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신이 쑤셔도 그냥 참으시나요?

노동사회

삭신이 쑤셔도 그냥 참으시나요?

편집국 0 3,230 2013.05.29 08:19

우리단체 홈페이지(www.laborhealth.or.kr)의 자료실은 꽤 인기가 높다. 자료들의 조회 수가 500은 기본이고 1,000을 넘는 것도 수두룩하다. 최근엔 조회 수가 1333을 기록하기도 했다. 바로 옆의 사진자료실의 조회 수가 70~80이 고작인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 많은 자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공통의 주제어가 있다. 바로 “비정규”, “특수고용”, “여성”, “안전 건강” 등이다. 

사람들이 그 많은 자료들 사이에서 유독 이 단어들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비정규직노동의 범위가 그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해졌으며, 전반적인 사회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터다.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를 발행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책자는, 다치거나 병들지 않고 일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교육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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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좀 생각하는 건 사치스런 게 아냐! 

현실에서 비정규직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이지 “안전과 건강”이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건강은 배부른 소리다. 으레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쓰다달다 말없이 일해야 하고, 보다 안전한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건강하지 못하다. 최근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망률은 정규직의 3배에 달하였다. 만성질환 유병율도 정규직보다 높으며 자살충동율도 높다. 

한편 이 책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노동자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는 80%가 일용직,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대다수가 장시간노동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를 괴롭히는 것은 노동조건뿐이 아니다. 여성노동자들의 1주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20시간이며 이는 남성노동자들의 5배가 넘는 것이다. 즉 여성노동자들은 퇴근을 해서도 쉬지 못하고 또 다른 노동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직장일과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종일노동을 반복하는 ‘아줌마’들이 질환 하나쯤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몸뚱이로 먹고 사는 노동자들에게 건강한 신체는 거의 유일한 밥벌이 수단이다. 건강을 잃으면 노동시장에서 축출되고 더 빈곤해진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위한 정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비정규직일수록, 그리고 여성노동자일수록 이러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이들은 기본적인 안전교육과 질환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는 이러한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 노동자의 눈으로 보는 건강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동안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매뉴얼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그 대부분은 남성·정규직·제조업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여성노동자들에게는 그 특성에 맞는 새로운 건강매뉴얼이 필요했다. 이 책은 재래형 사고보다는 장기간 반복노동으로 인한 질환과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 등이 빈번한 여성노동자들의 특성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또한 △대형마트계산원, △의류제조노동자, △급식조리노동자, △간병노동자 등 직종별로 세분화하여 편성되어 있어 보다 구체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건강한 노동 위한 정보가 더 아래로 뿌리내리길 바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이런 책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 신기해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대로 책에 나와 있으니 피부에 와 닿죠.”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이다. 우리가 만든 책을 직접 소개하려니 솔직히 낯 뜨겁다. 이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꼭 필요한 정보라는 생각과 볼품없는 서툰 솜씨에 대한 인식이 머릿속에서 동시에 오간다. 그렇지만 얼마 전 어느 대형마트 계산원노동자들이 이 책자를 손에 쥐고 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동료의 이야기에, 작업한 사람들이 모두 뿌듯해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솜씨를 부끄러워할 틈도 없는 너무나 열악한 현실에서, 어쩌면 이 책을 갖게 되는 노동자는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목표는 노동조합에 참여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손에 이 책을 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일했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여성노동자,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어떠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는 여성노동자들이 비록 책을 통해서나마 자신의 질병에 대해 정보를 얻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 책자는 노동조합을 통해 배포되고 있다. 크든 작든 그래도 노동조합의 테두리 안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는 추가로 3개 직종을 발행할 계획이다. 발간을 준비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목표를 숙제로 새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배달되길 바라면서.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