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엘리트 간 타협을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화’를 위하여

노동사회

보수엘리트 간 타협을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화’를 위하여

편집국 0 3,735 2013.05.29 08:21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에 힘입어 대통령직선제를 포함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된 듯하다.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문민정부도 수립되었고 수평적인 정권교체도 실현됐다. 2002년 대선에서는 제도정치권의 변두리에서 맴돌던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데 이어, 2004년 총선에서는 40여년만에 좌파정당의 원내진출을 실현시켰다.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 하에서도 심심찮게 터졌던 관권개입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정쟁만 일삼던 국회도 때때로 극단적인 대립과 대치가 없지 않지만 과거에 비하면 ‘정상화’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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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년 민주화항쟁은 민주화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87년 6월 29일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의 모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지금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문제인가?

이는 프리덤 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발전수준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권리 및 시민적 권리 보장 수준(1등급=거의 완전 보장, 7등급=거의 보장되지 않음)에서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는 4~5등급을 받아 “제한적 자유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후 양 척도에서 꾸준히 개선이 이루어져 1993년 문민정부 수립 이후에는 각각 2등급을 받아 “자유국가”로 분류되었고, 2005년에는 시민적 권리 측면에서는 여전히 2등급을 받았으나 정치적 권리 측면에서 1등급을 받았다. 현재 전체적인 평가에서 일본과 같은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인식변화도 비슷하다. 1990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6공화국 출범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얼마나 민주화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46.7%만이 크게(5.0%) 또는 다소(41.7%) 민주화되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1990년 무렵까지도 우리사회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많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1992년 대선을 통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는 한국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완성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해 대선 직후 한국선거연구회가 전국의 유권자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정치가 어떠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56.2%)가 민주적이라고 답했고, 1996년 총선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는 더 많은 국민(73.2%)이 민주적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국내외 평가와 조사결과는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 문제가 이슈화되기 어려웠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 한국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비민주적인 요소가 남아 있음에도 ‘민주주의문제’가 더 이상 이슈화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현안인 사회양극화, 제조업 공동화, 국가권위의 추락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부패, 배타주의, 국가보안법, 노동권 제한… 여전한 것들

민주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비민주적인 제도나 관행이 남아 있다.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경찰관에게도 보장하는 노동3권을 우리사회는 공무원과 방위산업체 노동자에게도 금지하고 있고, ‘적’을 이롭게 하거나 찬양했다는 죄목으로, 그것도 대상에 따라 ‘선별적으로 유연하게’ 적용되는 국가보안법(노무현 정부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구속한 데 이어 최근에 평화사진작가 이시우를 구속함으로써 역대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드러냈다)도 서슬 퍼렇게 남아 있다. 여호와의 증인을 포함한 1,000여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수감되어 있으며, 성폭력범죄처벌법, 성매매특별법, 호주제 폐지 등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각종 개혁법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과 차별은 여전하다. 

또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와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의 인권유린은 일반국민에게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니와 아예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2만여 재한 중국교포 포함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국적이나 정치적 망명자지위 취득은 지극히 어려우며, 그 결과 국가로부터의 각종 서비스에서 배제되거나 대기업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십만에 이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역시 아직까지도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많이 개선되고 있으나 아직도 한국의 부패수준은 40위 수준(159개국 조사)에 머물 정도로 정치권과 공무원 사회에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대통령이 되었다”는 노무현 정권에서도 지역주의적인 선거는 물론이고 소지역주의까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익집단의 활동은 엄청나게 활발해졌으나 이익집단 간에 또는 이들과 국가 간에 생산적인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가는 무조건 이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 요구 자체를 억압하는 데 급급함으로써 사회혼란과 스스로의 권위추락을 자초하고 있다. 또한 집단 간의 극한적인 대립과 대치는 시민사회 내 또는 시민사회와 행정부처 사이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회 내 여야 간에도 나타나고 국회와 대통령 사이에도 하루가 멀다않고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방으로 기껏 내놓는 개혁방안은 “대통령 임기를 포함한 정부형태 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안”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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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은 반공극우세력만큼이나 질기게 살아남았다. 2004년 국가보안법 존폐 논란이 일었을 때, 17대 국회에선 국가보안법이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며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민중의 소리 ]

‘박정희식 리더십’ 지지로 나타나는 퇴행 징조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20년이 흘렀건만, 이처럼 서구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정치적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제도적인 결함이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적인 제도가 도입된 경우에도 실천(준법)이 뒤따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와 시민사회 영역에서 국민소환제·노사공동결정제도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대폭 가미하는 ‘참여민주주의’나, 계급이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 사회복지제도를 대거 도입하는 ‘사회민주주의’를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다가 여전히 미진하긴 하지만 유지·발전시킬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민주주의마저도 후퇴시킬 우려가 있는 위험요인이 나타나고 있음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즉, 최근 국민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박정희식 리더십”에 대한 향수와 지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엄청난 인권유린과 재산상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터임에도,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식의 ‘강력한’ 리더십을 -그 내용은 신종 개발독재이며, 이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영국의 대처 수상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과 이명박 예비후보이다- 지지하는 국민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강력한 리더십을 지지하는 이들이 모두 박정희 시절의 인권유린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받아들일 사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형태가 민주주의의 전부 또는 완성된 민주주의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민주적 요소의 개선과 참여적·사회적 민주주의의 도입 즉 민주주의의 심화 또는 공고화를 통해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퇴행적인 권위주의방식과 강력한 지도자에게 의존하려는 국민이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는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공극우가 아직도 떵떵거릴 수 있는 이유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모습을 갖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고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비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퇴행’의 기미마저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수엘리트 간의 타협에 의한 민주주의 이행이라는 독특한 민주화방식과, 민주화세력의 협소한 민주주의관과 시장에 대한 맹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타협을 통한 민주주의 이행이라는 측면을 보자. 1987년 민주화투쟁은, 그 주요 동력이었던 ‘민중’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에 대한 협의과정에서 배제된 상태에서 파쇼반공주의세력인 전두환 정권과 보수적인 자유주의야당 간 타협하는 결과로 수렴되었다. 물론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이 없었거나 교섭력이 훨씬 약했더라도 당시 기대할 수 있는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파쇼적 반공주의세력과 자유주의세력 간의 ‘협약에 의한 민주화’였기 때문에 파쇼반공주의세력은 조직기반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민주화세력의 집권과정이나 민주주의 심화를 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실제로 자유주의분파 중 보수성향의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은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인 민정당 및 민주공화당과 타협(합당)을 통해서 집권했다. 자유주의 본령에 속했던 김대중과 새정치국민회의 역시 극우보수세력의 원조였던 자민련과 정치연합을 통해서 집권했다. 이렇게 다져진 반공세력의 기반은 워낙 탄탄해서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중도좌파성향의 정치인과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경우, 이전 두 집단보다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도 건재한 파쇼적 반공주의 야당세력의 저항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세력이 집권에 성공했음에도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제도개혁에 실패한 이유는, 협약에 의한 민주화로 살아남은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의 저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보다 중요한 요인은 민주화세력이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더구나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적극 추진함으로써, 기층대중들로 하여금 민주화세력으로부터 이반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즉,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지지기반을 스스로 붕괴시킨 것이다.

민주화세력의 협소한 민주주의관과 시장맹신

다음으로 민주화세력의 협소한 민주주의관과 시장에 대한 맹신을 살펴보겠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를 자유경쟁선거와 이를 위한 제반 정치적 자유와 권리 정도로만 인식했다. 또한 이러한 협소한 민주주의마저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으로 인하여 약화시키고, 나아가 자신들의 지지기반에게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마저 확산시켜갔다. 

파쇼적 반공주의세력과의 합당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영삼과 통일민주당은 선거에 의해 문민정부가 수립된 것으로 민주주의 과제가 완결된 것으로 인식했다. 역시 파쇼적 반공주의세력과의 정치연합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김대중과 새정치국민회의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국가보안법과 노동법을 부분 개정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김영삼 정권에서는 주요하게 부각된 정치이슈는 부패문제와 지역갈등에 국한되었고, 김대중 정권에서는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법의 부분개정에 국한되었다. 노무현 정권의 경우에도 이전 정부들보다는 자유민주주의적이었으나 절차적민주주의 문제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나마 이러한 과제마저도 합당·정치연합의 상대 또는 제1야당으로 건재했던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의 저항 때문에 서구민주주의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로 귀결되고 말았다. 

협소한 민주주의관과 더불어 민주화세력에게 내재했던 또 하나의 장애물은 이들이 맹신했던 신자유주의철학과 사대숭미주의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해외상품과 자본에 대한 국내시장개방 및 국내상품과 자본의 해외진출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덧붙여 자본조달방식과 노동시장, 국가의 역할 등 한국의 경제체제 전반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꾸는 것,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미식 자본주의제도’에 맞추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신자유주의는 19세기 자유(무역)주의와 다르다. 이처럼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까지 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권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조건을 모두 수용하면서였다. 극히 짧은 시간에 국내 자본시장과 상품시장을 개방하고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관행을 도입함으로써, 외환위기도 극복하고 경제성장이 재현되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과 민주개혁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심대하다. 

주지하듯이 신자유주의는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온순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적극 추진하고, 그로 인해 우리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됐다. 이는 고용불안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자 간의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를 벌려놓아, 궁극적으로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킴은 물론 내수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마저 초래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배당률 제고’를 가장 중요한 경영기준으로 삼는 주주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림으로써 일부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설비/연구/인력개발 투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기반이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신자유주의는 외국인 자본이 국내의 주요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하거나 배당금 및 이윤의 해외송금을 용이하게 했다. 이로 인해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처럼 빈부격차의 심화로 국내시장이 위축되고 중장기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재원마저 부족해지자 많은 기업들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또는 정부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국내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었고 빈부격차 또한 심화되었다. 그나마 국내에 남은 기업들은 협소한 내수시장에서 방향을 틀어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해외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투자든 해외시장진출이든 그것이 확대되면 될수록 국내 산업기반은 더욱 약화되고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도 높아져 국가의 정책 자율성이 더욱 제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될 경우 민주주의의 심화와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회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민주화세력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규범 또는 원칙을 경제영역은 물론 정치, 교육, 문화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여 적용했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 원칙이 정치영역을 넘어서서 확대 적용되는 것을 차단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당 폐지’ 등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나마 불완전한 민주주의제도가 크게 훼손되게 만들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의 금과옥조인 ‘단기적인 성과경쟁’은 동료와의 협력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약화시키고 물질적 성장만능주의와 원자론적인 개인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갈등을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조절, 조정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대미자주성 강화 정말 원할까?

끝으로 숭미사대주의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우리나라의 주권 또는 국가자율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고 제약해 왔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은 물론, 민주화세력 심지어는 “대미자주성 강화”를 내세워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마저도, 때로는 “재벌개혁”을 이유로 때로는 “혈맹”이라는 이유로 때로는 “국제정치의 논리”(즉, 강자 지배)를 이유로, 미국의 요구라면 아무리 많은 국민이 반대해도 순종하고 있다. 알아서 숭미사대주의노선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대미종속성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침은 물론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다. 이 점에서는 파쇼적 반공주의세력과 다른 게 없다. 

민주화세력의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김대중 대통령의 외환위기 당시 IMF 재협상 포기와 IMF 요구 무조건 수용으로의 급선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강행 등일 것이다. 특히 지금 추진되고 있는 한미FTA는 노무현 정권의 숭미사대주의적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른 데는 자국 농축산업자의 이익을 보장하고 한국시장에 대한 점유율을 높이려는 경제적 이유만 있지 않다. 거기에는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과 군사력을 급격히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전략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노무현 정부가 알고 있다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많은 국민과 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 더 다급하게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것이라면, 입으로야 뭐라 떠들든 노무현 정권의 사대숭미주의 성향은 부정할 수 없다. 

또 다시 ‘민주화’를 준비하는 세력의 과제

보수엘리트 간의 타협에 의한 민주화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던 파쇼적 반공주의세력이 민주주의 공고화와 심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동시에 이들과의 타협이나 연합을 통해 정권을 잡았고, 민주주의에 대한 협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신자유주의와 숭미사대주의를 신봉하는 민주화세력도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어왔다. 이들이 변화없이 건재한 이상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치민주주의만이 위기가 아니라 경제도 온전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다른 세력이 민주주의와 경제를 살리는 임무를 수행해야할 것이다. 이는 경제영역에서는 조직노동자, 정치영역에서는 진보정당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주체역량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조직기반을 확대하고 조직성원의 단결력과 조직충성심을 제고하며 정책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다른 기층 대중조직 및 진보적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과제와 경제적 과제를 분리하거나 경제원리가 정치영역에 확산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한다. 

영미식 자본주의와 무역만능주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새로운 민주주의 추진세력은 경제영역의 민주화가 곧바로 정치영역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여,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정치영역에서는 물론 경제영역(특히 기업)에서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덧붙여 외국인투자와 해외시장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아졌다. 이제 일국적인 대응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조직노동자와 진보정당은 다른 나라, 특히 우리와 무역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세력과의 국제연대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