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 ‘비리사슬’에 묶어 둘 이익집단 고용허가제 개입

노동사회

한국인권 ‘비리사슬’에 묶어 둘 이익집단 고용허가제 개입

편집국 0 4,578 2013.05.24 12:23

“현대판 노예제도”라고까지 불렸던 산업기술연수제가 2007년 완전폐지를 앞두고 있다. 도입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연수는 없고 노동만 있는 표리부동한 제도”, “인권침해 유발형 제도”, “비리수반형 제도”, “저임금 강제형 제도”로 비판받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제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 이주노동자들과 인권운동단체들이 부단히 저항한 결과였다. 또한 한국에게 씌워져 있던 ‘인권탄압국’이라는 오명을 벗겨내기 위한 과정의 결과였다.  

그 산업기술연수제가 드디어 폐지되고 비록 미흡한 점들은 있지만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인정하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력도입제도로 자리 잡게 되었으니, 이는 한국의 인권운동이 거둔 큰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기술연수제의 폐지를 두 달여 앞둔 지난 10월9일부터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농성에 돌입했다. 산업기술연수제가 도입되고 10여년을 넘도록 숱한 농성과 집회, 토론회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워왔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산업기술연수제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이 시점에서 또다시 농성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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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17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연수제 완전 철폐와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촉구 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  ▷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

5년 동안 최소 90억 거저먹고, 뇌물도 먹고… 왜 포기해?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반대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고 농성에 들어간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의 요구사항은 아주 단순하다. 조직 명칭에 나와 있듯이,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을 반대하고 외국인력제도를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운용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인노동자의 현지선발권, △한국 입국 전후로 시행되는 외국인노동자의 취업교육, △취업 후 발생하는 각종 문제와 고충사항에 대한 사후관리업무 등을 중소기업중앙회,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대한건설협회 등 업종별 이익단체들에게 이관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은 지난 십여년간 이주노동자 도입과 사후관리의 명목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산업기술연수제를 각종 비리와 인권침해로 얼룩진 제도로 만든 장본인이다. 이익단체들 중 가장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고 ‘관리’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의 경우를 보자. 지난 2002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락기 의원의 폭로를 통해 알려진 바대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이주노동자 도입과 관리를 통해 6년 동안 565억여원의 수입을 거뒀고, 그 중 각종 경비명목의 지출을 제외하고도 무려 92억여원의 이익을 남겼다. 이것도 공식적인 통계일 뿐이다. 비공식적으로 이익단체 혹은 권한을 가진 개인이 어느 정도의 수입을 올렸고 어느 정도의 이익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음의 사실들로 짐작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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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1월: 중기협 연수협력단장, 해외 송출기관으로부터 뇌물수수.
○ 1996년 5월: 중기협 연수협력단 운영부장, 운영과장이 베트남, 태국 등 현지 인력송출업체로부터 뇌물수수.
○ 1997년 7월: 통상산업부 중소기업진흥과장, 산업연수생 사후관리업체로부터 총 7,000만원 뇌물과 향응 수수, 중기협 연수협력단 차장이 국내 인력브로커로부터 2,000만원과 태국 인력송출회사로부터 13만 달러 뇌물수수.
○ 1998년 12월: 중기협 전 회장이 연수생 송출업체로부터 2,000만원 뇌물 수수.
○ 2001년 8월: 중기협이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연수업체에 배정하면서 6,000명 배정한도 초과 묵인.
○ 2002년 3월: 중기협 상근 부회장, 국제협력팀장이 2000년 12월부터 2001년 4월까지 송출업체로부터 필리핀인 93명을 불법입국시켜주는 대가로 9,000만원, 뇌물수수. 브로커들은 필리핀인 220명의 불법입국 알선 등을 대가로 당사자들로부터 41만 달러(5억여원 상당)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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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송출업체-도입창구인 업종별 이익단체-사후관리업체’라는 이주노동자 도입·취업과정 세 가지 축의 배경에 막대한 이익이 도사리고 있음을 실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거기에 주무부처 정부관료까지 가세했다. 그러니 이를 “구조적 비리사슬”이라고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아가 구조적 비리사슬을 중심으로 가지를 치고 있는 작은 사슬들이 숱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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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16일 열린 “고용허가제 사후관리 중기중앙회 등 이익집단 편입 저지를 위한 총궐기대회”.  ▷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

“개선해야 할 제도”를 ‘핵폐기물’로 만들 이익단체 개입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비리사슬을 끊고, 외국인력 도입·관리에 공공적 관리의 원칙을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매우 상식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에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까지 우리 사회가 치른 대가는 엄청났다. 한국에 취업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막대한 송출수수료를 내기 위해 빚을 지고 입국하였다. 채용사업주는 채용 이주노동자 1인당 3년간 사후관리비 약 41만원을 지불하면서도 노동자의 채용에서 선택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송출수수료를 갚기 위해 사업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는 조건의 이주노동자를 채용해야 했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인권침해국가의 국민이란 오명을 써야 했다. 

물론 고용허가제가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고용허가제 역시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또한 산업기술연수제도 아래서 깊숙이 뿌리내린 내린 송출브로커들로 인해 송출비리가 여전히 잔존하고, 인권침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업기술연수제가 “폐기해야 마땅한 제도”임에 비해 고용허가제는 “개선할 점이 있는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면서 정당한 권리를 부여하고, △사업주가 필요한 노동자를 직접 채용하도록 하고, △5배수의 이주노동자를 현지에서 추천받아 사업주가 직접 채용함으로써 브로커의 개입여지를 줄였다는 점, △송출관련 상대국가의 기관은 반드시 국가기관 혹은 공공기관이어야 한다는 점, △송출비리가 발견될 시 한국정부에서 강력한 제재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 등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몇몇 문제에도 고용허가제를 산업기술연수제와 구별짓고 “개선해야 할 제도”로 평가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폐기해야 할 제도”를 유지하고 막대한 이익을 취해왔던 집단을 끌어들여 여전히 이익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구상이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물론 정부, 특히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이익집단에게 이익을 보장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여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중소기업중앙회 등에서는 “비리는 예전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감사를 받고 있는 기관이다. 예전과 다르다”라고.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부의 비리근절 호언장담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유

현재 산업기술연수제도에서 이른바 연수업체(이주노동자를 채용하는 업체)는 이주노동자 1인당 41만8천여원(부가세 포함)의 비용을 연수추천단체(중소기업중앙회 등 업종별 이익단체)에 납부하고 있다. 그 중 24만원 가량이 연수관리비라는 명목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교육비, 건강검진비 등의 명목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수관리비는 관리비와 사업비로 사용되는데, 적잖은 비용이다. 이번 2006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연수업체로부터 받은 2005년도 연수관리비 총액은 93억여원이었다.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이 연수관리비의 구체적 용도에 대해 질문했을 때 중소기업중앙회는, “세부항목으로 구별하여 기재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무엇을 관리했고 무슨 사업을 했는지는 밝히지 못하면서 겨우 1년에 무려 93억여원의 수입을 세부내역을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답변하는 피감기관이 바로 이들 이익집단이다. 지난 십여년간 산업기술연수제도 속에서 ‘수익을 올리는 능력과 의지’가 확실하게 검증된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정부는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단언하고 있다. 과연 정부의 호언장담처럼 정부부처 관료들 중에 비리발생을 차단하기 위해 연구하고 조사하고,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백보 양보하여 정부의 의지가 충만하다 하더라도 예초부터 비리발생의 여지가 적은 시스템으로 설계하여 시행하지 않고 비리발생 가능성이 높고 이미 발생사례가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거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노하우를 십여년간 쌓아온 집단을 끌어들여 놓고 ‘양심적이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몇몇 공무원’을 통해 감시·관리·운영하겠다는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정부가 고용허가제도에 이익집단들을 개입시키고자 하는 부분 중 ‘현지 인력선발권’ 역시 결코 가볍게 보아 넘겨서 안 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한 중소기업중앙회의 주장은 “업체에서 필요한 인력을 직접 선발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업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직접 뽑겠다는 것처럼 들려 일면 타당성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실제 현실에서 보면, “현지의 송출업체는 현지의 국가기관 혹은 공공기관”으로 할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도 속에서 이익집단들과 현지의 송출브로커들과의 ‘직거래통로’를 개설해주는 것이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직거래통로의 개설이 아니라 산업기술연수제에서 열려있었던 기존의 통로를 고용허가제에서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5배수의 구직인원을 추천받아 한국의 사업주가 직접 채용하는 방식인 고용허가제도의 채용경로를 “2배수의 구직인원을 추천받아 이익단체가 현지에 가서 뽑는 것”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과 관련하여 그 결정되기까지 절차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항간에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지난 7월경이었지만 정부와 이익집단들은 2005년 12월부터 상호조율을 해왔고, 사실상 최종결정단계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담합 혹은 야합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 있는 지점이다. 

한국사회 전체로 돌아올 외부작용 효과

외국인력 문제는 한국사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다. 단지 행정절차를 대행하는 정부부처와 이주노동자를 도입함으로 해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이익집단과 협상하여 적당하게 결론을 얻어내면 되는 게 아니다. 외국인력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그들을 어떻게 우리사회에서 수용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정부의 정책이 잘 못 서고 제도가 잘 못 설계되어 발생하는 부작용의 대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일반 국민들이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지난 십여년간 보아왔다. 

1991년 해외진출 기업들의 현지인력 연수를 위해 만들어진 산업기술연수제도가 한국의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저임금노동자 공급제도로 악용되면서 수없는 인권침해사례를 양산했다. 어디 그뿐인가? 산업기술연수제로 취업한 이주노동자의 50%가 넘는 이들이 송출수수료를 갚기 위해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노동자로 흘러갔을 때, 그로 인해 무려 78.9%라는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노동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을 때, 제동장치 없는 민간이익집단의 무차별적인 인권침해로 인해 ‘한류’의 주요전파지인 아시아에 수십만의 ‘반한인사’들이 양산되었을 때, 제대로 가동되는 외국인력도입제도가 부재함으로 인해 중소사업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미등록노동자로 충원할 수밖에 없었을 때도, 한국의 국민들과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사업주들에게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더해졌을 뿐이다. 이익집단과 정부는 어느 한 곳 책임지지 않았고 제도개선을 논하지 않았다.

한 번도 우리사회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제대로 시도한 적이 없었던 정부가, 드디어 산업기술연수제가 폐지되는 이 마당에서조차 이익집단들과 입을 맞추는 과오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외국인력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경험했던 풍부한 선행학습의 효과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공공적 관리원칙, 정부 스스로 무너뜨리지 말길  

외국인력도입은 공급이 수요를 압도하는 영역이다. 이 점이 외국인력 도입을 둘러싸고 갖가지 비리가 발생하는 기본 조건으로 작용한다. 송출국과 유입국의 허술한, 혹은 비리발생소지를 원천적으로 갖고 있는 제도 및 관리실태는 이런 상황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일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치르고, 이어 유입국의 일반국민들이 치르게 되어 있다. 다른 무엇보다 외국인력도입제도에서 공공성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공공성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밥그릇 챙기기’에 능숙한 이익집단들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도입 초기부터 △산업기술연수제의 존속, △30%에 달하는 미등록노동자들의 방치, △제도 자체에 내포된 독소조항들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던 제도이다. 이런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고쳐서 쓰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인 이유는 고용허가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외국인력의 공공적 관리원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스스로 이 원칙을 파기하고자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고용허가제를 고쳐서 쓰자고 할 이유가 사라진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점이 바로 이것이고, 정부가 가장 염려해야 할 부분 역시 바로 이것이다. 어렵사리 만든 고용허가제를 정부 스스로 유사 산업기술연수제로 만들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