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위에 뿌려진 신뢰, 재활의 결실 맺다

노동사회

빈곤위에 뿌려진 신뢰, 재활의 결실 맺다

편집국 0 3,729 2013.05.24 12:28

유누스 박사가 올해 서울평화상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는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와 그가 만든 그라민은행의 진지한 순수성에 세계가 귀를 기울여 주기 시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은 유누스 박사의 미션을 구현한 조직체이기 때문에 유누스 박사와 그라민은행의 공동수상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영광을 나누고자 하는 좋은 본보기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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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 ▷ 사회연대은행 ]

빈곤에 투자했더니 희망으로 돌아오다

방글라데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유누스 박사가 소액대출을 통한 빈민구제사업에 나서게 된 계기는, 기아선상에 헤매는 방글라데시의 빈곤 앞에 이론의 무기력함을 느끼고 조브라 마을로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조브라 마을 주민들은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로 하루 노동의 대가를 고리대금업자에게 고스란히 받치고 나면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을 손에 쥘 뿐이었다. 정상적인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리대금의 유혹을 물리치기는 어렵다. 일례로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는 ‘56제도’라고 해서 오전에 5페소를 빌려서 오후에 600페소를 갚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이에 유누스 박사는 빈곤층이 고리대금의 예속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조브라 마을 주민 42명에게 27달러를 빌려주어 빚을 갚는 데 사용하게 했다. 1976년 마이크로크레딧과 그라민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라민프로젝트는 많은 활동가와 수혜자들의 의지로 1983년에는 그라민은행으로 법인형태를 전환하는 등 확장의 길을 걸어왔고,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총 직원 18,151명, 2,185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거대 은행으로 발전하였다. 30년 세월동안 그라민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약 600만명에 이르고, 이들 가운데 58%가 자신의 삶을 바꿔 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편 유누스 박사는 빈곤의 문제는 곧 ‘여성의 문제’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성차별로 인해 가정 내에서 여성이 느끼는 빈곤의 고통은 남성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관계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차별도 다소 완화된다. 그라민은행의 대출자 중 96%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이 경제활동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사회적 지위도 향상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빈곤탈출을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그라민은행 회원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것은 문맹률이 60%가 넘는 방글라데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기록적인 수치이다. 가난했던 그라민은행의 회원들이 미래에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결합하는 마이크로크레딧

eeim_02.jpg그라민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딧이 방글라데시에서 보인 성과로 △생활수준의 급속한 향상, △여성의 권한 신장, △출산율의 저하, △여성의 평균수명의 증가, △초등학교 진학률 100%,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 비율이 남학생을 능가하게 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렇듯 그라민은행이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하게 되자, 1997년 139개국에서 2,900여명의 사람들이 워싱턴에 모여 ‘마이크로크레딧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국제연합은 2005년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로 결정하여 세계 빈민층의 삶을 변화, 개선시키려고 하였다.

서로 다른 경제적 환경과 금융제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이크로크레딧에 대한 반향이 세계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 세계 빈곤층이 공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금융소외’ 혹은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소외’에서 찾을 수 있다.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이 금융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자나라의 빈곤층 또한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건 부자나라의 국민이건, 담보나 보증인을 세울 수 없다면 금융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빈곤의 늪에 빠져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의 최근 동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금융기관들이 마이크로크레딧을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와 중남미 등 저개발국에서 탄생한 마이크로크레딧이 비영리사업 영역을 넘어서 영리사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05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의 공식 스폰서로 자임하고 나선 미국 시티은행의 활동이 가장 돋보인다. 시티은행은 오래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세계에 마이크로크레딧을 전파하는 데 적극적인 스폰서로서 활동해 왔고, 그라민, 액시온, 세계여성금융 등 많은 마이크로크레딧 기관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차세대 시장개발을 염두에 두고 2003년 6월 은행 내에 ‘마이크로파이낸스 사업부’를 창설한 것이다. 이를 통해 시티은행은 사회적 유용성을 갖고 사회공헌에 기여하면서 기업의 수익에까지 보탬이 되는 활동으로 마이크로크레딧을 활용하고자 한다. 시티은행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목적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마이크로크레딧 분야로의 활동영역을 검토하고 있거나 확장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지역 및 계층 간 균형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1977년 제정된 지역재투자법(CRA, 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통해 금융기관이 수익을 얻는 지역에서 일정비율 이상으로 여신 및 투자나 기부 등 공헌 활동을 하도록 정하였다. 금융기관은 자산규모에 따라 일정비율 이상으로 △중간이하 소득자에 대한 모기지 대출, △매출 100만 달러 이하의 소기업에 대한 기업대출, △지역개발을 위한 대출을 해야 하며 저소득계층이 많은 지역에 의무적으로 지점을 내야하고 지역개발금융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개발투자는 은행에 좋은 기업 이미지와 함께 투자수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은행에게는 새로운 시장의 창출이라는 이익을, 저소득층에게는 경제적 자립과 부의 창출을 실현하도록 하는 ‘윈-윈 공헌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상환율 90%, 서서히 뿌리내리는 사회연대은행

사회연대은행은 창업을 희망하는 근로빈곤층에게 창업자금과 창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3년 2월 한국에서 태동했다. 한국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의 경험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경제위기와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 속에서 양산된 빈부격차의 악화, 일자리의 부족, 금융소외의 그늘을 타고 서서히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이 표방하는 바는 자활하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빈곤층이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빈곤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활할 수 있도록 창업에 필요한 자금, 경영 및 기술 지원, 사회적·심리적 자활을 위한 교육훈련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창업지원제도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창업의 성공’이며, 이는 저소득층인 지원대상자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대출된 자금회수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자금의 회수는 창업성공을 전제로 하며, 회수된 자금은 또 다른 대상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업지원에 따르는 사업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관리 → 교육 → 사후관리 →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과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아직은 초기 도입기로 사업의 성공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적응방법을 터득했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지난 4년간에 걸쳐 350개 업체에 64억원을 지원하여 창업을 돕고, 그에 따른 상환율이 90%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회연대은행의 성공이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회연대은행 모델의 성공과 확대 보급을 위해서는 지역전달체계의 구축과 사후관리자의 양상이 시급히 요구된다. 사회연대은행의 인프라 구축에 국민적인 지지의 결집과 지원도 절실한 상황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