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주노동자정책의 허울을 불사른 여수참사

노동사회

한국 이주노동자정책의 허울을 불사른 여수참사

편집국 0 3,169 2013.05.29 08:14

 

swjung_01.jpg여수보호소 화재참사가 발생하고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이번 화재참사는 사고 발생의 장소와 경위 및 결과, 희생자들의 면면 등이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이런 종류의 참변에 으레 뒤따르듯이 여러 가지의 반성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참변을 당한 사람들은 거의 다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는 아니지만 “취업이 허용되지 않은 직종”에 취업하였기 때문에 추방대상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통상 길어야 1주일 정도면 보호소에서 대기하다가 본국으로 추방당하는 일반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와 달리, 1개월에서 1년 가까이 보호소에 수용되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보호소에 있어야 했던 이유 대부분은 한국에서 취업하다가 임금이 체불되어 그것이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화재 희생자들의 이런 특성 때문에 이주노동운동의 입장에서는 이번 여수보호소 화재사건을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과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주노동정책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여수참사

현재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은 △사용자에게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고용허가를 주는 고용허가제, △3년간 취업 후 귀국해야 하는 단기로테이션, △강력단속을 통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감소 등의 3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책입안자들의 기대와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축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대책의 결과가 예상과 크게 달라짐으로 해서 다른 두 가지 축까지 흔들리고 있다. 

외국 인력을 도입하는 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안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없을 수는 없고, 대개 전체 이주노동자 중 10~15% 내외가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정도라면 성공적인 정책시행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토록 오랫동안 수없는 인권침해와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겪은 후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서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2004년 188,483명, 2005년 180,792명, 2006년 186,894명으로 전체 이주노동자의 50%에 육박하는 수준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공급을 불러들이는 한국사회의 수요가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사업주들은 저임노동력을 찾고, 고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청년들과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준비하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에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입국을 위해 지불한 돈과 앞으로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기간으로 3년은 너무 짧다. 거기다가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출국하면 다시 입국하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번 입국한 한국에서 계속해서 체류하고자 한다. 이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이 되어도 이들을 채용하고자 하는 사업주들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면서 상황파악 겸 호기심 겸하여 간간이 그들에게 ‘귀국의사’를 물어보곤 하는데,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잡힐 때까지 가지 않겠다”였다. 사실 미등록상태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에게 왜 귀국하지 않았는가를 묻는 것은 지원활동가로서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도 확인의 뜻으로 물어보면 “돌아가면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대답은 국적에 상관없이 나온다. 때때로 몇 년이라고 막연하나마 시한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처자식이 있다든지 하여 돌아가야만 하는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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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단속하면 정말 3년만 일하고 나갈까?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취업하고 있는 합법체류자들은 어떨까? 사업주의 고용허가가 입국과 취업의 전제가 되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업주의 횡포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또한 불법체류에 대한 유혹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안정적으로 운용되지 못하는 고용허가제의 각 부분들 역시 불법체류를 부추기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3년만 일하고 돌아가도록 하는 단기 로테이션 정책은 결정적으로 이들을 불법체류로 유인하는 동기가 된다. 거의 100%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다시 입국할 수 있다면 귀국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일하다가 귀국하면 1년 후 다시 재입국할 수 있다는 법조항이 실제로는 시행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의 제도가 허용할지라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며 고개를 흔든다. 

한국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줄지어있는 마당에 고용허가제로 재입국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이미 최초입국을 위해서 수백만원의 비용을 부담하였는데 재입국을 위해서는 다시 그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귀국하면 아무리 의지와 능력을 갖추어도 일자리를 찾기 힘드니 귀국이 내키질 않는 것이다. 그러면 최종 결론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좀 더 생각해 보겠다”는 정도가 가장 많은 답변인데, 그 말인즉 “그냥 있겠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미등록노동자가 되면 이들은 그때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말하는 “불법사람”이 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 순간부터 이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상담소에 들렀는데 얼굴이 눈에 띄게 핼쑥해서 그 동안 어디 아팠느냐고 물었더니, “단속 때문에 야간에만 일하는데 힘들어서 그렇다”며 씁쓸하게 웃던 어떤 나이지리아인. 산재사고를 당했음에도 산재보상보험법 적용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산재보험신청을 하겠다는 말에 “경찰 불러 신고하겠다”는 대꾸가 아주 쉽게 나오던 사업주. 체불임금에 대해 노동부에 진정했더니 노동부 출석시간에 맞춰 경찰을 부르던 사업주…….

근로조건 역시 예전보다 열악해지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취업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적어도 근로기준법은 준수하고 있거나 노동부의 관리감독의 범위에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으니 문제가 있더라도 근로조건 개선의 길이 조금은 열려 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애시 당초 합법의 영역을 벗어나 있게 되니 근로조건 개선의 길은 전혀 없다. 단지 ‘그런 사업장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만을 결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이 감옥 같은 보호소에 남아 있던 이유

미등록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선택의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선택하는 근로조건이라는 것이 열악할 것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럼에도 “미등록노동자로 일하는 게 힘들어요” 하면서도 그 해결의 길로서 본국귀국을 선택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거의 없다. “돌아가면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체류와 취업이유이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한” 한국에 체류하게 된다.  

물론 미등록이 되는 순간 이들은 언제 단속으로 잡혀갈지 모르는 상태에 처해지게 된다. 말이야 “단속될 때까지 일하겠다”지만, 단속은 이들에게 자신과 본국가족들의 삶을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재앙이 된다. 한국에서의 삶이 순식간에 끊어져도 본국에서의 삶에 지장이 없다면 삶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연을 안고 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귀국을 거부한다. 이런 이들이 단속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주하게 되고, 그 와중에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리면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수용되어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국 땅에서 청산할 사항이 없다면 2~3일에서 1주일 정도 수용하고 귀국하지만, 청산할 것들이 남아있다면 그것들이 청산될 때까지 상당기간 수용되어 있어야 한다. 청산할 것들 중 가장 많은 것이 체불임금이나 임대보증금, 사기당한 돈 등 금품과 관련된 일이다. 이 금품들이 빨리 청산되면 좋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청산이 늦어지면 본인이 받을 것을 포기하고 출국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수용기간이 하염없이 늘어나게 된다. 

받을 돈이 수십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면 누가 그 힘든 보호소 생활을 견디면서 기다리겠는가? 받을 돈이 수백만 원에 달하면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대졸자 임금이 대충 월 10여만 원 정도 된다는 몽골이나 네팔, 월 최저임금이 6만원선이라는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에서 일, 이백만원 정도의 돈은 엄청난 거액이 된다. 그러니 감옥 같은 보호소에서의 힘든 생활을 견디는 것이 그 돈을 포기하는 것보다 낫다고 여기게 된다. 

이주노동정책의 실패결과, 노조운동에게도 돌아온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의 ‘코리안 드림’은 처음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순탄치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의 코리안 드림이 순탄치 않다면 그 대척점에 서있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어야 할 텐데, 어찌된 셈인지 이주노동자 정책도 순조롭게 시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도입협정을 맺은 외국과 한국 모두에서 브로커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일부 사업주들과 이주노동자들은 그런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아 인력을 채용하고 한국으로 입국하고 체류한다. 그리고 3년간 단기 로테이션정책은 재입국을 기대하기 힘든 이주노동자들의 귀국거부로 이어져 아마도 이 땅의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늘려놓는 결과만 낳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후리가리(집중단속)’식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은 미등록노동자들의 수를 줄이지는 못하면서 수많은 인권침해를 낳아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여수보호소 화재참사가 포함되어 있고, 우리는 이와 같은 후진적인 사고가 앞으로 또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외국인력정책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3년을 채우고 있지만 미등록노동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50%에 육박하고 있고 앞으로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면 반드시 재점검이 필요하다.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면 제도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고, 정책이 실패했다면 수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와 관련하여 한국사회의 어느 부분보다도 노동운동진영의 책임 있는 관심이 요청된다. 등록, 미등록 여부를 떠나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자칫하면 거대한 저임 노동력 풀의 형성으로 직결되어 한국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여러 모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