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동자들이 깨어나고 있다

노동사회

철도노동자들이 깨어나고 있다

admin 0 2,639 2013.05.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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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1. 11. 17(토) 
곳: 철도노조 사무실 
만난 이: 윤효원 『노동사회』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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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에 민주 노조의 깃발이 펄럭인 지 반년이 지났다. 철도노조 김재길 위원장을 만나러 가면서 1947년 들어서 54년이나 이어졌던 어용 노조와 비교할 때 철도노조가 지금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묻고 싶었다. 철도노조 사무실 건물 앞에 도착했다. 2층은 결혼식장이다. '일반인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담장에 붙어 있다. 바로 1층에 있는 철도노조 사무실로 들어갔다. 

열린 노조를 만들고 싶다 

train_01.jpg"먼저 노조의 권위주의를 청산했습니다. 위원장이 타던 그랜저 자동차와 사무실의 고급 소파를 없애고, 일선 조합원들에게 노조 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위원장실 소파의 재질이나 디자인이 평범하기 그지없고, 벽에는 '통일철도'라고 쓴 붓글씨와 철도노조 로고가 각각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하지만, 소파를 배치한 구조는 여전히 한 사람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앉히는 직사각형 형태다. 원형 탁자를 배치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새 집행부는 지방본부장이 타던 소나타도 위원장용으로 한 대만 남기고 다 없앴다. 

"노조 운영의 투명성도 높였어요. 회의 내용과 집행 결과는 조합원들에게 바로 공개합니다. 무엇보다 조합원들이 깨어나고 있어요." 

철도 현장에는 가부장제적인 잔재들이 많다. 근무 환경이 열악한 선로반의 경우, 상급자인 보선장의 집안 일이며 밭일까지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토록 엄격한 위계 질서에서 상급자의 한마디면 하급자는 '끝'이고, 이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노조가 앞장서면서 이런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어요. 이전에는 개인사로 체념하던 일을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풀려고 나서는 것이죠."

김 위원장은 집행부 출범 이후 현장을 돌면서 조합원들을 만났다.  

"조합원 2만5천 명 가운데 5천 명쯤 만났습니다." 순회 중에 만난 조합원들은 '민주' 후보를 찍으면서도 '저 인간 다시 볼 날 있을까' 반신반의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단다. 노조는 조합원들에게 '복마전'으로 비쳤고, 위원장 얼굴 모르는 조합원이 태반이었다. 조합원이 지부 대의원, 이들이 지방본부 대의원, 이들이 본조 대의원, 이들이 위원장을 뽑는 '3중 간선제' 덕택으로. 

"얼마 전 투쟁 기금과 희생자 구제 기금 마련을 위해 조합비 100% 인상안을 조합원 찬반 투표에 부쳤어요. 60%가 넘는 지지를 얻었지만, 찬성이 2/3를 넘지 못해 무산됐습니다. 집행부 안이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지도부의 권위가 손상된다며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투표에 부쳤습니다. 지도부 안을 확정하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은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더 커졌죠."

김 위원장의 말하는 모습에서 조합원들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직선 위원장으로서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아참! 그리고 벽에 걸린 '통일철도' 글씨는 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했을 때 북한의 천재소년 서예가가 써준 겁니다"라며 씩 웃는다. 문 옆 벽에 걸린 붓글씨 액자를 자세히 보니, '2001년 8월 20일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서예소조 김향'이라고 써 있다. 

정부는 철도 정책부터 세워라 

김재길 집행부는 공약으로 '인력감축 저지', '민영화 저지', '해고자 복직'을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운동이 직면한 도전들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 운동은 매년 한 두 차례 이상 총파업을 선언하고 정부 정책에 도전했지만,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정부 정책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쯤 한국전력 민영화에 맞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공공부문 노조들이 '연대 틀'을 만들었지만, 노사정위원회 '합의' 형식을 빌린 전력노조의 이탈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와해됐었다. 

"1만5천 부가 수거된 조합원 설문조사를 통해 단체교섭 요구안을 확정하고 교섭을 요구했지만, 철도청에서 교섭을 피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민영화와 해고자 문제는 의제가 될 수 없답니다."

단체교섭은 노동자들의 노동 생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다루는 자리며, 민영화가 노동 조건 변화와 직결되어 있음은 상식인데…. 하기야 '노동자의 경영참가는 있을 수 없고, 경영권과 인사권은 사용자에게만 있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는 정부의 산하 기관에서 '민영화는 단체교섭 의제가 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건 당연할 것 같기도 하다. 

"총력전이 될지 장기전이 될지는 철도산업기본법이 언제 국회에 상정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론 작업에서는 노조가 이겼다고 봅니다. 그냥 하는 소릴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안에서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고, 국정감사 때도 많은 의원들이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국회는 물론, 주무 부처인 건설교통부 관료들을 만나도 철도를 민영화하면 안 된다는 노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한다고 한다. 70년대 이후 정부의 교통 정책은 사실상 없었고, 있어도 도로 위주로만 운영되어 교통망의 파행성이 심각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생각이다. 

"철도의 교통 분담률이 11%도 안돼요. 선진국처럼 30%까지는 가야 합니다. 중국 정부는 그 넓은 땅덩어리를 '8자 8행'의 철도망으로 연결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어요.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를 겨냥한 포석이죠."

중국은 자기부상 열차를 상용화하는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된다. 중국 정부는 독일 자본의 지원을 받아 1천 킬로미터가 넘는 상해-북경 구간에 자기부상 철로를 깔 계획이다. 일본 역시 '철의 실크로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 부산과 일본열도를 관통할 해저 터널 계획은 마련된 상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 신흥공업국의 선두주자 한국, 여기에 21세기 강국으로 등장할 중국, 그리고 세계 최대의 경제권으로 탈바꿈한 유럽연합(EU)을 겨냥한 '철의 실크로드'는 한국 철도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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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1일 철도노조 조합원 1,500명은 서울역에 모여 제1차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철도노조) ]

철도와 도로가 병행 발전해야 하며, 철도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민영화 문제는 충분한 연구와 검토, 논의를 거쳐 이해관계 당사자는 물론 시민들도 참여하는 기구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철도노조의 주장이, 좋은 대학 나와 똑똑한 척 잘하는 정부 관료들에게는 그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일까? 

현장 간부 양성이 시급하다

"노조가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자는 모두 54명입니다. 지금 대전청 앞에서 농성하고 있어요. 작년 어용 집행부 시절에도 노사정위원회에서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합의했어요. 직선 집행부인 우리와 이 문제를 논의 못할 이유가 없는데 정부와 철도청은 회피만 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죠." 

지금까지 철도노조 민주화 과정에서 80여 명이 해고되었고, 250여 명이 무연고지로 부당 전출되었다. 징계만 천 명이나 받았다. 작년에만도 철도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활동으로 10명이 해고되고, 80여 명이 무연고지로 부당 전출되었다. 김재길 위원장은 당선 직후 한 인터뷰에서 "철도노조 직선제는 투쟁의 산물이고, 피와 눈물의 대가"라고 말했다. 

철도청 통계에 따르면, 인력감축 이후 발생한 산재 사망 사고는 1996년 14명, 1997명 15명, 1998명 11명, 1999년 10명, 2000년 8명, 2001년 7월 현재 10명을 넘어섰다. 기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추진되는 감원은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노동강도를 강화시켰고, 이는 산재로 바로 이어졌다. 작년에 어용노조는 노사정위원회에서 1천명 감원에 합의한 바 있다. 

"인력 부족이 최악의 상태입니다. 한계점을 지났어요. 상황이 심각합니다." 민영화를 추진할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기고,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철도청도 알고 있다. "우리 노조는 이유 없이 반대만 하는 세력이 아닙니다. 대안을 냈고 대화를 원하며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은 정부와 철도청에 넘어간 상태죠." 

사실 한국 철도의 발전과 관련해서 지금의 민주 집행부가 이권 챙기기에만 몰두하던 어용 집행부보다 나은 대화 상대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노조가 낸 자료가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국회의원들도 국정감사 자리에서 철도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임을 인정했다. 

"간부 부족이 노조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예요. 전국에 걸쳐 131개 지부가 있는데 책임지고 활동할 간부가 많지 않습니다."

노조는 두 차례 교육을 실시했다. 내용은 당면 현안인 민영화 문제나 단체교섭 현안이 주를 이뤘다. 사실 교육이라기보다는 간담회나 설명회 자리였다. 노동조합이 새로 생겼거나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바뀌었을 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현장을 장악할 간부진을 양성하는 것이다. 현장 간부는 민주화된 노조의 토대를 강화하고, 일선 조합원의 참여를 증진하며, 그들의 의식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장 간부 양성은 그리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국노총 산별 위원장 회의에는 꼭 참석합니다. 의견을 듣고 입장이 있으면 말하는 정도입니다. 회의 나오면 깽판칠 줄 알았는데 합리적이라고 그러더군요. 상급단체 문제는 조합원들이 결정할 문제예요." 

상급단체 변경 문제는 일부러 질문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뻔하지만 옳은 대답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김재길 위원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산별 조직의 위원장이지만 양대 노총을 통틀어 산별위원장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리다. 1965년 생으로 1989년 고대 영어교육과를 중퇴하고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활동을 거쳐 1994년 4월 청량리 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로 입사해 '전국기관차협의회 준비위원회’의장과 '생존권 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 노동자 투쟁본부’의장을 지냈다. 

"이번 싸움을 잘 마무리한 다음 상급단체 문제는 집행부의 입장을 정해 조합원들에게 물을 계획입니다. 애매한 사안을 조합원들에게 선택하라고 내모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조합원들은 집행부가 분명한 입장을 갖고 조합원을 조직해나가길 바라지요. 하여튼 철도노조가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양대 노총이 같이 할 수 있는 계기는 커졌다고 봅니다."

책상 위의 난초

유쾌한 인터뷰였다. 김 위원장은 솔직하고 거리낌 없이 현안을 설명하고 문제들을 말해주었다. 인터뷰 도중에 철도청 시설본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철도청은 제천 지역 기관사 숙소가 오래되어 새로 짓고 있는데, 건축 기간 중에는 기관사들로 하여금 가건물을 이용케 할 계획인 듯 싶었다. "잠자리만은 따뜻해야죠. 호텔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관은 잡아 주셔야죠." 추울 뿐만 아니라 옆방에서 울린 핸드폰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가건물은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두는 눈치였다. 

질문 거리도 떨어져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철도 노동자가 되지 않았으면 인기 좋은 중고등학교 영어 선생이 되지 않았겠냐는 농담에 손 사레를 친다. 골치 아픈 일이 많기는 하지만, 선생님보다는 철도 노동자가 더 좋지 않느냐는 표정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른 사무실을 방문하면 화분에 담긴 화초들을 눈여겨본다. 화초가 자라는 모습과 상태를 보면, 그곳 사람들 삶과 마음의 일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해서인지 노조나 운동단체 사무실의 화초들은 말라 비틀어져 있거나 이파리가 누렇게 떠 있기 일쑤다(사실 내 책상 위도 예외는 아니다). 김재길 위원장 책상 위에는 집행부 출범 때 축하 선물로 온 듯 보이는 난 화분 두 개가 놓여 있다. '강성' 노조 사무실에서 반년을 지냈으니 말라죽지는 않아도 시들기는 했겠지 하는 내 속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파리 어느 하나 생생하지 않은 게 없다. '아마 위원장이 비흡연자였다면 더욱 푸르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다음날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 주최 노동자대회에 갔을 때 거리행진에 나서는 철도노조 대열을 만날 수 있었다. 대열 앞뒤로 '민영화 저지', '노동조건 개선', '해고자 복직'라고 쓴 플래카드 위로 김 위원장의 넉넉한 웃음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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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 제 6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