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홍콩노총

노동사회

중국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홍콩노총

편집국 0 4,307 2013.05.24 12:56

홍콩노총과 국제공공노련 한국가맹조직 협의회(PSI-KC)가 함께 개최한 공동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2월 초 4박5일간 홍콩노총(CTU)을 방문했다. 방문단은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공공연맹, 한국노총 공공노련, 전력노련의 간부와 통역 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첫날에는 “사유화저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한국, 홍콩, 일본 공공부문 노동자 국제워크숍”이 열렸다. 다음날 오전에는 지역 및 가정방문간호노동조합과의 간담회, 오후에는 홍콩노총 임원 및 간부들과 간담회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날에는 홍콩노총을 포함한 홍콩민중동맹이 주최하는 거리행진에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중국 반환 전과 반환 후의 차이나 홍콩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빠른 홍콩 국제공항,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서울과는 달리 초여름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날씨다. 반팔로 공항을 활보하는 사람들 때문에 손에 벗어든 두꺼운 겨울옷이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다리와 항구에 우뚝 솟은 컨테이너가 우리를 반긴다. 흰 구름 섞인 파란 하늘 아래, 입추의 여지도 없이 들어선 고층 아파트 사이로 푸르게 늘어진 아열대 나뭇잎들이 인상적이다. 

중국대륙 광둥성(廣東省)의 남동쪽 해안가에 위치에 홍콩은 1,070㎢(서울의 약 1.8배)의 면적으로 본토인 주룽반도(九龍半島), 홍콩섬(77.5㎢)을 비롯하여 신계(新界) 지역 등 260여개 이상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좁은 땅에 인구가 680만명에 이르러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홍콩은 1839~42년 제1차 아편전쟁 등 영국의 함포외교(gunboat diplomacy)로 식민지가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로서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해온 홍콩은 1997년 7월1일 자정 중국으로 반환되어 중국의 특별행정자치구로 편입됐고, 현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양립하는 1국 2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홍콩은 아편전쟁, 난징조약과 99년에 걸친 영국 식민지,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산업, 노랫말 속의 밤거리 등 몇 가지 편린들뿐이었다.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인 1992년 짧은 방문에 이어 두 번째였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즐비한 고층 건물, 그 사이 칠이 벗겨진 낡은 아파트, 창틀에 널린 빨래들, 건설현장의 대나무 비계목들이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떠오르게 한다. 과연 차이나 홍콩의 모습은 그때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홍콩 주요 노총의 현황

ybkang_01.jpg셋째 날 홍콩직공회연맹 사무실을 방문하여 홍콩의 노동·경제 사정을 들었다. 현재 홍콩에는 4개의 주요 노총이 있다. 먼저 1949년 설립되어 조합원 30만명을 포괄하는 홍콩공회연합회(Hong Kong Federation of Trade Unions, 이하 FTU)와 17만명 규모의 홍콩직공회연맹(Hong Kong Confederation of Trade Union, 이하 CTU)가 있다. 제3노총은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지지하는 노조(Hong Kong & Kowloon Trades Union Council, HKTUC)로, 2만여명 규모로 알려져 있으나 발표와는 달리 조합원 5천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 외 5천여명 규모의 또 다른 전국노조(Joint Organization of Unions, JOU)가 있다. CTU, TUC, JOU는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에 가입한 상태다. 

4개의 노총 중 2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실상 양대 노총 체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두 노총은 항상 의견 충돌이 심하다고 한다. CTU의 간부는 “FTU는 중국 공산당의 자식”이라고 표현했다. 규모면에서 FTU는 30만명에 이르지만 조합비가 낮고 평생 회원제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회원 수를 알 수 없다. 현재 FTU의 위원장은 홍콩 총통 내각의 구성원이며 동시에 중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의(全人代)의 회원이기도 하다. 친 정부적이기 때문에 재정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CTU에서 조합원들로부터 50달러를 받으며 야유회를 하면, FTU는 그 다음주 10달러를 받고 같은 장소에서 야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실제 FTU가 하는 일은 정부와 구별되지 않는다. FTU는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현수막에 모든 지역에 내걸었는데 슬로건의 내용은 “홍콩 정부를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현지 간부는 FTU가 어떤 경우든 총통 정책에 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조합원의 권익에 별로 관심도 없는 노조가 어떻게 오랫동안 제1노총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홍콩 조합원들의 이중 멤버십 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 노조법에 의하면 7명이 모이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조합원들은 조합비가 낮기 때문에 양쪽 노조에 모두 가입을 해도 별 부담이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면담했던 CTU 소속 지역 및 가정방문간호노조는 전국규모 직능별 노조로서 전체 조합원 규모는 1천명인데 상근 전임자는 1.5명이었다. 조합원들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경우 대략 1만 홍콩달러(122만원), 계약직은 7천 홍콩달러(84만원)이며, 조합비는 연간 각각 130홍콩달러(15,860원), 120홍콩달러(14,640원)를 낸다고 한다. 따라서 조합원 1인당 월 조합비는 대략 1,300원 정도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어쨌든 FTU 회원이 되면 더 싸게 슈퍼마켓을 이용할 수 있고 치과 치료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으며, 여러 가지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반면 고용불안 등 어려움에 닥치면 사용주와 맞서 투쟁해 줄 수 있는 CTU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CTU에도 가입을 한다. FTU는 종신 회원제이므로 어용노조라 여긴다 해도 한번 가입하면 탈퇴할 수 없기 때문에 이중 멤버십을 갖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게 된다. 사용자들은 복수노조 상태를 적절히 악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노조대표와만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사실상 단체협상권이 없으므로 노조대표는 사용자와 개인적으로 협의하여 결정한다. 

홍콩직공회연맹(CTU)의 조직과 당면 과제

CTU 결성을 위한 준비는 1988년부터 시작되었다. 독립노조 대표들이 회합을 하다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지켜보면서 설립을 서둘렀다고 한다. 즉 중국 공산당 정부가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의 민주적인 활동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위기의식을 갖고 1990년에 설립하였다고 한다. 창립당시는 25개 노조 9만명, 5명의 상근자로 시작했다고 하니, 조직 규모는 16년이 지난 지금 두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국제자유노련(ICFTU, 현 ITUC)에도 가입하고 있는 CTU는 매년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26명의 중앙집행위원회가 있으며, 교육위원회, 여성권리위원회, 노동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복지위원회 등 5개 위원회가 중앙집행위원회 산하에 구성되어 있다. 그밖에 필요한 경우 설치하는 임시위원회가 3개 있다. 조합원들은 공식적인 연례 총회에 참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위원회가 노동조합 참여를 보장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또한 가입노조들의 소규모 연수 캠프가 다양하게 열리는데, 보통 이틀간 진행하는 캠프에서 여러 가지 워크숍과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CTU 산하에는 83개 가맹노조가 있는데 직종, 기업별, 지역노조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1990년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주로 공공부문, 서비스, 교통운송 산업의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홍콩에는 약 350만명 가량의 노동자가 있으며, 그 대부분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어 홍콩에서는 사양산업으로,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2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CTU 산하조직 중 가장 규모가 노조는 7만여명인 직업교사노조, 두 번째로는 5만명 규모의 홍콩구룡노조연맹이고, 그 뒤를 6천명 규모의 운송노동자조직연맹, Cathy Pacific항공 승무원노조(5천명), 건물관리보안일반노조(3천명) 등이 이었다.

CTU는 자신들의 주요 역할은 자주적인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일과 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투쟁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CTU은 이미 국제자유노련을 통해 ILO에 여러 번,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등 핵심 노동권 위반에 대해 정부를 제소한 상태다. 

낮은 조합비에 발목을 잡혀 있는 CTU

홍콩의 낮은 조합비는 CTU의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통상 CTU에 가맹한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연간 130홍콩달러(15,860원)를 조합비로 지출한다. 반면에 FTU에 가맹한 경우는 이 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CTU의 조직확대에 장애가 되고 있다. 이처럼 조합비가 낮을 수 있는 이유는 FTU나 TUC의 경우 정당의 지배를 받고 모든 재정 지원을 정당에서 담당하여 조합비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CTU는 이러한 불행한 관행에 맞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를 건설하기 위하여, 새로운 노조주의를 역설하며 투쟁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CTU 소속 10여개 이상 노조에서 이를 수용하여 연간 240~300홍콩달러로 조합비를 인상했다. Cathy Pacific항공 승무원노조가 유일하게 한 달에 월급의 1%를 조합비로 내고 있는 상황이다. 

단위노조의 조합비가 낮기 때문에 총연맹인 CTU에 가맹비도 낮고 재정도 대단히 취약하다. 가맹비는 CTU는 규모에 따른 연간 기본납부와 월별 납부라는 2가지 방식으로 조합비를 거둬들이고 있다. 기본납부액은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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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부과는 당해 조직이 CTU에 조직화 캠페인이나 활동을 지원해주기를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매월 조합원 1인당 5홍콩달러(약 610원)을 받고 있다. 현재는 83개 조직 중 24개 가맹조직만이 연간 기본의무금과 월별 의무금을 납부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금만으로는 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CTU는 보통교육, 훈련코스, 세미나 등에 참석할 때 참가비를 내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입은 사실상 훈련코스에서 충당하고 있다.  

최근 6개월간 상근자 임금동결을 하는 등 추가 재원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위해서 내년 정기대회에서 조합원 1인당 매월 0.5홍콩달러(61원)를 인상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으나 통과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홍콩의 노조현실에서 조합비를 인상하는 문제는 단순히 재정을 확충하는 문제를 넘어서 새로운 노조주의를 건설하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최저임금제 실시와 초과노동 규제 요구

정치민주화 요구와 더불어 CTU가 최근 벌이고 있는 주요 활동으로는 최저임금제와 초과노동에 대한 규제를 법제화하라는 요구다. 

전통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홍콩경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2003년 이후 4%대로 호전되기 시작하여, 2004년 8.6%의 경제성장률에 이어 2005년에는 7.3%를 기록하였고, 2006에도 5~7% 성장을 예측하고 있다. 소비자물가도 2005년 1.1%상승에 이어 2006년에도 2.3% 인상될 것으로 전망돼 안정적인 수준이다. 실업률은 2003년 7.9%에 달했으나 2004년 6.8%로 낮아졌고, 2005년에는 전 분야에 걸친 고용창출로 5.6%까지 크게 낮아져 지난 4년간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2003년 이래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 24만개 중 55% 이상이 전문직 등 3차 산업 일자리로, 홍콩 경제의 중심이 서비스경제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GDP에서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6년 69%에서 2004년에는 90.4%에 이르고 있다. 2005년 정부 재정수지도 1997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41억 홍콩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홍콩 노동자의 삶은 여전히 고달파 보였다. 개인당 GDP는 2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지만 국가의 재원이 거의 전적으로 자본가 지배계급에 속해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10대 갑부가 있는 반면에 저기술 노동자들의 경우 한 달 평균 임금이 5천 홍콩달러(62만원) 밖에 안 되는 가구가 17만 가구나 된다고 한다. 즉, 50만명 정도가 가구 한 달 소득 약 640달러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홍콩 전체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이 1,200달러이므로 이 50만명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CTU는 이러한 격차가 홍콩 경제가 호황을 누릴수록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임금노동자의 상위 10%의 임금은 지난 9년 동안 20% 인상된 반면, 하위 노동자는 10% 감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CTU는 최저임금을 법제화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최저임금으로 시간당 30홍콩달러(약3,660원)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홍콩에서는 최저임금이 법제화되어 있지 않고, 이주 가사노동자들에게만 일부 적용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장시간 노동의 규제문제이다.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홍콩에서는 노동자의 근무조건, 시간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 다만 15세 미만 아동의 경우 공업부문 취업금지, 1일 8시간 이상의 초과근로를 금지한다. 노사합의로 1일 10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데, 보통 12시간, 14시간 심지어 16시간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전체 노동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78만명의 노동자들이 주당 60시간을 일하고 있으면서도 초과근로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CTU는 법으로 초과근로를 제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콩 정부는 이러한 규제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홍콩노총은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소속감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직접선거를 향한 노동조합의 투쟁

한편 CTU는 정치 활동 측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990년 중국이 공표한 ‘홍콩특별행정구역에 관한 기본법’에 따르면 임기 5년의 행정장관(Chief Executive)에게 행정권을 부여하고 있으나 사법권은 중국 중앙정부가 갖고 있다. 입법권한은 입법국에 있으며 60명의 의원이 4년간 임기를 갖도록 하되 행정장관은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 

홍콩은 실제 인구 700만명 중에서 22만명의 대표(기업의 사장들)가 800명의 선거인을 뽑고, 다시 그 800명이 행정장관을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는 1997년 홍콩 반환당시 선거인단이 400명이었고 현재는 800명라는 점을 들어 민주주의가 100%로 확대되었다고 선전한다. 의회 역할을 하는 입법위원회는 30명의 직능대표와 30명의 지역구 대표로 구성된다. 여기서도 직접 선출된 의원들은 어떠한 법안도 발의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직능대표 의원 선출은 사업자 대표에게만 선거권이 있어서 끔찍할 만큼 반노조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홍콩의 시민단체들은 행정장관과 입법위원을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어쨌든 많은 제약이 있지만 CTU는 2명의 입법의원을 배출하였고, 보다 효과적인 활동을 위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인지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의 역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비정규직 조직화를 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동조합의 조직력 저하나 영향력 축소가 비정규직의 조직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다만 비정규직을 철폐하자고 주장하면 당사자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현재는 실리적으로 비정규직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까지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거리로 나선 이주노동자

일요일인 넷째 날, 오후 3시부터 거리 행진이 있었다. 그날은 홍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었다. 총통선출권을 갖는 800명의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8개의 작은 깃발을 들고 가던 한 시민은 “엿 같은 선거일”이라고 격한 표현을 쓰며 울분을 토했다. 

거리행진은 일주일 동안 진행된 홍콩 사회포럼의 마지막 행사로 기획되었으며, 홍콩 민중동맹이 주최하고 홍콩노총과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하였다. 1천여명 남짓 모였을 듯한 집회장에는 최저임금제 도입 요구, 정치민주화 요구,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등 형형색색의 요구들이 늘어섰다. 짧은 연설 이후 “작은 정부 큰 시장에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질서정연하게 두 시간 가까이 거리를 행진하였다. 

좁은 도로 탓인지 방송차가 선두에 서는 우리의 행진 대열과는 달리, 시종일관 행진 대열 중간 중간에서 핸드 마이크로 구호를 받아 함께 외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경제정의를 위한 투쟁, 이주노동자 권리,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임금 삭감반대라는 구호들이 계속되었다. 구호에 지치면 ‘인터내셔널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과 ‘농민가’를 개사하여 부르기도 했다.
 
행진 중간에 도로변 맥도널드 가게 앞에서, 그리고 홍콩의 최대 갑부가 살고 있다는 건물 앞에서 멈춰 서서 간단한 항의 집회를 갖기도 했다. 집회대오는 맥도널드사가 수억원의 이득을 챙기면서 노동자들에게는 시간당 17홍콩달러(2,070원)의 저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또 홍콩 최고 부자인 리깐셍은 1년에 100억을 버는데 노동자에게는 1시간에 10달러를 주고 있다며 홍콩을 떠나라고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집회대열을 유심히 지켜보고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집회 참가 대오의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의 젊은 이주 여성노동자들이었다. CTU 산하에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노조도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검은 우산에 구호를 적어 들거나 검을 천을 두른 관을 들고 행진하면서 타악기에 맞추어 목청껏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확대를 호소했다. 

정부청사 진입로 근처 홍콩은행 건물 주변에서 수많은 가사이주노동자들이 모여 휴일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홍콩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태국 등 20만명의 가사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고 한다. 홍콩 법은 이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고, 숙식을 제공하며, 항공료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략 월 3,500홍콩달러(42만7천원)의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규모가 20만명에 달하므로 주요 공원이나 은행 등 준공공건물 주변에 모여서 자리를 펴고 앉아서, 휴식하고 서로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일요일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건물주의 보호 요청에도 불구하고 경찰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하니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거리 행진은 오성홍기가 새겨진 홍콩 정부청사 앞마당에서 끝났다. 짧게 진행된 정리 집회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 번씩 불렀고, 거리 행진 내내 커다란 그물에 둘러싸여 끌려온 노동자들이 맥도널드 사장을 응징하는 퍼포먼스가 박수 속에서 진행되었다. 아울러 집회에 참석한 불법이주노동자를 체포하지 않은 경찰관계자에 대한 악수와 박수로 집회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반사회주의와 반자본주의 길에서

오랫동안 자유무역도시로 이름을 날린 지역, 한국보다도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더 많은 화려한 홍콩의 이면에 많은 문제들이 함께 잠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홍콩 노조활동가들은 20만에 달하는 이주노동자 문제, 비정규직의 확산 문제, 날로 가속화 되는 민영화·사유화 등의 광풍과 싸워야 했고, 노동기본권 확보와 더불어 거대한 중국의 영향 아래 놓인 정치의 민주화 역시도 결코 간단한 과제들이 아니었다. 

홍콩은 법적으로 노동자의 단결권은 인정하지만 단체협상권과 단체행동권은 부여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구조적으로 낮은 조합비는 자주적인 노조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의 관찰이지만, CTU가 대단히 역동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립노조를 표방한 CTU는 설립 16년 만에 2배 이상으로 조직을 확대하였고, 또 지금도 비정규직이나 서비스산업의 조직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머잖아 홍콩 노동계를 대표하게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정치민주화, 나아가 중국 노동자의 권익까지 생각하며 활동하는 CTU를 과연 중국정부가 언제까지 모른척하며 내버려 둘 것인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1997년 7월1일에는 홍콩시민 5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지난 총선에서는 25만명이 시위를 하였다는 것에서 드러나듯, 다수의 시민들은 여전히 정치민주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미 오래전 덩샤오핑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갈림길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길에 사회주의라는 표지판을 바꿔달고서 그 길을 따라 유유히 사라졌는데,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무엇이 사회주의 길인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저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과 같은 홍콩 노동운동가들의 말이 혼란스럽게 머릿속에 맴돈다. “홍콩 FTU는 좌파이고 무조건 중국공산당을 지지하는 반동이다. CTU도 좌파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에 반대한다. 우리는 자유사회에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사회는 아니다. 그나마 싱가포르보다 나은 점은 정부에 대항할 권리는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홍콩의 사회 사정이나 노동운동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홍콩의 노동사정을 이해하기에 4박5일 일정은 너무 짧았다. 그러나 한 가지 아시아 노동운동의 연대는 한국의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단순히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열린 자세로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