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현실을 뚫고 역사의 당위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동사회

역설의 현실을 뚫고 역사의 당위를 실현하기 위하여

편집국 0 3,427 2013.05.29 08:07

지난 3월26일 이상수 노동부장관이 한국노총과 간담회를 갖기 위하여 방문하였다. 그 간담회에서 산별조직의 여러 제도적·조직적 현안들이 제기되었는데, 그중 한국노총 중앙과 금속노련 제기한 것은 산별노조 사용자단체 구성과 산별 단체협약의 효력확대 등과 관련한 문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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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은 지난 3월26일 산별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부장관과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  한국노총 ]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나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음에도 산별교섭 틀을 형성하기 위해서 길고 긴 투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산별 사용자단체 구성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노총의 경우에도 금융산업노조는 은행연합회와 중앙 공동교섭을 통하여 교섭 틀을 구축하여 왔으나, 향후 건설될 금속노련 등의 제조산별 같은 경우는 금융과 같이 산별교섭 틀이 원만하게 구축될 거라 장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산별 사용자단체의 구성여부는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나 경영계는 그동안 산별노조의 교섭당사자로서 사용자단체의 구성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 원리나 법형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회피해왔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이번 간담회에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산별노조가 2개 이상 복수의 기업대표(현행 법률상 교섭당사자)에게 교섭을 요구하면 연대하여 교섭에 임할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기하였다.

또한 한국노총은 산별 단체협약의 효력확대를 위한 방안을 요구하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산별 단체협약의 효력확대는 산별노조의 교섭결과를 공유하여 노동자 간 차별과 소외를 없애고 연대성을 도모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국노총 등의 요구는 산별 단체협약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을 △해당 노조가 조직대상의 과반 이상을 조합원으로 하는 경우와, △산별노조가 존재하는 기업에서 산별노조 조합원이 과반 이상인 경우(현행 노조법의 일반적 구속력 조항)로 하여, 산별교섭의 내용이 비조합원에게 공히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별조직과 관련한 법·제도 구축 요구와는 별개로, 한국노총의 산별 조직화 양상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2006년 초, 한국노총에서 대규모 조직에 속하는 자동차노련과 금속노련이 대의원대회에서 산별조직화를 결의하고 실천의지를 대내외에 밝혔다. 당시에는 이에 따라 한국노총 조직의 산별화가 50%를 넘게 되고, 이러한 움직임이 타 조직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했다. 그러나 2007년 현재 한국노총 조직 가운데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은 금융산업노조와 택시산업노조, 철도산업노조 3곳뿐이다. 체신, 전력, 담배인삼노조는 전국 단일업종 기업노조로서 조직화되어 있다. 이 가운데, 완전한 형태로서의 산별교섭은 아니지만,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중앙단위 교섭을 하는 조직은 금융산업노조가 유일하다.

그러나 금융산업노조의 교섭 역시 지부 은행별 교섭위임에 따라 은행연합회와 중앙 공동교섭을 하는 형태로, 아직 완벽한 산별교섭을 견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때문에 산별 노사 간의 중앙교섭에 따라 힘 있는 결정이 내려지거나, 금융산업의 미래전망과 같은 굵직한 산업적 주제를 두고 노사가 교섭이나 협의를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편, 택시산업노조나 철도산업노조는 중앙교섭보다는 지역교섭·지부교섭 위주로서, 산별 중앙교섭에 이르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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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28일 열린 한국노총 정기대의원대회   ▶ 한국노총 ]

한국노총 산별전환, 역사적 당위와 역설의 현실

한국노총 차원에서 제출된 산별노조 건설전략은 먼저, △2007년 이전에 산별노조 건설을 완성하는 계획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산별전환 추진단을 중앙과 산별에 동시에 구성하여, △각종 교육과정에서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조합원이나 조합간부와 공유하고 관련 토론회와 세미나를 조직하는 것 등이었다. 이는 지난 2006년 한국노총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한국노총이 새로운 이념과 기조를 세우고 마크·로고·노총가 등을 전면 개편할 것과 함께, 모든 산별연맹이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을 힘 있게 결의하면서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위노조 대표자나 간부동지들의 산별조직화에 대한 의식과 실천의지는 아직 당위성에 대한 이해도나 공감도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별노조 정착과 제도화를 위하여 한국노총은 어떤 방식으로 사업을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참으로 어려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현재 연맹과 총연맹의 골간을 이루고 있는 기업별노조체제는 노동운동의 약화를 위해 정권에 의해 강제된 것임에도, 오히려 기업단위 노조들이 앞장서서 산별조직화를 거부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와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멈출 수 없는 역사적 귀결이다. 그 이유는 첫째, 이제 현재의 기업별 조직 틀로는 더 이상 조직확대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5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인데, 과연 기업별노조가 이러한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얼마나 쓸모가 있으며 내용을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기업별노조로는 현재 3년이 유예되어 있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체 노동조합의 절반 정도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조직되어 있고,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조합이 5,487개로 전체의 88%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별다른 조직변화 없이 3년 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맞이할 경우 매우 큰 조직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별노조로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교섭과 활동을 과연 할 수 있는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이다. 기업별노조체제는 자기 사업장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통해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기주의를 만연시키고 노동자 간 연대의 틀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산별노조체제의 구축과 산별교섭의 정착은 너무도 시급한 현안이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는 너무나 많은 과제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사회적 교섭·연대임금·미조직 조직화

그러나 산별노조는 어렵더라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산별노조의 실천과제들은 거칠게나마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차원의 교섭을 극복하고 산업별 교섭을 추진하는 것이다. 임단투 교섭 외에도 노동조합의 과제는 산처럼 쌓여 있다. △초국적 자본에 의한 금융구조조정과 제조업 산업공동화에 대한 대책, △원·하청기업 간 불공정거래 및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 문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의 사회안전망 문제, △빈곤철폐 및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세제개혁문제 등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노동조합이 개입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노동자 개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또한 기업별노사관계체제 속에서는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매년 임금투쟁을 통해 임금을 올려놔도 산업차원의 구조조정이 닥치면 기업노조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별 교섭체제를 구축하여 노사 및 노사정 간 교섭체계를 이루고, 이러한 산업별 교섭체제가 노동법제의 지원 속에서 원만히 진행되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여야 한다.      
   
둘째,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사회적으로 연대임금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동일 업종이나 직종이라 하더라도 기업규모에 따라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 또한 남녀 사이의 임금격차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는 이미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양극화되면서 그동안 강력한 교섭력으로 임금인상을 주도했던 대기업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의 폭이 줄어들었고,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와의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교섭을 통해 중소영세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을 강하게 전개하여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사회적 고립작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연대임금정책의 핵심은 먼저 저임금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 또한 산별노조 차원에서 임금 및 인사제도 등에 대한 대안모델을 마련하고, 이를 관철해가는 것이다. 산업별로 평생학습체계와 숙련향상을 위한 제도를 구축하는 것 역시 함께 도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 과제가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미조직노동자 조직화가 진행되지 않으면 이제 노동운동은 대표성을 갖추기 어려우며, 현실적으로도 조직의 강화나 재정 안정을 이루기가 힘들다. 더욱이 2010년부터는 기업단위 복수노조 시대가 도래한다.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화는 노동운동의 위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적 경쟁력이라는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대처와 개입이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미조직노동자의 조직확대에 장점을 가진 조직 틀거리인 산별노조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산별교섭 제도화 위한 한국노총의 교육사업과 정치사업

이러한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의 정착과 제도화를 지원하기 위하여 노총 중앙차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도 교육사업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사업을 통해 조합원들이, 1980년 이후부터 강제된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 속에서 쪽수가 생명인 노동조직이 조직률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고, 분배중심의 의제를 넘어 국가와 산업차원의 의제로 나아가지 못함에 따라, 노동운동의 위기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형국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광풍처럼 밀려온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노동시장이 분절되고 구조조정과 유연화 공세로 인해 노동의 불안정과 차별이 커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조직노동운동의 혁신과 정비가 절실함을 알려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기업별 담벼락을 넘어 열린 공간으로 나갈 때 비로소 소통과 연대가 가능해지고 노동운동이 강해짐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산별교섭 정착을 위해 각 조직의 역할과 기능을 정비하고 정립해나갈 것이다. 즉, 중앙단위는 거시적인 경제·사회·노동정책에 대해서 큰 틀에서 교섭 및 조정을 진행하고, 산별과 지역 단위는 임금정책과 산업정책 및 산별교섭을 담당하며, 현장단위는 노사협의회 등을 통한 경영참여의 역할을 강화하여 사업장단위 생산성 확보와 복지 분배를 위한 대화틀을 구축할 수 있도록 내부조직을 정비해나갈 것이다. 

셋째, 각 산별연맹들의 산별노조 전환 추진을 견인하고, 이미 결의 및 실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조직들에게 힘 있게 연대할 것이다. 한국노총이 2006년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조직화를 결의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산별조직화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산별대표자 워크숍, 산별 관련 각종 홍보선전물 현장배포 등을 진행할 것이다.   

넷째, 사회임금정책을 본격적으로 수행해나갈 것이다. 한국노총은 2007년 임금정책을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노동자 가정이 한 달 동안 표준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비로서 표준생계비를 내세웠다. 이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448만원인 표준생계비는 주거, 의료, 교육비를 제외하면 303만원으로 내려가게 된다. 즉, 주거, 의료, 교육에서 공공부문의 역할이 커지면 노동자 개인의 부담이 급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이와 관련한 사회정책을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요구하고 이를 공약화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노사관계가 기업별 노사 간 분배투쟁 중심에서 사회경제정책 중심으로 전진하여, 산별교섭의 정착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다섯째,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논의를 정부와의 각종 협의체에서 다양하게 전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산별교섭은 단순히 노동조직의 힘 강화를 통해 자본에 대한 투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을 교정하여, 산별교섭이 정치민주주의에 비해 뒤쳐진 우리사회의 산업 및 경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초석임을 인식시키고 제도화를 견인해나갈 것이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노동부 등과의 모든 회의체 및 협의기구 등에서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해 다양한 문제제기를 하고 실천노력을 배가해나갈 것이다.    

여섯째, 대선공간에서 산별교섭 정착과 관련된 입법적 제도 틀을 후보들이 수용하도록 압박할 것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의 입장과 실천의지를 확인하고, 이들이 산별교섭 제도화를 공약에 담아내도록 정치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