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법이란 무엇인가?

노동사회

유통업체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법이란 무엇인가?

편집국 0 3,309 2013.05.29 08:14

지난해 11월 통과된 비정규직법이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된다. 법이 통과되자마자 곳곳에서 계약해지, 아웃소싱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기다렸다는 듯 비정규직법에 맞춰 ‘대응’하는 회사측 발걸음이 빨라진 것이다. 입법 전 노동조합운동을 중심으로 “정부의 비정규직법안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더 많은 비정규노동자를 양산하고 차별을 심화할 것”이라는 맹렬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입법안 정도면 충분하다고 우겼던 사람들에게 지금 비정규직 확산의 책임을 묻는다면 아닌 보살을 떨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언제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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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 보장 못하는 이마트식 ‘정규직화’   

지난해 우리은행이 직군분리로 ‘정규직화’한다는 합의를 했다. 또한 올해 1월 초에는 이마트가 ‘캐셔(비정규직 계산원)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이마트에서는 “법 시행은 오는 7월부터지만 2년 이상 사용을 금지하도록 한 비정규직 법의 실질적인 적용 시기는 2009년 7월부터인 셈”이라며,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만큼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과연 여러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한, 다시 말해 인사권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본측은 상당히 여유가 있는 셈이다. 

이마트 정규직화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던 고용보장과 근로조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예상컨대, 아마도 기존 비정규직들을 직군 또는 직급제로 묶어놓는 방식으로 고용보장을 하고, 근로조건은 복지부분에서 일부를 기존 정규직에 맞춰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 그대로 ‘정규직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굳이 시행시기와 방법을 개정법에 맞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이마트 사측의 생각은 ‘법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법을 비켜가려는지 맞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한편, 이마트 정규직화가 고용보장 면에서는 진전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실업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용자에게 필요한 비정규노동자는 얼마든지 있다. 또한 당장은 정규직화하더라도 임금조건은 변화가 없는 상태로 유지하다 나중에 계산원 직군자체를 아웃소싱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에, 회사측으로서는 고용보장을 한다고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다. 유통업체에 취업하려는 사람이 많이 존재하는 한 정규직화를 하더라도 기존 노동조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까르푸 어느 매장에서는 1년 동안 취업률이 190%였다. 거의 6개월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통업체 사측이 내세우는 ‘고용보장’은 노동자에게 그리 큰 혜택이 아니다. 굳이 회사측에서 자르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고용보장이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합법적 비정규 남용의 꼼수를 가르치는 경총  

따라서 유통업체 사측의 대응 방식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차별시정을 피하려는 회사측이 노동자의 공급과잉을 이용해 저임금 구조를 ‘합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직군 또는 직급 안에 차별을 비교할 대상을 없애버려 7월1일 시행되는 비정규직법의 차별시정 절차를 아예 비켜가려는 것이다. 비정규직법에서는 동종 산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비교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직종이 매우 다양한 유통업 특성상 이도 여의치만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경총은 친절하게도 비정규직법을 피해갈 수 있는 해석과 방침까지 내놓았다. 경총의 방침에 따르면, 우선 기간제 2년짜리 노동자 직접고용은 법대로 하라고 한다. 단, 비정규직법이 발효되기 직전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법 단서조항에 따르면 시행 하루 전인 2007년 6월30일에 계약한 노동자는 2009년 6월30일에 계약이 끝나야 법 적용대상이 되고, 또 그날 이후 다시 2년이 지나야 비정규직법의 기간제한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경총지침은 비정규노동자를 2년 동안 쓰고 잠시 쉬고 다시 쓰라고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파견노동자를 2년 동안 쓴 후 다시 그 자리에 기간제 2년짜리 비정규직을 쓰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다시 말해, 비정규직법이 발효되더라도 최소 6년 동안은 비정규노동자를 쓸 수 있다는 계산법이다. 이러한 꼼수가 유통업체 사측이 검토하고 있는 “여러 가지 대안”에 포함되어 있는지 아닌지 여부는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측이 가고자 하는 길, 모로 가도 현상유지

chlee_01.jpg유통업체들은 이미 매장을 수수료를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납품업체와 입점업체 노동자를 이중으로 착취하고 있다. 파견노동자들이 백화점이나 할인점 소속이 아니지만 그 매장에 파견되어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비정규직법이 시행될 때 유통업체들이 대응을 고민하게 되는 부문은 주로 정규직과 비정규노동자가 섞여있는 ‘계산원’일 것이다. 비정규직과 비교대상인 정규직이 있는데다 그 수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측이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던가, 아니면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전에 비정규노동자들을 모조리 계약해지하는 것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어느 정도는 인원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전자의 방법, 즉 같은 임금조건에서 정규직이라는 틀만 씌워주는 이마트 방식을 선택할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게 유통업체의 현실이다. 그래서 후자의 방식, 즉 이랜드가 인수한 홈에버(예전의 까르푸)에서 그랬던 것처럼 계약해지와 아웃소싱, 외주용역화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홈에버 사측은 12개월 계약의 비정규노동자들에게 6개월 계약서를 들이밀어 다시 작성하도록 했다. 이 노동자들은 재계약이 없다는 통보까지 함께 받았다. 이는 2007년 7월1일 이전에 계약해지를 쉽게 하려는 의도였으며, 아웃소싱을 준비하는 수순이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이마트 방식은 양반인 셈이다.

“회사가 정규직 계산원은 모두 타점으로 이동시키고 계약직 계산원은 모두 계약해지한 후 계산업무 전체를 아웃소싱(용역파견)하는” 방식도 있다. 예를 들어, 뉴코아와 킴스클럽에서는 계산원을 영업지원부로 보내 이전에 하던 업무와 다른 업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계산원 업무는 이후 용역회사로 전환할 예정이다. 우선 개인휴대용 정보단말기(PDA)를 도입하여 계산원 규모를 줄이고, 남은 계산원마저 아웃소싱으로 용역회사에 넘기는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전산화 작업으로 고용불안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비정규직법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동자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파견 확대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부는 2007년 12월1일 ‘비정규직법 후속조치’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합법파견의 폭을 넓혀 고용유연성을 넓히는 대신, 파견근로자 보호를 강화하고 불법파견은 철저히 단속할 것”이며, “이런 내용을 조정해 시행령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의 확인을 요구하자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파견업무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는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2006년 12월4일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해, “가능한 파견근로자의 범위를 넓혀 사업주의 탄력적인 영업활동을 돕겠다”고 직접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부는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할지 여부에 대한 방침을 정하지 않았으며, 파견대상 업무 역시 전문가 및 노사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합리성’이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시장 양극화에 얼마나 기여해 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파견대상이 조정되면 비정규직의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통업무가 파견대상이 된다면 유통노동자들의 이중 착취는 더욱 확대될 것이며, 2년마다 다른 유통업체로 옮겨 다니는 파견노동자들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차별시정 절차에 적극 개입해야

개악된 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응방안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악용하기 위해서 회사측이 시행하는 다양하고 치사한 방안에는, 아무리 노동조합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하나 대응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방침과 단기적인 전술을 세우고 노동자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 여기서는 몇 가지 대응 방침에 대해서 간단하게 제시해보겠다.

첫째, 조직적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여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고 대응하여야 한다. 노동운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주체를 조직하고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침에 투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산별노조가 아니더라도 단위노조 규약으로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직접고용 비정규노동자 외에 입점업체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둘째, 조직된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는 단체협약 효력의 범위를 비정규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이는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과정과 결합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기존 노동조합의 힘을 키우면서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는 동시에, 단체협약에서 유리한 조항을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 개정 비정규직법에 존재하는 차별시정 절차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별시정의 절차가 확립되는 과정에 노동조합이 개입하여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