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얼마나 더 늘어날까’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비정규법의 시행은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비정규직 고용을 공격하고 악화시킴으로써, 현재 존재하는 정규직 고용을 매우 ‘특별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토대를 만들 것이다. 즉 비정규법의 시행으로 인해 정권과 자본은 정규직 고용을 공격할 수 있는 사회심리적 토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법안이 악법이며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할 것이라는 사실은 운동진영 내에서 잘 알려져 있기에 반복하지 않겠다. 그런데 7월1일이 다가오면서 점차 이 법안이 어떠한 파괴적 효과를 낼 것인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5월 중에 발표할 예정인데, 이는 7월1일 시행될 법을 공공부문에서는 5월로 앞당겨서 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공공기관비정규직대책추진위원회’가 작성한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 인사관리 표준안”(이하 ‘표준안’)이라는 문서를 보면, 정부가 이 법을 통해 어떠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문서는 ‘무기계약’과 ‘정규직’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임금과 관련하여 “공공기관 무기계약 및 기간제 근로자 등의 임금은 유사·동종의 시장임금 수준을 고려하여”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강행 통과시킨 비정규법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시정” 원칙마저 깨는 것이다. 비정규악법에 의거해 보더라도 “유사·동종의 정규직 임금”에 맞추어야 함에도 “시장임금”을 반영하여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근무실적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무기계약,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근무실적을 매년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근무실적을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답은 표준안이 제시하고 있는 ‘표준근로계약서’에서 찾을 수 있다. 표준근로계약서에는 아예 “해고사유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에 “근무실적 평가 결과 계속해서 2회 이상 최하위 평정점을 받은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근로계약기간중이라도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즉, 무기계약은 정규직이 아닐 뿐 아니라 매년 근무실적을 평가하여 계약을 갱신하는 비정규직노동자임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로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무기계약 및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 근무실적을 평가하겠다는 것이지만, 종국에는 정규직에게까지 확대하려 함이 명확하다. 조직력이 취약한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들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정규직노동자들을 포위하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조건과 처지가 하락하여 ‘고용안정’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무너진 틈을 타 사회여론을 동원하여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제압하려는 것이다. 최근 ‘공무원 3% 퇴출제도’나 철도공사가 시행하려는 ‘ERP 제도’, 교사노동자들에게 적용하려는 ‘교원평가제도’와 연관시켜보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또는 비정규법안이 최종적으로 공격하려는 대상이 정규직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법안은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고용형태를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정규직고용을 ‘무기계약’, 즉 매년 근무실적 평가를 통해 계약을 갱신하는 불안한 고용형태로 전락시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문제를 ‘비정규직문제’로 치부하는 한, 민주노조운동은 결코 승리를 약속할 수 없다. 현재 비정규직 전반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공격에 정규직노동자들이 손을 놓고 있으면, 나중에 정규직에 대한 공격이 가시화될 때 사회적 여론 악화와 고립의 강도는 더할 나위 없이 클 것이다. 따라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정규직 노동자들이 굳건한 ‘계급적 연대’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비정규직을 위해서 벌이는 투쟁이 아니라 정규직 ‘스스로를’ 위해서 벌여야 하는 전초전이다.

비정규법이 야기할 파괴와 분노, 조직화 그물로 담아내야

이처럼 안타깝게도 악법폐기와 비정규노동 기본권쟁취에 앞장서야 할 주체들의 조건은 녹록치 않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또 “인간은 해결 가능한 문제만을 제기한다”는 말처럼, 아무리 어려워 보이고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상황에서도 이것을 풀어나갈 실마리는 주어지는 법이다. 지금 그 실마리는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조들(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을 중심으로 사고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지만, 90%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노동자들의 경우를 상정해보면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조직노동자들의 경우, 2005~2006년에 거의 조직되지 않고 답보상태에 있던 상황이 종료되고 새롭게 조직화의 물결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조직화의 계기는 비정규악법의 시행이 몰고 올 파국적 결과와, 특수고용 노동자성을 부정하려는 정부의 움직임, 그리고 2009년 생산물량 변동 및 제조업 자본의 외주화·정리해고 공세에 있다. 다시 말해 ‘산별노조 시대’가 열리면 미조직노동자들 조직화가 용이할 것이라는 기대, 혹은 ‘전략조직화 사업’이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비정규악법과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부정, 정리해고·외주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직접적인 조직화 동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악법의 시행도 되기 전에 자본가들은 서둘러 비정규직에 대한 집단 계약해지, 외주용역화를 자행하고 있다. 직접적인 피해 앞에 서게 된 비정규노동자들이 신규노조를 설립하거나 기존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노사발전재단에서, 도시철도공사에서, 각 학교에서,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기관에서, 병원에서, 유통서비스부문에서, 금융부문에서, 기간제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가입이 쇄도하고 있다.

“비정규법안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인줄 알았는데 전부 거짓말이었다.” 이는 새롭게 노조를 결성하거나 가입한 기간제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얘기이다. 즉, 기간제노동자들은 이제 법으로는 자신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지킬 수 없음을 점점 자각해가고 있으며,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노동조합 뿐”이라는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법안이 악법임에는 틀림없으나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장은 이 악법의 수준에조차 미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체적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기간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폭발적으로 조직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별시정제도나 무기계약 전환이 실효성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이것조차도 이뤄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올라오는 흐름이 잡히고 있다. 

물론 이는 외부 요인, 특히 ‘개악법적 요소’에 의한 조직화 동인이며 따라서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악법은 앞으로 점점 파괴적인 효과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쌓여가는 분노가 대중적으로 터져 나오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조직화 계기로서 특수고용 노동자성과 주간연속 2교대제

한편, 지난 7년간 특수고용 노동조합들이 투쟁으로 요구하고 있는 ‘노동3권 보장’과 관련한 법률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주체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한 토대 위에 ‘유사 2권’이라는 기만적인 대책을 내놓고 있다. 노동3권 법제화 관련해서는 정치권과 정부는 법안 심의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특수고용 관련 입법이 쟁점이 되는 과정에서 굴삭기,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 건설과 서비스 부문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 특수고용노조들의 조직화 기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반적인 노조운동의 퇴조 속에서 이러한 ‘새로운 대중’들의 진출과 조직화는 유의미한 발걸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하나씩 하나씩 조직화로 뚫고 올라오는 특수고용 대중들의 움직임은 단지 집회나 투쟁대오에 머릿수 몇 개를 보태는 수준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반에 진정으로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다. 특히 올해에도 지난해 연말과 같이 특수고용노동조합들이 총력투쟁으로 떨쳐 일어설 경우, 이는 2007년 비정규직문제 중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제조업의 상황 또한 조직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특히 주요 완성차 대기업 노사가 합의한 “2009년 주간연속 2교대제”는 2009년까지 비정규직 사내하청에 대한 지속적인 정리해고와 외주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GM대우차와 기아자동차에서 외주화로 인한 파업투쟁이 벌어진 바 있으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지난해부터 수백명씩 하청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쫓아내고 있다.

언론에서는 GM과 포드가 재정위기를 겪고 있어서 도요타가 이들을 추월했으며 현대·기아차도 상승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기에 불과하다.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거대 자본 GM과 포드의 위기는 다름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에서 과잉생산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위기는 도요타와 현대·기아차도 피해갈 수 없다. 2009년에 실시될 주간연속 2교대제는, 노동 입장에서 보면 노동시간의 단축과 야간노동의 폐절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자본 입장에서 보면 다가올 생산량 감축에 따른 고용조정과 구조조정을 실시하기 위한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현재 외주화와 정리해고는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2009년까지 지속적으로 사내하청을 내보내고 나면 주간연속 2교대제 실시에 맞추어 정규직에게도 대대적인 구조조정 공세가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방패막이’라 여겼던 사내하청이 모두 쫓겨난 후에는, 자본의 사냥감은 정규직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1998년 1만 명 정리해고 사태 이전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대대적인 사내하청 정리해고가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정규직에 대한 공격 이전에 사내하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벌어질 것이며, 이는 다시 한 번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분출과 진출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격변, 대중의 역동성으로 뚫는다!   

이러한 조건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비정규법안을 무력화시키자”는 민주노총의 계획은 그리 실효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산별노조 건설이 전선 후퇴와 패배의 시기에 벌어졌다는 점, 정규직 중심의 운동이 움츠러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아내야 한다’는 막연한 관념이 아니다. 반대로 자본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그 계기를 활용하여 조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비정규법안이 촉진하게 될 외주·용역화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기존 임금 120만원 중 용역회사에 20만원을 헌납하는 방식의 임금삭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현장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며 이것이 조직화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돌리는 방식의 임금삭감이 중소영세사업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역시 억울함과 분노가 솟구쳐오를 때마다 노조 결성이 시도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법과 비정규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용역화와 더불어 특수고용화 전략이 자주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모든 비용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이 동반되기에 이 역시 조직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계기는 올해뿐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7월1일부터 시행되는 비정규법이 가져올 파국적 효과로 인해 2007~2009년은 ‘격변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기점마다 조직화의 역학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기나긴 ‘수동성’의 시대가 지나가고 점차 대중의 ‘능동성’이 발휘되고 있다는 신호들이 현장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에 GM대우차 부평공장에서 DYT라는 업체의 외주화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멈추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이 투쟁을 주도한 것은 대중들 스스로였다. 2006년 답보상태에 빠져 있던 노조결성의 흐름이 다시 한 번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변으로부터 꿈틀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광주시청과 울산과학대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대중투쟁의 역동성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이제 ‘전략조직화’는 특수고용/사내하청/공공서비스/유통서비스 등 4~5개의 조직화 가능성이 높은 주요 업종과 직군을 ‘찍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위에서 열거한 여러 분출점으로부터 대중들 스스로 노조가입 혹은 결성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포착할 때에만 신규 조직화의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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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1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