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산재사망률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일까?

노동사회

세계최고 산재사망률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일까?

편집국 0 8,072 2013.05.29 08:05

노동부 산업재해분석에 의하면 산업재해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64년 이후 2005년까지 산업재해로 인정된 노동자수는 약 358만여명에 이른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62,931명에 이르고 있다. 

재해율과 전체사망률은 줄어도 산재사망률은 그대로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의 연도별 분포를 살펴보면, 1980년대 이후부터 재해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정작 산재사망률은 감소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부는 2004년 대비 2005년의 사망만인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어 “사망만인율도 줄어들고 있다”는 ‘소망’을 피력했지만, 실제 2006년 9월까지의 사망만인율을 살펴보면 전년도에 비교하여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산재사망률의 감소는 요원한 현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활동 연령의 일반 인구 사망자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현실과 비교해볼 때 그 심각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도별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1997년 2,742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난 이후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감소하였으나 이후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업무상사고에 의한 사망자수의 증가보다는 업무상 질병에 의한 사망자수 증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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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대비 6배가 넘는 비정규직 산재사망률 

산재로 인한 사망만인율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살펴보면, 최근 10년 동안 50인 미만 규모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2년에서 2004년까지는 50~299인 규모 사업장보다 300~999인 규모의 사업장에서 사망만인율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지만,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을수록 사망만인율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연도별 업무상질병으로 요양 승인을 받은 노동자수는 1994년에 918명으로 가장 낮게 나타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4년 7,895명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2005년에는 6,400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으나 2006년 9월 자료에 의하면 다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업무상질병 만인율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업종별로 보았을 때 제조업과 기타 산업에서 주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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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형태에 따른 산재발생의 차이를 다룬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노동자가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재해율과 사망만인율이 모두 더 높았다. 특히 사망만인율을 보면, 제조업의 경우 정규직노동자가 0.25인 데 비해 비정규직노동자는 1.57로 6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제조업의 사망만인율을 보면 정규직노동자가 0.45인 데 반해 비정규직노동자는 4.77로 10배가 더 높았다. 

그런데 이러한 산재통계는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은 경우만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산재보험을 거치지 않고 공상이나 본인부담으로 처리되는 경우를 포함하면 산업재해의 실제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용의 불안정성이 심한 비정규직 및 이주노동자일수록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사고성재해가 아닌 직업관련성질환의 경우는 노동자가 산재라는 인식을 갖기 어렵고, 사전에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산재요양절차의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산재요양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누락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압도적인 OECD 1등의 산재사망국가 한국

2005년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십만인율은 22.5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산재사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산재보험에 적용을 받는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였고 산재로 승인을 받은 경우만 포함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 산재 문제의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다른 국가들의 경우 재해십만인율이 사망십만인율에 비해 적게는 500배에서 많게는 1000배가 높게 나오는 반면, 우리나라는 30~40배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재해율 통계는 매우 저평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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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에서 밝힌 국가경쟁력의 순위와 국제노동기구를 통해 확인된 산재 사망률을 비교하여 보더라도 경쟁력 순위에 비해 산재사망률이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선진국은 물론 브라질, 칠레, 중국 등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해서도 산재가 매우 높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안전보건의 위기 

1970~80년대에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성장담론은 최소한 산재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직까지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개발독재 시대에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으로 취급될 정도로 건강과 안전에서 무권리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산업재해란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또는 “사회적 비용” 정도로 여기는 통념이 우리사회에서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제정과 산업안전보건체계의 구축은 매우 형식적인 의미밖에 가지지 못했다. 실제 선진 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후 산재사망자수 및 산재사망률이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우리나라는 1982년 산업안전보건법 제정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이 성장하고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함께 성장하면서,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의 중요성이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산재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산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이를 해결할 수단을 찾게 되었다. 최근 이러한 조건들이 배경이 되어 산업재해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복지의 과잉(?)에 따른 생산력 및 생산성의 정체”라는 구조적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서구와도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근본적인 구조는 여전히 과거의 성장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형식적 규제 완화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핵심적 의제가 된 이유는 기존의 안전보건시스템 및 전통적 산업구조의 변화, 새로운 생산조직 및 생산패턴의 변화 등이 구조적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고 새로운 안전보건의 문제가 부각되었고, 그 틈새를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건과 환경 등에 투입되었던 비용이 점차 커지면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는 점도,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영국과 미국에서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한 신자유주의는 최근 자국에서조차 문제해결을 위한 종착역이 아니라 사회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진원지이고, 또한 노동자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복지의 축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고 패러다임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한미 FTA, 말 그대로 노동자 ‘목숨’을 위협할 수도

한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 완화의 흐름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복지의 과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수도, 존재해본 적도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실 한 번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법적 제도적 규제장치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다”라고 진단되고 규제완화가 어떠한 여과장치 없이 관철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최근 한국의 안전보건 영역에서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서구의 그것과 동일한 외양을 보이면서도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성장의 논리가 산재와 노동자의 건강에 앞에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규제의 방식이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 식으로 규제완화 또는 폐지가 논의되고 관철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완화 조치는 서구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과 문제들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 핵심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한미 FTA이다. 한미 FTA는 단지 관세의 인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에 장애가 되는 국내 규제장치의 포괄적 해체를 요구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 자본에 의한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완화 요구는 더욱 더 커질 것이 확실하다. 기본적인 안전보건조치조차 취하기 어려운 소규모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노동자의 건강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노동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산재 확대의 공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