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총파업”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노동사회

“가장 긴 총파업”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편집국 0 3,366 2013.05.24 12:29

 

 

11월29일 현재, 민주노총은 지난 15일 경고파업부터 시작해 총 닷새의 파업을 벌였다. 파업 참가자 등 그 수위와 영향력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한 달여 동안 진행했던  1996년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이후 10년 만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민주노총이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처음 결의한 것은 지난 9월19일 용산 구민회관에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였다. 이날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의 연대파기를 공식 선언함과 동시에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까지 포함시키면서 11월15일부터의 무기한 전면 총파업을 결정했다. 그날 민주노총은 또 △비정규직 권리보장쟁취, △노사관계로드맵 저지 및 노사관계 민주화 방안 쟁취, △한미FTA 저지, △산재보험법 개혁을 4대 요구안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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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2일 열린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까지 끌어낸 현장 피로도

9월11일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 5자가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3년 유예 등에 합의하면서, 민주노총의 4대 요구안 가운데 ‘노사관계로드맵 저지’와 ‘민주화방안 쟁취’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이 요구안을 갖고 민주노총이 총파업 조직은 물론, 구체적인 전술을 확정하는 데까지 쉽게 해결되는 과정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는 ILO 권고를 무시한 처사였고, 상식적으로도 노동기본권에도 위배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무기한 전면총파업을 벌여야 할 정도로 조합원들, 특히 대기업 정규직노조원들에게는 절박한 과제가 아니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추석 전부터 사무총국을 총파업 조직을 위한 팀제로 개편하고, 연휴 뒤에는 현장을 순회하면서 총파업을 독려하고 조직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예상대로 복수노조나 전임자임금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절박성은 떨어졌다. 당연히 현장 분위기가 쉽게 뜨지 않았고 지도부의 파업 투쟁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는 등 누적된 조직피로도와 패배주의로 총파업 조직 방안을 마련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 이런 내용의 분석이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까지 보고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나온 것이 10월12일 조준호 위원장의 “차기 지도부 선거 불출마 선언”이었다. 불출마 선언 전날 운송하역노조, 언론노조, 철도노조, 동서식품노조 등을 현장순회 했던 조준호 위원장이 가장 많이들은 지적은 “지도부부터 먼저 결의를 보여 달라”는 주문이었다. 조준호 위원장의 선언은 이에 반응한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의 어느 관계자는 “총파업을 조직하면서 패배주의와 냉소주의, 지도부에 대한 현장의 불신 등으로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조 위원장이 문제해결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총파업 조직 상황의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는 찬반투표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당초 투표는 10월16일부터 11월3일까지 계획했지만 민주노총은 10월31일 중집회의에서 11월14일까지 연장할 것을 결정했다. 총파업 찬반투표 조직 현황을 점검한 결과 10월31일 현재, 대우차노조와 철도노조 등 조합원 16만여명이 속한 사업장에서 투표기간 연장을 요청했으며, 전체 가맹 사업장 가운데 30% 이상이 투표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당초 계획대로 3일까지만 투표를 진행할 경우에는 당초 목표인 80% 참가는 물론, 과반수 참가도 힘들다는 분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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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29일 청와대 부근에서 경찰에 겹겹이 둘러싸인 채 총파업 궐기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 레디앙 ]

“운수노동자투쟁, 노농연대투쟁으로 불 지피겠다” 

현장 정서와 조직피로도 누적 등의 문제는 총파업 전술을 확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총파업 전술을 결정한 지난 11월9일 투쟁본부대표자회의(중집회의)에 올라온 방안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11월15일부터 12월6일까지 3주간에 걸쳐 계속 전면파업을 벌이는 방안, 둘째, 11월15일 하루 파업을 벌인 뒤 12월6일까지 지역별 릴레이 파업과 전면파업을 돌아가면서 하는 방안, 셋째, 11월15일 경고파업을 한 뒤 11월22일부터 12월6일까지 계속 파업을 벌이는 방안 등이었다.

최종적으로는 11월15일 경고파업과 22일 전면파업, 11월23~28일 부분파업, 11월29일과 12월6일 전면파업을 우선 결정했다가, 11월24일 산별대표자회의에서 11월27~28일 부분파업을 취소하고 29일부터 12월1일까지의 연속 전면파업을 결정했다. 11월15일 경고 파업 뒤 22일, 29일, 12월6일을 무기한 전면총파업 투쟁의 꼭짓점으로 설정한 것이다. 또 가맹산하 조직에 각 지역에서 열리는 총파업결의대회와 야간 촛불집회에 조합원 20% 이상이 반드시 참가할 것을 지시하면서 거리집회 전술에도 상당한 무게감을 뒀다. 

이러한 일정은 수능시험 시기 파업에 따른 국민여론을 감안하고, 11월27일 노사관계로드맵 국회 공청회 등 국회 일정을 감안해 집중적인 전면파업을 벌이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내부 투쟁동력 문제를 감안한 것도 이렇게 일정이 짜인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도 민주노총은 지난 1996년 이후 가장 많은 조합원들이 참가하는, 가장 긴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민주노총은 15일 전면파업에는 20~25만명이, 그리고 22일부터는 30~35만여명의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가할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분석했다. 

또 지금까지의 관성과는 달리 금속연맹 중심의 총파업이 아닌, 철도노조와 화물연대, 건설운송노조 등 운수부문까지 포괄하는 파업을 자신했다. 민주노총이 이처럼 기대감을 나타낸 이유는 농민과 함께 진행하는 민중총궐기 투쟁 때문이었다.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현장 정서와 조직피로도 등 총파업 조직에 일정정도 어려움이 있는데도, 11월22일부터 시작되는 민중총궐기 투쟁에서 농민들과의 연대투쟁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총파업 투쟁본부 조직팀장을 맡고 있는 진경호 통일위원장은 11월13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1월22일 총궐기 투쟁을 함께하는 농민들의 투쟁을 보고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투쟁도 확대될 것”이라며 “대중들의 역동성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총파업

파업 투쟁의 포문을 연 11월15일 경고파업에는 14만5천여명(노동부 집계 5만6천명)이 참가했다. 전면파업을 벌인 11월22일에는 20만여명(노동부 집계 5만8천명)이 참가했지만 금속연맹이 산별완성대의원대회로 파업에 참가하지 못했던 11월23일에는 2만여명(노동부 집계 100명)에 그치고, 다음날에는 7만여명(노동부 집계 2만2천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어쨌든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열렸던 11월22일 총파업 날 파업 참가자 수는 지난 1996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었다. 민주노총은 특히 이날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서울 지역을 제외한 12개 지역에서 광역시도청까지 진입하는 격렬한 투쟁이 진행되자, 11월29일 전면총파업부터는 ‘노농연대’의 투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했다.

일단 11월29일 민주노총은 총회 투쟁 등 단체행동을 포함해 16만여명(노동부 집계 3만7천명)이 총파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22일의 20만명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 2차 민중총궐기투쟁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기대만큼의 노농 연대투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어쨌든 11월29일까지 민주노총이 공식 집계해 발표한 총파업 상황을 보면 최근 10년 동안 가장 장기적으로, 가장 많은 수의 조합원이 총파업에 참가했다. 그러나 애초 기대했던 대로 ‘금속연맹 중심의 파업’에서 탈피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만5천여명 파업 인원 중 금속연맹이 11만5천명을 차지한 것부터 시작해, 11월22일에는 20만 중 11만6천명, 29일에는 16만 중 13만명이 금속노동자들이었다. 산별완성 대의원대회 때문에 금속연맹이 빠진 11월23일 부분파업에는 2만여명만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1월29일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했던 철도노조는 24일 임금협상에 잠정합의했다.

언론지상에서도 민주노총 총파업보다는 한미FTA 범국민운동본부 차원의 총궐기 투쟁이 더 위력을 떨치고 있다. 뭔가 된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부족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이기는 투쟁”에 성공하기 위하여

남은 문제는 국회일정이다. 국회는 11월27일부터 노사관계로드맵 공청회부터 시작해 11월29일 법안심사소위와 30일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및 본회의, 12월1일 본회의 등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시기동안 민주노총은 국회 상황에 따라 총파업을 벌여내야만 하고 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정계개편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요동치는 정치권 상황을 잘 활용해, 최소한 일부 개악안만이라도 저지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물론 이는 “한미FTA 협상을 반대하며 농민들이 시·도청에 불을 질렀다”뿐만이 아니라, “노동법 개정을 반대하며 민주노총이 국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는 국면까지 만드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상황이 만만치만은 않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알아서 ‘나자빠지면서’, 한나라당이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국회 일정을 이용할 이유가 많이 사라졌다. 민주노총도 지금까지 ‘가장 긴’ 총파업을 벌였지만 “앗, 뜨거워!”할 뭔가는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노총은 국회 안에서 민주노총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면서 사실상 ‘대 민주노총, 대 민주노동당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공언한대로 “처음으로 이기는 투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체 투쟁력, 국회 상황, 한미FTA 범국본 투쟁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