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 산별교섭은 어떤 '역사'를 만들것인가

노동사회

2007년 한국 산별교섭은 어떤 '역사'를 만들것인가

편집국 0 2,722 2013.05.29 08:05

산별노동운동을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노조가 탄생한 지 20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그간의 끈기 있는 소중한 노력들이 모여 드디어 산별교섭의 과제와 전망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드디어, ‘당위’의 반영으로서 산별전환 성립! 

jhlee_01.jpg2006년 완성차 4개사를 포함해 민주노총 소속 대규모 사업장에서 산별 조직전환이 보다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현 기업별 노동운동이 처해있던 위기의 영향이 컸다. 노동운동은 전임자 임금금지나 복수노조 도입 등 제도적 변화나 정부와 언론의 공격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운동 스스로 일관성 있는 제도적 전략과 정치담론을 생산하고 그것을 사회 전반에 걸쳐 재생산할 수 있는 리더십이 부족했기 때문에 변화를 요구하고 선택한 것이다. 

기업별노조가 힘들여 얻은 임금과 근로조건은 확산되지 않는다. 서비스업, 여성과 고령자 등 노동시장의 주요 업종과 노동력의 모습은 자꾸 변해가지만 이들은 제대로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진 싼 노동력의 광범위한 풀(pool)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한,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사용자들의 반노조활동도 잠자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간 강요되었고, 또 1987년 이후에는 조직의 관성으로 유지되어왔던 기업별 노조체제가 균열 끝에 무너진 것은 우리의 노사관계가 변화해야 한다는 당위를 반영한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성공적이었던 산별 조직전환은 바로 이러한 위기 속에서 노동운동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화를 위한 조직구조와 유연한 대응이 조화해야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그 첫 번째 과제는 산별 조직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이 고민은 최근 거대 사업장의 조직전환이 이루어진 금속산별노조에서 가장 깊을 것이나, 이미 조직전환은 물론 산별 중앙교섭까지 여러 차례 성사시킨 보건의료나 금융노조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이다. 기업별노조의 조직전환 결의에 따른 산별노조 건설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만큼, 이에 대한 답 역시 쉽게 찾기 어렵다. 산별노조의 기업별지부는 현재 재정적 자율성, 그리고 직접 선거제를 통한 인사상의 독립성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경우 지부 내에 집행-의결기구 역시 보유하고 있어, 산별전환 이후에도 기업별노조의 의식과 활동패턴이 유지되는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기업별지부를 완전히 해체한다면 노동조합은 작업장 차원의 역동성과 교섭력이 저하되고, 궁극적으로 조합원의 유지 및 확대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여러 산별노조들이 고려하고 있는 △한시적인 기업별지부 운영, △기업별지부의 해체와 지역지부로의 재편, △조직단위와 교섭단위의 이중구조 등은 바로 이러한 딜레마를 반영한 고육지책들이다. 이렇듯 산별노조마다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다른 만큼, 각기 다른 대안들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개별 산별조직과 관련된 노조의 구체적 방안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공통된 방향성이 요구된다. 

먼저, 산별노조의 조직구조는 무엇보다도 미조직사업장과 비정규직의 조직화문제와, 조직된 이들의 조직단위 문제와 연계하여 논의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의 전환율이 80%에 육박한다 하여도, 또 조만간 전체 조직노동자의 과반 이상이 산별노조에 속하게 된다 하여도, 산별 및 기업별 노조를 모두 포함해 실제 조직된 노동자의 비율이 10% 남짓에 불과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조직 전환된 산별노조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산별교섭 내용의 효력확장이 보장되거나, 아니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노동자, 특히 영세사업장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급선무이다. 영세사업장의 조직화를 위해서는 여러 사업장을 포괄하는 지역지부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비정규지부를 따로 묶는 것보다는 같은 기업지부에 비정규직이 포함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먼 남의 일이 아닌 같은 동료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산별 조직구조의 선택은 유연한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보다 먼저 산별노동운동과 교섭체제를 정착시킨 서유럽 노동운동의 경우에도 산별 조직구조의 국가별, 산업별 차이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특정 국가나 산업의 모델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현재 상황에 맞는 점진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형편상 기존 대규모 기업별지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기업별 관성을 깨려는 노력은 제도변경과 운영의 묘를 통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당지역의 대표간부와 각 기업지부의 전임자들이 매주 일정시간, 혹은 일정기간을 초기업적 지역활동 혹은 산별 공동포럼에 참여하는 것도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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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출범한 민주노총 5기 집행부는 “비정규직과 함께 산별시대 민주노총을 새롭게 건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 민중의소리 ]

기업별교섭과 산별교섭 장점만 취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교섭 틀의 문제를 살펴보자. 단체교섭 구조가 집중되었는가 아니면 분권되었는가에 따라 노동운동의 노동시장 및 고용관계에 대한 규제력은 크게 차이가 난다. 산별 조직전환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파편화된 기업별 교섭구조로는 △사회적 임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양극화, △산업공동화나 해외자본의 침투 등의 주요한 정책적 의제를 다루기 어렵다. 그러나 산별노조 내에 아직 강고히 남아있는 기업별 관성으로 인해 아직도 기본적인 임금과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지부교섭의 중요성이 조금도 줄어들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산별로의 조직형태 변경 이후에도 기존 기업별교섭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별노조와의 밀월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전략과도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산별노조에서 사용자단체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 교섭이 파행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금속노조의 경우 산별전환에 성공한 대기업의 사용자들이 기존 금속산별사용자협의회에 참여하게 될지 말지 등 산별교섭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심지어 2006년 산별교섭에서 연말까지 구성하기로 합의된 보건의료산업의 사용자단체조차 아직 마련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상호 경쟁관계에 놓인 사용자들이 협력적으로 조직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외부적인 조직화 기제, 특히 정부의 제도마련이나 노동운동의 동원력이 필요하다. 사용자단체의 구성을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나 대표성을 갖춘 산별노조가 교섭을 요청할 때 해당 산업 사용자에게 ‘연합 교섭의무’를 신설하여 사용자단체 구성을 촉진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다 효과적이었던 것은 노동조합을 통한 사용자단체 구성의 강제이다. 그 첫 번째 방식은 파업 혹은 다른 수단을 통해 사용자단체에 참가하지 않거나 기업별교섭을 고수하려는 사용자를 압박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예측되는 효과에도 불구하고 노측에도 비용을 유발한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교섭구조의 조율을 통해 이중 교섭 및 파업을 방지하고, 사업장교섭 시 교섭비용을 감소시켜, 사용자에게 산별 사용자단체 가입 및 교섭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이다. 사용자단체의 조직과 교섭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제기한 모든 방안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별 교섭구조를 설정할 때 필수적인 고려사항은 이중교섭의 방지와 중앙과 지부의 적절한 분업을 가능케 하는 교섭단위의 설정이다. 특히 이중교섭의 방지는 사측의 문제제기와 노측의 비용유발로 인해 금융노조가 맞고 있는 가장 큰 개선과제이기도 하다. 또 통합 금속산별노조 역시 업종과 지역을 둘러싸고 적절한 교섭단위를 고심 중이다. 보건의료노조에서도 특성별 교섭에 대한 사측과 일부 조합원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과제가 아직도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단일한 산별협약안이 공통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이 너무 적어지게 되면 지부교섭의 중요성이 감소하기 어렵다. 그러나 업종이나 규모, 혹은 특성별로 지나치게 세분화되게 되면 다시금 확대된 기업별협약의 모습을 띄게 되어 산별교섭이 지향하는 큰 이슈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교섭이 어떤 수준에서 이루어지는가는 전적으로 해당 국가가 어떤 경로로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을 구축해왔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결국 산별 교섭구조 역시 해당 산업의 노사가 장기간의 시행착오와 논란을 통해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 때 노사 모두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기업별교섭과 산별교섭의 장점만을 취할 수 있는 교섭구조는 없다는 사실이다. 산별 차원의 근로조건 조율과 노동자 내부의 재분배를 위해서는 기업별 현안이 잠시 미루어질 수도 있다. 산업 갈등의 외부화와 숙련향상을 위한 노사 공동노력 등 개별기업이 얻기 힘든 공공재의 획득을 위해서는 사용자들은 과거 기업별노조와의 유착관계가 보장해 주었던 예측가능성을 포기해야 한다. 

‘산별성’의 리트머스 용지가 될 비정규직대책 

우리사회가 지난해 산별전환의 확대를 의미 있는 기회로 환영하는 이유는, 산별교섭의 진전이 외환위기 이후 급격했던 충격의 여파로 병든 노동시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국가나 시장 그 어느 쪽도 산적한 노동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비정규직문제만 하더라도, 산업이나 업종마다 활용하는 방식이나 차별의 내용이 모두 다르며, 설사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법제화된다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규제의 대상을 정부가 완벽하게 모니터링하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2007년 가장 주요하게 등장해야 할 산별교섭의 의제는 -물론 사용자단체의 구성이나 교섭단위 등 산별교섭의 기반을 다지는 제도적인 현안도 포함되어야 할 터이나- 무엇보다도 ‘비정규직문제’이다. 지난 2006년 11월30일, 오랜 논란 끝에 비정규관련법이 통과됨에 따라 노동시장에서는 계약해지와 직군제를 통한 정규직화, 외주화 등이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또 미미하였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있지 못한 기업별노조에 비해, 해당산업 모든 노동자들의 이해대표를 목표로 하는 산별노조는 비정규직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노동조합 총연맹들은 이미 사업계획에 산별노조의 교섭의제에 실태조사와 정규·비정규 차별해소기금의 마련,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철폐 계획의 수립 등과 같은 비정규직문제를 포함시켰다. 비정규직의 조직화, 하청노동자의 처우개선,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인상 등도 산별노조가 마련한 2007년의 주요 사업이다. 

이러한 비정규직 대책은 산별노조의 ‘산별성’을 시험하는 주요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개별 산별노조의 비정규직대책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 실효성이 크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임금인상에 반대하는 조합원이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배려가 고용환경을 악화시킨다면 비정규직의 현안은 항상 부차적인 관심사에 불과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2007년 산별노조의 비정규직 관련 교섭은 이러한 과거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당장 실현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규직 노측과 사측 모두에게 편리한 대안인 직군제의 도입 역시 노동시장의 차별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조가 택할 올바른 길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정규직 문제를 넘어, 점차 악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격차를 줄이고 모든 노동자에게 형평성 있는 보상의 제공과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오기 위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비록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 어려운 선택이라 하더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세울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에 의해 필수적인 비정규직의 형태와 규모를 정하고, △점진적인 정규직화를 꾀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2007년 산별교섭

지난해 대규모 산별전환 이후 첫 번째로 실시되는 2007년 산별교섭은 노사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은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가능한 기업지부의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측과, 하루 빨리 산별교섭의 틀을 만들어내야 하는 노측의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며, 비정규직법은 물론 노사관계 선진화입법마저 통과되면서 새롭게 짜인 판에서 격돌할 새로운 이해갈등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은 형편이다. 대선정국이 가져올 불확실성과 혼란 역시 산별교섭의 큰 과제들을 앞둔 노동계에게는 기회보다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로 상징되는 대기업 기업별노조가 이룬 산별전환의 역사성의 무게가 올해의 산별교섭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신뢰와 협력이라는 공공재를 철저하게 결여하고 있는 현재의 노사관계는 전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산별전환을 계기로 그 변화의 방향이 조심스럽게, 또 현명하게 타진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