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존중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

노동사회

노동인권 존중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임

편집국 0 4,281 2013.05.23 11:56

포항건설노조 점거농성사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한국의 보수언론이 노동자들의 인권, 특히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대해서 무관심할 뿐 아니라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도대체 포항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그러한 ‘불법 점거’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는지 등의 질문은 애초 제기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노조 짝사랑이 악습을 키웠다”는 식의 정부 비판이 재등장할 뿐이다. 보수언론의 이러한 보도 태도는 한국 사회의 ‘반노동조합 의식’을 다시 강화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악습 혹은 혐오물 취급받는 노동조합 

자본/경영자는 대체로 노동조합을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경영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저항 자체를 물리적 폭력으로 진압하다가 나중에는 노동조합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 하거나, 이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노동조합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갔다. 또 지난 20여 년간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아웃소싱 관행에는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한다는 점 못지않게 노동조합을 회피하고자 하는 동기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이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배경에도 역시 자본/경영 측의 ‘노조 혐오’ 혹은 ‘노조 회피’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실질적 당사자인 포스코 경영자도 반노조주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포스코 조직인사실은 노무관리대상자를 ‘비우호’, ‘중도’, ‘취약계층’ 등으로 구분해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가운데 비우호계층으로는 ‘포철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 관련자를 비롯해 노동조합 활동에 관심을 보인 근로자들이 분류된다고 한다. 

한편 ‘노동조합 혐오증’은 법집행을 담당하는 국가공무원에게도 나타난다. 지난 2월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노사관계 교육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한 간부공무원이 민간기업의 반노조 공작에 뒤지지 않는 노동조합에 대한 치열한 반감과 술수를 드러낸 기사(『한겨레신문』, 2006년 6월16일자)를 보면 그 증세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의 국가와 자본/경영자, 그리고 언론의 이와 같은 반노동조합주의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그 역사적 뿌리가 있다. 한국의 국가는 체제 저항적 노동운동 혹은 정치적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기업별 노동조합체제를 강제하고, 동시에 기업 및 사업장 수준에서 노사협조를 ‘지도’해 왔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국가폭력을 동원하여 파괴하는 뿌리 깊은 ‘반노동조합-반노동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다. 1987년 이전까지 국가는 노동조합을 정치적 동원의 보조물로서 활용하거나, 경제개발을 위한 경제적 동원의 보조기구로서만 그 역할을 규정하였다.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은 노동조합의 이 같은 기능을 보장하는 선에서만 형식적으로 인정되거나, 때로는 그조차 박탈되었다. 또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 한국기업의 경영자들은 대체로 ‘노조불인정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이는 노동운동을 억압했던 국가의 지원을 받아 큰 비용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노동인권 무시비용, “그럭저럭 감당 되는데~” 

그런데 노동자대투쟁 이후 경영자들이 노동조합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데 드는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삼성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노조지배전략’으로 이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노조지배전략의 경우에도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선거를 비롯한 의사결정과정에 음성적이면서도 불법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고, 또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비용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아무튼 1987년 이후 지난 20여 년간 한국에서 노조지배전략이나 무노조주의가 지속되어온 데는 그러한 전략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경영자가 판단하기에 ‘감당할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사회의 지배세력의 노동조합 혐오증과 반노조주의를 교정해야할 일차적인 집단은 물론 노동조합이다. 이것이 바로 산별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가장 커다란 임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노동기본권을 ‘보편적인 인권’으로서 규정하고, 이러한 보편적 인권을 존중할 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요구하는 운동을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세력과 함께 적극적으로 전개해나갈 필요가 있다.  

지난 봄 미국 국무부 인권특사가 북한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문제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가 북한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문제제기하게 된 배경과 사실의 정확성 여부는 제쳐두더라도, 그가 노동자 인권이라는 ‘보편적 기준’을 근거로 문제제기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하고 싶다. 물론 미국이 경제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률을 보이고 또 노동조합 파괴를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무수한 컨설팅 전문가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미국의 노동자들이 적절한 수준의 노동 인권을 보장받고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국의 노동자들이나 한국의 노동자들이나 북한의 노동자들이나 모두 노동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하나의 인권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는 과정 속에는 지난 250여 년간의 자본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터득된 역사적 교훈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은 단결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고용주와 대등한 지위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노동자들이 고용주 앞에서 권리를 지닌 성인이 아니라 고용주의 의지에 완전히 종속된 하인이나 무기력한 어린애와 같은 상태에 놓이기 쉬운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노동자들에게 단결권을 보장하는 것은 “인권과는 양립할 수 없는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의 노예적 종속 관계”에 반대하는 ‘도덕적 선택’이기도 하다.

노동인권 보편 확립 위해 ‘지구화’ 활용하기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약화되는 경향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글로벌 시대의 보편적인 규범으로 정착되어가는 경향도 동시에 존재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제창한 ‘지구협약(Global Compact)’의 10가지 원칙에도 인권과 환경, 부패추방에 관련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노동기본권 관련 항목으로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의 권리’, ‘강제노동의 폐지’, ‘아동노동의 근절’, ‘고용과 직업상의 차별 철폐’ 등이 포함되어 있다. 2006년 1월 말까지 세계 2,772개 기업이 이 원칙에 동의, 지구협약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06년 4월27일에는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네덜란드 공무원연금, 뉴욕교원연금, 영국대학교원연금 등 30여 개 세계적인 연기금 기관장들이 모여 투자결정 때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를 고려하는 것을 뼈대로 한 ‘사회책임투자원칙’을 발표하고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들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다하지 못하는 기업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하거나 투자 거부와 같은 시장 기구를 이용한 처벌을 호소해왔다. 특히 신발, 의류 등의 패션제품이나 가구, 음료, 담배 등 소비재 상품의 경우 제품의 이미지에 대한 타격이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이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기업윤리규범’을 만들고 기업의 비용을 들여 사회의 ‘인증’을 얻어내려고 시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나이키사의 경우, 1990년대 초 나이키 하청공장의 과도한 착취에 대해서 미국 학생운동과 시민단체에 의해서 문제가 제기되자 1992년 기업윤리규범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전 세계 나이키의 하청공장에서 이러한 기업윤리규범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한국의 나이키 협력업체의 경우에도 이러한 기업윤리규범의 준수가 중시되고 있다고 하는데, 나이키의 기업윤리규범 가운데는 ‘자유로운 조합구성과 단체교섭에 대한 권리’와 함께 ‘강제노동’과 ‘미성년자 노동’의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나이키 이외에도 리복, 베네통 등 브랜드가치를 중시하는 많은 기업들이 윤리적인 행위 기준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하고, 이의 준수여부를 검증받도록 하는 다양한 협약에 참여하고 있다. 

반노조주의 포기시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윤리를 강조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까를 회의하는 시각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인증해주는 다양한 ‘산업’만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을 위험성도 있고, 기업 윤리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어 해당 기업의 시장 지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만 이용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노동인권의 보장은 21세기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는 추세이고, 노동조합은 이러한 측면을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는 노동기본권뿐 아니라 환경과 인종/성적차별의 금지, 전쟁과 테러에 대한 반대 등 다양한 차원에서 강조되고 활용될 수 있다. 

한국과 같이 역사적으로 반노동조합주의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회에서는 노동인권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 중요한 항목으로 강조하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일부 펀드에서는 환경친화기업을 투자대상으로 표방하고 있다. 또, 펀드사가 기금을 조성하여 시민단체에 기탁할 것을 표방한 펀드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노동인권의 존중’은 항목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의 노동조합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이 기업으로 하여금 21세기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 가운데 하나가 노동인권의 존중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노동인권 존중 여부를 검증하는 절차를 만들어나가도록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천이 기업으로 하여금 반노조주의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비용에 대한 손익계산서를 다시 헤아려 보고, 반노조주의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