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노동사회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

admin 0 4,335 2013.05.07 09:57

등소평의 딸 등용이 쓴 『등소평』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은 미국에 맞서 세계 질서를 재편해 가는 현대 중국이 낳은 '불멸의 지도자'인 등소평(1904∼1997)이 '광란과 파멸'의 십 년인 문화대혁명기에 겪은 오뚜기 인생을 그리고 있다. 문화대혁명은 원래 현실주의자였던 등소평으로 하여금 이른바 '좌파'의 위험성과 반동성을 생생하게 체험토록 만들었는데, 이 점에서 문화대혁명은 나중에 등소평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낫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의 경험적 토대를 마련해준 근거가 되었으며, 결국 중국 공산당이 좌파 교조주의를 배척하고 실용주의를 채택해, 오늘날 중국이 '무질서와 빈곤'의 후진국을 벗어나 21세기의 새로운 세계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1965년 시작되어 1976년 10월 막을 내린 문화대혁명은 계급투쟁과 혁명의 지속을 꿈꿨던 모택동의 작품으로, 이른바 임표를 비롯해 4인방으로 불린 강청, 장춘교, 요문원, 왕홍문이 주연을 맡은 '총체적 사회 개조' 운동이었다. 1965년 상해의 한 신문에 요문원이 쓴 경극 '해서파관(海瑞罷官)'에 대한 비평 글을 둘러싼 논란으로 촉발된 문화대혁명은 '무산계급 전체정치 하에서의 지속적인 혁명'을 촉진하고 중국에서 '수정주의'의 발생과 '자본주의의 부활'을 막기 위해 부심했던 모택동이, 그가 교시한 조반유리(造反有理, 반항에도 이유가 있다)와 혁명무죄(革命無罪, 혁명에는 죄가 없다)를 내세운 조반파(造反派)와 홍위병을 앞세워, 혁명원로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의 실권파들을 타도한 정변으로, 1976년 9월 모택동이 죽은 후 엽검영, 화국봉, 왕동흥 등 당 원로에 의해 4인방이 축출됨으로써 막을 내린 중국 현대사의 대사건이다. 

문화대혁명은 정치, 경제, 과학, 문화, 교육 등 중국 사회 모두를 크게 파괴하였으며,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을 거치면서 확립된 수준 높은 공산당의 기강과 우수한 정신풍조를 말살해 버렸다. 말년의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의 공과를 반성하면서 '7은 잘됐고, 3은 못됐다'고 했지만, 사실상 문화대혁명 10년은 중국 현대사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남았다. 

이 엄혹한 시기에 등소평은 67년과 76년 두 번 타도되고, 세 번 실각해 당직을 박탈당하고 유배되었는데, 딸 등용은 그 쓰라린 유배의 날들을 이 책에서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처음 타도된 후 평당원으로 강등되어 3년 동안 북경의 중남해에 감금되었던 등소평은 1969년 강서성 남창으로 유배를 떠났다. 전쟁준비를 위해 '문혁의 범죄자'를 포함해 당중앙 일부를 지방으로 분산시킨다는 명목이었는데, '범죄자'에게는 '노동에 참가하여 군중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명령도 덧붙여졌다. 강서성은 30여년 전 그가 홍군의 일원으로 장정을 하면서 여러 전투를 치렀던 곳으로, 여기서 65세의 등소평은 53세의 부인과 70세가 다 된 계모를 데리고, 트랙터 공장에서 줄칼로 기계를 깎는 공원으로 일했다. 그에게 이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1920년대 프랑스에서 근검공학(勤儉攻學)할 당시, 르노 자동차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매일 오전에 공장에 가서 노동을 했고, 점심 때 집에 돌아와 식사하고, 낮잠을 잔 후 오후에는 집안 일을 했다. 공장일이 유일한 외출이었던 셈이다. 등용은 이 시절 등소평이 "새로운 생활, 노동을 통한 단련, 노동자들과의 접촉은 눈과 귀를 새롭게 하였다"고 쓰고 있다. 이곳에서 등소평은 트랙터 공장 주임이 라디오 하나 사기 힘든 '혁명' 중국의 실상을 보면서, 중국 인민에게 필요한 것은 '계급투쟁'이 아니라, 사회안정과 경제발전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렇듯, 남창에서의 유배 기간은 등소평에게 중국 사회주의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고심하게 만든 '반성과 고민'의 시간이었고, 여기서 얻은 경험과 교훈은 1973년 이후 재개된 그의 정치 활동에 밑거름이 되었다. 

이 책은, 등소평 이야기말고도 중국 인민이 '우리의 주석'으로 열렬히 사모한 주은래를 비롯한 혁명 원로들의 면면과, '혁명파'와 '당권파' 간에 전개된 권력 투쟁을 많이 소개하고 있어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사 전공자가 한 번역의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등용 짓고 임계순 옮김, 김영사 펴냄, 19,900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