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1기 룰라 정부의 평가와 전망

노동사회

브라질 1기 룰라 정부의 평가와 전망

편집국 0 5,889 2013.05.2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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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2006년 11월8일 (수)요일
장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발표: 오삼교 위덕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사회: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정리: 『노동사회』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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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Ⅰ. 브라질 총선 결과


1989년 첫 도전 이후 4번째인 2002년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브라질 노동자당(PT)의 룰라 대통령은 2006년 10월29일 실시된 결선투표에서 경쟁자인 사회민주당(PSDB)의 알크민 후보를 2천만표 이상의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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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um_01.jpgⅡ. 경제 부문

1. 룰라 정부의 경제 정책


룰라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전임 까르도주 정부와 대동소이. 이는 2002년 선거공약에서 룰라가 까르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난하고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시하면서 분배의 형평을 강화하는 사회정책을 펴겠다고 한 것과 크게 다른 것. PT는 까르도주 정부의 기술관료들이 국가 개혁이나 엄격한 재정정책, 통화 보호에만 골똘하다고 비판하면서 집권하면 우선순위의 역전, 즉 교육, 의료, 농지개혁에 국가의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주장.

선거기간 중 선전과는 별도로 룰라 진영도 통화 안정을 해치고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급진적 정책을 고려하고 있지 않았음. PT의 전략은 경제의 안정을 통해 국제자본과 국제기구의 신뢰를 획득하면서 노동자 일자리 마련을 위해 경제성장을 최우선시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재정흑자 목표를 IMF가 요구한 GDP 대비 3.75%를 넘는 4.25%로 책정하였으며 외국 자본 유치와 인플레 억제를 위해 고금리 정책을 유지. 에밀 사데르에 의하면 전임 까르도주 정부의 경제정책은 유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강화되었음. 

  ○ 경제 각료의 특성

룰라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의 핵심은 민주화나 노동운동, 혹은 사회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PT인사들이 아니라 기존의 경제 엘리트출신들이 장악. 급진적 트로츠키주의자였던 재무부장관 팔루치는 히베라웅 쁘레뚜의 시장 역임 당시 민영화를 도입한 전력이 있으며, 중앙은행인 브라질은행 총재로 임명된 앙히끼 메렐레스(Henrique Meirelles)는 미국의 FleetBoston Financial Group의 회장을 지낸 인물. 농산부 장관인 호베르또 호드리게스(Roberto Rodrigues)는 대규모 플랜트를 소유한 농기업가이며, 산업개발장관 풀란(Luis Fernando Furlan)은 식품재벌. 

  ○ PT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기존의 보수적 재정 정책을 엄격히 시행하여 IMF가 요구한 GDP의 3.75% 재정흑자 요구를 스스로 4.25%로 올려 달성(부채상환 이전 기준). 이처럼 높은 재정흑자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회정책 관련 비용은 삭감. 

두 번째 정책 기조는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는 것. 높은 이자율은 시중 통화를 흡수하여 인플레를 통제하고 이자 차익을 노리는 외국 자본 유치에 필요. 고금리 정책과 재정흑자 정책은 시장의 신뢰와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은행이 민간부문에 대한 투자보다 수익률이 더 좋은 정부에 고이자 대출을 선호하여 민간투자는 더욱 위축.

현재 이자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19%대에 달하며 이 때문에 성장세가 낮은데도 은행은 사상 최대의 흑자를 누리고 있음. 브라질 최대은행인 Bradesco의 2005년 수익은 2004년보다 80% 증가하였으며 두 번째 큰 은행인 Itau는 2004년보다 수익이 39%나 증가. 2005년 정부는 1,390억 헤알(632억 달러)을 국내외 부채 상환에 사용하였는데(국내부채 85%. 대외부채 15%), 이는 브라질 전체 예산의 23%에 해당함. 정부 예산의 거의 4분의 1을 원금 및 이자 지불에 사용. GDP의 절반이 넘는 수준인 공공부채의 35% 정도가 은행에 진 빚이고, 정부가 높은 이자를 지불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공장보다 은행에 더 투자. 

상파울루 주 캄피나스 대학의 경제학 교수 Marcio Pochman은 국가가 약 2만 가구의 채권소유자에 지불하는 1,200억 달러는 GDP의 7~8%에 이를 것으로 추산. 

2. 거시 경제 지표로 본 룰라 정부의 경제적 성과

  ○ 각론


경제성장은 2003년 0.5%, 2004년 4.9%, 2005년 2.3%를 기록. 특히 2005년의 경제성장률 2.3%는 남미에서 아이티(Haiti)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 룰라 정권 첫 3년간의 성장률 평균은 2.6%로 까르도주 정권 첫 3년 평균 성장률 3.4%에도 못 미치는 성적. 중국이나 아르헨티나가 8~9%대의 성장률을 보인데 비교하면 매우 실망스러운 수치로서, 인플레 억제를 위한 높은 이자율 때문에 투자 수준이 낮고 산업 성장률이 낮은 것임.  

일인당 GDP는 2003년 4,142달러, 2004년 4,284달러, 2005년 4,320달러로 약간 개선되었으나 지난 수년간 헤알화의 환률 인하를 감안하면 큰 변화로 보기 어려움. 실업률은 2003년 10.9%에서 2005년 9.5%로 약간 개선되었으나 불완전실업자와 취업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을 고려하면 실업문제는 아직 심각.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03년 9.3%, 2004년 7.6%, 2005년 5.8%로 점차 낮아지고 있어 통화 안정에는 일단 성공. GDP 대비 공공부문 적자는 까르도주 정부의 마지막인 2002년의 10.3%에서 2005년 3.1%로 감소. 공공부채는 GDP의 2002년 55%에서 51%대로 떨어져 상당한 개선. 

세계시장의 호황으로 2005년 수출액은 2002년의 거의 두 배. 이로 인해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되고 외환보유액도 2002년 378억 달러에서 2005년 610억 달러까지 꾸준히 증가. 외채총액은 2005년 말 IMF에 155억 달러를 조기상환하면서 크게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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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반적 평가

룰라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가안정과 실업률 감소, 공공부문 적자 축소, 무역수지 개선과 외환보유고 증대 경향을 보여, 경제관리에는 성공했고 국제금융시장의 애초 우려와 회의적 시각은 불식. 그러나 브라질 경제는 아직 충분한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고금리가 발목을 잡고 있어 민간투자가 활발하지 못하고 장기적 성장구조를 구축하였다고 보기 어려움. 

Ⅲ. 사회 부문

1. 불평등도


브라질은 세계적으로 불평등도가 높은 나라로서 2004년의 경우 최상위 1%의 소득은 전체소득의 13%를 차지하였으며 최상위 10%가 전체소득의 45%를 차지. 반면 인구 전체의 하위 50%가 차지하는 소득분배율은 13.9%에 불과. 

2002년도까지만 해도 최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은 하위 50%의 소득보다 많았으나 2003년 이후 이 경향이 역전. 하위 50%의 소득분배율은 2001년 12.6%에서 2004년에는 13.9%로 증가. 룰라 정부의 사회정책이 우선순위에 밀려나기는 했으나 가족기금 등의 프로그램이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한편 소득 지니계수는 2003년 0.581, 2004년 0.572를 기록하여 브라질 사회의 불평등도는 매우 심각. 그러나 지니계수는 1998년 0.6에서 2004년 0.572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2001년 이후는 지속적으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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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빈곤과 최저임금

2006년 4월 최저임금을 300헤알에서 350헤알로 17% 인상하였으나 2003년 취임당시의 200헤알의 두 배 약속을 지키지는 못함. 지난 3년간 룰라 정부는 사회복지예산의 적자를 막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해왔음. 2004년의 경우에도 룰라 정부는 정치권이 요구한 최저임금 275헤알 인상요구를 거부하고 260헤알 안을 관철시킴.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6천만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300만명이 극빈층으로 기아선상에서 생활. 이들 빈곤층은 최저임금의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Economist』, Aug. 14th, 2003). 1996년 이후의 통계를 보면 아직 확실한 변화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2004년에는 극빈층과 최극빈층이 상당히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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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자리 창출

룰라는 선거운동 기간 중 1천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3년 동안 37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그침. 인구의 10%가 실업자이고 25%는 불완전고용자이거나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실업자의 절반은 25세 미만의 청년실업. 늘어나는 일자리도 저임금이거나 나쁜 조건의 일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임. 2005년 66%의 새로운 일자리 임금은 한 달에 200달러 미만. 

4. 빈곤층 지원 프로그램

  ○ 기아제로 운동


룰라 정부 초기에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기아제로 운동은 그간 870만 가구에 혜택을 주었다고 하나 최근에는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가 의문시될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음. 기아제로에 참여한 외부 기업이나 기관들의 막대한 지원금이 국가 부채 상환을 위해 전용되는가 하면, 프로그램 시작 5개월 만에 약 5억 달러의 예산이 3분의 1로 축소면서 룰라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남.

  ○ 가족기금 프로그램

가족기금은 거의 9백만의 빈곤가정과 약 3천만명의 빈곤 인구가 수혜대상에 포함되는 대규모 프로그램으로, 이를 통해 일주일에 45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빈곤가정(약 1,100만명으로 추산됨)의 77%에 매달 65헤알 정도의 지원금을 제공. 연방정부 차원에서 GDP의 16% 정도가 사회프로그램으로 쓰이고 있으나 이 중 대부분은 연금과 의료, 교육 부문으로 가며, 실제 빈곤층을 지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GDP의 0.4%에 불과(『Economist』, Aug. 14, 2003).

빈곤층의 49%가 집중 거주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이 최근 룰라 지지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이 빈곤층에게 어느 정도 어필하고 있다는 간접적 증거. 룰라 지지층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과거 보수세력의 아성이었던 북동부에서 55%로 과반수를 넘으나, 중산층이 몰려있는 남동부에서는 29%에 불과. 2000년 선거에서는 PT시장 당선자의 70%가 남부와 남동부에서 배출되었으나 2004년 선거에서는 62%의 당선자가 북부, 북동부, 중서부에서 배출됨.

5. 농지 개혁

37명의 대지주가 250만 농가보다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인구의 3%가 경작 가능 토지의 3분의 2를 자지하고 있는 토지 소유권의 과도한 집중, 그리고 경작 가능 토지의 60%가 생산에 이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 무토지농민운동(MST: Movimento Sem Terra)이 주도하는 토지 점거운동의 배경.

룰라 정부는 농지개혁의 성과 목표로 △임기 4년간 토지 수용을 통해 40만 가구 정착 △토지은행(Banco da Terra: 현재는 Credito Fundiario)이 농지를 구입, 저리 분양을 통해 20만 가구 정착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한 40만 가구에게는 신용, 생산, 소유권 등의 지원 등을 약속. 그러나 룰라 정부는 엄격한 재정정책으로 이 약속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어 MST의 반발을 사고 있음.

Ⅳ. 정치 부문 

1. 정치 개혁


브라질 정치 제도 중 가장 큰 문제는 다당제 하에서 의회에 수많은 정당이 난립하여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성향이나 정책기조가 다른 정당과도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점. 의회에서의 지지확보를 위해 대통령과 집권당이 내각의 각료직을 타당에 분배하거나 연방 예산을 특정 지역이나 후보에 유리하게 배정하는 행태를 지칭하는 후견주의(clientelism) 정치는 전통적 정치스타일로 브라질 정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 

그러나 2005년 6월에 터져 나온 우체국 부패사건(멘살라웅)이 빌미가 되어 PT가 매달 제휴 정당 소속 의원들에게 3만 헤알이 넘는 용돈을 지불하여 의회에서 표를 관리해 온 사실이 폭로됨. 이로 인해  룰라의 최측근인 디르세우 비서실장과 PT 대표와 사무국장, 재정국장이 물러났으며 중앙단일노조(CUT) 및 MST 기타 사회운동조직들은 PT에게 의회의 보수적 연합세력과 관계단절을 요구함. 

이 부패스캔들은 PT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어 룰라의 지지율이 잠시 떨어졌으나  2005년 말에는 다시 스캔들 이전 수준으로 회복. 그러나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지향해 온 PT는 브라질의 구태 정치를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개혁 대상에 의해 오염되는 결과 초래.

2. 시민사회의 참여

PT는 1980년 창설 이후로 좌파정당으로서 사회주의 이념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요소를 중시해 왔음. PT는 지방선거에서 시장과 주지사를 배출하면서 스스로의 정치스타일을 구축하려 노력하였으며 사회운동세력 및 일반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조직하고자 하였음.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처음 시행된 참여예산제와 브라질리아 주지사를 지낸 크리스토방 부아르케가 개발한 취학장려금(Bolsa-Escola)제도 등은 높은 평가를 받았음. 그러나 참여와 창조적 정책개발의 정신은 의회에서의 다수파 구성을 위한 기존 보수정당과의 제휴 필요성 때문에 집권 이후의 전국정치에서는 크게 퇴색되었음. 

룰라 정부는 집권 이전에는 사회운동세력과 연합하여 국가와 보수엘리트 집단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집권 이후에는 의석의 20%밖에 차지하지 못한 소수정당으로서 타당과의 제휴를 통해 집권당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충실. 그러나 룰라정부가 시민사회와 관계를 등한시 한 것은 아님. 룰라는 취임 첫날인 2003년 1월1일 임시조치 103호를 발하여 경제사회발전위원회(CDES: Conselho de Desenvolvimento Economico e Social)를 구성하여 정부와 시민사회가 대화를 통해 브라질 경제·사회발전의 방향과 정책을 제시하고 절차상의 합의를 시도함. 

CDES는 대통령 직속기구로서 대통령궁의 주요 정책결정자와 주요 부처장관 등 정부에서 12인, 시민사회대표 90인으로 구성되었음. 시민사회 대표는 약 절반이 기업가들이며 나머지 절반은 노조 지도자, 시민운동가, 종교인, 지식인등으로 구성됨. 2003년 7월에는 전국노동포럼(FNT: National Labor Forum)을 설치하여 정부와 사용자, 노동자, 시민 등의 참여를 통해 노동법과 제도의 현대화, 사회적 대화 및 노사정합의, 고용창출과 소득증가에 유리한 제도적 환경 조성을 논의. 

기본적으로 룰라 정부의 통치 전략은 의회와 정당을 중심으로 한 타협전략이었으며 룰라는 당내 좌파나 사회운동권이 주장하는 대중 참여와 조직에 기초한 동원전략은 시도하지 않음. 그러나 룰라가 노동운동이나 MST 등 사회운동에 냉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으며, 때로 이들과의 협의하는 모습도 보여줌.

Ⅴ. 맺는 말

룰라 정부의 첫 두해의 가장 놀라운 점은 룰라정부가 가져온 변화가 아니라 전임 정부와의 지속성이며, 정부는 기존의 관행과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는 관찰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 

PT 내부에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사회주의보다 민주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하였으며 룰라는 1998년 대선 실패 이후 ‘시민연구소’(Instituto Cidadania)를 통해 당내 좌파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서 브라질 사회의 여러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 PT와 룰라의 외채나 국제자본에 대한 태도 변화는 이미 2002년 선거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룰라는 당선되면 국제자본과 모든 거래관계와 약속을 준수할 것이라고 선언. 선거운동 역시 이전의 투쟁적 이미지와 달리 마케팅 관점에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였으며 부통령 후보로 브라질의 대표적 섬유재벌을 지명. PT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급진적 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미 선거운동 중에 상당부분 드러난 사실임. 

이러한 정책의 지속성이 구조적 제약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질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의 결여나 전략적 사고의 부족 때문이었는지는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며 두 요인 모두 작용하였을 가능성이 큼. 

  ○ 룰라 정부의 성과

룰라 정부는 2005년 말 IMF에 진 155억 달러를 완전히 상환하여 IMF의 통제를 받던 10년간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성공. 외채의 GDP 비율은 지난 50년 동안 가장 우량한 상태에 있음. 전임 까르도주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된 민영화가 중단되었으며 노동-자본관계나 국가-시민관계에서도 약자인 노동과 시민의 입장이 강화되었음. PT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CUT(브라질 최대의 노동조직) 위원장이 현 노동부장관. 

빈곤층이 상당히 줄었으며 지니계수도 상당한 개선이 있었음. 지난 3년간 PT의 지역적 지지기반이 남부와 남동부의 산업지대에서 빈곤층이 많은 북부와 북동부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는 2003년 10월 시작된 가족기금 프로그램의 덕분으로 분석됨. 2006년 2월 조사에 의하면 가족기금 수혜층에서 룰라의 지지는 58%에 달하였으나 지원을 받지 않거나 주위에 지원받는 사람을 모르는 경우에는 지지율이 41%에 불과. 가족지원금 수혜자의 49%가 거주하는 북동부 지역이 보수파의 근거지에서 룰라 지지 기반으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됨.

  ○ 통치전략 전망

현실적으로 룰라가 경제엘리트를 배제하고 기존 경제구조에 도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임. 실용주의자 룰라의 관심은 시장 확대와 브라질의 영향력 강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이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노동계급과 빈민에 대한 그의 일생의 사명감과 의무감을 실현시키려 할 것으로 예상됨.

룰라의 정치노선도 일부 좌파가 기대 혹은 요구하듯 사회운동과 주민동원을 기초로 할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음. 이는 룰라가 이념적 지도자라기보다는 실용주의적 지도자이며 대화와 타협의 명수로서 현실의 요구에 끊임없이 적응해온 지도자라는 점에서, 나아가 PT의 지지기반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이전하고 있고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계급의 조직역량이 약화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동원을 기초로 한 정치를 펼칠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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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질문: 이번 대선에서 중앙단일노조(CUT)의 입장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공개적인 지지였다면 ‘이미지메이킹’을 했을 텐데, CUT에서는 당내 복잡한 정파문제들을 어떻게 고려했고, 룰라를 어떤 이미지로 선전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따로 챙겨보진 못했지만, 아마 공개적인 지지였을 겁니다. 그런데 CUT가 지금은 동력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내부에 급진적인 세력이 얼마 없습니다. 급진적인 세력은 따로 떨어져 나가서 단일사회주의노동자당(PSTU)을 결성했습니다. PSTU의 엘로이자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6.8%를 득표했는데 아직도 브라질에 이와 같은 급진적인 세력이 존재한다는 게 오히려 놀라운 일입니다. 

CUT도, PT도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대결과 동원 전략에 의존했습니다. 파업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모든 법을 사문화 시킬 수 있었던 1980년대가 CUT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92~93년 들어서면서 인플레가 높아지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고용이 불안해지고 노동자 수가 줄어들자, CUT의 영향력이 급감해버렸습니다. 교섭이 모두 양보교섭이 되어버렸습니다. 간식이나 휴식시간을 양보하는 대신 일자리를 보장받는 식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과거와 다르게 사회전반에 걸쳐 ‘노동’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최근 CUT를 방문했을 때 예전과 같은 변혁 지향적인 운동권 분위기들은 사라지고 제도화된 틀 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질문: 남아공 같은 경우엔 만델라 정권 이후 노조간부를 관직에 앉혔는데, CUT 간부가 관직 나간 경우는 많았습니까?

답변: CUT 간부들이 룰라 정부 초기엔 시장이나 주지사 또는 하원의원으로 많이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조지도자들이 정치권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긴 PT의 주요 당직과 출마후보 자리를 변호사와 같은 자유전문직들이 장악해버렸습니다.

질문: CUT의 동력하락은 우리 입장에서는 관심이 있게 봐야하는데, 그 원인이 노동자당이 제도권으로 진출하면서 노조보다 당 중심으로 전환되고, 인적으로도 제도권으로 많이 넘어간 것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브라질의 산업구조 변화나 노동계급의 구성변화가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정치행위자 차원은 아니라고 봅니다. 많은 논문들이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고용에 매달리는 부분을 지적합니다. 1980년대만 해도 몇 년 동안 5~6% 정도의 성장세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파업을 해도 위력이 있었고, 양보받아 낼 것도 있었죠.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는 파업을 해도 동력이 없어졌습니다. 숫자가 차이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걸 얻는 게 아니고, 가진 걸 안 내놓으려는 파업이기 때문에 파업의 의미가 별로 없어져 버립니다. 파업 동원 숫자는 적지 않지만, 방향성에서 힘이 떨어지게 되죠. 결국 원인은 경제구조의 문제에 더 비중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브라질 산업구조가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브라질은 원래 자기 제조업이 없는 나라입니다. 상파울루 시에 자동차가 그렇게 많이 다니지만 자기 나라 자동차 브랜드도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브라질에도 제조업이 있긴 합니다. 탱크나 자동차, 잠수함까지 만들긴 합니다. 문제는 북동부에서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는 빈민들을 흡수할 만큼 고용능력이 있는 산업이 없다는 겁니다. 투자가 전혀 이뤄지질 않고 있습니다. 

한편 좀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트와 매스(대중)라는 개념을 쓰는데, 우리 같은 경우는 엘리트와 매스의 분열이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정리가 되면서 초창기에 상대적으로 기득권의 구조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브라질은 이 구조가 200~300년 넘게 안착되어, 이제는 인종적으로도 구분이 됩니다. 부자는 백인이고, 흑인이나 인디오처럼 혼혈이면 하층민입니다. 부자들은 인종 자체가 다르니까 하층민들을 같은 시민으로 보질 않습니다. 우리는 박정희만 하더라도 논두렁에서 막걸리라도 마시는 동질성이 있었는데, 브라질은 물론 삼바, 축구처럼 국가를 상징하는 것이 많긴 하지만, 길거리에 가난한 사람을 보면서 같은 민족이라거나 나의 동족이라는 관념을 가질만한 계기는 거의 없었던 나라였습니다. 이런 구조가 계속 이어진 겁니다.

질문: 브라질은 지금 무토지운동(MST)이 사회운동의 중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하셨는데 CUT와 무토지운동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범죄가 브라질 정치나 사회체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나 비중은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우리가 영화에서 보듯 마피아와 정치인의 결탁 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다 부자입니다. 브라질 상층 지배계급은 대대로 상원의원이나 주지사를 하면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의 40% 정도가 물갈이 될 정도로 새로운 피가 수혈되고 있긴 하지만, 상층 인사들 특히, 북동부 지역은 과두제가 이뤄질 정도기 때문에 굳이 폭력조직과 연계를 가질 필요를 느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CUT와 MST는 큰 방향,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대개 함께 합니다. 또 CUT라고 룰라 정부를 항상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반대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CUT와 MST는 반대도 같이 하고 집회도 같이하고 그럽니다. 그렇다고 CUT가 PT하고 멀어지고 MST와 가까워지고 그런 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CUT가 별로 영향력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력동원도 MST가 훨씬 많이 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룰라가 별로 잘 한 것도 없는데 재집권에 성공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답변: 2002년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는 우리들은 쉽게 신자유주의 때문에 룰라에게 새로운 기대를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CUT의 국제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던 것이 당시 선거에 출마한 4개 정당의 정책이 똑같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 이름만 봐도 모두 좌파정당입니다. 인민당, 사회민주당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 똑같지만 룰라라는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찍어줬다는 겁니다. 또 당으로서 PT가 축적해온 신뢰가 있습니다. 참여예산제라든가 취학장려금 제도 등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인데, 룰라는 국회의원을 단 한번만 지낸 대통령입니다. 노동계에 몸담고 있다 PT로 와서 첫 번째 선거에 출마해서는 떨어지고 두 번째 출마해서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국회의원을 딱 한번 했습니다. 당시 브라질 최다득표로 상원의원에 당선이 됐지만 1990년부터는 출마를 안했습니다. 그리고 오지로 다니면서 민생투어를 시작합니다. 브라질 빈민들의 현실도 보고, 룰라라는 인물도 알리고, PT 정책도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바닥을 긁으면서 고공플레이를 한 겁니다. 또 PT 내부에선 룰라의 카리스마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룰라의 장점은 탁월한 대중연설과 복잡한 상황을 쉽고 명확하게 풀어내서 개개인에게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배해주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대중에게 강력한 신뢰를 형성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유리했던 점은, 룰라는 중도온건파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데올로기싸움에 끌려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PT의 강령을 보면 ‘사회주의’를 지향하긴 하는데 그 사회주의가 정확하게 뭔지, 흔히 말하는 반자본주의와 계급착취를 넘어선다는 것 이상은 명시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브라질 사회주의 모습을 만들어 가겠다고 나옵니다. 룰라는 사실 굉장히 실용주의적입니다. 그리고 대화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룰라는 군사독재자와도 대화하고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브라질 사람들의 정서에도 맞았던 겁니다. 브라질 사람들이 유순하고 느리고 순한 편인데 룰라의 그런 이미지가 먹힌 겁니다.

질문: 브라질 주변의 다른 나라를 보면 좌파 정권이 많은데 차베스, 모랄레스 등 좌파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답변: 확실히 가깝습니다. 집권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쿠바로 알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등에 자주 가고 차베스와도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룰라가 무조건 반미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아이티에 미국을 대신해서 군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익이 있을 때는 미국과 부딪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요할 땐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지키고,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와 연대합니다. 그런데 우루과이도 좌파정권이면서 메르코수르의 일원인데, 올 1월에 제가 우루과이를 돌아보는 중에 메르코수르를 탈퇴하고 미국과 FTA를 체결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메르코수르 내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강대국이기 때문에 우루과이 입장에서는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입장이고, 결국 메르코수르 안에서는 자신들이 꼼짝을 못 할 테니까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볼리비아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국가와는 우호적입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익이 있을 때 차이를 덮을 정도는 아닙니다. 남미의 정권들을 좌파라고 하는데, 정치적으로는 좌파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사실 실제로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다만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 합니다. 룰라가 당선돼서 CUT에게 좋았던 것은 일단 민영화를 멈췄다는 것과 더 이상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질문: 브라질의 진보적인 정당, 좌파정당의 집권을 한국 상황과 연결시킨다면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답변: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봅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듭니다. 좌파, 좌파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데, 강령상의 좌파지 실제 정책에서는 반영이 많이 되는 건 아닙니다. 빈곤층에 대한 지출을 늘린다거나 시민사회에 발언권을 준다는 것 정도입니다. 좌파정권이 자본주의의 쓰레기를 청소해주는, 즉 우파정권이 못하는 역할을 해주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에도 20세기 초에 비슷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민당이 상당한 득표를 하자 자본가들이 어질러 놓은 뒤치다꺼리를 우리가 할 필요가 없다고 방치를 했다가 나치즘이 창궐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좌파정당이 이러한 역할을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룰라가 이야기 했다는 것처럼 첫 단계에서 거시경제정책의 안정을 이루고 나서, 성장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냐 반자본주의냐’와는 무관합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공정한 체제로 가는 것이 무엇이냐를 찾아내는 것인데, 지금 브라질 경우에는 아직 손을 안 대고 있습니다. 손을 안 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고, 구조적으로 뿌리가 깊어서 정책 하나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계급구조뿐만이 아니라 정치구조와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정치권력엔 노동계급이 많이 진출했지만 사회권력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브라질의 노동운동은 공장 밖에서 합니다. 우리는 공장안에서 파업을 하는데 브라질은 파업을 하게 되면 공장문을 닫아버리니까 공장 밖에서 피케팅을 하는 정도입니다. 사용자들이 별로 걱정을 안 합니다. 이렇듯 좌파정당이 집권했다고는 하지만 브라질 사회의 헤게모니는 기본적으로 보수층에 있고 약간의 발언권이 진보세력에게 생긴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일부 급진 좌파에서는 조직화를 통해 돌파해 나가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성은 없습니다. 지식인들이나 국제사회주의 쪽에서는 일부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택할만한 선택인지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질문: PT가 강령을 최소강령으로 수준에서 규정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PT도 무수한 논쟁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최소강령 쪽으로 합의될 수 있었는지, 우리 같으면 끝장을 보자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을 텐데, PT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답변: PT 출발 당시부터 룰라를 지지하는 세력이 과반수였습니다. 거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도시게릴라로 무장투쟁까지 했던 급진세력들이 실용주의로 돌아서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의 김문수 씨나 이재오 씨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 룰라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비이념적이고 비이데올로기적인, 좋게 이야기하면 건강한 노동자나 실용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1994년도엔가 좌파에게 당권을 넘겨준 적이 있지만 2년 후에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급진좌파도 떨어져 나가봐야 소수파로 힘을 쓸 수가 없으니까 불만은 있어도 PT안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PT 내에 3분의 1이 좌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 핵심은 아니고 당 외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례가 우루과이입니다. 우루과이도 정파가 많은데, 정파가 생기면 여기는 분열을 통해 지지자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해서 힘이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 때 1·2차 결선투표가 이뤄졌습니다. 전엔 다수표만 득표하면 됐지만 과반수를 득표해야 하는 것으로 선거법이 개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좌파적인 후보가 당선할 수 있었습니다. 물어봤더니 자기네들 정치문화가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우루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껴서, 힘으로는 안 되니까 항상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는 겁니다. 또 신자유주의를 언제부터 했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어떤 정책을 일관되게 밀고나간 적도 없다고 합니다.

질문: 브라질은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나라인데 가톨릭과 룰라정부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답변: 예전엔 가톨릭도 해방신학이나 좌파의 목소리가 컸는데, 요즘은 보수파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보수파는 정치에 관여는 안하는 편이고, 가톨릭 신자의 숫자도 많이 줄어드는 실정입니다. 아직도 80% 정도를 차지하긴 하지만 미국에서 들어온 복음주의 선교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중파 TV에서 목사와 신부들이 방송을 통해 상담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 정도로 브라질 사회가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는 반증일 겁니다. 그런 식으로 대중들이 안식을 찾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 두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먼저 공무원연금 개혁문제가 브라질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는데 어떻게 정리가 되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국민여론이 어떻게 호응을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하나는 브라질 노동자당이 한국에 10여년 전 대중적으로 소개되었을 때 참여예산제와 뉴끌레오(민주노동당의 분회와 비슷한 구조)라는 조직구조를 간판상품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참여예산제를 실시했던 대표적인 도시인 포르투알레그레에서도 PT가 패배하는 등, 이 정책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 것인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도 뉴끌레오 제도를 모델로 해서 분회도 만들고 했는데 잘 안 되고 있습니다. PT에서는 열심히 참여를 하고 의사결정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사실 참여예산제는 상당히 인기를 얻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산 전체를 한 게 아니고 복지예산 일부에서만 시행했던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총액을 두고 다리를 놓을지, 병원을 지을지, 학교를 세울지 등 우선순위를 결정할 기회를 주민에게 준 것뿐입니다. 공무원이 탁상공론식으로 예산을 배분하는 것을 막고 실제 주민들의 필요에 맞게는 갔는데, 그렇다고 브라질 복지수준이 일거에 높아지게 만드는 제도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뉴끌레오는 브라질에서도 잘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쪽에 왜 안 되는지 물어보면, 아래로부터든 위로부터든 조직이라는 게 뭔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상 뉴끌레오에는 결정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책에 보면 결정권이 있다고 나오긴 하는데 사실은 내부갈등도 있고 흐지부지되어 없어져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부터는 그렇게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