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부문 구조조정에 저항한 인도네시아 노동조합

노동사회

전력부문 구조조정에 저항한 인도네시아 노동조합

편집국 0 4,135 2013.05.29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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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정보
● 수도: 자카르타
● 정부형태: (대통령직에 권력이 집중된) 공화국
● 인구: 2억 1,620만명
● 국가 빈곤선 이하 인구: 16%
● 기대수명: 69세
● 문자해득률: 92%

경제
인도네시아는 1997~98년 통화붕괴와 경제위기를 겪었다가 회복했다. 5년 기한의 IMF 경제정책 감독프로그램은 2003년 종료했으며, 2004년에는 인도네시아 은행 구조조정 에이전시가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인도네시아는 중간수입국가지만, 자바와 발리 지역이 국가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지역적으로는 상당한 불평등이 존재한다. 2004년 12월 거대한 쓰나미(지진성 해일)가 덮쳐 12만 7천여명이 사망했고, 44만 1천여명이 고향을 등졌으며, 최소 45억 달러 상당의 재산이 파괴됐다. 
● GDP*: 8,637억 달러
● 1인당 GDP*: 3,940달러, 평균 GDP 성장률(2000~2005): 4.8% 
● 실업률: 12.7%
● 외채: 1371억 2천만 달러
● 외채상환부담률: 16.1%

노동 이슈
ICFTU의 『노동기본권 연간조사보고서』(2005)는 경제위기로 인하여 그리고 조합원과 노조활동가들에 대한 괴롭힘 때문에 점차 쇠퇴하고는 있지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약 10%이상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보고서는 2003년 제정된 법으로 인하여 피용자들이 더 쉽게 파업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까지 공공부문과 필수서비스 분야에서 그리고 “공공이익 복무하는 기업들”에서 파업이 금지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하기 상당기간 전에 통보를 해야 하고 사전중재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 ILO 핵심협약 비준: 29-87-98-100-105-111-138-182
● 주요 전국단위 노동조합단체: 인도네시아노동조합회의(ITUC), 인도네시아노동조합평의회(KPSI), 인도네시아번영노동조합연맹(KSBSI), 단결인도네시아노동조합(SPSI-R)

국제금융기구와 관계
세계은행은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253억 달러의 포트폴리오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2005년 12월 현재 이 중 236억 달러가 지급됐으며 124억 달러는 상환됐다. 또한 세계은행은 인도네시아에서 한 개의 구조조정 관련 사업을 포함하여 37개의 투자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국제통화기금에게 80억 3천만 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다.
- 특별한 표시가 없는 경우 2005년 11월1일 업데이트된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Country Profile and Country Report on Indonesia에서 인용한 자료임. 
- *표시가 된 것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2005에서 인용한 수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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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15일,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은 세계 에너지기업 집단 안에서, 그리고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미래를 상당부분 좌지우지해온 국제금융기구들 사이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바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지령을 통해 입법된 2002년 법을, 즉 인도네시아의 국가전력체계를 민영화시켰고, 발전소와 송전선 그밖에 전력시설망의 핵심요소들을 민간투자자들에게 매각하라고 지시했던 그 법을 만장일치로 철폐시킨 것이다. 2002년 법은 2003년 10월 인도네시아 정부가 세계은행에게서 차관했던 2억 4,260만 달러에 수반된 것이었다. 

재판장은 그 법이 “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다”고 선고했다. “전기는 국영기업만이 운영할 수 있으며, 국내든 국외든 민간기업은 국영기업이 요구했을 때만이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판결은 인도네시아의 노동운동, 특히 국유전력회사 PT Perusahaan Listrik Negara(PLN) 노동조합에게 매우 중요한 승리였다. 1999년 설립됐으며 국제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맹(PSI)에 가맹된 PLN 노조는 2002년 법에 반대하여 소송을 제기했고, 또 PLN을 국가 공공자산으로 유지하는 데 대한 대중적 지지를 촉발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행동했다.

그 재판 후 PLN 노조위원장 아마드 다리요코(Ahmad Daryoko)는 “우리는 재판관들이 존엄성과 독립성을 지켜낸 것에 대해 갈채를 보낸다.”고 선언했다. “그 판사들은 정부와 세계은행, 그리고 우리의 전력시스템에서 수익을 내길 원하는 외국기업들로부터 수많은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국대사관들조차도 사유화를 변호해 왔다.” 또한 다리요코는 이에 덧붙여 다국적기업들과 세계은행에게, “법원의 관점에서 이번 판결과 그 배경을 꼼꼼하게 재검토하고 그들이 인도네시아에 강제하고 있는 역기능적인 사유화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 장에서는 인도네시아 법원이 전력사업체 민영화를 거부하도록 판결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캠페인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 캠페인의 최종 결과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어쨌든 이 사례는 국제금융기구들에 저항하는 세계 곳곳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배경: 아시아 금융위기

인도네시아 전력사업체 PLN은 1953년 자국 정부가 전력부문을 국유화하면서 설립됐다. 그러나 1992년 수하르토(Suharto) 당시 대통령은 “발전, 송전, 배전에 다시 민간부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을 포고했다.” 그러자 민간투자자들이 세계은행의 부추김 속에서 우선 PLN에 전력을 판매하는 민간발전사업자(IPP)로서 참여하기 시작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세계은행은 PLN을 “발전, 송전, 배전 기능으로 분리·계열화할 필요성을 입증”하고 “민영화에 맞춰 더 작은 단위로 분할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인도네시아 전력부문 구조조정 연구프로젝트를 지원했다. 그리고 이 연구가 제시한 계획들은 이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oekarnoputri) 대통령이 도입한 2002년 법안에 구체적으로 반영됐다. 

1997년까지 PLN은 민간소유 전력사업체들로부터 약 11,000메가와트(Mw)의 전력을 구입하기 위해 민간발전사업자들과 15개 전력수급계약(PPA) 및 11개 에너지매매계약을 맺었다. 수하르토 정권의 연줄자본주의 체계에서 맺어진 이러한 계약은 결과적으로 PLN이나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지극히 비싼 값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었다. 국제공공노련(PSI) 조사팀이 진행한 인도네시아 전력체계에 관한 연구는 이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IPP들은 수하르토 정부의 유착세력과 협상했다. 많은 공급자들이 그렇게 불투명하고 부패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은 결과, 인도네시아는 실제 필요한 것보다 50%나 더 많은 용량의 전력을 공급받게 됐다. 또 IPP들은 총 27개의 전력수급계약(PPA)을 맺었는데, 이러한 계약들은 PLN이 최소 30년 동안 IPP 설비 생산량의 80%를 PLN 판매가를 훨씬 초과하는 가격으로 구입할 것을 강제하고 있었다. 1998년 통화가 붕괴되면서 PLN은 결국 이러한 가격을 전혀 감당할 수 없게 되었으며, 계약을 취소하거나 전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재협상하지 않으면 파산하게 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대출기관의 압력뿐만 아니라 정부와 PLN 안에까지 포진된 유착세력들이 가하는 압력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심각하게 부패하고 억압적이었던 수하르토 시절에 맺은 그 계약들을 종료시킬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국제공공노련 정책연구소(PSIRU)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PLN이 그 계약들을 취소하지 못한 것은 IPP를 운영하는 다국적기업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다국적기업들은 자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의 지원을 받으며 인도네시아의 계약위반에 대해서 집요하게 청구했다. 수하르토의 측근들을 매수하여 계약을 맺으려던 미국의 다국적기업 에디슨(Edison)은 미국 대사관의 요청에 힘입어 계약을 위반하고도 그냥 빠져나갔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결과 미드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는 5억7,300만 달러를, 그리고 플로리다전력(Florida Power and Light)은 2억 4,100만 달러를 국제중재재판을 통해 배상받았다. 또한 이 기업들은 ‘정치적 위험’ 보험으로부터도 보상금을 받아갔다. 세계은행의 보험회사인 국제투자보증기구(MIGA)는, 그 사업계획을 진행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고 자체적으로 판단했음에도, 엔론(Enron)의 전력사업계획이 취소된 것에 대해서 1,5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 그 후 MIGA는 인도네시아 정부당국이 자신들에게 1,500만 달러를 변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IGA는 이에 대한 압박으로서 그 돈이 지불될 때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되는 사업에 대해서 어떠한 보상금도 지급하길 거부했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외부 압력의 결과로 PLN은 1998년 파산에 직면했다. 당시는 서구 채권자와 투자자들의 채권액 반환요구가 대거 몰리면서 점화된 아시아 경제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2002년 실시된 전력부문 “개혁”은 이러한 경제위기 동안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도입된 정책패키지의 일부였다. 그 내용은 PLN 민영화를 가속하여 파산을 막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PSI의 인도네시아 코디네이터인 인다 부디아르티(Indah Budiarti)는 이에 대해 국제금융기구들과 정부관료들이 “전력부문에서 민간투자를 재활성화하고 경쟁시장모델을 도입하기 위해 국유전력회사 분할을 시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IMF와 세계은행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경제 모든 영역에서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특히 “하부구조의 공급에서 민간부문의 역할을 확장”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한 촉진수단으로서, 460억 달러에 이르는 긴급융자지원금을 활용했다.

비정부기구인 전력부문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작업반의 코디네이터 파비 투미와(Fabby Tumiwa)는 이러한 정책들이 인도네시아가 삼켜야 하는 “입에 쓴 약인 것처럼 여겨졌다”고 회상했다. IMF는 “당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국영 통신회사 PT Telkom과 PT Indosat뿐만 아니라 PT PLN(전력)과 Pertamina(기름과 가스) 등 에너지부문 국유기업들도 당장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무릅쓰고, 전력, 기름, 가스 등에서의 공공보조금을 삭감했다.

PSIRU의 데이비드 홀(David Hal)과 로빈 데라 모트(Robin de la Motte)는 IMF 협정 시기 빈곤과의 투쟁(War on Want)이 민영화와 융자조건을 주제로 발간한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당시 수하르토 독재통치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IMF와 세계은행은 통화안정이라는 당면 과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광범위한 구조적 조건을 부과하는 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9년 IMF와 맺은 가계약서 안에 국영 PLN을 통제하는 새로운 법안의 입법을 포함하여 전력부문에 대한 자기계획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정부는 효율성을 개선하고 재정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 전력부문을 재구조화하고자 한다.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지원을 통해 정부는 (ⅰ)경쟁적인 전력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고, (ⅱ)PLN의 조직구조를 구조조정하며, (ⅲ)전기요금을 조정하고, (ⅳ)민간부문 전력사업체들로부터 전력구입을 합법화한다. 정부는 민간발전사업자들과 재협상에 착수했으며, 1999년 6월 전에 PLN의 구조조정을 시작할 것이고 1999년 12월까지는 전기와 관련된 새로운 법을 제정할 것이다.

국영전력사업체에 대한 정부의 개혁 계획은 세계은행의 2억 4,260만 달러 차관의 항목 안에 훨씬 더 자세하게 기술돼 있었다. 또한 이 차관 속에는 “자바 발리 전력부문 구조조정 및 강화 사업”을 위한 1억 4,100만 달러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은행 웹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 데이터시트에 따르면, 그 차관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연료가격의 인상 및 변화 필요성에 대한 공식적 수용능력을 증진”시켜, “상업적으로 생존가능하고 재정적으로 독립적이며 조직적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전력부문의 기반 쌓기”를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은행은 부분적으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민영화를 지지하고 보조금 철폐를 옹호하는 선전캠페인을 운영하는 것을 돕기 위해 돈을 보냈던 것이다. 

정부 내부에서 진행된 PLN 민영화 준비는 쿤토로 망쿠수브로토(Kuntoro Mangkusubroto) 화학·에너지부 장관이 전력부문 핵심 이해관계자들과 일련의 회의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이 회의에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간부뿐만 아니라 기업가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밀실작업을 통해 에너지부문 구조조정의 청사진 역할을 할 백서(White Paper)를 발간했다. 이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시절 미국에서 개발된 에너지 정책과 흡사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딕 체니 부통령이 의장이었던 에너지특별대책본부는 민간기업들은 참여시켰지만 중요한 비정부기구와 노동조합들은 배제했다.

투미와는 전기관련법에 대한 그의 보고서에서, “(백서의) 공식화는 매우 짧은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지적했다. “1998년 8월 그것이 처음 발표된 이래 채 20일도 걸리지 않았다. 쿤토로 장관과 그의 동료들이 비공식적이고 은밀한 방법으로 구조조정 정책이 공식화되도록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투미와는 보고서의 어느 각주에서, 자신의 조직은 그 백서가 사실상 “아시아개발은행의 간부 또는 소속 전문가에 의해서 초안이 작성됐음”을 확신했다고 지적했다. 

백서는 그 정책의 목표를, △인도네시아 전력부문의 재정적 회복, △경쟁체제의 도입, △투명성의 창출, △민간부문의 역할 확립 등 네 가지로 명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구조조정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면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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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유전기기업의 분할을 통한 산업 구조조정
● 경쟁의 실시
● 전기 가격, 비용 회복, 보조금의 결정 
● 민간 참여의 합법화와 확장
● 정부 역할의 재정의 
● 법적 틀과 규제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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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미와는 백서의 핵심적인 정책적 권고는 “PLN을 7개의 기업단위로 쪼개 이를 민영화하고 완전시장경쟁체제를 부과하며, 자바-발리 전력체계를 PLN의 다른 부분들에서 분리하라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자바섬과 발리섬은 “인도네시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며, 그 지역의 전력체계가 PLN 전력판매의 75% 이상을 그리고 수입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정부는 백서에서 자바-발리 지역은 전기부문 시장경쟁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법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새로운 전기관련법안을 마련해 1985년에 제정됐던 예전 법을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는 압둘라만 와히드(Abdurrahman Wahid)에 뒤이어 메가와티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인 2002년에 마침내 현실화됐다. 투미와의 지적에 따르면, “와히드 대통령의 임기 기간에는 전기부문 개혁의제가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 메가와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IMF와의 관계가 새로워졌다. 연기됐던 개혁안이 다시 수행되기 시작했다.”

로이터 통신이 전력 부문에서 “더 많은 투자를 북돋기 위한 경쟁 도입을 목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던 그 법은 결국 2002년 9월 의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메가와티 대통령은 전기관련법 NO. 20/2002에 서명했다. 이 법은 국유전기기업 PT PLN의 “분할”, 다시 말해 그것을 7개의 사업체로 나눠 각각을 민영화할 것을 요구하고, 또한 “전력 발전 측면에서의 경쟁, 즉 5년 안에 발전과 전력 소매에서 완전경쟁을 확립할 것”을 촉구했다. 민간부문에 분리신설(spin off)된 핵심사업에는 “발전소, 송전, 배전, 전력판매, 전력판매 대행, 전력 시장의 운영, 전력 체계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PLN 노동조합에게 이 법은 “민영화와 경쟁시장 접근에 대한 독단적인 사고”를 나타낼 뿐이었다. 결국 투쟁이 시작됐다.      

전기관련법에 저항하는 법적 투쟁

전기관련법 NO. 20/2002에 저항하는 투쟁은 PLN 노동조합과 전력부문 구조조정에 대항하는 작업반(Working Group on Power Sector Restructuring, WG-PSR)의 연합이 이끌었다. PLN 노조는 1999년 인도네시아 공기업단체(KORPRI)로부터 분리되어 설립됐으며, 인도네시아 전역에 걸쳐 4만8천여명의 조합원이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WG-PSR에는 인도네시아 부패감시(Indonesia Corruption Watch), 공익연구 및 옹호센터(Public Interest Research & Advocacy Center), 뎁워치(Deb-watch), 지구의 정의를 위한 협회(Institute for Global Justice) 등이 소속되어 있다. 

PSI 인도네시아 코디네이터 인다 부디아르티는 인터뷰에서 “노동조합은 출범하자마자 반민영화 캠페인 투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또한 2003년 11월 노동조합은 정부가 PLN 핵심사업의 매각계획을 계속 추진해간다면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한 매각은 “대중들에게 전력비용 급등이라는 짐을 지울 것”이라는 게 노동조합의 주장이었다. PLN 노조는 2002년 법에 대한 법률적 투쟁을 진행하기로 결정한 후, 자신이 가맹된 국제산별연맹 PSI에게 전문가 증인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영국 런던 그리니치 대학의 PSIRU 소장인 데이비드 홀이 법률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인도네시아로 파견됐다. 그는 헌법재판소에서 영국과 다른 국가들의 전력 민영화의 역사에 대해서 증언했고, PLN 노조지도자들과 면담했다.      
   
파비 투미와는 WG-PSR이 의회가 2002년 법을 심의할 당시 거기에 관여하기 위해 PLN 노조와 공동작업을 하고 또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원조를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WG-PSR은 정부와 의회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로비를 수행했으며, 의회가 그러한 단기적 시각으로 2002년 법을 최종 승인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 더 나아가 이 단체는 “위헌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조합에게 캠페인 수행과 효과적인 변호에 대해서 조언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의 민영화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적 원조(세계적 흐름, 정치경제적 및 기술·경제적 분석 등)를 제공했다.” 투미와 역시 이러한 반사유화 사업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컨설턴트로서 복무했다. 다음은 투미와가 설명한 WG-PSR의 법률투쟁 접근방식을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WG-PSR은 그 시작부터 전력부문 구조조정이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부당하게 부과된 프로그램에 의해 강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프로그램이란 1997년 경제위기 당시 제공된 국제금융기구들의 원조에 딸려져 있는 융자조건을 의미한다. 국제금융기구, 특히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이 제안한 전력부문 구조조정안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에게 적절치 않으며, 전력 부문에서 위기 해결책이 전혀 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래 다수의 다국적 개발은행들이 이러한 구조조정을 변호해왔지만, WG-PSR에 따르면 이러한 모델은 그 출발지인 영국과 미국을 포함하여 수많은 국가들에서 실패한, 모든 상황을 한 가지 틀 안에 우겨넣는 방식(one size fits all models)일 뿐이었다.                

열정적인 논의 끝에 노동조합과 WG-PSR은 “2002년 법에 반영된 전력부문 구조조정 계획은 (1945년 선포된) 인도네시아 헌법과 충돌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이를 제소하기로 했다. 투미와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떠올렸다.

2002년 법의 위헌심사 과정을 위해 소송서류를 준비하는 데만 거의 두 달이 걸렸다. 그 법이 통과되고 약 두 달이 지난 후인 2004년 12월 말엽까지, 인도네시아공화국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 요청을 등록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전기관련법에 대한 소송과 같은 경우는 실제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은 다수의 시민단체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인도네시아 헌법에 반대되거나 조화되지 못하는 다양한 법들에 대한 위헌심사 소송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

반민영화연합은 인도네시아 전력부문을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탈규제와 자유화, 민영화를 촉진하고자 하는 전기관련법은 국제금융기구들의 압력과 융자조건 하에서 제정됐다고 주장했다. 강제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개혁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 전력부문의 저변에 깔려 있는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공공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국제금융기구들을 통해 선진국의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강요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더 나아가 반민영화연합은 2002년 법이 제안했던 것처럼 PLN을 발전, 송전, 배전 기능으로 분할하는 데 대해서, 특히 PLN을 민영화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이들은 PLN 체계의 분할이 소비자들에게 더 비싼 전기료를 치르게 하고, 정부가 자바-발리 이외 지역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하는 개발능력을 위축시키며, 특히 외곽지역에서 전기서비스에 대한 공식적 접근가능성을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사회통합을 위협할 것이라 주장했다. 

게다가 노동조합에게는 PLN의 민영화를 내용으로 하는 전력부문의 개혁은, 이미 국유전기기업의 민영화를 겪었던 많은 나라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일자리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민영화연합은 전기서비스의 민영화와 분할이 인도네시아 헌법 제33조, 즉 “국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국민들의 복리에 충격을 주는 (경제적) 생산부문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며 (인도네시아) 민중들의 최대 복지를 위해 소용되어야 한다.”는 언명에 명백하게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법원에 의해 그 전기관련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데이비드 홀은 영국에서 전력 민영화의 실패에 대해 법원에서 증언했다. 투미와는 “그의 증언은 다른 국가들에서 전력민영화 실패에 대한 신선하고 핵심적인 증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법원에서 중요하게 인정되었으며, 판사들에게 그 법이 실행되었을 때 펼쳐질 미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해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홀은 헌법재판소에서 증언을 한 첫 번째 외국인 전문가이기도 했다. 

위헌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WG-PSR은 전력민영화에 대해서 공공세미나를 조직하고, “소위 탈규제된 전기시장”이 전기 값에 미칠 충격에 대해서 언론인들에게 핵심정보를 제공했다. 한편, 법원은 그 법의 변호를 위해서 3명의 정부 각료와 친민영화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불러들였다. 1년여에 걸쳐 6번의 심문이 진행됐다.

드디어 2004년 12월15일, 법원은 노동조합과 WG-PSR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판결은 전기는 국가에 의해 통제돼야 하며 국가가 전기 공급을 책임지는 것은 헌법적 의무라는 노동조합과 비정부기구들의 주장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멋진 판결의 핵심요소를 투미와는 그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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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는 전체 전력부문이 잘 운영되어서 헌법에서 규정된 국가의 목적과 이해관계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운영을 통제 및 규율하고 감독해야 한다.    
● 정부는 국유전기기업의 운영과 설립을 통해 인도네시아 민중들을 위한 전기의 접근가능성과 수용성을 보장해야 한다. 
● 전 세계에서 분할과 민영화는 신뢰성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접근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실패했다. 중·장기에 걸친 전력서비스의 민영화는 국가경제에 짐이 될 뿐이다. 
● 2002년 법안이 제안했던 것처럼 전기체계를 분할하고 경쟁시장을 도입하는 하는 것은 인도네시아 국민과 경제에 이롭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수익을 창출을 전기의 가격 상승에 의존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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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소송을 제기한 노조-비정부기구 연합에게서 열렬하게 환영받았다. 투미와는 이러한 상황을 “인도네시아 시민사회는 법원 앞에서 전력민영화가 인도네시아 민중들에게 이롭지 않으리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 표현했다.
또한 반민영화연합은 인도네시아 정부와 사적부문들에 의해 행사된 심각한 압력에 법원이 굴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했다. “마침내 우리 모두는 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고, 정부의 이익에 반하는 논쟁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용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투미와는 “우리의 작은 성취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의와 평등 그리고 경제주권을 위한 민중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다 부디아르티는 인터뷰에서 “2002년 법의 폐지가 전력서비스 민영화 의제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언급했다. 실제 정부는 PLN 안에 “민간투자를 더 많이 확보”하고 국유전기기업의 “수직적 분할”을 추구하기 위한 새로운 법의 제정을 준비 중이다. 부디아르티는 이 과정의 첫 번째 단계가 PLN의 두 개 자회사, PT Indonesia Power와 PT PJB의 기업공개(IPO)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기업공개를 “국유전기회사의 부분적인 민영화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회사의 노동조합들은 단체협상 거부와 그 외 형태의 협박 등 “경영진에 의한 반노조캠페인과 노조파괴”의 난관에 처해있다. 상황이 이렇게 만만치 않긴 하지만, 부디아르티는 반민영화 캠페인이 거기에 관련된 노동조합과 비정부기구들에게 “비상한 활동”을 초래했음을 신뢰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