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을 재선거투쟁을 돌아본다

노동사회

동대문을 재선거투쟁을 돌아본다

admin 0 3,809 2013.05.07 09:45

 

 

jsjung_01_1.jpg어둠이 잔뜩 내려앉기 시작했을 때 나는 연맹 간부들과 함께 동대문으로 출발했다. 말이 동대문이지 숭인문을 훨씬 지나 거의 중랑천에 다 가서야 선거구로 보이는 지역으로 꺾어 들어갔다. 내가 어둠속에서 처음 마주친 동대문(을) 지역은 불야성으로 흥청대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장안동 유흥가 쪽이었다. 

이날 시끌벅적한 동네를 뒤로하고 모처에서 밤을 세워 전략을 심도있게 토론했다. 이때가 한여름이 시작될 때인 7월초이니 나는 석 달 보름이나 국회의원 재선거투쟁에 매달린 셈이다. 특히 선거대책본부 상황실장을 맡았으니 누구보다 실전 경험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동대문(을) 지역은 아담하면서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골목골목 누비기에 좋은 지형이었다. 서쪽으로 청량리역과 매춘지역(속칭 588)이 있고, 북쪽으로 서울시립대와 단종 무덤이 있었다는 배봉산을 경계로 하고, 동쪽은 중랑천이 흐르고, 남쪽은 지하철 5호선이 지나가는 천호대로가 있다. 위쪽은 전농동, 아래쪽은 답십리동, 동쪽은 장안동으로 모두 13개 행정동이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중하층 저소득계층이고, 영세 중소상공인들이 밀집된 곳이다.

이 지역 인구수는 18만6천8백명, 유권자수는 14만명이고, 세대수는 6만4천 세대다. 역대 총선에서 매번 호각세를 이뤘지만 김영구후보(한나라당)가 이겼고, 대선에선 김대중후보가 항상 앞섰던 곳이었다. 지난 15대 대선에서 권영길후보가 1,015표(0.9%)를, 16대 총선에서 청년진보당(사회당)이 1,512표(1.9%)를 얻었던 곳이다.

이번 재선거에 6만4천명(45.6%)이 투표하여 홍준표후보(한나라당)가 32,095표(50.6%), 허인회후보(민주당)가 28,381표(44.7%), 장화식후보(민주노동당)가 1,850표(2.9%), 김숙이후보(사회당)가 1,152표(1.8%)를 얻었다.

3% 밖에 득표하지 못했지만

10월25일 저녁 선대본에 모든 선거운동원들과 관심있는 노조간부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개표장에 있는 운동원으로부터 상황이 신속히 전달돼 왔다. 초반 부재자에서 무려 22% 득표했다는 소식에 운동원들은 고무되었다. 동별 개표에선 곳에 따라 5%에 육박하기도 했지만 다소 기대치에 못 미치는 개표상황이 전해지자 모두들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늦은 밤, 상황은 종료되고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리 당은 정확히 2.91% 1,850표를 얻었다. 지난 4·13 총선에서 우리 당 출마지역 평균 지지율 13%와 서울 출마지역(7곳)의 평균 지지율 5.4%에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운동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달랐다. 활력이 넘치고 기세가 당찼다. 마치 2.91%가 아니라 29.1%를 얻은 얼굴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3% 득표만으로 선거운동 모두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척박한 토양이고 힘든 조건이었지만 '고난의 행군' 끝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겼다고 자부했고, 우리들의 가슴 속에 이심전심으로 흐르는 그 무엇인가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원들은 치열한 격전 끝에 초기 우리당 지지도가 완전 바닥인 상태에서 막판에 10%까지 끌어올렸다. 개표장의 참관인들과 기자들도 놀랐지만 부재자에선 22%를 득표하여 우리 당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것이다. 

열정적인 운동원들이 감동을 전달했다

10월9일 후보 등록일,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으스스 추워지더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정말 힘든 하루였다. 다른 당의 유급 운동원들은 모두 철수했지만 우리 운동원들은 지칠 줄 모르고 뛰었다. 후보팀, 유세팀, 골목선전단, 조직사업팀, 전화홍보팀, 지원팀 등으로 편성된 운동원들은 연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맡은 임무를 척척 수행해 나갔다. 벌써 2달 넘게 투쟁해온 동지들도 있었다. 이러한 운동원들이야말로 당의 보배이자 희망이다. 

운동원들은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과 같이 호흡을 맞췄고 자신의 악기를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이 열정이 바로 선대본의 에너지이자, 하나가 되어 고된 과정을 이기는 원동력이 되었다. 

운동원들은 주민들에게 우리 당에 대한 인상을 깊이 새겼고, 당 조직의 씨앗을 뿌렸고, 향후 사업의 토대를 깊이깊이 갈았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열정적인 운동원들의 모습 속에서 주민들은 민주노동당이 어떤 당인지를 알았다. 운동원들이 골목골목 누비고 다닐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민주노동당이 좋다"고 하는 분위기를 몸으로 느꼈다. 이렇게 뿌린 씨앗을 꼼꼼히 챙긴다면 당은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을 열정만으로 모두 뛰어넘을 수 없었다. 새로 투입되는 운동원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고 곧바로 배치했다. 많은 운동원들이 투입됐으나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운동원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선거전략과 운동방법을 명확히 공유하지 못해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했다. 급박하고 짧은 시간에 운동원을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전문적인 단기 훈련프로그램이 아쉬웠다. 운동원이 선거운동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부족했다. 우리는 수없이 "10명만 더 있으면 숨통이 트일텐데"라고 말했다. 특히 지리에 익숙하며 지역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선대본에 배치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까웠다. 

"바퀴벌레 약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운동을 시작할 무렵 주민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주당으로 알기도 하고, 민주당 후보가 장화식 후보로 교체된 줄로 알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붙일 때 아예 "노동당입니다. 장화식입니다"라고 했다가 대화가 되면 '노동당'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꿨다. 

이렇게 당이나 후보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는 처음부터 죽도록 누비고 다녔다. 사전 운동기간에 벌써 지역구 골목을 두 번 이상 다녔다. 후보는 신발을 새로 갈아 신었고, 수행팀을 보강하기도 했다. 역시 종반전엔 절룩거리는 운동원, 치질이 재발된 운동원, 목소리가 가버린 운동원이 나왔다.

운동 과정에 우리는 많은 열성지지자들을 만났다. "이렇게 진실하고 깨끗한 후보를 보지 못했다"며 후보에게 금목거리를 선물하신 장안동 할머니, 밤 1시 선대본을 방문해 통닭과 맥주를 사오셔서 "정말 고생 많다"며 격려해 주신 천주교 아저씨, "운동원들 몽땅 데리고 와서 우리 식당에서 식사 한번 하라"고 하신 해물탕 할아버지, 틈만 나면 먹거리 사오셔서 운동원들 격려하신 씨름선수 아저씨, 밤이 되면 꼭 전화하셔서 바닥의 민심을 알려주시며 내일의 운동전략을 충고해 주시던 바퀴벌레약 전라도 아저씨(이분은 선대본 해단식 날까지 애정을 보이시며 운동원들과 함께 소주 한잔 하셨다).

이렇게 급속도로 주민들 속으로 뿌리 내려가던 우리는 적지 않는 벽들도 마주쳤다. "민주노동당이 참 좋다. 그러나 힘이 없지 않느냐. 표 찍을 땐 아무래도 A가 될 것 같아 다른 사람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그놈이 그놈이야. 민주노동당도 꼭 같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다. 물론 우리는 운동 과정에 이에 응답할 수 있는 내용을 준비했지만, 이는 몇 마디로 응답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운동 과정에서도 확인했지만 '힘있는 정당, 전망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대안세력으로 인식될 수 있고 사표심리를 방지하여 잠재적인 지지자를 투표하는 지지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식의 선거운동 전략과 방법이 있어야 한다

jsjung_02_1.jpg우리는 7월초 선거기획단을 구성해 선거전략과 운동계획 수립했다. 여기서 많은 것을 다양하게 토론하고 골격을 잡았다. 선대본은 운동 전과정을 통해 계획된 일정이나 내용을 최대한 집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우리 당의 인력과 재정, 지역기반과 활동의 축적정도 등을 고려하여 우리에게 더욱 적합한 선거운동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축적된 경험에 따라 「우리 식의 선거운동 전략과 방법」을 수립해야 한다. 자칫하면 한나라당·민주당 운동방식의 축소판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우리가 파악한 민심은 '민생을 외면한 정치싸움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민생고에 대한 호소'였다. 극도의 정치혐오감은 우리 당에도 적지 않게 해를 미치고 있었다. 이런 점이 확인된 상황에서 단기간에 주민들에게 파고들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물론 이에 대한 대책을 시시각각 고민하고 방안을 최대한 제시했다. 그러나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력상품'을 보다 선명히 내세우고,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 후보에게 강한 매력과 희망을 가지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

초기에는 낮은 인지도와 지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대중을 설득하고 휘어잡을 수 있는지, 중반기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당 지지도와 후보 인지도를 득표율로 전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없는지도 고민했다. 물론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운동과정에 이를 포착하고 운동방식을 전환하려고 애를 썼다. 

선거법은 사전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어 우리 당의 선거운동에 매우 불리하다. 따라서 사전선거운동 방법 즉 선거법을 피해가거나 돌파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막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호각세를 형성하며 사활적으로 금권-조직선거를 진행했고, 사표심리가 강하게 작용되었다. 우리에게 좋은 분위기를 지지도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려나가는 것 같은데 역시 문전처리가 쉽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돈과 조직 힘을 최대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었을까? 

일상활동 없이 승리할 수 없다

우리는 섬세한 계획에 따라 확고히 추진하지 못한 면은 있지만, 득표전략에 있어서 '계급득표 전략과 표적집단 전략'을 정했다. 그러나 이런 단기 전략도 중요하지만, 선거투쟁의 승리를 위해선 '갑작스런 등장'이 아니라 꾸준한 지역사업의 연장선에서 선거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확인했다. 몇 달 며칠간 선거구를 누빈다고 갑자기 큰 성과가 나올 수 없다. 역시 기초 체력이 중요하다. 

지속적이고 왕성한 지역사업이 없는 상태에서 추진한 우리의 조직사업은 어려움이 많았다. 초기에 동책 체제를 갖췄지만 시스템이 가동되질 못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조직사업팀과 골목선전단를 두고 조직사업을 진행했으나, 기본적으로 동별 아군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힘들게 운동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바람선거도 조직사업이 기초로 되어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회의자료'에만 있는 노동자 정치세력화

이번 선거투쟁의 커다란 특징은 노조 조직과 당 조직의 결합을 통한 선거운동이었다. 사무금융연맹과 당 서울시지부·동대문 중랑지부간의 결합이었다. 그만큼 기대가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득표전략의 하나로 '계급득표 전략'을 설정했다. 처음부터 노조조직을 통한 연고자 파악작업을 했고, 홍보내용에서도 정리해고 철폐와 고용안정, 세제개혁,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강조하고, 주요 구호로 "노동자 서민의 친구"를 제시했다. 또 지역내 노조 방문, 총연맹과 각연맹의 물적·인적 지원, 민주노총 후보 확정이 있었다. 

총체적으로 보면 노조조직과 당조직과의 결합을 통해 원만하게 선거전을 치렀다고 할 수 있다. 노조는 정치세력화를 위한 향후 과제를 확인했고, 당은 노조와의 결합방도에 대해 점검할 수 있었다.

노조조직에 몸담고 있는 나는 아직까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회의자료'에만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노조 조직은 실전에 응할 준비나 태세가 되어 있지 못했다. 부당노동행위나 구조조정 문제가 발생하여 수도 없이 국회에 찾아다니면서 받은 답답함과 수모를 뼈저리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막상 선거투쟁이 벌어졌는데도 관심도나 조직적 결의가 낮은 편이었고, 물적·인적 지원 등 선거지원 내용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초사업인 연고자 파악과 이를 통한 추가 조직화, 득표력으로 연결하기 위한 노조별 간담회가 막힘없이 진행될 준비나 지침이 없었다.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선을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담당하는 조직만 책임을 지고 있었다. 

역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도 일상적인 정치활동 없이 선거시기에 나타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연맹·단위노조와 지구당간의 상시적인 결합체제(자매결연방식)를 구축해야만 실질적인 정치세력화도 가능하고 선거시기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선거투쟁기엔 연맹과 단위노조는 사업일정을 최대한 조정하여 선거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당은 정치세력화에 관심있는 전현직 간부나 조합원들이 지역정치활동에 조금이라도 더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이같이 일상적인 정치활동의 장을 개척하지 않고서는 정치세력화의 길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가끔 동대문 선거투쟁 상황을 생각해 본다.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한 선거투쟁에 우리는 너무 준비 없이 덤볐고 허술하게 치렀다. 만약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우리는 결코 대충대충 선거에 임해선 안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60호